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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s Council Korea
아르코의 활동을 공유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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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의 활동을 공유해드립니다.
* 일 시 : 2005년 11월 24일 (목) / 11시 * 장 소 : 예술정보관(서초동 예술의전당 내) / 3층 다목적감상실 * 관 람 료 : 무 료 (선착순) * 문 의 : 02) 760-4673~5
* 프로그램 소개 - Pierre Fournier (1906-1986)
푸르니에는 나이에 비해 기교가 뛰어났으며 놀라운 활의 재간으로 유명했다. 서정적인 연주와 뛰어난 예술 감각으로 '귀족적 첼로 연주자'로 일컬어졌는데, 모리스 마레샬은 그를 '미래의 첼로 연주자'라고 평했다. 1925년 파리에서 에두아르 콜론 관현악단과 협연하여 성공을 거둔 이후 유럽 전역을 돌며 알프레 코르토, 자크 티보, 푸르트벵글러, 카라얀, 라파엘 쿠벨리크 등 당대의 모든 유명 음악가들과 협연했다. 또한 아르투르 슈나벨, 요제프 시게티, 윌리엄 프림로즈 등과 함께 브람스와 슈베르트의 거의 모든 실내악곡을 리코딩하기도 했다. 1937∼1939년에는 에콜 노르말에서, 1941∼1949년에는 파리음악원에서 첼로를 가르쳤다. 그 후, 푸르니에는 연주활동에 집중하여, 1948년에는 미국, 61년에는 소련에 데뷔했고, 우리나라(세종문화회관 개관기념 음악회)와 일본까지 포함해서 전 세계를 연주 여행했다. 고전음악뿐 아니라 현대음악도 좋아했던 그를 위하여 보후슬라크 마르티누, 장 마르티농, 프란시스 풀랑크 등 여러 현대 작곡가들이 작품을 썼다. 1956년 가족과 함께 스위스로 이주했으나 프랑스 국적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피아노 연주자인 아들과 함께 가끔씩 첼로와 피아노로 연주할 수 있는 소나타를 협연했다. 1963년에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 이듬해 오피시에로 서훈되는 등 만년까지 존경받다가, 우리나라를 다시 방문하기 직적인 1986년 1월 심장마비로 생애를 마쳤다.
* 감상곡 소개 (감상시간 : 약 1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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