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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 예술인문콘서트 오늘 여섯 번째 시간, 만화가 박흥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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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4.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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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 예술인문콘서트 오늘 여섯 번째 시간, 만화가 박흥용

격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에 만나는 아르코 예술-인문콘서트 오늘, 7월 10일 열린 여섯 번째 시간은 만화가 박흥용 작가와 함께 했습니다.

지난 5월 1일부터 예술인문콘서트를 통해 연극배우 김소희, 영화감독 장항준, 음악가 하림과 지난 시간에는 아마도이자람밴드까지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가 나와 그들의 예술세계와 삶을 함께 나누었는데요. 이번 시간은 어떻게 꾸며질지 궁금했습니다.

2010년 이준익 감독의 동명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원저자로 더욱 알려진 박흥용 작가는 사실 1981년 만화 돌개바람을 데뷔한 이후 내파란 세이버, 그의 나라, 최신작 영년까지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국내 대표적인 작가주의 만화가로 손꼽히는 인물입니다.

지금은 아르코미술관에서 전시를 가지고 있고, 그래서 특별히 이번 프로그램은 미술관 전시실에서 박흥용 작가의 작품관람과 함께 진행이 되었습니다.

작품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온 그간의 활동과 다르게 미술관의 전시나 그와 관련된 강연을 통해 독자와 직접 대면하게 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이야기하면서, 처음에는 연거푸 물을 마시면서 조금은 긴장한 것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박흥용 작가의 인생 여정을 따라 만화를 그려내듯이 이어졌습니다.

아르코 예술인문콘서트 오늘 여섯 번째 시간, 만화가 박흥용2

아주 어릴 적, 전통 목공기술로 한옥이나 사찰 등을 짓던 할아버지가 나무로 짜주신 책상 위에 아버지가 다음과 같은 글귀를 적어주셨습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 옳게 읽고 바로 가자’

당시에는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고, 책을 열심히 읽으면 된다는 건가보다 했을 뿐, 그 글귀가 인생을 통틀어 큰 의미가 될지는 몰랐습니다. 아버지는 탱화를 그리시고, 형님은 위조지폐(?)를 그리시는 나름대로의 예술활동의 환경이 조성돼 있던 덕분에 박흥용 작가는 어릴 적부터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초등학교 시절에는 전국미술대전에 출품해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부잣집에나 TV가 있던 시절, TV를 볼 수 없었던 박흥용 작가는 동그란 딱지 속에 있는 그림을 따라그리다가 그 속에 스토리까지 덧입혀 친구들에게 꽤 인기 있는 어린 작가였습니다. 부모님을 따라 여러 번 전학을 다녀야만 했던 외로운 유년기를 그 나름대로의 재능을 통해 극복했던 것이죠.

박흥용 작가는 스무살이 되기 전 한국만화계 1세대 박기정 선생의 문하로 들어갑니다. 그 안에서 박흥용 작가는 새로운 세상을 발견합니다. 자료실 안에 있던 수많은 작품들. 그것들은 박흥용 작가의 또다른 낙원이었고, 그 작품들을 보면서 혼자 이야기를 짓기도 하고, 만화공부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낙원이 영원하진 않았습니다.

눈으로는 좋은 그림을 많이 보고 있었지만, 그걸 손으로 그려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눈으로 보는 것을 손으로 완벽히 표현해내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작가는 이 시절을 지옥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낙원이었던 만화가 지옥으로 변해버린 것이죠. 수년간 사람을 그렸습니다. 손이 사람을 기억하도록, 길거리에서 사람을 눈에 묻히고, 집에 와서 그려내기를 수년 간, 나중에는 같은 표현도 글보다 그림이 더 빨라지는 경지가 오게 되고, 옷 속에 감춰진 사람의 체형까지 보이게 됐다고 합니다. 부단한 노력의 결과물이었죠.

1981년, 각고의 노력의 결실로 데뷔작 돌개바람을 발표하게 된 작가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큰 아쉬움과 함께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습니다. 분명히 그릴 때는 기쁜 마음이었지만, 지옥이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답니다. 막연한 목표였던 데뷔였지만, 길을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을 그리고 포기하기도 여러 번, 확인도 안하고 발표할 때도 있었습니다. 소재가 있었음에도 그릴 에너지가 고갈돼 그림을 그리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아르코 예술인문콘서트 오늘 여섯 번째 시간, 만화가 박흥용3

작품을 그리는 데 필요한 에너지에 대해서 많이 고민을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작품을 시작하면 몇 년씩이나 걸리는 작업이었고, 그만큼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데뷔 이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작품을 발표했지만, 뒤돌아보면 후회가 남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쌓이고, 박흥용 작가도, 그의 작품도 점점 더 발전했다는 것을 이야기를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고우영 작가가 '이 만화를 내 무덤으로 삼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만화가로서 적지 않은 나이가 되니 이제는 이 만화가 내 인생의 마지막이 되어도 괜찮은가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아르코 예술인문콘서트 오늘 여섯 번째 시간, 만화가 박흥용4

눈이 오는 어느 날 새벽, 어느 곳에서 대나무 잎에서 싸락눈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박흥용 작가는 순간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한 겨울에도 자기 색깔을 잃지 않는 대나무 잎사귀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그 최고의 소리처럼 평생을 두고 후회가 남지 않는 최고의 작품을 남기고 싶다는 것. 그리고 영년을 그리면서 다시금 만화가 낙원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더불어 그 작품이 독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어야 하고, 이를 통해 만화가의 책임을 다하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 옳게 읽고 바로 가자’

아르코 예술인문콘서트 오늘 여섯 번째 시간, 만화가 박흥용5

​만화를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실제로 그렇게 읽어야 제 맛인 작품도 있습니다. 하지만 박흥용 작가의 만화를 읽다보면 여러 가지 생각과 가끔은 고민에 빠져들 때도 있습니다. 그만큼 깊이 고민해야 할 것들을 던져놓기 때문이죠. 하지만 작품을 통해 작가의 고민을 공유해왔고, 또 이 시간을 통해 그 과정을 듣고 나니 의미 있는 공감대를 느끼는 한편, 다시한번 박흥용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아직은 짧은 내 인생을 반추하고, 새로운 자극제로 삼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예술가의집 김성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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