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아르코에서는
올해 지원 선정된 지원 사업 중 진행 되기 전 참여자와의 인터뷰 또는 진행 후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다원예술 작업에 대해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이번 인터뷰대상은 실험적예술및다양성증진지원사업(2013)에 선정된 최찬숙 작가의 ‘90억 가지 신의 이름’ 작품 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2014년부터는 아르코 다원예술분야에 선정된 작품 및 작업에 대해 더 많이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
ㅇ 질문 : 김윤희(예술지원부)
ㅇ 답변 : 최찬숙(‘90억 가지 신의 이름’)
Q1. 최찬숙 작가는 주로 독일에서 활동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국내에서의 활동은 이번이 처음이신가요? 그리고 작품을 하실 때 주로 어떤 분들과 같이 작업을 하시나요?
국내에서는 2010년 쿤스트독겔러리에서의 개인전이후에 남산예술극장 주최의 페스티발 장에 초청되어 극단 몸꼴과 함께 "ProvateCollection"이란 작품을 문래예술극장에서 선보였습니다.
이번 "90억 가지 신의 이름"(5.31~7.28, 성곡미술관)에서의 작업과 같은 규모 있는 전시와 공연은 처음 선보이는 것 같네요. 주로 인터미디어, 즉 타장르의 예술언어를 컬렉트하고 커뮤니케이션시키는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프로젝트의 주제와 형식에 맞는 장르의 예술분야를 리서치하고 그 분야에서 만나게 되는 분들과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07년 진행한 „1218“이란 죽음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인간의 육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언어가 무용이란 생각이 들었고 그 중에서도 일본의 부토무용에 심취하게 되어,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계신 유럽의 부토무용 1세대이신 "MinakoSeki" 와 "Yuko Kaseki"를 찾아가(당시 굉장히 유명하신 분들이라 상당히 어려웠죠)무작정 프로젝터 제안서를 들이밀기도 하면서 같이 작업을 시작한 경우도 있습니다.
Q2. 국내에서의 활동과 해외에서의 활동이 어떤 점에서 많이 다른가요?
인터미디어 분야의 경우에는 결국 각 장르 (음악, 미술, 무용, 건축…….등등) 의 언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구사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만나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인거 같습니다.
몸, 소리, 시각 등 각 장르가 추구하고 사용되어지는 언어들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 작업을 엮어나가기 위해서는 각 언어를 이해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부분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다른 장르를 이해가기 위해서는, 자기가 다루고 있는 미디어(medium)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저의 경험치 안에서의 차이점은 외국의 경우 이 미디어의 대한 이해가 예술 그 자체의 가치로 이해되고 해석되어지는 반면, 한국의 경우에는 사회적, 자본주의의 구조적 논리가 많이 반영되고 있는 거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가 쉽고 간단하게 소통할 수 있는 문제들이 좀 더 어렵고 복잡한 구조로 변해가고 있는 거 같습니다.
특히 인터미디어 작업과 같이 아트마켓이 생성되어 있지 않은 장르는 더더욱 단기간에 무언가가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지요. 좀 더 사회의 많은 이해와 사랑, 그리고 인내심의 기반이 필요한 거 같습니다.
Q3. 이번 작품의 제목이 ‘90억 가지 신의 이름’인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그리고 작가님이 보여주시고 싶었던 작품의 의도와 관객이 반응하는 차이점은 없었나요?
"90억 가지 신의 이름"은 라마승려의 믿음을 원용한 아서클라크의 단편소설의 제목입니다.
동명의 인터미디어 프로젝트인 "90억 가지 신의 이름"은 30대 중반의 건축가, 배우, 이론가, 작가가 마주하는 믿음의 실체에 대한 아카이브 형식의 프로젝트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신의 이름은 90억 개가 넘고 70억 세계 인구를 감안 하였을 때 사람의 숫자보다도 더 많은 신이 존재하는 세상. 이들은 불안의 또 다른 이름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인간 내면의 갈증의 표상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신들의 이름이 결국 인간내면의 불안함을 대변하는 또 다른 표상 인거죠. 그리고 그 믿음의 실체는 극한의 순간에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가정에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극도의 슬픔과 괴로움의 순간 당신이 숨는 곳은 어디입니까?"
믿음에 관한 12가지 질문이 담긴 노란봉투를 받은 건축가, 이론가, 배우들의 대답을 각자 그들의 언어로 풀어낸 프로젝트 입니다. 즉 글과, 공간, 소리, 언어, 영상. 배우들의 1인극이 혼합된 형태의 전시였습니다.
프로젝트의 기획 단계부터 전시를 하는 시점까지 어떤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 라는 불안한 예감이 있었죠. 하지만 저희 내부의 약속은 "솔직함"이였습니다.
각자 불안의 시기 전환의 시기를 마주보고 있었던 만큼, 그냥 그 불안들을 솔직함으로 마주하고 싶었었죠. 그렇기에 날것과 같은 작업들을 그대로 내보였습니다.
저의 의도는 시대를 살아가는 작업자들의 불안감과 공포감들을 그대로 표출 시키고 싶었습니다.
이때가 아니면 절대 하지 못할 작업이란 생각도 있었고, 실질적으로 금기시되는 신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들을 직접적으로 관객에게도 질문을 던지고 싶었죠.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데로, 6명의 작업참여자들 각자의 이야기가 각자의 언어로 정리되지 않고 산재되어 있어, 관객들이 이해하시는데 어려운 부분들이 있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Q4. 이번 작품에서는 크게 전시와 공연으로 볼 수 있는데요! 공연을 함께하신 배우들하고는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루어지셨나요? 협업을 진행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공연은 6월은 권영호배우, 그리고 7월은 지현준 배우와 함께 하였습니다.
주1회 공연으로, 각자의 대답을 1인극으로 풀어놓았는데요, 일단 짧은 시간에 타장르의 배우와 교류하는 과정은 정말 만만치 않았습니다. 애초에 약속되어 있었던 정직성에 관해서도 서로가 생각하는 솔직함의 한계선이 틀렸기 때문에 그 부분을 조절하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던 거 같습니다. 저 또한 뒤틀린 과정들을 그대로 노출할 용기도 많이 부족 했고요.
하지만 좌충우돌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자체가 신선하고 재미있는 부분들도 많았습니다.
한 배우는 제가 드린 질문에 대해 영상으로 대답을 보내오시기도 하시고, 다른 배우는 본인의 가구들을 다 미술관으로 옮겨와서 본인의 방을 만드시고, 일주일에 한번은 미술관에서 씻고 낮잠을 자게 되셨죠.
Q5. 아르코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실험적예술및다양성증진지원에서 선정된 분들끼리 작품에 대한 공유를 위해 4월 달에 네트워크위크숍을 진행하였습니다. 참여하셨던 소감 또는 국내활동하실 때 어떤 도움이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와 같이 해외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에게는 정말 단비와 같은 시간 이였습니다.
특히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고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큰 도움도 되는 유익한 시간 이였습니다. 같은 프로젝트도 저런 방법으로 풀어갈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요, 같은 지점을 보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모이고 정보를 공유하는 것만큼 재밌는 일이 없으니까요. 앞으로 좀 더 자주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Q6. 다원예술 또는 융복합예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그리고 향후 작품 활동계획이 궁금합니다.
인터미디어(intermedia), 인터디스플리네어(interdisciplinarity), 혹은 다원예술로 알려져 있는 이 분야에 서있는 작가들은 작가의 존재를 증명하기에 늘 에매한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경계인들 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사라져야 비로소 인터미디어 작업이 빛을 발하는 이유때문인거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협업과 다원예술의 개념은 정확히 분리가 되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다원예술의 기준은 각 장르를 통합하는 독창적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존재하는가의 여부입니다. 인터미디어 작업에 있어서 커뮤니케이션 메뉴 얼이란, 마치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언어를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아서 잘 짜인 언어는 표현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든 것들을 토해낼 수 있는 쾌감을 선사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혼란과 오해를 야기하며 결국엔 구성원들은 그 언어를 사용하기 거부하며 각 자 자기의 소리만을 내는 작위적인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인터미디어분야는 Total Art적 시각으로 볼 때 멀게는 동굴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불꽃에 투영된 그림자 이미지를 가지고 놀던 그 시절
부터 1960년대를 풍미한 플럭서스 운동에서 영화까지 각 예술분야의
통합은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되고 행해져 왔으며,2000년대 유비쿼터스
(Ubiquitous)의 시대에 시도되고 있는 장르의 통합은 Total Art적
잣대를 들이댈 수 는 없는 좀 더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단 생각입니다.
늘 느끼는 점이지만, 이 시대의 통합은 하나의 악보를 가지고 서로 다른
악기가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와는 달리, 아예 다른 존재를
들고 있는 그들의 미디어(Medium)를 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다 같이 보고 따라갈 수 있는 악보는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그런 그들을 용감히 지휘해 나가는 것이 바로 인터미디어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11월에는 국립극장에서 상연중인 단테의 신곡에서 영상파트로 만나
뵙고요, 3년 동안 진행해왔던 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과 한국 사이에
이주한 여성들에 대한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있어서, 독일에서는
내년 4월에 국내에서는 내년 초에 선보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