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예술가 당신의 꿈을 응원합니다. 누가? ARKO와 그의 멋진 친구들이
‘수학이 당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준다던 학습지 CF를 기억하시는지.
올해는 우리도 이 땅의 젊은(혹은 어린) 예술가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그래서 종종 오해도 받는다. 전국의 쫌 한다는 예술영재들을 추천받기 위해 각 학교와 기업 문화재단, 각계 전문가들에게 전화를 했을 때는 거의 보이스 피싱 수준의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이 당황하셨을 거다’ 분명. ARKO가 이런 일도 했었나 싶기 때문일 것이다.
창립 40주년. 우리는 그동안 시도하지 않던 많은 새로운 일들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보람 있고 우리의 존재 의미를 느끼게 만드는 순간은 바로 이것……(본인 관련 사업이라 사심 가득한 지극히 주관적 평가이다.)
가능성 있는 신진예술가들이 마음껏 그 꿈을 펼쳐볼 수 있도록 든든한 후원자들을 연결해주는 것이다. 물론 소개비는 일절 받지 않는다. 우리를 위해 씨~익 하고 한 번 웃어주면 그 걸로 족하다.
그 첫 번째 순간. 마치 10달 동안 배로 품었던 아기가 세상과 마주한 듯한 가을의 어느 날.
정확히 지난 9월 13일. 늦은 장맛비가 몰아치는 오전 청담동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북적북적한 움직임이 있었다. 바로 ARKO와 MCM으로 널리 알려진 성주재단의 예술영재 후원 협약식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날의 감동을 나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다.
『내가 손이 아프게 타이핑하고 목이 쉬도록 말하고 신발 뒷굽이 닳도록 뛰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드는 순간이다. 감사하다. 당신들 덕에 에너지를, 용기를 얻는다.
누군가 넌 동기들처럼 돈 많이 버는 금융 쪽 안가고 왜 이쪽 일하냐고 했을 때 전 빌게이츠나 버냉키가 내뱉은 한마디 말보다 무명의 예술가가 들려주는 음악소리에 더 관심이 가서요 라고 자신있게 답할 수 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엊그제 흔들리는 퇴근길 버스 안에서 들었다』
2012년 12월 모 기업으로부터 송년 행사에 특별공연을 할 예술영재들을 추천받았을 때부터 인연을 맺게된 강예주, 강승주 자매.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 첼로를 전공하고 있는 강예주(18), 비올라를 전공하고 있는 강승주(16)에게 각각 1천만 원씩의 후원금을 지원하는 것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뻤다. 말없이 그저 가슴이 벅찼다. 그 겨울부터 10달 동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잃지 않고 벼텨 준 두 친구들이 고마워서였고, 될듯말듯 후원연결 프로젝트에 진척이 없어 마음 졸이던 우리 위원회 식구들의 얼굴들이 떠올라서였다..
두 번째 찾아온 감격의 순간. ‘왜 무용이죠?’ 라는 물음에 이렇게 답하다. 남(男)다르니까요.
올 봄이었다. 솔직히 처음 들어봤다. JTI라는 글로벌 담배회사란다. (내가 비흡연자인 관계로 담배 종류도 잘 모르고 관심이 없었기 때문인데,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다들 아~~ 그 회사 할 정도로 아주 유력한 기업이라고 함) 감사하게도 우리 신진예술가 지원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분야를 지원할지 고심 중이라고 한다.
관련부서 미팅에서 나는 대뜸 이번 차례는 ‘무용입니다’ 라고 했다. 아니 담배회사와 한창 왕성하게 몸을 움직이는 무용수라니? 하지만 결국 그런 제안이 먹혀들었다. 보라. 저 두 훈남 무용수들을. 어찌 아니 반할쏘냐. (참고로 난 나 스스로의 성정체성에 대해 의심해본 적이 없다.^^)
젊음. 열정. 도전. 비록 그 영역과 지향점은 다를지라도 그 의미와 가치는 다르지 않았다. 댄싱9에서 개성강한 도전자들을 이끌고 미션을 수행해나가는 고독한 리더로 주목받은 이인수(사실 그는 이미 세계 최고의 안무가 중 하나인 에미오 그레코가 설립한 ‘에미오그레코&PC’ 무용단 출신으로 2011년 제1회 베이징 국제발레 안무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일찍이 주목받았다). 그리고 훤칠한 외모로 먼저 눈을 사로잡지만 실험성 강한 무대로 제37회 동아무용콩쿠르 현대무용 남자부문 금상, 2012년 스페인 마스단사국제안무페스티벌 최고안무상 등을 수상한 전혁진. 이 두 남자가 꿈꾸고 있는 무대는 우리의 무덤덤한 심장을 다시금 뛰게 만들 것이다.
이들에게 JTI 역시 각각 1천만 원을 지원하며 또 하나의 든든한 지원군 대열에 합류하였다.
늘 카메라 앵글 뒤에 있는 것은 아버지만이 아니었다. 저 가슴 벅찬 순간을 위해 우리가 뛴다.
올해 이렇게 두 번이나 벅찬 순간을 경험하기까지 사진에서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많은 노력을 했다. 언론에는 늘 그렇듯 번듯한 순간만 조명받는다. 당연히 사람들은 TV나 신문을 통해, 그리고 우리 홈페이지를 통해 번듯하게 잘 준비된 그 순간만을 다룬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 뒤, 옆에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런 장면을 담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 나는 다짐한다.
“꼭 기억하자. 카메라 앵글 밖에 있는 사람들을, 그리고 그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역할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