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출신 연극연출가 이하미 "코로나19로 무대 `올스톱` 차기작 희곡 쓰면서 견뎌요 배우·스태프가 더 걱정"
- 문예위 사무처장 전효관 "젊은 예술가 뛰노는 소극장 등 건강한 문화예술생태계 구축 일자리 창출 공공예술도""
◆ 파워업! 청년예술가 ② ◆
지난해 대구에서 상경한 연극 연출가 이하미 씨(27)는 잔인한 봄날을 견디고 있다. 코로나19로 이달 중순 서울 명동 삼일로창고극장에서 공연할 예정이던 극단 놀땅 연극 '심사'가 취소되면서 지난 2월부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다.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전효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무처장(56)을 만난 이씨는 "난민 문제를 다룬 연극인데 극장이 휴관하고 출연하기로 했던 사우디아라비아 배우가 입국을 못하게 되면서 '올스톱'됐다"면서 "저는 그나마 서울아산병원 가습기살균제 보건센터 연구팀 데이터를 정리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희곡과 단편영화 시나리오를 쓰면서 기약 없는 날들을 견디고 있는데, 배우나 무대 스태프는 더 힘들 것"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전 처장은 "코로나19 타격으로 문화예술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예술가들의 생계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고립감이 너무 심해져 사회적인 우울증이 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지금까지 없었던 신(新)빈곤이 찾아오고 있는데, 생활자금 외에도 창작 리듬을 지킬 수 있도록 독서 모임 등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활발하게 무대 경험을 쌓아야 할 청년예술가의 기회와 열정을 빼앗고 있다. 문예위는 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청년예술가 생애 첫 지원, 신나는 예술여행, 청년예술가 해외 진출 등 기존 사업을 강화하고 새로운 지원 방식을 논의하고 있다.
연세대 사회학 박사 출신으로 문예위 1기 위원, 서울시 청년허브센터장 등을 거쳐 부천여성청소년재단 비상임 이사장을 맡고 있는 '청년 전문가'인 전 처장은 "극장 등 공연 단체를 비롯해 젊은 예술가의 개별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미국의 대공항 때 뉴딜정책처럼 대규모 공공예술 사업 등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남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대구 연극계에서 활동하던 이씨는 지난해 4월 국립극단 '뼈의 기행(연출 최진아)' 조연출을 맡으면서 서울로 왔다. 다시 고향으로 내려갈까 고민했지만 그 다음달부터 11월까지 문예위 창의인재 육성 지원 사업 연계 연극인 '오펀스'(연출 김태형)에 참여하면서 계속 서울에 머무르게 됐다. 지난해 7월에는 문예위 '청년예술가 생애 첫 지원' 수혜자로 선정돼 연극 '사인(
Sign)'을 12월 서울 대학로 동승무대소극장에서 공연하는 기회를 얻었다. 그의 연출 입봉작으로, 폭력으로 얽혀 있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독백을 담은 작품이다.
이씨는 "연극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나랏돈을 지원받으니까 집에서도 인정해주더라. 잘 버티면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 처장은 "우리나라 기업 지원책도 창업에 몰려 있고, 그 이후 지원은 확 줄어든다. 문화예술 발전 과정을 단계별로 추적하면서 돕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약속했다.
지원금 1000만원이 부족하지 않았느냐는 전 처장 질문에 이씨는 "사실 내 인건비는 없었고, 적금까지 깨서 1300만원 정도 들었다. 나도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처럼 최저시급을 챙겨주고 표준근로계약서를 준수하고 싶었지만 실행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전 처장은 "아무래도 대관료 부담이 컸을 것 같다. 젊은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공연할 수 있는 소극장 등 문화예술 생태계를 만드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생태계 자체가 튼튼해야 봉준호 감독이나 방탄소년단(
BTS)처럼 문화예술 꽃을 피울 수 있다"고 말했다.
전 처장이 연극 '사인'에 대한 평론이 어땠냐고 묻자 이씨는 "지인들이 주로 보러 왔고 평론가나 유료 관객은 거의 없었다. 아무래도 대구에서 올라온 지 얼마 안돼 인맥이 부족하다. 네트워크를 쌓기 위해 극단에 들어가 일하기로 했다"고 답했다.
전효관 문예위 사무처장(왼쪽), 이하미 연극연출가
대구에는 또래 연출가가 거의 없고 다양한 공연을 보기 힘든 것도 이씨가 상경한 이유다. 이씨는 "대구에서 살 때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서울에 와서 4박5일 동안 연극만 보고 내려가기도 했다. 지금은 출퇴근길에 공연을 보는게 너무 좋다. 그런데 관람료 50%를 할인해주는 예술인패스 카드가 적용되지 않는 공연이 많아 아쉽다"고 말했다. 이에 전 처장은 "문화예술의 지역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막 달려나가고 싶은 와중에 코로나19로 제동이 걸렸지만 버티는 힘을 기르는 중이다. 이 시기에 모아둔 에너지를 폭발시켜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희망을 말했다. 전 처장도 꿈 많은 청년예술가들의 디딤돌을 만들어주기 위해 분주하게 뛰고 있다.
[전지현 기자 / 사진 = 김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