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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창작산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도 모른 채 : 연극 [하거도] 리뷰

  • 조회수 3126
  • 등록일 2019.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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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산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도 모른 채 : 연극 [하거도] 리뷰

 
 

글/ 이수진(극작가, 공연칼럼리스트)

<경고:연극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창작산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도 모른 채 : 연극 [하거도] 리뷰1

 
 

등장인물 대부분이 죽어 나가는 작품을 농담 조금 섞어 전멸극이라고 부르곤 한다.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것이 코미디든, 비극이든 보여주는 방식을 막론하고 어느 정도의 충격은 남는다. <하거도>는 죽어나가는 사람의 숫자에 있어서는 여태까지 본 어느 연극보다도 규모가 큰 축에 든다. 게다가 나름대로의 대사를 지니고 등장하는 인물들의 절반 이상이 죽어 나가는데, 죽이는 인물들의 무서울 정도의 행복한 결말과 평온한 모습은 그렇다 치고 죽어가는 사람들은 가해자에 대한 반발 하나 없이 그들 안에서의 자해로 죽고 죽인 뒤 전멸하기에 더욱 경악스럽다.

 

 

[창작산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도 모른 채 : 연극 [하거도] 리뷰2

   
 
 

그게 정말로 현실이라면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일까. 마치 피해자들은 죽어도 싼 바퀴벌레들처럼 보일 지경이고, 인생에는 아무 희망도 없다. 그 와중에 드문 드문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은 전형적인 성녀 혹은 창녀의 구도로 달려가는 와중에 몇 천명을 몰살한 주인공은 몰살 직전까지는 절대선의 상징처럼 존재한다. 이 연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창작산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도 모른 채 : 연극 [하거도] 리뷰3!

 
 

<하거도>의 주인공은 하거도라는 이름의 섬과, 그 섬에서 태어나 거도라고 불리는 인물 하거도다. 섬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이 섬은 목포에서 여섯 시간을 배를 타고 가야 하는 곳에 있고 무인도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 섬의 주민들이 모두 소거되기 전에는 육십가구에 백 명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박정희 시대에 이 섬의 주민들을 모두 내보내고 발전소라는 건물을 지어 그곳에 사회불만세력을 잡아 넣고 강제노역을 통해 누군가는 큰 돈을 번다. 발전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방석집도 문을 열고 세상이 바뀌면서 하거도에는 리조트도 생기고 학교도 생기도 세상 좋은 환상의 섬이 되는가 싶었는데 느닷없이 굶어죽은 듯 비쩍 마른 시체들이 한 두 구도 아니고 이백구가 넘게 떠내려 오면서 스캔들의 섬으로 등극한다.

 
 

[창작산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도 모른 채 : 연극 [하거도] 리뷰4!

 
 

섬은 말이 없으니 인물 하거도 이야기를 하자면, 주인공 하거도는 이유도 모르고 군인에게 잡혀간 남편을 찾아 나섰다가 택시 운전사 하나 잘못 만나 하거도로 납치당한 만삭의 벙어리 여인이다. 섬에서 기다리는 것은 포주 모자. 그들은 어렵게 낳은 아이를 인질로 하거도의 어머니에게 몸을 팔게 한다. 어머니는 어느날 섬에 관광 온 부부에게 자신의 아이 하거도를 맡기며 지옥같은 섬에서 내보내 달라고 부탁하고 목숨을 끊는다. 하지만 그 부부는 하거도가 일곱살이 되자 시험관 아이가 생겨 친모처럼 벙어리인 하거도를 하거도로 돌려보낸다. .

 
 

[창작산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도 모른 채 : 연극 [하거도] 리뷰5.

 
 

하거도는 결국 수용소로 보내져 그곳에서 태어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데, 자칫 죽을 뻔했던 위기에서 구해준 동년배의 소년을 친구라 여기며 의지한다. 이름도 없이 번호로 불리는 그 친구는 수용소에서 태어나 담 밖의 삶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런 그들에게 담 밖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도 못하면서 몸짓과 그림으로 보여주려 하는 하거도지만 결국 그 안의 모든 인원이 아사할 위기에 놓이자 수용소에서 얻은 아들과 친구 둘 중의 하나와 탈출해야 하는 위기에 놓인다.
 

[창작산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도 모른 채 : 연극 [하거도] 리뷰6.

 
 

아들은 옥수수죽 한 그릇 더 먹자고 친모를 고발하고 하거도와 탈출하기 위해 하거도의 친구를 주린 제소자들에게 내주고, 그 모습을 본 하거도는 인간의 존엄성이 다 말라버린 모습에 아들을 죽이고는 담장 밖이나 안이나 똑같다며 불을 질러 천 명 넘는 제소자들과 세상을 떠난다. 이 발전소가 불법 수용소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큰 곤경에 처했을 도지사와 간수장, 그들과 엮인 사람들은 자체 화제에 모두 기뻐하는데, 사실 이 모든 이야기는 죽은 하거도의 뇌내재판이다.
 

 

[창작산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도 모른 채 : 연극 [하거도] 리뷰6.

 
 

이 연극 안에는 인간의 가장 추악한 면들이 빼곡히 담겨 있다. 나만 아니면 되는 소시민, 나만 살면 되는 군인, 나만 부자가 되면 되는 정치인, 나만 쾌락을 추구하면 되는 수용소장, 나만 즐거우면 되는 지나가는 커플의 남자, 내 세상만 분홍색이면 되는 유치원 교사 ... 이곳에는 이기심만이 가득한데, 그 사이에서 하거도라는 인물은 어떻게 이렇게 고고하도록 순수함을 유지했을까? 숫자로 불리는 그의 친구 말에 따르면 하거도는 담장 밖의 생활을 겪어봤기에, 담장 밖의 생활의 아름다움을 알기 때문에 다른 눈빛을 가졌다고 하지만, 하거도는 그저 상징적인 인물일 뿐이고 하거도 역시 존재할 수 없는 섬의 모습이다. 어떻게 보면, 시간순서를 따라 나열해도 따라가기 벅찰 내용을 처음부터 하거도라는 이미 죽은 인간의 내면 속에서 벌어지는 재판정으로 설정하고 하거도의 기억 속 인물들 가운데 한 명씩 나와서 재판관과 변호사, 검사, 배심원들이 자리를 잡는데, 사실 배심원들은 구경하다 추임새를 넣고 정보를 던져주면서 구경하는 일 말고는 하는 일이 없다.  

 

[창작산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도 모른 채 : 연극 [하거도] 리뷰6.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하거도의 머릿속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하거도는 죽어서도 자기 머릿속 하나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그런 불행한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다. 하거도 한 명의 인생을 보자면 그보다 더 우울하고 불행한 인생도 없을 듯 하다. 그의 어머니는 1980년에 하거도에 잡혀왔고 아버지는 어머니도 관객도 모르는 이유로 군인들에게 끌려갔다. 하거도의 수용소란 대체 어떤 곳일까? 도지사나 수용소장의 말에 따르면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사형시키는 대신 나라에 충성할 기회를 준 곳이다.
 

 

이 연극은 하거도와 수용소를 흐리멍텅하게 그린다.

 

이 안에는 분명히 남 녀 수용시설이 엄격하게 갈리지만 개중 모범수에 한 해 일 년에 몇 번 성욕을 풀 수 있게 해주는 희안한 포상제도로 인해 줄어들 줄 알았던 수용소 인원은 점점 늘어나 몇천에 달하게 된다. 하거도의 친구 역시 이 포상제도로 수용소 안에서 태어나 한 번도 단 맛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 단맛을 표현하는 하거도는 눈처럼 녹는다고 하지만 사실 그들은 단맛을 안다. 그들의 식사가 옥수수니까.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사연이 또렷하기 보다는 흐릿하고, 감정마저도 그러하다.
 

 

[창작산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도 모른 채 : 연극 [하거도] 리뷰7.



하거도는 포상으로 주어진 관계로 아들을 얻지만 아이 엄마는 그저 모성으로 그려질 뿐이다. 하거도의 친모가 그렇게 그려졌듯이. 이 작품 속의 여성들은 엄마, 아니면 창녀일 뿐이다. 즉, 모든 인물들이 평면적으로 다루어진다. 같은 선상에서 수용소장에게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하거도의 친구의 설정 역시 그 의도가 모호하게 그저 에피소드의 하나로 사용될 뿐이다. 친구는 그 덕분에 좀 더 편한 생활도 좀 더 맛있는 것을 얻어먹지만 수감자들 사이에서는 질시의 대상이자 가장 도덕적이지 않은 인물이 된다. 도대체 이 수감시설 안의 ‘도덕’의 기준은 뭘까? 이 연극 안에서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 내용은 모두 죽은 하거도의 내뇌재판일 뿐이라는 것 하나지만 실제로 뇌 속에서 재판을 담당하는 여성 캐릭터는 짜증내고 화를 내고 뒹굴기만 할 뿐이다. 게다가 결국 이 재판은 결론조차 내지 못한다.  

 

만약 이 연극이, 하거도의 말처럼, 정말로 안과 밖이 똑같은 세상이라면, 그게 현실이라면,
우리는 이 연극조차 그저 비웃고 나와도 되지 않을까?

 

[창작산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도 모른 채 : 연극 [하거도] 리뷰8.



이 작품을 통해 현대 한국의 비극적인 현대사를 욕망과 함께 암울하게 비벼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디스토피아는 멀리 있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을까? 이 작품에는 박정희 시대도, 전두환 시대도 스쳐 지나가고 누가 봐도 파면된 박근혜로 보이는 인물이 도지사로 등장해 악의 끝판왕으로 등장한다. 박근혜를 비웃듯 묘사한 인물인 도지사의 동생은 약쟁이다. 하지만 이들이 뭔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액팅을 보여주는 것도 무언가 다른 비리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창작산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도 모른 채 : 연극 [하거도] 리뷰8.



현대사를 한 인물의 인생에 비추어 송곳처럼 날카롭게 후벼 파면서도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던 <전명출 평전>이나, 이렇게 웃어도 될까 웃으면서도 불안했던 블랙 코미디 <목란 언니> 가 지닌 균형 감각이나 주제의식을 이 작품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거대한 사건에 묻힌 비밀을 찾아가다 보니 어느 한 개인의 비극이 드러나는 방식인데 그 과정에서 미스테리에 대한 반전도, 지금 현실에 대한 풍자도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이 지나칠 정도로 넘쳐난다. 결국 역사도, 개인의 불행도, 현실풍자도 모두 그저 같은 양념으로 버무린 80첩 반상의 반찬들처럼 맛의 분별력도 없이 늘어놓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창작산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도 모른 채 : 연극 [하거도] 리뷰9.

 

무언가 굉장한 것이 들어있을 것처럼 시작하지만 그것을 찾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럴싸하게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여주겠다는 목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아직, 완성의 길 위에 있는 이 작품이 그것을 보여줄 때까지 조급하지 않게 기다려 보고 싶다.  

 

[창작산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도 모른 채 : 연극 [하거도] 리뷰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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