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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t Land, Versatile People 평평한 땅, 울퉁불퉁한 이야기
제목이 지시하는 바와 같이 본 전시는 평평한 땅에 사는 울퉁불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좇는다. ‘허허벌판’이라는 뜻의 순우리말 ‘벌말’을 한자화 한 지명인 평촌은 한때 안양천과 모락산으로 둘러싸인 넓고 평탄한 농경지였다. 아파트와 학원가가 빽빽하게 들어선 대도시가 된 지금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고층 건물이 들어설수록 공터와 평평한 땅은 줄어들고 사람과 이야기가 머물 터는 점점 자취를 잃는다. 안양에서 유년 및 청년기를 보낸 네 명의 작가 허호, 송유경, 노태호, 김귤이와 기획자 박하은, 장민정은 평평하다 못해 납작해진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주머니 속 숨겨져 있지만 돌출되어 불룩해진 이야기의 윤곽을 더듬어 납작하게 포장된 땅 어딘가 모난 돌처럼 튀어나온 이야기를 발굴하고, 찾아낸 얼굴들을 도시의 얼굴로 재인식하고자 한다.
경기도 안양, 1기 신도시 평촌. 청년을 위한 도시, 신혼부부를 위한 도시, 스마트 도시, 신중년, 재개발, 재건축, 리모델링・・・. 이들이 말하지 않고, 바라보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지역을 리서치하는 것을 넘어서 무리하게 어느 한 쪽을 재현하거나 받아적지 않고도, 프로젝트의 참여 구성원들은 서로 어떤 영향을 얼만큼 주고 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질문들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지역 활동을 선행해 온 연구자, 기획자, 건축가 집단을 찾아다녔고 전시의 협력 공동체로 초대하였다. 이들은 누가 등 떠밀어 시킨 적 없지만 끈질기게 안양이라는 지역을 탐구하고 자신만의 해석을 더해 지역의 맥락을 풍부하게 하는 우리 일상의 전문가들이다. 총 다섯 번의 리서치 워크숍을 통해 참여 작가들은 한 번에 파악할 수 없었던 안양을 바라보는 다층적인 관점을 접했고, 작품과 함께 새롭게 만난 안양의 지식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Zine 형태의 리서치 에세이를 제작했다.
전시는 크게 #리서치커뮤니티, #예외성, #세대 총 세 갈래로 안양을 읽어낸다.
리서치 커뮤니티에서는 참여 작가들이 작성한 네 개의 리서치 에세이와 협력 공동체들의 연구 자료들이 아카이브 되어 있으며, 동네책방 뜻밖의여행 이은형 대표가 작가들의 주제의식과 연결지은 그림책 큐레이션을 열람할 수 있다. 예외성으로 분류되는 파트에는 송유경과 허호가 각자의 방식으로 지역을 퀴어링하는 시도를 선보인다. 송유경(b.1994)은 ‘스마트도시 안양’ 이라는 슬로건을 파헤치며 안양이 내세우는 치안과 안전, 이상행동을 감지하는 CCTV의 유능함을 예외적 행동과 상황을 필터링하는 시스템으로 재구성한 영상 언어를 구현한다. 허호(b.1993)는 정상성만을 담보하고 추구하는 경쟁적인 지역에서 무르익지 못하는 사람과 장소를 떠올리며 ‘지워가며 그리는’ 기법을 통해 한 때는 있었으나 사라진 안양의 장소를 회화로 담아낸다. 안양에서 살아가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은 타자화에 관한 이야기를 세대(世代/世帶)로 읽는 마지막 파트의 두 작가 중 노태호(b.1988)는 삼대를 거쳐 안양에서 살아온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사이에 낀 자신의 정체성을 고정된 상태의 자연물과 유동적인 바퀴 사물에 빗대어 표현한다. 한편 김귤이(b.1990)는 여러 세대로 구성된 아파트 건축과 그 안에 거주하는 본인과 타인에 대한 감각을 ‘계량화된 타자성’으로 인지하며 AI 영상과 콜라주로 구성한 영상과 설치 작품을 병치시킨다.
프로젝트 기획의 단초가 되었던 것은 크게는 안양의 지역성, 그 중에서도 평촌학원가라는 공간의 특수성에서 기인한다. 독립예술공간 ‘아트 포 랩’이 평촌학원가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단순했다. 재건축과 재개발로 몸살을 앓던 도시에서 유일하게 개발 논리에서 비껴나 있던 지역이었고, 따라서 월세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었다. 근 4년 간, 그리고 멀게는 십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도합 20여년 간 머물며 지켜본 평촌학원가는 입시라는 명목 하에 수많은 모순을 감내하면서도 일상의 틈바구니를 만들어 내려고 애쓰는 지역이었다. 밤 10시만 되면 자신들의 귀중한 자녀들을 태우러 인산인해를 이루는 차량들의 행렬 속에 정작 대중 교통버스를 타야 하는 아이들은 3차선 도로까지 걸어가야 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 몇 차례 문자 신고와 민원을 넣어봤으나, 그렇게 치안이 좋다던, 대응이 빠르다던 안양의 시스템은 학원가에 한해서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 한켠에는 치열하게 사람들의 일상을 기름칠하여 돌아가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수 년간 같은 자리에서 같은 가격으로 학생들에게 한 끼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 갈 곳 없는 중년 여성들에게 일시적인 커뮤니티가 되어주는 동네 카페들, 학원가의 모든 요구를 수용하는 오래된 문구점들. 나는, 우리는 숨겨져 있는 지역의 얼굴들을 통해 안양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이 지역에, 아직, 뾰족하고 모난 이야기들을 위한 자리가 남아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