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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진희 개인전
    손진희 개인전
    분야
    문의
    032-885-6262
    기간
    2013.08.20~2013.09.29
    시간
    관람시간 / 09:30am~06:30pm / 토요일_09:30am~08:00pm / 월요일 휴관
    관람료
    성인 10,000원 / 청소년 9,000원 / 어린이 8,000원 / 유아(3세미만) 무료
    조회수
    4220
    장소
    유리섬 맥아트미술관
    등록일
    2013.09.12
    URL
    http://www.glassisland.co.kr
손진희 개인전  이미지
2013 유리섬 작가공모 선정 작가전
손진희 개인전 ‘일상에서 찾는 숨은 그림’

대부도 유리섬에서는 한국 현대미술계를 선도 할 신진작가를 발굴, 지원하기 위한 작가공모를 실시하여 총 25인의 중․신진 작가를 선정하였다. 선정된 작가들은 1년 동안 대부도 유리섬의 유리섬미술관, 맥아트미술관, 야외 조각장 등을 통해 전시를 선보인다. 유리섬은 작가들의 전시를 위해 창작지원금과 더불어 창작 시설을 제공 하고 유리 작가들과의 협업 활동으로 작가와 함께 동반 성장하는 미술관을 지향한다.
유리섬 맥아트미술관에서는 2013 유리섬 작가공모 선정 작가전《손진희 개인전 - 일상에서 찾는 숨은 그림》을 9월 29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물성의 본래의 성격에서 벗어나 예술적 작품으로 재탄생되었다. 물성의 전환으로 작품은 재료가 가지고 있는 역할을 달리하여 오브제 다시보기,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오브제 다르게 보기를 시도하고 있다. 관람객들은 전시 작품 중 인터렉티브 설치 작품 ‘소나기’의 작품 아래에 서거나, ‘잡초’의 일부인 펌프를 발로 밟음으로써 작품에 기운을 불어넣는 원동력이 되고, 그로 인해 변화하는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관람객은 작품과 상호작용하게 된다. 지금껏 소극적이였던 전시 관람에서 벗어나 손진희 개인전을 보며 오감을 자극하는 즐거운 소통을 되길 기대해 본다.

■ 전시기간 | 2013년 8월 20일(화) - 9월 29일(일)
■ 전시장소 | 유리섬 맥아트미술관
■ 전시분야 | installation

■ 전시평론 | 고충환

사물의 변성 내지 변용을 통한 의미의 재구성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어떤 계기로 인해 기억을 더듬어 거슬러 오르거나 과거로 회귀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향수에 빠져드는 것을 프루스트 효과라고 한다. 모더니즘 소설의 효시로 알려진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착안한 것이다. 저작에는 화자로 하여금 회상에 빠져들게 하는 현실 속 계기가 등장하는데, 마들렌 과자의 향과 소리가 그것이다.
작가 손진희에게도 이런 계기가 있는데, 고무 밴드가 그것이다. 작가는 고무 밴드를 보면 어릴 적 뛰어놀던 고무줄놀이가 생각나고, 머리를 질끈 동여맨 고무줄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렇게 기억 속 고무줄을 현실 속 고무줄로 불러낸다. 색색의 고무 밴드를 벽면에다 설치하는데, 기억과 회상을 상징하고 치유를 상징한다. 치유? 칙칙한 잿빛으로 물든 상처와 같은 자의식을 형형색색의 알록달록한 색채로 전환시키고, 모난 기억들을 동글동글한 형태로 변환시킨다. 상처를 치유하는 자기만의 의식을 수행하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전환과 변환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상처를 보듬어 안아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인데, 여기서 전환과 변환은 자기변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종의 자기포장으로서의 의미를 부여받는다. 그렇게 포장이 작가의 작업을 읽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된다.
그러므로 작가에게 포장은 그저 포장을 의미하기보다는 상처와 같은 자의식과 관련이 있고, 그 자의식을 덮어서 가리는 전환 내지 변환과 관련이 깊다. 그리고 그 관련은 작가의 작업에서 깨지기 쉬운 것들이며 박약한 것들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나고, 사물의 성질을 변화시키는 사물 내지 오브제의 변성으로 나타난다. 부연하자면 작가는 조형예술과 함께 디자인을 전공했고, 이런 연유로 자연스레 포장이라는 발상에 그 생각이 미쳤고, 그 생각을 트라우마와 같은 개인적인 자의식과 연결 짓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렇게 표면화된 트라우마는 삶에 대한 질이며 경험이 대동소이한 관계로 쉽게 공감을 얻는다.

정리를 하자면 박약한 것들 곧 상처의식이며 자의식을 속으로 내면화한 것들을 보듬어 안아 치유하는 일종의 제의 내지 제식행위가 되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물의 변성이 수행되고, 실질적인 작업에서 변성은 일종의 역발상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렇게 도입된 것이 민들레 홀씨다. 실제로는 자신의 씨앗을 널리 퍼트리기 위한 생존전략의 일종이지만, 그래도 여하튼 바람에 풀풀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를 보면 세상에서 저처럼 박약해 보이는 것도 없지 싶다. 그렇다면 만약에 민들레의 덩치가 지금처럼 작지가 않고 크다면, 그래도 여전히 심약해보이고 박약해보일까 상상해볼 수 있다. 그래서 작가는 민들레 홀씨의 덩치를 크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찬가지 연유로 잡초의 덩치를 키웠다. 알다시피 잡초는 허구한 날 밟히는 게 일이다. 오죽하면 이름 없는 민초들을 잡초에다 비유했을까. 마찬가지로 잡초의 덩치가 지금보다 커진다면 이처럼 밟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민들레의 덩치를 키우고 잡초의 몸체를 부풀렸다. 부풀렸다? 뭔가 바람이 연상되지가 않은가. 작가는 민들레의 덩치를 키우고 잡초의 몸체를 부풀리는데 실제로 바람을 이용한다.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나 미풍에도 하늘거리는 잡초를 재현하기에는 그만인 물질이고 물성이다. 게다가 바람을 바람으로 재현한다는 발상이 시적이기조차 하지 않은가. 실제 작업에서 작가는 일종의 공기 주머니 내지 바람기둥을 만들고 그것들을 하나로 조합하는 형태를 취한다. 그 과정에서 상호작용을 통한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데, 몸체에 센서가 장착돼 있어서 사람이 다가가면 바람기둥이 스스로 부풀려 일어서면서 형태를 갖추기도 하고, 공기펌프를 이용해 수동으로 작동되기도 한다. 그렇게 덩치를 키운 민들레 홀씨며 잡초가 상식을 벗어난 크기로 인해 의외의 비전을 열어 보이고, 가볍고 투명한 비닐소재로 만든 몸체가 시적인 정감을 자아낸다. 이렇게 발상을 전환해 보면 같은 사물도 다르게 보이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이 열린다. 사물의 숨은 뜻을 캐내 사물이 존재할 수 있는 다른 지평을 열어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상처에 대한 관심은 자연에서 자연재해로까지 확장되고 심화된다. 지구에서 쏘아올린 오염물질로 인해 태양이 손상되고 있다는 관측소의 자료를 근거로 태양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보호막을 만들었다. 실제로는 금박이나 은박처럼 보이는 알루미늄 소재로 만든,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급격한 체온저하를 막아주는 일종의 응급담요 내지 생존덮개를 잘게 잘라 마치 포스트잇을 덧붙여나가듯 중첩시키는 방법으로 일종의 인공태양을 만들었다. 외부로부터의 빛을 난반사하는 소재의 성질이 또 하나의 태양처럼 보이게 한 것인데, 실제로는 태양을 덮어서 가리는 일종의 보호막을 의미하며, 따라서 표면에 난반사되는 빛은 사실은 그 보호막에 가려진 태양으로부터 새나오는 것으로 보면 되겠다.
그 연장선에서 작가는 방파제 건조물로 만든 테트라포드가 태풍으로 마을까지 떠밀려왔다는 뉴스를 접하고, 실물 크기 그대로 비닐 소재의 테트라포드를 만들었다. 자연의 가공할 위력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한편으로 사물의 됨됨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를 수도 있다는, 이를테면 시멘트 소재의 덩치도 때론 비닐 소재의 풍선처럼 물에 휩쓸리고 바람에 날아다닐 수 있다는 의외성을 예시해주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그리고 마치 전시장의 천장을 지지하고 있는 것 같은 바람기둥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기둥 자체는 견고해야 한다. 그래야 천장을 지지할 수가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기둥은 그 지지를 온몸으로 견뎌내고 있다. 상처를 내재화하는 것. 어쩌면 작가는 바람기둥을 통해 짓누르는 천장만큼이나 무거운 현실의 무게를 온몸으로 견뎌내는, 그리고 그렇게 상처를 내재화하는 존재의 심약하고 박약한 자의식을 드러내고 보듬고 싶었을 것이다.

이외에도 작가는 망사 티에 피에로 풍선을 늘어트려 장착한 오브제 작업으로서 성형을 풍자하는 한편, 개인적인 콤플렉스를 암시한다. 그리고 역시 망사 천을 재료로 한 또 다른 작업에서 해면을 대신한 거품타월을 거대한 크기로 뻥튀기해 놓기도 한다. 이 일련의 작업들에서 레디메이드는 일종의 오브제로서 거듭나는데, 아래로 늘어트린 피에로 풍선이 가슴으로, 그리고 망사 천 뭉치가 일종의 조화로 재탄생하는 것. 그 이면에는 사물의 숨은 의미 내지 잠재된 의미를 캐내 존재의 지평을 확장시킨다는 기획이 작동되고 있다. 사물의 일상적인 의미를 심미적인 의미로 대체하고, 무의미한 세계를 유의미한 세계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작가의 작업은 이처럼 세계를 아님 일상을 심미화한다는 프로젝트가 다름 아닌 사물 다시 보기와 이를 통한 사물의 숨은 의미 캐내기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이처럼 사물의 변성 내지 변용을 통한 의미의 재구성은 작가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논리며 방법론이랄 수 있겠다. 주지하다시피 그 논리는 다만 그 정도와 종류에 차이가 있을 뿐, 사실은 존재들 저마다 떠안고 살기 마련인 상처며 자의식에 주목한 결과인 것이며, 그 자의식을 의미의 표면 위로 불러내 대면하고 위로하고 치유하는 일종의 자기최면이며 자기암시를 실천하는 것에서 힘을 얻고 설득력을 얻고 공감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