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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쇼이발레단 & 배주윤 - 지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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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6,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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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평*가*송*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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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05.12.05
Name 무용평론가 송종건
Subject 볼쇼이발레단 & 배주윤 - 지젤
Homepage http://dancecritic.com.ne.kr
< 볼쇼이발레단 & 배주윤 - 지젤 >
고전의 감동은 시공을 초월하는 영원한 것인가? 발레가 무용이 주가 되는 - 그리고 문학, 미술, 음악 등이 협력예술이 되는 - 종합예술임을 또렷이 보여주던 러시아 볼쇼이발레단의 < 지젤 > 공연이 지난 10월 5일부터 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있었다(이번 볼쇼이의 내한공연은 10월 5일부터 7일까지는 < 지젤 >, 10월 8일과 9일은 < 스파르타쿠스 > 공연으로 이루어졌는데, 평자는 10월 5일의 < 지젤 >공연과 10월 8일과 9일 < 스파르타쿠스 > 공연을 보았다).
주지하다시피 현재 모스크바의 볼쇼이극장은 전면 수리 중으로 2007년~2008년 시즌이후에야 다시 본 극장에서 공연이 가능하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의 해외공연 스케줄은 상대적으로 강화 되어 있을 것이고, 평자가 작년 여름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를 방문한 볼쇼이발레단 공연을 런던에서 보기도 했다.
모더니즘의 색채가 짙은 현대화된 무대장치 앞에서 지젤(스베틀라나 자하로바), 알브레히트(안드레이 우바로프), 힐라리온(일랴 르자코프) 등이 닥쳐 올 비극을 아는 듯 모르는 듯 깨끗한 움직임의 연기를 이루어 나간다. 자하로바의 하체 움직임이 투명하다고 할 정도로 깔끔하기만 하다.
다시 남녀 4쌍의 파닥시옹(pas d' action)이 이루는 8인무가 이루어지는데(이 공연의 팸플릿에는 이 역을 단순히 ‘군무’라고 번역해 두었는데, 이는 큰 오역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블라디미르 바실리예프 버전의 이 발레에서는 전통 클래식발레 ‘지젤’에서 있던 ‘패전트 파드되’를 없애고, 이 8인무를 강화하여 대체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8인무’에 출연하는 무용수들은 단순히 ‘군무’의 일원이 아니고, ‘솔리스트’ 혹은 ‘드미-솔리스트’급 이상의 무용수들이 추는 중요한 베리에이션 중의 하나가 된다. 프로그램에서도 확인되는데 사실 지젤 8인무 중의 한사람인 알렉산드 보로비예프는 9일 < 스파르타쿠스 > 공연에서 주역 ‘스파르타쿠스’ 역을 했다.
팸플릿의 바로 이런 오류 때문인지, 이 공연을 주최하는 신문사의 볼쇼이발레단 단원 배주윤에 대한 인터뷰도 정확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즉 중앙일보 2005년 10월 5일자 31면에 실린 ‘러시아 볼쇼이발레단 배주윤’에 대한 인터뷰 기사 중에, “배씨는 지젤에선 군무로, 스파르타쿠스에선 여자 양치기로 5일간 내내 무대에 오른다”고 되어있다.
그런데 이 기사대로 하면 배주윤은 이번 <지젤 > 공연에서 말 그대로 ‘군무(corps de ballet)' - 여기서 말하는 ‘군무’는 ‘주역’이나 ‘솔리스트’역이 아닌 이라는 의미가 된다 - 중 한 사람으로 된다. 하지만 그 날 공연에서 배주윤의 역할은 2막의 윌리 중 한명이 되는 ‘코드 발레(corps de ballet)’가 아니었고 - 배주윤은 그날 군무인 윌리 역으로는 아예 출연하지도 않았다 -, ‘파 닥시옹(pas d' action)' 중의 한 명이 되는 솔리스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물론 이 말이 현재 배주윤의 볼쇼이발레단 내에서의 직급이 ‘corps de ballet’ 가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
이 부분의 내용은 단순히 배주윤의 문제만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무용발전사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되기 때문에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이 평론의 흐름을 위해 일단 여기서 끊고 글의 후반부에 다시 거론하겠다), 4명의 여성 솔리스트들의 움직임은 주역 못지않게 객석을 집중시키며 안정된 느낌을 던지고 있었다.
우선 여자 4인무가 이어지는데, 거의 주역에 가까운 무용수들의 기량이 무섭기만 하다. 특히 동양의 독특한 느낌이 살아나는 배주윤의 움직임이 그 이전 보다 훨씬 더 성숙해있고 감성이 살아있다. 28세가 된 배주윤의 움직임에 그 이전에 잘 보이지 않던 생기가 넘치는 청순함이 살아있다.
이어지는 남자 4인무도 주역 같은 4명의 남자 무용수가 완벽한 움직임을 이루어내어, 볼쇼이가 왜 세계 톱클래스 무용단인지를 확인시킨다. 배신당한 것을 안 지젤의 춤이 난무하고, 작품의 모든 이미지들이 마치 확대경으로 보는 듯이 크고 뚜렷하게 이어지며 1막이 마무리 된다.
우거진 나무숲의 넝쿨 위에 흰 보름달이 떠있는 지젤의 무덤가에서 시작된 2막에서는 12명씩 좌우 대칭을 이룬 군무들이 백색 침묵의 시위를 이룬다. 24명의 군무들이 좌우로 서로 겹치는 환상적인 룰루베의 움직임이 시작된다. 섬뜩할 정도로 깨끗한 움직임의 연기로 결혼식 전날 배반당한 처녀들의 영혼인 윌리들이 힐라리온을 죽음으로 끌고 간다.
지젤과 알브레히트, 그리고 백색 군무들이 발레가 인간 신체로 표현되는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라는 것을 마음껏 확인시킨 다음, 멀리 종소리 들리고 새벽이 오며, 윌리들이 부레부레하며 다시 자신들의 무덤으로 사라지고 모든 것이 끝나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 볼쇼이발레단은 고전이 영원한 감동을 주기 위한 몇 가지 중요한 시도와 특징을 보여주고 있었다. 첫째로, 우선 발레모더니즘(Ballet Modernism)의 노력을 계속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즉 모더니즘의 색채가 의상, 무대 장치뿐 아니라 무용수의 움직임에서까지 그득하게 묻어 있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정확하고 설득력 있는 움직임과 움직임의 연기, 안무포맷의 강화 등으로 작품의 스토리를 더욱 명확히 하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마치 이번 발레에서는 등장인물들이 화면에서 영화를 보는 듯이 꽉 차있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이런 여러 가지 시도를 통해 클래식발레라는 고전을 현시대에 살아있는 고전으로 만드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보면 이를 통해 키로프발레와는 완전히 다른 버전의 발레를 추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번 공연에서도, 그 명성에 걸맞지 않게, 주역 자하로바 등의 움직임이 객석의 최대의 감탄사를 유도하지는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고, 명품을 보고 있는 것은 확실한데 그만큼 진한 감동의 여운이 물밀 듯이 쏟아지지 않는 아쉬움도 있었다.
하지만 솔리스트 및 군무들이 이루는 보석 같은 크고 뚜렷한 움직임과 이미지들은 볼쇼이가 왜 ‘웅장하고 큰’ 세계적인 발레단이 되는가 하는 것을 여실히 확인시켰다. 여기서 다시 배주윤의 경우에 대해 마무리 짓도록 하자.
사실 우리나라 발레무용수가 세계적인 발레단에 진출한 경우는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강수진, 파리오페라발레의 김용걸, 키로프발레단의 유지연, 볼쇼이발레단의 배주윤 등이 된다. 이런 세계적인 발레단에서 단원이 되어(대부분의 이런 발레단에서 이들의 활동은 ‘유일한 한국인’ 혹은 ‘유일한 외국인’의 위치에 있다) 뛴다는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도전을 극복한 경우가 된다.
좀 더 사실적인 예를 들어 비유한다면, 배주윤이 볼쇼이발레단에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유일한 한국인 - 혹은 유일한 외국인 - 단원으로 공연을 한다는 것은, 축구에서 박지성이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멘체스터 유나이티드 팀에서 뛰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사실 배주윤이 볼쇼이에서 뛴다고 우리가 맹목적 ‘애국심’을 가지고 배주윤을 아무런 근거 없이 부각시켜서는 안 된다. 더 더욱이나 공익적이고 객관적인 평론에서 그런 관점을 가지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루어낸 피땀 어린 성과(물론 배주윤이 개인적으로 온갖 어려움과 괴로움을 인내하고 이루어낸 결실이지만, 이 자체도 사실은 우리 무용발전 역사의 중요한 공적인 한 부분이 된다고 평자는 생각한다)를 우리 스스로 폄하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루어내지 못했거나, 하지 않았던 것을 했다고 하면 안 되지만, 엄연히 그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이루어낸 우리의 무용적 성과를 하지 않은 것으로 기록해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평자가 이 글을 쓰기 전 약 3일전인 지난 11월 15일부터 17일까지 3일 동안 일본 후쿠오카, 가고시마 등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러시아국립발레단의 일본공연을 관람하고 왔다.
그때 그 발레단의 공동 단장인 러시아 볼쇼이발레단 솔리스트 무용수 출신인 블라디미르 모이세프(Vladimir Moiseyev)를 인터뷰했는데, 그는 결코 아무런 사심 없이 배주윤이 얼마나 성격이 좋은 그리고 인내심이 강한 무용수인지를 평자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28세가 되어버린 배주윤은 공연 때마다 그 자신의 고유의 감성이 새롭게 살아나고 있다. 사실 그 이전의 공연에는 배주윤이 뭔가 강한 느낌을 던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의 현장에서 배주윤은 볼쇼이발레의 솔리스트 역할을 맡아 생기 있고 청순한 느낌을 주는 자랑스러운 한국 출신의 세계적 발레리나가 되어 있었다.(송종건/무용평론가/dancecritic.com.n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