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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의 활동을 공유해드립니다.
노이즈는 심리적 불편함을 유발한다. 낯설고 이질적인 것들이 파생하는 체계의 뒤흔들림, 일시적 혼란과 방해. 만약 이를 익숙한 관람 환경을 방해하는 낯선 공간으로 치환한다면 어떤 방식이 될까. 인사미술공간의 세 개의 서로 다른 공간적 성격은 약간의 변주를 통해 이 경험을 극대화하기에 적합하다. 잘 드러나진 않지만, 작가나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전시장의 주어진 조건. 이정형 작가는 이 조건들을 애써 감추며 작품을 위한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하기보다, 오히려 이들을 전면에 드러내고 그 존재를 가시화하여 이들의 존재성을 더욱 부각한다. 그리고 공간의 물리적 환경이 지닌 제약과 조건을 전시가 구현되는 일종의 정형화된 시스템과 연결하여 이를 해체하고 비틀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동원되는 작업의 요소들은 작가에게 익숙한 오브제, 설치, 사진, 빛, 소리, 심지어 전시장의 벽면까지, 서로가 서로에게 유기적으로 관여하는 전시의 재료가 된다. 그리고 말 그대로 기존의 친숙한 형태를 이탈해 불편함을 유발하는 존재들은 그 자체로 강한 존재성을 획득하는 동시에, 작업과 공간의 경계마저도 이탈하기에 이른다. 경계를 와해하는 작업, 공간 자체를 작품의 질료로 활용하는 이러한 경계 흐리기는 작가의 분리 불가능한 두 가지 일상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지금까지 작업 생산자로서, 전시 공간 조성자로서 서로 다른 일상을 병행해 온 작가는 클라이언트 업무를 수행하며 얻었던 심적, 물적 부산물을 자신의 전시 현장으로 끌어와 전시마다 다양한 변주들을 쏟아내며 이들을 독창적 스타일로 발전시켜왔다. 이를 통해 작업과 노동의 경계를 와해하고 서로를 영감의 원천으로 활용하면서, 하나의 결과물인 전시 이면의 감춰진 과정에 대한 관객의 상상을 끌어냈다. 즉 외부에서 의뢰받은 전시 공간을 조성하며 이를 예술 활동의 연장선으로 여겼고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 재료, 사진, 도구 등 모든 요소를 추후 (재)창작의 원천으로 집적해온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축적된 그의 작업은 크게 세 가지 시리즈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사진 연작 시리즈 〈겹쳐지는 지점〉(2013-2016)이다. 이는 노동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기록한 사진들을 모아 전시에 따라 아카이브 형식으로 선보인 것으로, 노동 시간에서 발생한 다양한 사건과 흔적들을 일시적으로 포착하여 이미지화한 일종의 작업 노트이다. 그리고 그 기록은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전시별 맥락에 따라 재가공 된다. 두 번째는 그의 대표적인 작업인 〈부산물〉(2015-) 시리즈이다. 이는 전시 현장에서 수집해 온 도구를 비롯하여, 전시의 결과물이 아니라 제작 과정에서 버려지거나 무용해질 다양한 오브제들을 재구성한 일종의 설치 시리즈이다. 마지막으로 〈미술관의 벽〉(2013-2018) 시리즈는 전시 공간에서 벽의 물리적 구조와 사람들의 태도를 연구하는 작업이다. 전시 공간의 가장 기본적인 벽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을 기록하여 당연하게 인식되는 벽이라는 면 혹은 형태의 새로운 인식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부산물〉과 〈겹쳐지는 지점〉의 요소들을 인사미술공간의 2층 공간 구조에서 얻은 영감으로 새롭게 변주하는 작업을 비롯하여, 전체적으로 전시장의 물리적 특징과 구조물 형태가 지닌 물성을 전복하는 신작을 선보인다.
그렇다면 왜 ‘화이트 노이즈’일까. 이는 잡음과 다르게 ‘영에서 무한대까지의 주파수 성분이 같은 세기로 골고루 다 분포되어 있는 소리로, 넓은 음폭을 가져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소음이다.’ 즉 존재하는데 인식하지 못하는 잡음, 항상 존재하지만 음악이 나오면 들리지 않는 소음, 그래서 존재하지 않는 소음이다. 작가는 전후 과정과 체계, 일종의 암묵적 규칙들이 존재하는 전시가 막상 그것이 벌어지는 시공간에서는 철저히 감춰지거나 간과된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를 ‘화이트 노이즈’의 속성과 연결한다. 그리고 전시를 통해 인사미술공간의 물리적인 공간성과 전시장이라는 공간 성격이 지닌 태생적 시간성을 함께 제시한다. 우선 전시장 1층과 지하층의 작업을 살펴보자. 전시장 1층의 천장에는 세 개의 보가 있는데, 이들의 스케일을 다르게 드러냄으로써 공간 안에 존재하는 구조를 부각한다. 즉 “다소 극단적인 방식으로 공간 안에 존재하는 구조의 형태를 가시적인 불편함의 형태로 치환”하고자 한다. 그리고 지하 1층은 총 세 개 층의 전시장 중에서 백색의 통일된 환경을 지닌 화이트 큐브이다. 다른 전시 공간과의 이질성을 지닌 이 공간에서 작가는 전시 구성의 가장 기본적 단위 중 하나인 ‘조명’이 전시와 맺는 관계와 규범을 뒤흔든다. 이를 위해 늘 천장에서 작품을 비추는 보조 역할로 존재해온 조명 레일과 조명 자체를 바닥에 설치하여 통일된 물리적 환경과 심리적 인식 작용을 교란하고자 한다. 나아가 일률적으로 제시되는 통일된 조도와 조명기구 대신 그들의 차이들을 오히려 부각하여 “전시 환경의 다양한 가능성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한편 전시장 2층에서 선보이는 작업은 공간의 반복적인 구조를 전시 시스템의 반복적인 시간성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활용한다. 즉 공간을 통해 전시 시스템의 반복성을 다루는 방식인데, 여기에서 반복성은 전시가 벌어지는 전후사건, 이를테면 전시장 가벽 세우기, 페인트칠과 마스킹 테이프, 먼지와 부스러기들, 각종 폐자재 등 과정 안에서 발생하는 물질/흔적과 노동을 일컬으며, 이는 전시의 시점에 기꺼이 사라지는 것들이다. 이들은 이번 전시에서 두 가지 다른 의미의 시점으로 등장한다. 즉 전시장에 놓여있는 오브제와 아카이브 사진 자료들은 특정 시점(時點)들을 지닌 채 전시의 전후 사건들을 유추하게끔 한다. 그런데 공간에 흩어져있는 오브제들의 일부는 서로 개별적이지 않고 변주되어 반복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마치 2층의 공간 구조가 지닌 ‘조금씩 다르지만 반복되는 형태’와 그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즉, 같은 이야기지만 다른 시점(視點)을 지닌 사건의 오브제들은 분절되어있지만 묘하게 반복적이다.
작품을 보여주고 전달하는 매개적 시공간인 전시는 이전과 이후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과 충돌하면서 전시 시스템 내에서 사라지는 부산물을 낳는다. 작품이 그 자체로 온전해지기 위해 소멸해야만 하는 존재, 그리고 작가는 이들의 존재성을 다시 밝히면서 이 시스템을 흔들고 해체한다. 어떤 공간에서는 그 공간의 구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방식으로, 또 어떤 공간에서는 사건의 전후 시간성을 시각화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철저히 차단된 과정을 드러내는 건 결국 인식과 감각을 흔들어 감춰진 체계 혹은 암묵적 규율과 맞서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 결과 누군가는 전시가 지닌 잡음, 일종의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늘 존재했지만 들리지 않기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던 화이트 노이즈는 이번 전시에서 대체어가 된 ‘부산물’을 통해 새로운 감각 차원으로 그 존재를 드러낸다. 부산물은 완성된 전시 시스템 내에서 필수적이지만, 거슬리거나 그 존재를 인식하기 어렵다. 이러한 전시에서의 부산물을 작가는 들리지 않거나 때론 낯설게 환기되면서 존재와 비존재를 오가는 화이트 노이즈와 연결하여, 이를 전시 장소의 공간성과 흔적들이 상기되는 시간성의 중첩으로 시각화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전시의 방향이 관객의 관람 경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지켜볼 일이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작가의 독창적 예술 실행의 언어가 조금씩 두드러지며 시공간의 뒤섞인 화이트 노이즈가 만들어내는 비가청성이 익숙한 감각을 교란할 또 다른 목소리로 전해지길 기대해본다. 그리고 이번 전시의 시공간성은 현재라는 환상에 정박되지 않은 채, 추후 벌어질 또 다른 전시-사건에서 새로운 형태의 단서와 기록으로 제시될 것이다.
자료담당자[기준일(2019.7.4)] : 미술관운영부 강하라 02-760-4723
게시기간 : 19.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