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당선언문>
우리는 우주에 간다.
‘우주에 간다’는 확신을 가진 박희자, 서윤아, 손현선, 최병석 4인이 모였다.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는 단기 방문 예술가(Visiting artist)로서 우주당 4인 전원의 우주행이다.
예술가가 무엇을 할지 찾아가는 과정은 상상할 수 없는 것, 무엇인지 모르는 것을 탐구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우주에 가는 과정과 같다고 생각한다.
첫 공식 활동은 우주인으로서 적합한 신체와 정신을 갖추기 위해 스스로 마련한 (우주생활)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꿈꾸는 누구나 우주인이 될 수 있는 비전문가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을 목표하고 있다.
우주인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요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주환경에서 위기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지(우주지식)를 갖춘다.
둘째. 고립된 환경에서 원활한 생활을 위한 덕(주위 사람들과 융화되는 능력)을 갖춘다.
셋째. 지구 밖 환경에 무사히 적응하기 위한 체(육체적, 정신적 건강)를 갖춘다.
우리가 진짜 우주에 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 가운데 누군가는 각자의 우주를 발견 할 수도 있고, 어쩌면 누구는 어떠한 기회를 통해 실제 우주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 끊임없이 발견해 나아가는 우리의 노력들이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보여지길 기대한다.
- 우주당 작가 4인 일동
우주에 대한 인류의 관심은 그 시작과 (아마도) 끝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인간적 호기심이 발현되는 지점을 시사하며 이를 아우르는 다양한 시선들을 집약적으로 포괄하고 있다. 철저하게 본능적인 우리의 관심과 호기심이라는 기질은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탐구를 지속해 온 인류의 역사 그 자체로 회귀한다. 무지-호기심-탐구-발견의 반복적 과정을 마치 불가능한 삼각형을 따라 맴돌고 있는 인간의 발자취는 아마도 우주와 같은 또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유지되어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한한 우주와 유한한 인간의 삶 사이의 복잡 다단한 관계항은 인류가 끊임없이 지속해 온 자기 한계의 극복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최종 과제의 광활한 모습을 짐작하게 해주는 커다란 밑그림을 형성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와 우주 사이의 관계가 기록하는 짧지 않은 역사 속에서 우주당은 스스로의 역할과 지위를 찾아 나간다. 개인이자 집단으로서 우주에 가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우주당은 ‘우주’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가 가지는 의미로부터 우주가 지닌 사회적, 인간 중심적인 시선에서 바라보아지는 상징적인 ‘우주’에 대한 의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레이어들을 관통하며 미술 작가이자, 예술가로서 우리가 꿈꾸는 우주로 가고자 하는 프로젝트의 긴 여정을 지금 시작하려 한다. 우주당은 ‘우주에 간다’는 아주 단순하고도 뚜렷한 목표를 가진 예술가 박희자 서윤아 손현선 최병석이 결성한 공동체 집단이다. 그들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결말은 단기 방문 예술가로서 우주당 4인 전원의 우주행이다. 이를 위해 그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프로젝트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 <COSMOS PARTY: 우리는 우주에 간다>를 기획하고 실천한다. 프로젝트의 전개는 이들의 프로젝트를 실현키 위한 합동훈련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실제 훈련을 실시하며, 이를 기록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이에 더해 이들은 우주인의 역할을 함께 실천하면서 큐레이터 장진택을 우주당의 활동을 해석하고 정의하는 관찰자이자 분석가로서의 ‘관제사’라는 직책을 수행하도록 추가로 영입하였다. 우주당의 장기 프로젝트 가운데 그 첫 번째 활동은 2016년 7월 22일부터 2016년 9월 3일까지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인사미술공간에서 약 한 달 반의 기간 동안 펼쳐진다.
우주당을 이끌어 나가는 4인의 우주인들은 서로 다른 매체를 사용하는 예술가로서 각자의 삶에 대한 고민의 지점에서 ‘우주’에 대한 그들만의 개념들을 떠올린다. 박희자 작가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가지는 장르성에서 출발하여 연출과 다큐멘터리를 넘나드는 사진작업을 전개해 왔다. 그에게 상상적인 서사와 실제 구현의 경계를 넘나드는 우주당의 활동은 그 행위 자체로 매우 적합한 듯 보인다. 실제의 현실을 이야기 하되, 때로는 그 연출적 극대화를 통해 비현실적인 현실을 탐구하는 박희자의 작업은 개인, 나아가 단체로 확장되는 이면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우주당이라는 렌즈를 통해 그는 다차원적 우주의 단면들을 직접 확인하고자 한다. 다층적으로 구성된 우주의 레이어들을 통과하며 행여나 마주하게 될 지 모르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기대하는 박희자의 바람은 예술가 혹은 사진가로서의 관찰자적 시선에 대한 욕구를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서윤아 작가에게 우주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적인 시간의 개념을 뒤틀어버리는 공간이다. 우주당 프로젝트를 통해 물리적인 지구 밖의 실제 우주에 가고자 하는 그의 순수한 열망은 인류에게 (이미) 주어진 사회라는 틀을 벗어나 우주라는 공간과 나라는 존재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고자 하는 원초적 인간 호기심의 극단적 발현처럼 보인다. 목탄이라는 재료가 지니는 소멸성에 주목하며 평면작업을 해 온 서윤아는 여전히 시간과 공간을 부여잡을 수 있는 특정한 소재들을 모색 중이다. 이런 그에게 우주란 마치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가득 차있지만 가득 차있지 않는 것 등과 같은 인간계의 일반적인 사고 행위를 통해서는 쉬이 풀리지 않는 아이러니한 궁극의 지점을 대변한다. 이와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서윤아는 삶과 죽음, 그리고 이를 초월한 ‘나’라는 존재를 둘러싼 존재론적 자기-질문이 가지는 일련의 감정들을 우주에 대한 작가론적 탐구로 치환하고 있다.
손현선 작가는 우주당 안에서 새롭게 부여되는 우주인이라는 직위와 예술가라는 본인의 배경적 직위를 가장 잘 혼재시키고 있다. 손현선은 우주라는 주제를 둘러싼 물리학, 철학, 우주공학과 같은 실무적 학문에 대한 관심에만 천착하기보다는 색에 대한 작가로서의 그의 관심을 우주로 가는 실용적인 훈련 진행과 함께 균형있게 녹여내고 있다. 따라서 손현선은 현실성이 결여된 가설로 스스로를 둘러싸기보다는 언제나 예술적 상상력과 현실의 상황을 겹치면서, 나름의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현실과 우주를 끊임없이 넘나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끊임없이 유동하는 시간의 흐름 가운데 특정한 순간의 지점을 포착해 시각화 하는 그의 작업적 방법론은 우주에서 발견될 새로운 차원의 색채들로 그 스펙트럼을 넓히고자 한다. 이 지구상에서 적용되는 익숙해진 시간 속에서의 시각 이미지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손현선은 우주당의 활동을 통해 그의 작가적 창조성에 대한 진지한 확장을 시도한다.
최병석 작가는 그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일정한 패턴을 읽어내고 스스로의 배경적 조건들을 나름의 방법으로 시스템화 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그에게 우주당의 ‘우주로 간다’라는 대형 프로젝트는 그의 시스템화에 대한 작가적 욕구를 최대한으로 실험할 수 있는 극단적이고도 이상적인 하나의 장으로서 펼쳐진다. 우주당의 활동 안에서 그는 테크니션으로서의 작가이자 우주인 역할을 자처한다. 이는 평소 시스템-도구화라는 큰 틀 안에서 작업을 전개해 온 최병석의 작업방식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혹은 내가 어떠한 삶을 살 때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때로는 너무나도 심각한) 그의 고민은 그 자체를 작가로서의 정체성으로 탈바꿈 시켜버렸다. 그의 도구들은 누군가에게는 “굳이?”라는 질문을 내뱉도록 만들지만 스스로에게는 삶의 체계화를 위한 아주 사소한 것들부터 만들기 시작하는 거대한 집의 아주 중요한 벽돌 조각과도 같다. 최병석에게 우주당의 프로젝트는 예술가로서의 삶 전체를 다 쏟아붓는다 해도 마무리 지을 수 없을 거대 프로젝트이자, 그의 욕구를 마음껏 발현하며 스스로의 원더랜드를 구축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예술적 토양이 된다.
마지막으로 협력 큐레이터 장진택은 이들 우주당의 활동을 지원하는 관제사의 지위를 맡는다. 우주당 안에서 관제사는 우주당의 활동을 해석하고 정의하는 관찰자이자 분석자의 역할을 한다. 그는 우주인들과 일정한 시간적, 물리적 거리를 유지한 채 현장에서 (사전 협의된 방식으로) 우주인들에 의해 기록되는 결과 데이터를 전송받고, 이를 정리/분석하는 나름의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는 활동을 수행한다.
이렇게 시작된 서로 다른 네 정체성의 집합인 우주당은 <COSMOS PARTY: 우리는 우주로 간다>를 위한 맞춤 훈련을 실시한다. 훈련은 외부와 고립된 상태로 진행되며 그들의 활동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로서 관제사의 역할이 존재한다. 훈련은 크게 개인 훈련과 단체 훈련으로 나뉘며, 가상의 우주생활 프로그램을 통해 우주당은 우주인으로서 적합한 신체와 정신을 갖추기 위한 훈련을 수행하게 된다. 우주 공간에서의 건강 유지를 위한 오전 체조 훈련으로 시작하는 단체 훈련은 우주 활동에 알맞은 열량의 식단으로 짜여진 음식 섭취 훈련, 우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우주공부, 취침 및 관제사 교신 일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개인 훈련은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훈련 일정을 계획하여 진행된다. 모든 훈련은 녹화, 녹취, 사진촬영 등의 방식으로 기록되고, 이는 관제사의 훈련 분석을 위한 자료로 활용된다.
2016년 5월 10일 진주운석탐사_사진 일부
2016년 6월 18일 훈련소 및 개발워크숍_사진 일부
우주당의 ‘우리는 우주로 간다’는 프로젝트는 사뭇 진지하고 때로는 엄숙해 보이기까지 한다. 우주당이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처럼, 그들이 실제 우주를 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예술가라는 배경 소양을 가지고 있음을 생각할 때,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구라는 주제와 그 과정에서 발현되는 상상력의 극적인 활용의 개념적인 조합은 나름의 정당성을 획득하고 있는듯하다. ‘우주에 간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사람들 사이의 협업과 이를 위한 개인의 노력이 투영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인간 정체성에 대한 물음은 그들이 작가로서 우주당 활동을 실천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다. 우주라는 미지의 세계를 둘러싼 복잡하게 얽혀있는 창조적인 활동들은 그들이 발견하게 될 ‘우주’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우주당원들 가운데 누군가는 실제 우주에 도달할 수도, 다른 누군가는 이미 각자의 우주에 도달해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주당의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는 잠시나마 현실 세계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우주와 인간 존재, 우주를 상대로 마주하게 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들에 대한 진지한 존재론적 고민을 할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는 거대한 은하계에 하나의 점과 같은 이 지구상에서 뒤얽혀 살면서 인간에게 주어진 현실의 무게를 핑계삼아 정작 우리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시간을 지나쳐 버린 것은 아닐까. 인류의 역사는 무모한 도전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잊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제 우리는 우주에 간다.
- 관제사 장진택_엮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