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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 참가기를 빙자한 여자의 인생 풀이 )

  • 조회수 6377
  • 등록일 2013.10.29
첨부파일
[제31회 마로니에전국여성백일장 참가기_1] 참가기를 빙자한 여자의 인생 풀이

나미나(미술가)



그림과 글과 음악은 하나로 통하는 거라고 여자는 말했다.
날씨도 청명한 가을, 여자는 화구를 들춰 메고 그림을 위한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펜 하나를 달랑 들고 글을 쓰러 문을 나섰다.
일주일에 두 번, 투석을 위해 병원에 가시는 할머니를 아침 일찍 모셔다 드리고 가느라 몸과 마음이 모두 분주한 상태에서 행사 직전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여자가 조금쯤은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을 나이가 돼서부터 돈도 명예도 얻기 힘들다는 세 가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음치에다가 워낙 소질이 없어 음악은 일찌감치 포기했더랬다.
여자가 포기 못 한 두 가지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그림과 글 되겠다.
여자의 꿈은 수차례 바뀌긴 했지만 상상력이 뛰어난 나머지 수차례 바뀐 꿈의 직업을 직접 체험한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곤 했는데, 그녀가 가진 첫 번째 직업은 만화가였다.
그때가 아마 지금 중2병이라 불리는 이상한 허세병에 시달리던 나이였던 것 같은데, 단순히 만화책을 좋아해서 시작한 그 꿈은 만화를 따라 그리다가 갑자기 귀찮음병을 얻어 자연스레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여자는 예체능 계열과 문과 계열이 싫어 한다는 수학과 과학을 유난히 좋아했는데, 베란다에 누워 네모난 창밖에 박혀 있는 별을 보며 천문학자를 두 번째 직업으로 갖게 되었다.
이 꿈은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빠른 순간 접어버려 누구에게 말로 꺼내 보지 못해 빛바랜 것이 되었지만 한동안 여자의 마음속에 있긴 했었다.
아마 켜켜이 쌓인 꿈 리스트 중 맨 밑에 깔려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여자의 세 번째 직업은 애니메이션 감독이었다.
만화가와 애니메이션 감독이 뭐가 다르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여자에겐 달랐다.
어찌 평면과 영상이 같을 수 있더냐.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시고 언니는 친구들이랑 노는 것을 좋아해 어렸을 때부터 유독 텔레비전과 비디오테이프에 빠졌던 여자에게 영상 관련 직업을 꿈꾼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실사 영화도 좋아해 그녀의 꿈은 자연스레 영화감독으로 옮겨갔는데, 그것이 그녀의 네 번째 직업 되겠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결국 처음 가진 직업을 선택하여 만화·애니메이션과에 가게 되었고, 스토리 작법 수업을 들으며 교수님께 스토리작가를 하면 어떻겠냐는 제의도 받을 만큼 글쓰기에 열중하기도 했다.
여자는 한두 해 이것저것 손대다 어느 날 순수미술의 매력을 알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가난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하는데, 여자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가족들은 여자가 순수미술의 매력을 알아버린 그 순간이 아마도 암흑의 기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그 매력을 알고 나서부터 여자는 대학에 다시 들어갔고 학구열이 넘쳐 온갖 강연을 듣는 것도 모자라 대학원에도 발을 들여놓고 아르바이트로 생을 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꿈을 꾸다 가지게 된 것과 같은 직업이 아니라 미술의 영역에서 진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적응에 실패해 대학원 한 학기 만에 휴학의 길을 선택한 지 몇 개월 안 됐지만, 꾸준히 평면작업과 영상작업을 병행하고 전시를 하며 마지막 진짜 꿈을 이어 가는 중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포기 못 한 꿈이자 직업이 아직 하나 남아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글쓰기였다.
다섯 번째 상상 직업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시나리오 작가나 소설가가 되겠다.
이 세상에 글 잘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꿈을 꾼다는 것도 우습지만 그래도 꿈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열정은 가지고 있다.
꼭 소설가가 되지 않더라도 현대미술은 범위가 넓은 걸로 치자면 무한대이니 글은 언제나 쓸 수 있다, 라는 생각에 글쓰기의 꿈은 포기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게다가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스토리들도 방 구석 한켠 몇 년째 들춰 보지 않은 보물함과 메모리복구가 안 되는 날아간 외장하드 속에 어쨌든 들어 있더랬다.
평소 좋아하는 시인이 하는 강연에 갔다가 평소 안 하던 행동이 그날따라 하고 싶었던 관계로 사인을 받고 메일 주소를 물어보고 메일을 보낸 것이 지금의 여자를 있게 했다.
아무래도 그 일이 없었더라면 여자가 이 청명한 하늘 커다란 창 옆에 앉아 마감시간에 맞춰 급하게 글을 쓰고 있지 않았을 것이며, 할머니를 병원에서 다시 모시고 올 시간이 없어 백일장 수상 목적의 글을 쓰며 언니와 싸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글을 쓰다 날벼락 맞은 꼴로 잠시 집에 들른 신혼의 언니에게 카카오톡 친구 차단을 당해야 했고, 글쓰기는 갑자기 언니 이야기가 나오면서 삼천포로 빠졌으며, 싸우느라 시간을 허비한 나머지 글씨를 휘갈겨 쓰며 급하게 원고지에 옮겨 달려달려 접수를 겨우 했더랬다.
이 핑계를 삼아 수상을 하지 못한 원인으로 삼고 있다.
시인에게 메일을 보낸 이후로 인연이 되어 옳은 일에 더 많이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백일장에 응원 차 온 소설가 친구와 일찍 접어버린 음악을 동경하며 마로니에 공원에 앉아 공연을 볼 시간도 갖게 되었으며, 문학 관련 행사에서 영상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난 인연들을 행사장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여자의 백일장 참가로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었으며, 어찌어찌하여 이렇게 참가기를 쓸 수 있게 된 것도 다섯 번째 꿈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분명 읽다가 포기했을 거야. 맞춤법도 문단 나눔도 없는 이 글이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과 그래도 읽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여자는 글을 마친다.
그림과 글과 음악은 하나로 통하는 거라고 여자는 말했다.
오늘도 ‘꿈을 꾼다’.


나미나 (미술가),개인전_2013년 『영화관:映畵棺』 展, 문신미술관 영상갤러리,2012년  SHOWCASES 『REBOOT』展, PLATOON KUNSTHALLE
단체전_2013년 『ILHYUN TRAVEL GRANT 2013』展, 일현미술관, 2013년 『멘붕 속에 핀 꽃』展, 서울시청 시민청 지하2층 시민플라자, 2012년   드로잉 3인展, 갤러리카페 Urban Soul, 2012년 『공존』展, 언오피셜 프리뷰 갤러리, 2012년 『SCOUT』展, 갤러리 이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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