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권영빈(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중학생 두 딸을 둔 수유리 아줌마는 난생 처음 대학로 극장에서 연극을 보았다. 배우의 동작 하나하나에 마음을 뺏기고 스토리 전개에 한숨 쉬면서, ‘아! 이것이 바로 나의 건조한 삶을 촉촉히 적셔주는 자양분’이라고 느꼈다. 다음번엔 두 딸과 함께 나섰다. 엄마와 동행을 싫어했던 두 딸이 연극을 보고 난 뒤 딸들이 먼저 공연 작품을 선정하고 대학로를 향해 나섰다. 단 한 번의 연극 관람이 자아를 찾는 계기가 됐고 연극을 통한 딸들과의 화해는 가정을 더욱 화목하게 만들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문화체육관광부,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와 함께 문화바우처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저소득층 가구주와 청소년에 각각 5만 원 문화이용권 카드를 배부한다. 연극·영화를 관람할 수 있고 책과 비디오도 살 수 있다. 이 카드를 쓰고 있는 이들을 모아 차담회를 열었더니 뜻밖에도 그 효용성이 기대 이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5만 원 문화이용권 카드 한 장이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고 한 가정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간증이기도 하다.
서울대 경영대학원 조동성 교수는 MBA과정에 경영예술론을 개설했다. 경영학도에 창조 능력을 갖추게 하자는 취지다. 자기 소개를 하는 UCC 영화를 찍기도 하고 기아자동차 디자인 담당 부사장 지도 아래 자동차 디자인 교육을 받고 강의가 끝날 무렵 각자의 디자인 결과를 발표한다. 또 ‘이등박문, 안중근을 쏘다’라는 연극을 기획한다. 희곡을 쓰고 작곡도 하며 무대미술도 한다. 경영과 예술이 두 개가 아닌 하나로 기능하며 상호 보완작용을 하는 작업을 조 교수는 2년째 시도하고 있고 그 결과에 대해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오영호 사장은 KOTRA 본사 1층 로비를 미술전시장으로 바꿨다. 전문 큐레이터도 임명했다. 어릴 적 미술학도가 꿈이었다지만 그보다는 우리의 수출 상품에 예술의 꽃을 입혀 더 세련되게 만들어 보자는 시도의 첫발이다. 상품에 예술의 꽃을 입혀보자는 시도는 디자인 시대에 너무나 당연한 접근이다. 그러나 이젠 기업주와 근로자가 함께 예술의 본질에 접근해서 단순 기술이 아닌 가슴에서 우러나는 예술적 감동으로 제품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다.
한국메세나협의회는 1년에 한 차례 예술가나 예술 단체에 큰 기여를 한 기업인을 선정해 감사패를 증정한다. 올해 선정된 인물 가운데는 크라운-해태제과의 윤영달 회장도 있다. 윤 회장은 흔치 않게 ‘락음’ 국악단을 상설 운영하고 있다. 한 해 한 번씩 창신제를 열어 임직원들과 함께 판소리 떼창을 벌이기도 한다. 시상식에서 윤 회장은 말했다. “제가 이 상을 받는 게 송구합니다. 제가 국악악단을 도와준 게 아니라 악단이 저희 그룹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직원들의 사기를 올려주고 화목을 이루게 하니 제가 오히려 예술가 분들에게 고맙다는 절을 해야 합니다.” 윤 회장의 겸손한 표현이기도 하겠지만 실제로 예술이 기업에 직·간접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산 증언이기도 하다. 예술이 개인의 삶을 바꾸고 예술이 기업을 바꿀 수 있고, 나아가 사회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헛된 구호가 아니지 않은가.
산업화·정보화 시대엔 남의 기술을 보고 배우고 부지런히 베끼면 앞선 사람을 따라갈 수 있었다. 이젠 남을 따라가는 추격의 시대가 아니라 남을 따돌리고 앞서가는 추월의 시대다. 앞서 가자면 자신의 창의력과 상상력이 기본이다. 창의의 원천이 어딘가. 바로 문화·예술이다. 문화와 예술이 나와 기업과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예술나무 한 그루씩을 소중히 가꾸자. 이게 우리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벌이는 예술나무 운동이다. 모두의 동참을 기대한다.
자료담당자[기준일(2012.12.28)] : 정책기획부 이재일 02-760-4538
게시기간 : 12.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