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 연출가 신진호·소설가 김아정
-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서 만나 공동제작 낭독극 `환한 밤` 호평 8월 대학로 무대서 정식 공연
- "코로나로 생계 막막하지만 사람들에 위로 전하고 싶어"
◆ 파워업! 청년예술가 ③ ◆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만난 연출가 신진호(왼쪽)와
소설가 김아정은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에서 공동 제작한 연극 `환한 밤`을 공연할 8월을 기다린다. [한주형 기자]
"너의 얘기가 듣고 싶어. 엄마가 알지 못했던 너의 시간에 대해서."
그동안 무심했던 엄마의 사과에 딸이 조심스레 입을 열려고 하자 혀 밑에 숨어있던 나방 한 마리가 포르르 날갯짓을 하며 뛰쳐나왔다. 나방이 날개를 파닥이며 차 안을 이리저리 헤집어댔다.
지난해 10월 서울 대학로 스튜디오다락에서 열린 낭독극 '환한 밤'이 관객들을 울렸다. 객석이 60석뿐인데도 100여 명이 몰려와 서서 관람했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강원도 시골 학교에서 외톨이로 지내는 소녀와 엄마의 갈등을 다룬 김아정(27)의 성장소설을 옮긴 연극은 관객의 지난 시절을 반추하게 만들었다.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만난 김 작가는 "내 성장 서사가 담긴 소설이다. 집안 사정으로 서울에서 강원도 시골로 이사온 소녀가 외톨이로 지내다가 '급식을 혼자 먹느냐'는 엄마의 말에 상처받고 가출한 후 학교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이야기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그의 소설을 선택한 연극 연출가 신진호 극단 비밀기지 대표(29)는 "청소년의 질풍노도 시기를 바라보면서 불완전한 현대사회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네트워킹 프로그램에서 처음 만났다. 낭독극 흐름을 이어주며 피아노를 연주한 작곡가 한혜신(26)도 마찬가지다. 문학, 시각, 연극, 무용, 음악, 전통, 기획, 무대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35세 이하 청년예술가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아카데미로 평균 50대1의 경쟁률을 뚫어야 입성할 수 있다.
신 대표는 "앞으로 작업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예술가들을 아카데미에서 만났다. 다른 분야와 소통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고 말했다. 혼자 글을 쓰던 김 작가도 "관심이 같은 사람들이 유대를 통해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이 즐거웠다"고 했다.
낭독극 반응이 뜨거워서 오는 8월 27일부터 9월 6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정식 연극 무대를 펼치게 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화 소외 지역을 찾아가는 '신나는 예술여행' 사업에도 선정돼 오는 10월 중순에 강원도 KT&G상상마당춘천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두 사람은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에서 네트워킹뿐만 아니라 창작 역량을 꽃피울 기회를 얻었다. 신 대표는 SF 연극 '우주에 가고 싶어 했었으니까' 제작비 3500만원을 지원받아 올해 2월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공연을 매진시킬 수 있었다. 초기에 연구조사비 500만원을 지원받은 후 멘토이자 연출가 전인철을 소개받아 1년간 연극을 준비했다.
신 대표는 "일주일에 한 번 만나서 연극 무대를 배운 멘토 전인철 연출가는 이제 내 스승이 됐다. SF에서 청소년극 등 다른 장르로 확장해야 하는 것을 배웠다"며 "아카데미에서 최종 작품 발표까지 준비 단계별로 체계적으로 잘 지원해줘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에서 조사연구비와 창작지원금 1000만원을 받았으며, 멘토인 소설가 정지아와 아동문학 평론가 김서정의 조언에 힘입어 중편소설 '미니어처 하우스'와 장편소설 '캐치볼'(가제)을 완성했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김 작가는 "2015년 신춘문예로 등단 후 빛을 못 보고 그만둘까 방황했는데, 아카데미가 작가로 나가는 데 힘이 됐다. 신인 작가로서 장편소설을 썼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다. 긴 서사를 혼자 이끌어가는 게 힘든데 멘토 선생님들이 피드백을 해줘서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제 첫발을 디딘 예술가들의 등대가 돼주는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는 2016년부터 지금까지 청년 예술가 347명을 도왔다. 2019년 동아연극상 작품상·연출상을 수상한 신유청, 2019년 대한민국 무용대상 대통령상을 거머쥔 정원기, 소설가 우다영 등이 이곳 출신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1999년 청년예술가 지원 사업을 시작해 차세대예술인력육성사업(AYAF) 등을 거쳐 현재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로 명칭을 바꿨다.
이곳에서 창작 열정을 재충전한 두 사람은 코로나19 위기에도 희망을 이야기했다. 신 대표는 "3월 두산아트센터 공연이 취소된 후 백수가 됐다. 힘들지만 아르바이트를 하고 글을 쓰면서 꿋꿋이 버텨나가는 게 코로나를 이기는 방법이다"고 강조했다.
김 작가는 "소설 창작과 병행하던 논술학원 강의가 줄어서 일반 회사 취직에 도전했지만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자존감이 낮아지고 외로울 때 책에서 위로를 받았다. 세월호 사건과 코로나19 등 세상이 무너져갈 때 가장 큰 힘은 사람이 아니라 예술에서 나온다. 작은 위로라도 전하는 문학을 하고 싶다"고 했다. 두 사람을 둘러싼 4월 대학로의 봄꽃이 눈부셨다.
[전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