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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샤만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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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6,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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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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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05.11.09
한국의 샤만니즘
1)문제의식
한국사람 이라면 거의 모든 집에서 굿해본 경험 있을 것이고 명절에 차례지내고 생일날 어머님께서 떡시루 차려놓고 무병장수를 비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마을에 나아가면 당산나무에 새끼줄을 메어놓고 비는 모습이나 적어도 그런 흔적들은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고 고갯길 후미진 곳에 돌무덤이 있고 그곳에 아무런 돌맹이라도 하나쯤 쌓아 얹어 놓고 간 경험들 있기 마련이다.
행여 라도 집터를 닦으려면 온 동네 사람 다모여 터줏대감에 제사지내며 집터 닦고 상량 얹을 때 상량식 제사올리고 집짓기를 다하고 나서 성주대감께 제사 올 리는 모습 농사지어놓고 온 마을이 모여 하루 쉬는 업주가리며 현대에 와서도 사안별로 기공식 준공식 출정식 하다못해 개소식(開所式)등 우리생활과 밀착된 고사(告祀)를 지내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모두가 한국 샤만니즘(Shamanism)의 본모습이다.
2)근대화와 한국의 샤만니즘
이와 같이 이미 우리생활의 모든 영역에 밀착된 우리의 공동체적 생활 문화가 미신(迷信)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들 자신으로부터도 폄시(貶視) 하대(下待)되어왔고 언제인가 우리의 생활 속에서 청산 되어야할 부정적 요소라고 간주 되어 왔던 것이다. 하물며 일제치하 식민지 피교육자들이 이에 대해서 어떤 인식을 갖고 있었을 것인가? 묻지 않고서도 짐작할만한 사안이다.
특히 만군출신 장교단들의 의식구조는 일본 사무라이 정신을 최상의 가치규범으로 간주하고 있었고 대한민국 건국과 더불어 창군의 주류로 되면서 동족상잔의 6.25 전쟁과 더불어 권력지향의 출세지상 주의 집단이었음은 그들의 행적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전쟁의 폐허위에서 굶지 않고 잘사는 것만을 염원하는 속류적(俗類的) 가치에 영합하는 “잘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 라는 자작 작사 작곡에 도취되고 이를 권력적 장치로 강요하는 새마을 운동이 강행되었다. 그런데 잘사는 데 도움이 않된다는 이유로 당산나무 서낭당을 불도저로 밀어붙이고 미신이라는 이름으로 당산제 서낭제를 금지시켜 촌락 공동체의 생활 문화유산을 파괴 해버린 예에서 그들의 가치의식을 극명하게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정치적 저항을 원천봉쇄 하려는 목적에서 긴급조치를 발동하고 국가보안법을 강화하여 사법살인쯤 서슴치 않는 무도 무지성과 같은 발상으로 통행에 불편을 준다는 판단아래 도심의 모든 하천을 복개 (覆蓋)해버림으로써 생태계라는 뭇 생명을 침묵 시켜버려 구비 구비 마다 민중의 삶과 애환이 얽히고 설킨 사연들을 매몰시켜버리는 맹목성에서 그들의 의식구조가 잘 나타나고 있다.
즉 그들의 최고가치는 일본식의 사무라이 정신에 기초하여 일본으로부터 배운 근대주의와 미국으로부터 배운 현대과학기술 이외에는 모두 청산 소멸시켜야 하는 미신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주변에는 항상 유명한 풍수쟁이 유명한 관상쟁이들이 근접하고 있어서 아첨을 떨고 있었다는 것이 알려 지고 있다. 그러고 보면 그들 자신이 한국의 샤만니즘 에서 완전히 이탈한 것은 아니면서 민중들의 그것만을 하대 폄시 한 것으로 된다.
3) 샤만니즘만이 민중 자신의 것
지난해 여름 독일인 수련단이 래한 하여 필자로부터 3주간 24반 무예 중 일부를 수련하는 수련단 중에는 “ 아스트리드 짐머만”이라는 켐브리지 대학 박사과정을 이수하게 될 여류 인류 학도가 있어서 샤만니즘에 대해서 그의 견해를 기회를 갖게 된 일을 잊을 수가 없다.
그의 말인즉 세상의 모든 종교 철학 사상 이념 학문이 모두 지배계급의 것이고 민중에 대한 지배 수단 이지만 샤만니즘 만이 민중 자신의 것이고 그 원형은 몽고와 한국에만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충격적인 이야기였으나 음미해 볼수록 사실과 부합하는 말이다. 그것은 우리주변에서 전형을 이루는 샤만니즘은 무당(巫堂) 또는 ‘당골’이라는 존재로써 사회적으로 최하천민으로 존립해온 것이다. 최하천민 이면서도 민중들 자신의 요구에 따라 굿을 하게 되고 굿을 하는 과정에서 령험(靈險)함을 확인하게 하고 액(厄)막이를 하였다고 안도하게 하기도 하고 죽은 자와 화해 하였다고 위안받게 하기도 한다.
마르크스 레닌사상이 체제 저항의 수단으로부터 출발하여 권력을 장악 하고 나서 70 여년만에 관료주의로 전락하여 해체된 인류사적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타당한 측면이 많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그리고 서양의 기사도 정신이나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과는 달리 동양의 협객(俠客)정신이나 선비정신은 민중과 공동체를 바탕으로 지배 권력과 저항해왔고 기독교도의 일파가 해방신학이나 민중 지향성을 추구하는 사례들에서 공통점을 발견 하게 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모든 것들이 사실상 민중위에 군림하는 지도적 위상이라는 점에서 샤만니즘만이 그런 전제 없이 사회적신분이라는 측면에서 스스로 최하층의 천민임을 자임하는 경우가 여기에서만 유일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4)샤만니즘의 기원
환단고기 (桓檀古記)에 의하면 5903년전으로 비정되는 환웅천왕(桓雄天王)께서 3,000의 무리를 이끌고 흑수 백산사이의 태백산하 신단수(神檀樹)아래 신시(神市) 를 배풀고 하늘맞이 큰굿 (祭天大會)을 행한 것으로 된다.
하늘 맞이 굿을 하는 것은 종족의 단결과 정서적 순화에 있었지만 선주(先住) 야만족들에게 천부인(天符印)등 문명의 이기(利器) 내보이고 천손민족(天孫民族)임을 자임하면서 문화적으로 동화(同和)시켜 통혼족(通婚族)으로 삼는 데 있었던 것이다.
이때 이미 환웅족은 솟대(蘇塗)를 세우고 주술(呪術)로써 신통력(神通力)을 과시하고 약(藥)을 먹고 신선이 되고 8괴를 그어서 장래 일을 알고 상(象)을 잡고 신명(神命)을 운용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신묘(神妙)한 점을 칠 줄 알았다는 것이다.
이후 즉 1565년 후에 신인(神人) 왕검(王儉)이 불함산 박달 나무 터에 내려와 구환(九桓) 백성의 추대를 받아 단군 왕검 (檀君王儉)이 됬고 단공무위좌정세계(端拱無爲坐定世界)에 들어 현묘한 도 (玄妙之道)를 깨닫고 묻 생명을 교화 (接化群生) 하였다는 것이다. 즉 최고경지의 초능력을 갖었 다는 것이다.
5)외래 사조(思潮)에 의한 굴절
아시아 대륙은 한무제 (漢武帝)가 흉노를 정복 하기 전까지는 조선족의 지배 하에 있었는 데 인류 최고(最古)의 사서(史書)라고 알려진 사마천 (司馬遷)의 사기(史記)는 그 실체가 조선족의 아시아 지배의 흔적을 지워버리는 최고(最高)의 사기서 (詐欺書) 일뿐이라는 것을 일본학자들이 귓띰 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찌 됬던 조선의 샤만니즘은 고유한 선도(仙道)와는 잘 조화 되고, 도교는 선도가 중국에 전달 되었 다가 재수입 됬다는 설이 있을 만큼 부합되는 부분이 있고, 불교는 의식적으로 이땅의 민중을 향하여 스스로 타협해온 흔적이 역연하다.
그것은 모든 사찰에 칠성단이나 칠성각을 갖추고 민중 지향의 기복(祈福) 종교화 한 예 라 던지 차례지내는 법이나 심지어 용어가지 혼재된데 나타나고 있다. 어떠하던 불교에 의해서 굴절은 있어도 왜곡되기 까지는 않아 다행인 셈이다.
문제는 주자학에 의해서 심히 왜곡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마치 제례 (祭禮) 자체가 주자학의 도입과 궤(軌)를 같이한 것으로 까지 곡해 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조선왕조 500여년 동안 하늘 맞이 큰굿 (祭天大會)을 엄격히 금지 시키고 심지어 민족자체의 기록들을 몇차례에 걸쳐 수거하여 소각시켜 온 때문 이다.
천주교의 전래 과정 에서의 마찰에도 불구하고 천주교의 미사나 우리 전래의 제사(祭祀)가 같은 의미로 양해되어가고 있고 민중지향의 해방 신학이나 무교회주의 등의 예는 적극적 조화를 모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의 개신 교파 에서는 우리전통 제례를 전혀 인정하지 않은데서 마찰과 갈등이 불가피하다.
6)맺음말
우리들 자신 미신(迷信)이라 폄시 (貶視) 하대(下待) 해왔고 외래사조에 의해서 굴절(屈折)되기도 하고 왜곡(歪曲) 되었음 에도 우리의 생활과 밀착되어 공동체 생활 문화를 이루어왔고 우리의 정체성(正體性)으로 까지 되고 있는 샤만니즘 만이 우리들 민중 자신들의 것이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우리 민중은 이것을 통하여 가족간에 이웃간에 일가 친척간의 갈등을 풀고 심지어는 죽은사람과의 한(恨)까지도 풀수 있다고 생각 해왔다. 특히 양반 지배계급과 서민계급간의 갈등을 해학(諧謔)으로 풀고 한(恨)을 문화로 승화(昇華)시키는 지혜를 발휘한 것이다.
우리민중의 생활사(生活史)에서 무당(巫堂)이나 굿쟁이는 그런 의미에서 신(神)의 세계와 인간(人間)의 세계를 매개하는 특수한 존재로써 스스로를 최하층 천민임을 자임하면서 이처럼 민중 속에서 민중의 것으로 전수되어 왔다는 사실을 기억해두자.
2005.11. 9. 들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