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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춤] 조선최고의 춤꾼 운심을 말하다

  • 조회수 2,998
  • 작성자 박*진
  • 등록일 2015.03.12
2015.3.1 발간

1. 책 소개

연아가 스물에 장안에 들어가

가을 연꽃처럼 춤을 추자 일 만 개의 눈이 서늘했지.

듣자니 청루에는 말들이 몰려들어

젊은 귀족 자제들이 끊일 새가 없다지.

중국 상인의 모시는 눈처럼 새하얗고

송도 객주의 운라 비단은 그 값이 얼마인가?

술에 취해 화대로 주어도 아깝지 않은 건

운심의 검무와 옥랑의 거문고뿐이라네.



煙兒二十入長安 一舞秋蓮萬目寒

見說靑樓簇鞍馬 五陵年少不曾閒

胡商苧布白如雪 松客雲羅直幾金

醉興纏頭也不惜 雲心劍舞玉娘金

-응천교방 죽지사 中





2. 출판사 리뷰



참새가 뜻을 품고 오동나무에 둥지를 틀고

천년을 살아도 봉황이 되는 것은 아니니라.




검무로 조선 권력을 뒤흔들었던 운심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칼의 춤』. 조선 명기로 이름을 날린 운심은 역사 속에 등장하는 단순한 인물이 아니다.



“백세를 산들 강건한 때 얼마이며

봄 한철이라 한들 맑은 날 얼마이랴.

이렇게 만났으니 마다말고 취하여

남도의 서글픈 이별가나 듣세나.”




『칼의 춤』에는 조선 여인의 애틋한 사랑이 갈마들어 있다. 또한 남정네들 속에 묻혀 살아야만 했던 조선시대 여인의 한과 얼이 숨겨 있다.




“화창한 봄기운이 꾀꼬리울음을 재촉하고

맑은 햇살은 개구리밥 위에서 파랗게 구르는데,

문득 들려오는 옛 노랫소리에

고향 돌아가고픈 생각에 손수건에 눈물 적시네.”





운심의 칼춤을 바라보는 이라면 누구라도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본인의 생명도 버릴 수 있는 강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었다. 꿈에서조차 잊을 수 없는 운심의 검무는 가히 마약과도 같았다.




“근래 안부를 묻습니다. 임은 잘 계신지요.

달 비친 비단 창가에 제 슬픔이 깊습니다.

만약 꿈속 혼이 다닌 길에 자취가 남는다면

임의 문 앞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

것이옵니다.”

-몽혼




운심은 중국의 서시와 양귀비, 조선의 황진이를 뛰어넘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운심의 동작 하나하나에 남정네들의 감탄이 온 도성을 가득 메웠다.




“내가 매일같이 책을 읽는 것은

누구의 스승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만 그대를 위한 시를 짓기 위해서이라.

내가 매일 뒷산의 꾀꼬리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그의 소리가 듣기에 좋아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대의 목소리를 잊지 않기 위함이라.”

-운심의 첫사랑인 최기문이 보낸 戀詩 (작가의 창작)






운심은 뛰어난 춤꾼이었지만 도도한 정신을 가진 협기였다. 힘깨나 쓰는 왈패들의 장단에 춤을 추지 않았으며, 올곧지 못한 사대부의 부름에 칼춤을 보이지 않았다. 운심은 그 누구를 원망하거나 갈망하지 않고 생을 마감했다.




“어느덧 미인도 늙어

뭇사람과 애끓는 이별하고

평생 아름다운 곳을 원했으나

결국 眞娘처럼 무덤에 몸을 의탁했을 뿐,

적적한 꽃밭에서 새들이 우는 것은

그대 넋이 화한 것이겠지.”

*진랑: 황진이







-작가의 말



역사 속의 인물을 소재로 글을 쓰는 작가라면 너나없이 그러하듯이 작가 또한 이 작품을 쓰면서 가장 두려워했던 점은, 사료 또는 문헌에 나온 전혀 인물과 다른 이미지를 그려내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18세기 조선 최고의 춤꾼 운심에 관한 역사의 기록은 매우 빈약하였고, 무엇보다 그녀가 밀양 출신이고 검무의 달인이었다는 사료 외에는 그녀의 생활이나 활동, 그리고 출신마을이나 부모형제 친지 등 유관한 사람들에 대해 알려주는 기록이 전무했던 탓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밀양기생 운심이의 삶과 성격, 그리고 춤사위가 어떠했는가를 단편적으로나마 다루고 있는 <광문자전>, <청성잡기>, <입연기>, <응천교방죽지사> 등을 참고할 수 있었던 것은 작가에겐 퍽이나 다행이었습니다.




『칼의 춤』을 구상하고 있을 즈음, 작가의 꿈에 나타난 검기 운심의 춤사위는 진정 소름 돋도록 아름다웠습니다. 관기라는 신분상의 멍에를 보잘것없는 허울처럼 여겨지게 한 그녀의 칼춤은 그야말로 강렬한 매혹이었습니다. 그녀의 흥과 멋과 한, 예술혼 앞에서는 당시대의 천민여성이라면 당연히 겪었을 법한 신분상의 차별과 억압, 수모는 한 바탕 칼춤만으로도 능히 삭여낼 수 있는 서러움일 것 같았습니다. 작가는 이와 같은 가정 속에서 밀양기생 운심의 이야기를 써나 갔습니다. 그러므로 『칼의 춤』에서 그려낸 이야기들은 상당 부분 작가의 상상을 바탕으로 한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의 역정에 허구를 버무린 이야기를 감히 세상에 내어놓게 된 것은, 자신의 꿈을 성취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은 한 조선 여인의 맵차면서도 아름다운 삶과 그녀의 독특한 연사가 시련과 좌절을 강요당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뭇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와 응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 까닭입니다. “약산은 천하의 명승지요, 운심은 천하의 명기다. 인생이란 모름지기 한 번 죽는 법, 이런 곳에서 죽는다면 더없는 만족이다.” 천길 벼랑 아래로 몸을 던지며 운심이 내뱉은 말소리가 싸르락 귓불을 울립니다. 부디 ‘밀양기생 운심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와 그녀의 서슬 푸른 칼사위가 팍팍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독자들의 가슴에 한 줄기 청량한 바람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다시 한 번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4. 차례





동문고개

응천교방

기예시험

단오경연

비사

뇌우

해어화

매화기생





-책속으로





“싸지잉.”
홀연 맑고 서늘한 칼 울림(劍鳴)이 들려왔다. 거문고의 문현과 유현을 빠르게 이어 탈 때 나는 소리와도 같았으나 실은 운심이 검기를 뽑아든 것이었다. 날이 파랗게 선 진검이었다. 어느새 온 좌중이 가을 물결처럼 고요해졌다. 마침내 월대의 장고수가 왼손바닥만으로 북편을 둥, 둥, 둥, 입춤장단으로 느리고 묵직하게 살을 박아 치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운심이 휘엇휘엇 서너 발 앞으로 걸어 나가다가 자르듯 발을 멈추고는 날아갈 듯한 자태로 납작 윗몸을 숙였다. 오른손의 검기를 칼날이 위로 향하게 하여 칼끝을 비스듬히 위를 향해 올려 찌르며 왼손으로 거머잡은 칼자루는 오른쪽 겨드랑이 곁바대에 닿을 듯 말 듯 갖다 붙이고 칼집은 가슴 앞에 모로 띄운 자세였다. 그 모습은 흡사 몸통에 연노랑과 자줏빛깔이 도는 꽃뱀이 몸을 칭칭 사리고 하얗고 긴 혀를 내뿜고 정중동으로 멈춰 있는 모습 같기도 하였다. 바로 그런 참에, 해금소리가 은연중 북장단에 끼어들고 잇달아 대금과 향피리소리가 갈마들었다. 둥둥, 두두둥 두둥···. 북소리는 여전히 느릿하고 묵직했으며 피리선율은 여린 듯이 섬세하였다. 그도 잠시뿐, 운심이 홀연 제 동그란 앞가슴을 휘감듯 칼자루를 돌려 잡고 가뿐 일어섰다. 그 순간 장고소리가 북소리에 선연하게 끼어들었고 장단 또한 점점 급촉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신호였는지 운심이 하얀 버선발을 튕기듯 살짝 치켜들었다. 그러곤 발을 한 발 앞으로 내딛자마자 몸을 회리처럼 휘돌리며 별자리 주위를 빙빙 맴돌기 시작하였다. 어느덧 성난 매처럼 변한 그녀가 양 소맷자락을 휘저어 사위를 에워 감고 덩실거리고 너울대기 시작했다. 이미 칼날은 뵈지 않았고 칼 빛만 시월 새벽안개인양 어지럽고 자욱하였다. 이름하여 칼꽃(劍花)을 빚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헤지러진 밥상을 앞에 두고 서글픈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던 아낙은 이번에는 품에서 작고 어여쁜 수혜(繡鞋) 한 켤레를 꺼내놓으며 엷은 웃음을 깨물어 보였다.
여자아이는 꽃신을 받아들고 그를 살펴보는데 넋이 빠져 젊은 아낙의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사이, 아낙이 곁에 놓인 반상을 들고 일어섰다.
“어미 잠깐 설거지를 하고 올 테니 우리 함께 저자에 나가서 맛있는 것도 사먹고 좋은 데 구경도 가고 그러자, 응?”
“네!”
여자아이가 선뜻 대답을 하고는 금세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낙을 쳐다보았다. 아이의 두 눈에는 한 가득 불안이 담겨 있었다. 제 어미가 무려 석 달여 만에 집으로 돌아온 참이란 것이 생각난 탓이었다.



문득 늙은 아낙이 호통을 치며 여아에게 빠르게 닥쳐들었다. 여아는 겁을 먹고 뒷걸음을 쳤지만 어쩐 일인지 발이 좀체 떨어지지 않았다. 여아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젊은 아낙 쪽을 바라보았다. 어쩐 일인지 그녀는 아이의 눈길과 마주치자 그만 등을 돌리고 그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 않았다. 그러는 젊은 아낙의 얄팍한 두 어깨가 일렁거렸다. 통곡이라도 하는 것일까?
“엄마아!”
홀연 여자아이가 외쳐 불렀다. 그제야 젊은 아낙은 눈물 고인 시선으로 자닝스레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한 가득 애(哀), 한(恨)이 담겨 있었다.
“엄마, 나 버리지 않을 거지, 응?”
아이의 입에서 스스로도 의미를 알 수 없는 물음이 새어나왔다.
젊은 아낙은 대답대신 처연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오른 손을 떠는 듯 가만히 치켜들었다. 아이는 그 손짓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절로 알 수 있었다.
-안녕······!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