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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Y대 유지인 교수와 출발

  • 조회수 1,610
  • 작성자 정*도
  • 등록일 2008.03.20
서울 Y대 유지인 교수와 출발

출발
글: 정현도

성인의 나이에 접어 들어간다. 50이 가까우면 하늘의 뜻을 안다고 하였으니 어찌 자연의 이치를 거역하겠는가? 다행히 젊은 날 야인(野人)으로 학문을 하여 문학과 예술분야에 족적을 남길 수가 있으니 그 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있겠는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가난 속에서 꽃 피워온 날이고 보면 몇 년을 거슬러 쉰이 된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겸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학과 예술에 꽃 피울 오십의 나이고 보면, 젊은 날 모든 걸 다 버리고 살았어도 그리 후회나 손해 볼 것도 없는 것 같다. 늙고 병들고 보면 인생은 낙서같이 왔다가 낙서같이 간다고나할까. 인생은 어쩜 파리 목숨이다. 인생은 사막같이 멀고도 돌아보면 꽃이다. 그런데 하나의 꽃도 사막일 때 인생은 바람으로 왔다가 바람으로 간다.
도(道)와 경제(經濟)는 주춧돌이다. 그 다음은 사는 사람의 마음이다. 도를 잃거나 경제를 잃으면 집이 무너진다. 도에는 목숨도 달려 있다.
오십이 가까워 오면서 깨달은 게 고작 경제(經濟)는 주춧돌이다, 하는 거다.
그래도 철저한 후회는 있어야 되겠다. 인(仁)과 치(治)도 철저한 교육과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이루어 질 수가 없다. 필자가 돈을 벌지 못한 것도 어쩌면 사회에 대한 작은 위대함의 희생인지 모른다. 필자까지 돈에 철저해서야 어디 될 법한 소리인가. 우리 가족이 불쌍하다. 도를 이루고 나서 그 미안함에 보답함이 인지상정일거다.
글 쓰는 재주를 그간 길러 왔으나 오만과 독선으로 인하여 나보다 많이 아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이제껏 써온 시나 수필, 서간, 소설, 미술 글과 비평 등등 정리할 때도 왔지 않았나 싶다.
이번 저서로 님에 대한 글은 지필이라기보다는 그때그때 님이 하도 그리워서 몇 줄씩 적어본 것이 어느새 책 한 권 분량이 되었다. 님은 LA로 떠나 있고 글은 오래 전의 글이고 보면 약간 퇴색된 느낌도 든다.
한 시절 님은 모든 뭇 남성들에게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여인’이였기에 필자는 솔직히 님을 만나고 나서 아주 조심이 되었다.
필자의 수준으로 과거에 그렇게 아름다운 미인을 사랑할 수 있었음은 정말로 행복한 일이었다. 지나간 일은 추억이 되고 아름답게 남는 것일까.
그 님을 사랑한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었다.
남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으로 늘 구름 위를 거니는 것 같은 님이었기에 한 시절이나마 미치도록 사랑했음에 행복했었다. 님을 정말로 사랑한다. 다만 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솔직히 님의 종에 불과하여왔다. 그래도 무척 행복하였다.
나는 님의 종(奴婢)이었음에 티끌만큼도 불만이 없다. 종은 님을 좋아는 할지라도 님은 나를 좋아할 필요가 없다.
이제 인생은 옛날로 돌아갈 수가 없다. 어떻게 보면 철없던 시절의 불장난처럼 세월은 그렇게 강산이 변한 만큼 흘렀고, 황금빛 그리움은 전설이 되었다. 지금 돌이켜 보아도 님과 필자는 묵계한 선을 넘지 않은 것은 행복 중에 하나다. 얼마나 아름다운 여인이었기에 탐할 수 없었는가? 라고 물을 수가 있다.
먼저 사랑과 인생을 가르쳐 준 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이제 다시는 이렇게 달콤한 사랑이 내게 오지 않으리라. 인간에게는 누구나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으니까 말이다. 너무도 아름다운 님이 내게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늦깎이 공부처럼 님에 대한 사랑은 하루하루가 황홀했었다. 인간의 사랑이 무언가를, 님을 통해 피부와 심성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사랑은 누군가가 가르쳐준다. 는 말이 실감한다. 님은 내게 그 어려운 사랑의 비법을 전수(傳受)하였다. 님이 나를 믿어 주었기에 님의 가까이 갈 수 있었고, 가까이 가기에 너무 먼 그대를 매일 피부의 접촉으로 대하며 무릉도원을 살았다.
님은 모르지만 님과 함께 한 동안 스스로에게 약속한 3불(三不)을 지켰다.
1.님의 입술에 키스하지 않는다.
2.님의 젖을 탐하지 않는다.
3.님의 고귀한 자리(혹은 부위)를 넘보지 않는다.
님은 타인이나 주위들에 너무도 아름다웠고, 완벽해 보였으며 요정이나 선녀처럼 늘 새글새글 웃었다. 결혼할 사이의 애인이라면, 사랑의 황홀함은 님을 통해 느낄 수 없었으리라. 나는 영원히 님을 취할 수 없다는 걸 감지해서다. 그토록 도도한 님이 내게 몸의 일부를 맡긴 것은 여러 상황이 있겠지만 나의 적극성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한다. 수십 차례나 만나서 님의 연구실을 청소하여 주고, 인테리어도 하였다. 인생에 대해 잘 알지를 못하지만 나 자신의 실패를 거울삼아 님이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하여 주었던 사건들도 아마도 님과 한 몸이 되는 계기가 아니었을까한다. 님은 청소하는 나를 주위교수들에게 사무실과 더러는 집에 일하는 사람, 이라고 했을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즐겁다. 님의 가까이 가고, 님의 고귀한 손등에 입맞춤한다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님의 손으로 내 얼굴을 한번 쓰다듬도록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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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님을 통해 인간의 완숙을 배웠다. 사랑에도 사계절[春夏秋冬]이 존재함을 알았다. 그리고 풋과일과 안착의 계절, 완숙기처럼 사랑을 통해 인간의 사회사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님은 너무 아름답다. 과거에도 너무 아름다웠고, 지금도 너무 아름답다. 세상의 모든 남성들이 절실히 그리워하고픈 미인이다. 님은 그 만큼 뭇 남성들의 우상이지만 늘 구름위에 노니는 것이 되고 말았다. 님의 부친이 그 유명한 내무부장관 모모였으니 옛날같으면 세도가 하늘을 찔렀었지 않겠는가. 아울러 여성들에겐 공주로써 그러한 새글새글한 웃음 속의 미소가 함부로 범접 못할 일이었다.
님은 아름답다. 남자가 보아도 여성들이 보아도 세상에 저리도 아름다운 여성이 있었나 싶다.
한때나마 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나는 님을 미치게 사랑했다. 사실 님이 내게 사랑을 주지 않을 때는 나도 님을 사랑한 적이 없다. 짝사랑이 지나치면 스토킹까지 가니 말이다. 종교적으로는 마음으로 사랑한다는 그 자체가 곧 범죄로 성립될지 모른다는 착각에도 빠지니까 말이다. 나는 님을 사랑했다. 님을 자주 만나고, 가끔씩 님과 같이 조깅을 다녀오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말이다. 조깅 때는 언제나 나는 님을 도로(道路) 바깥에 세웠으며 님의 보드가드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니 정확히 님의 집에서 사건 때문이다. 님이 잠시 문을 열어 놓은 사이에 커다란 진돗개가 나가는 사건이 있는 날 이후에 나는 님의 다리를 안마했었다. 다리를 삐걱하여 새콤해하는 님의 부은 다리를 주물리는 게 계기가 되어 나는 님의 종아리와 허벅지와 팔과 배를 안마한다. 님은 몹시도 시원해 한다.
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님의 종일 따름이다. 님은 분명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바깥에서 3류작가(소설가)라고 헛소릴 하는 나는 님 앞에 서면 분명 님의 종이다. 님은 나를 종으로 여기지 않으면서 은근 슬쩍 종을 부리듯이 모든 일을 부탁한다. 님이 내게 부탁하는 것은 즐겁다. 어쩌면 세상에 공개되어서는 아니 될 님의 애인일지 모른다.
님과 나는 남 몰래 만났다.
나는 알고 있다. 님이 나를 사랑하기 전까지 나는 님을 사랑하지 않음을. 그건 왜냐고? 나는 상처받기를 싫어한다. 청년의 시절이 아니질 않은가. 이제 사랑을 접아야 할 나이이고 그게 또한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더 더욱 사랑에는 겁이 난다. 아니 아예 사랑이란 그 호수에는 들어가질 않는다. 사랑이란 호수에 잘못 들어가면 폐인이 되는 수가 허다하다. 그리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는다. 나는 사랑의 호수에 들어갈 자격이 없음을 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사랑의 호수에 덜렁 빠져 버린 지 모른다. 님의 자태는 확실히 놀라보게 고왔다. 그리고 일상의 미인은 가히 풍기지 않는 오묘한 신비의 권위, 지적용모 등등이 지상에선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꿈속의 선녀였다. 그 님의 화려한 외출의 목적이 나에게 식사 한 끼를 접대하는 것이 엿다면 나는 얼마나 영광인가.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이 식사하는 대학구내 식당에서.

님의 화실에 들어서면 언제나 길거릴 본다. 나는 주위의 사람이 없으면 새시 문을 내린다. 새시 문을 내리면 바깥에서는 알 수가 없다. 하루 2시간에서 4시간 동안 새시 문을 내리고 님의 몸을 안마하며 함께 있으면 그 보다 황홀한 시간은 없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여성과 함께하는 그 시간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으면서 님을 안마하는 그 기분 어찌 글이나 말로 표현할까.
님과의 사랑으로 인하여 그 누구도 사랑할 자신이 생겼다. 그리고 여한이 없다. 나는 이렇게 행복한 나만의 세계를 그냥 버려두기 아까워 글을 세상에 공개한다. 님을, 서른이 훌쩍 넘어 사랑하게 해준 세상에 감사드린다.
혹자들은 그게 무슨 사랑이냐?,할지 모르지만 내게는 더없이 소중함이다. 타의 모범이 된다는 것보다 아름다운 여성이 남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음을 증명할뿐더러, 여성이 성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 됨을 만천하에 말하고 팠다.
님이 아니었으면 사랑하는 방법을 영원히 배우지 못할 뻔하였다.
제우스처럼 무자비하게 기분 나는 데로 사랑하여 책임을 질 수 없다면 상대에게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사랑에 책임질 수 있음을 님에게서 배웠다. 그 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으랴. 님은 그 큰 사랑을 가르친다, 꿈에도 생각지 않았을지라도 나는 그 사랑을 얻었다. 사랑을 알고 나니 어느새 마흔이 되었다. 40을 넘어서면 사랑하지 않고서 살 나이일지 모른다. 후학들도 커 오고 ,자식들도 커오는 마당에 남녀의 사랑은 망측(罔測)하기 그지없을지 모른다.
인생에는 누구나 춘하추동(春夏秋冬)이 있다. 그걸 좀 멀리 말하면 생로병사[春夏秋冬]일지 모른다. 물론 사는 동안 사계절인 춘하추동을 수십 번 혹은 백여 회를 맞이할지 모른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인생은 춘하추동을 딱 한번 격고 가는 것이다. 대부분 삶이란 여름이라고 착각하는 사이 가을이 오고, 곧 겨울이 닥쳐오는 것이다. 가을에 죽지 못하면 겨울에 거름이 되기 힘 든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겨울과 봄이 빠진 하추(夏秋)가 전부인 것 같다. 인생이 참 짧다. 100년을 살아도 봄과 겨울을 빼고 나면 고작 오십년이다. 또한 여름을 준비하는 데 10년, 겨울을 준비하는 데 가을 10년을 빼고 나면 30년을 고작 산다고나 할까.
인생, 30살을 살려고 지상(地上)에 오는 것이다.
죽는 것은 같다. 젊어서 죽으나 늙어서 죽으나 죽는 것은 허망하다. 누군가 말했다. 죽는 것과 사는 것은 백지 한 장 차이라고.
인생에서 스승을 만나야 한다. 그래서 공부(工夫)란 것은 아버지의 공덕으로 한다고 하였지 않은가. 물론 가장 중요한 스승은 아버지 어머니다. 스승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여 준다는 점이다. 100살을 살아도 30년의 인생 밖에 안 된다,고 할 때 30년을 더 사는 길은 스승의 가르침과 헌신에 있다.
부모님의 헌신적 희생으로 인하여 나는 남보다 빠른 봄을 맞이하였다. 그리고 넉넉하게 가을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봄이 빨랐으니 여름은 풍요로웠다. 봄, 여름, 가을까지 각 10년씩 30년을 더 사는 느낌이다.
물론 느낌이 그렇겠지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