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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6개월 구형을 받은 날 본 음악회

  • 조회수 1,455
  • 작성자 송*건
  • 등록일 2008.05.15
Name 무용평론가 송종건
Subject 1년 6개월 구형을 받은 날 본 음악회
Homepage http://dancecritic.com.ne.kr

< 1년 6개월 구형을 받은 날 본 음악회 >

나는 지난 4월 10일 서울지방법원 형사법정 317호실에서, 검사로부터 1년 6개월의 구형을 받았다. 그 이유는 내가 쓴 평론이 자신들을 비방한 것이라고 하면서, 작년(2007년) 5월경에 그 당시 국립발레단 단장이라는 사람과, MCT라는 공연기획사 대표라는 사람과, 그리고 또 다른 공연기획을 한다는 사람, 등 3명이 비슷한 시기에 한꺼번에 나를 고소해 왔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모자라는 것이 많지만 오직 공공의 이해에 관한 상황을 공익적으로 평론해온 본인으로서는 특별히 잘 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법정에서 그런 구형을 받으니까 정말 마음이 힘들고 착잡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재판일 때마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변호사도 두지 못한 나로서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고, 때로는 정말 이런 근거 없는 ‘고소’가 이렇게 통해간다는 것 자체가 나를 살이 떨리는 모욕감 속에 있게 만들기도 했다.

어쨌든 이런 구형을 받고 나니 겉으로는 담담한 체 하고 있었지만, 몸과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날 법정의 방청석에서 나와 함께 있어준 전 한국음악비평가협회 회장 김규현선생과 함께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 있던 음악회를 보기로 했다.

거의 날마다 무용공연장에 있는 나로서는 근래 몇 년 만에 가보는 순수음악회였다. 첫 번째 연주는 오케스트라와 가야금 연주자와의 협연이었는데 음악에 문외한인 내가 들어도 무게 있게 조화된 우리 국악과 양악이 성공적으로 함께 연주되고 있었다.

오케스트라의 장쾌하고 거친 듯한 음향이 선명하게 이루어진 다음, 가야금의 조그만 선율이 가냘프게 속삭이고 있다. 다시 가야금이 청아한 음을 이어나가다가 랩소딕한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 실려서 상큼한 느낌으로 마무리되고 객석의 큰 박수를 받아냈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우리 국악과 양악과의 접목도 완벽한 조화를 이룰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해주었다. 그리고 두 번째 작품 < 라흐마니노프 피가니니 주제의 랩소디OP.43 >은 경쾌한 피아노 독주가 쟁반 위의 옥구슬 소리처럼 흐른다.

그러다가 비장한 음으로 변화해가고 있다. 맑고 깨끗한 연주가 장엄하게 이루어지고 또 큰 박수를 받아낸다. 마지막 3번째 작품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5번 E 단조 >는 무용평론가의 입장에서 볼 때, 어떤 이미지들이 무대에 나타나지 않는 상태가 너무 오래 지속되어서 그런지 좀 지루해지려고 했다.

그리고 후반부로 갈수록 좀 무거워지는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이 작품도 장쾌한 마무리를 이루고 큰 박수를 받아내고 있었다. 앞에서 대강 밝혔지만 사실 이날 음악회 공연관람은 나로서는 전혀 예정에 없던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강심장이라고 하더라도 법정에서 1년 6개월의 구형을 받고나니 모든 것이 조금씩 힘들었다. 그래서 몸의 탄성이 가는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을 것이고, 그 결과가 김규현 회장을 따라 음악회장으로 가게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용이라는 ‘공연예술’의 평론가로서 같은 공연예술(Performing Arts)의 중요한 한 분야인 음악 공연이 어떻게 진행 되는지 보는 것은 대단히 유익한 경험일 것이다. 특히 이날 공연한 성남시오케스트라 라고 하면 지역의 한 음악단체로 보이는데, 이런 완벽한 연주를 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부천, 성남, 등등 수도권 각 지역에 이런 오케스트라가 수십 개나 된다는 것이 부러울 따름이다.

단순히 생각해보아도 음악전공자들 수천 명을 고용하는 예술 일자리가 창출되고 있지 않을까? 그런데 무용은 국가지원 발레단이 달랑 하나 밖에 없다. 왜 무용은 각 지자체마다 발레단을 만들어 활동하지 못하는가? 그리고 음악의 경우 합창단, 청소년 음악단, 등등의 이름으로 자리를 만들고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무용인들은 각성해야 되고, 각 지자체들도 깨인 눈을 가져야한다.

여기서 참고로 나의 재판의 결과를 말하면,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2008년 5월 5일 보다 약 4일전인 지난 5월 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재판정에서 존경하는 엄상필재판장님의 ‘무죄’ 판결의 선고를 받았다.

무죄 선고를 하시는 재판장님의 설명을 너무나도 긴장해서 완벽히 잘 듣지는 못했지만, 나의 글이 국가와 사회를 위한 글이기 때문에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취지의 말씀이었던 것 같다.(앞으로 판결문을 정식으로 받게 되면, 다시 한 번 정확하게 거론하는 기회를 갖겠다)

더 열심히 나의 작업을 하라는 은혜로운 판결이다. 지금까지 이 가난한 평론가의 무용에 관한 올바른 글쓰기의 노력은 존경하는 법관님들께서 지켜주셨다. 앞으로 더욱 더 투명하고 올바르게 우리 무용을 포함한 문화예술계 전체의 옳고 그름을 사회와 국가에 알리고, 역사로 기록하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마라는 말씀이다.(송종건/무용평론가/dancecritic.com.n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