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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아르코미술관 소장품전-이미지 연대기 Chronicle of Images

  • 조회수 9584
  • 등록일 2008.05.19
첨부파일

2008 아르코미술관 소장품전 - 이미지 연대기 Chronicle of Images

 

 

| 아르코미술관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한 한국현대미술사의 압축적 제시

아르코미술관은 1979년 미술회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한 이래 미술, 공예, 서예대전의 입상작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을 소장해왔다. 이러한 소장품의 구성은 아르코미술관의 성격이 대관전에서 기획전 위주의 공간으로 변모하고 사진, 영상과 같은 새로운 장르의 작업들이 등장함에 따라 2000년대 이후 급격한 전환을 맞이한다. 이는 아르코미술관의 역사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197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제도권 미술계의 지형도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이미지 연대기 Chronicle of Images 포스터

 

| 기존의 소장품전과 차별화된 연출 방식

<이미지 연대기>전은 여덟 명의 큐레이터들이 선정한 소주제를 중심으로 아르코의 소장품을 재조명하는 전시이다. 큐레이터들은 단순히 작품을 나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소장품들을 몇 개의 키워드로 묶고 여기에 소장품 이외의 작품들을 덧붙였다. 소장된 이미지들을 정리 또는 회고하는 차원을 넘어 전개와 발전에 이르는 변화를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수장고에 쌓여 한 세대를 지나간 이미지들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들은 다채롭다. 물론 그 이야기들은 진부할 수도 있고 과거에만 국한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전시는 회고록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 지난 시대의 이야기를 오늘의 시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이미지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아르코미술관 소장품 정책의 방향성 확립

본 전시는 아르코미술관이 지난 30년 간 소장해 왔던 작품들을 처음으로 정리해 보는 자리이다. 그러나 소장품의 총 작품 수, 각 장르별 소장 작품 수를 헤아려보는 산술적인 통계보다는, 당대의 현실을 포착한 작품, 아카데미즘을 계승한 작품, 미술계에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 등 소장품이 지닌 사회적, 미술사적 의미를 기준으로 작품을 분류해보고자 한다. 이는 장르별로 골고루 작품을 수집해 온 기존의 수집 방식을 되돌아보는 한편, 다른 국공립미술관들과 차별화된 아르코만의 소장품 선정 기준을 확립하기 위해서이다.

 

| 전시 안내

- 전시개막 : 2008년 5월 16일 (금), 오후 5시

- 전시기간 : 2008. 5. 16(금) - 2008. 6. 29(일)

- 전시장소 : 아르코미술관 전관

- 전시작품 : 총 93점(소장품 79점, 외부대여작품 12점, 신작 2점) + 서예자료

- 큐레이터 : 강홍구(소장 작가), 김보민(작가), 김영기(만화가), 김윤호(작가),

...김학량(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교수), 노형석(한겨레21 기자), 이은주(독립 큐레이터),

...in2museum(미술관 교육연구소)

- 전시디자인 : 최정화(작가)

- 전시관람 : 11 am - 8 pm (매주 월요일 휴관)

- 관람료 : 성인 2,000원 l 어린이, 청소년(중, 고등학교) 1,000원

...(장애인, 65세 이상 노인 무료, 교육프로그램 별도)

- 전시설명 : 주중 (오후 2시, 4시) l 주말 (오후 2시, 4시, 6시)

 

| 작품 구성

아르코미술관 소장품

회화(동양화, 서양화), 판화, 공예, 서예, 사진 등 아르코에서 소장한 각 분야의 작품들이 모두 전시된다. 출품작들 중 사석원, 문봉선 등의 초기작들은 미술대전의 영향과 작가만의 어법이 공존하는 흥미로운 양상을 보여준다. 한편 신학철, 민정기, 최민화의 작품들은 현실 참여적인 경향의 작업들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음을, 1970-80년대 수증된 미술대전에서 입상한 추상화들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앵포르멜과 흡사한 추상방식이 유행했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외부대여작품

외부대여작들은 인물과 물을 소재로 한 ‘사람과 사람’, ‘Artworks look to H2O’ 두 섹션에 소장품들과 함께 전시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의 경우, 6.25 전쟁 이후 서양화의 주요 소재였던 어린이를 그린 박상옥의 <후방의 아해>(1958, 국립현대미술관 소장)를 비롯하여 이수억의 <가족도>(1957,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오윤의 <원귀도 습작>(198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김을의 <나>(1997, 작가소장) 등의 작품을 통하여 시대별로 주목받았던 인물들의 모습을 재해석하였다.

 

신작

<이미지 연대기>전의 큐레이터 중 한 명인 김영기는 ‘정물’과 배경의 관계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정물화 일곱 점을 벽에 설치하고 그 작품들을 자신의 작품의 일부로 포함시킨 벽화 <Intro>를 제작하였다. 한편 김윤호는 전시장으로 가져오기 힘든, 미술관 외부에 존재하는 조각 소장품들을 촬영한 영상작업 <Take in>을 프로젝션한다. <Take in>과 이 작업에서 프로젝션 되는 조각 작품들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는 작품이 설치되어 있는 곳으로 관객을 이끄는 안내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 전시 연출

여덟 명의 큐레이터가 제안한 디스플레이 방식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공간 구성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작가이자 전시 공간 디자이너, 인테리어 및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최정화가 전시 공간을 디자인했다.

무대용 조명과 스크린을 이용하여 공예 작품들의 형태를 실루엣으로 연출하고, 건축자재인 메탈 스터드를 가벽 대신 설치하는 방식은 전시를 위한 공간 연출인 동시에 그 자체로서 하나의 작업으로 볼 수 있다.

 

| 이미지 연대기에 관하여  /  강홍구 (작가)                                                           

"오늘날 예술가들은 미술관을 죽은 미술작품들로 가득 채워진 장소로 여기지 않고 살아있는  예술적 선택들이 가득 찬 장소로 여긴다."                                                       

아더 단토(Arthur C. Danto) 「예술의 종말 이후」

1               

1974년 설립 이래 최근까지 수집된 아르코미술관의 소장품들은 우리가 생산해낸 이미지들의 부분집합이다. 수집된 미술 작품들은 여러 경로로 이루어졌고, 반드시 계획적인 것은 아니었다. 쌓인 이미지들을 여러 해가 지나 살펴보니 그것이 곧 미술사가 되어가는 것이 빤히 들여다보인다. 작품이 수집된 배경, 소장된 경위, 작품의 내용 등에서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이름들을 만나기도 하고, 거의 잊혀졌던 그림을 다시 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림을 그린 장소가 어딘지 알고 있는 풍경화 몇 점, 모델이 누군지 아는 인물화들과, 지나치게 낯익은 서예의 글씨와 내용들을 만나기도 했다. 거의 삼십년 전의 이미지들과 그것을 둘러싼 기억들이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 사이에 걸쳐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름의 당대성을 품고 있던 이미지들이 소장품 목록 안에서 급속하게 역사가 되어가는 것이다.

소장품전이란 그 이미지들, 작품들을 불러내 다시 살펴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살펴봄은 단순히 이미지를 호명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관계, 시간의 흐름을 몇 개의 문맥으로 만들어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하다.                         

모든 이미지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마련이고 아르코 미술관이 소장한 이미지들 속에서도 그것은 수시로 발견된다.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혹은 일부러 피해가는 과정에서 이미지들은 수평, 수직적 지층을 이루어 간다. 물론 그 지층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변화라는 두터운 지각 변동 속에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2

인류학은 인간이 자신의 문화적 생산물과 이미지들을 모으고 숭배하는 행위를 여러 가지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미술과 이미지를 둘러 싼 계보학, 수집과 소비의 과정, 이미지 소비를 최고의 사치로 높게 평가하는 현상들 모두가 거기에 해당된다.

아주 기초적이고도 상식적인 인류학 관점에서 볼 때 미술관과 그 소장품들과 전시 행위란 일종의 포트래취(potlatch)이다.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가 연구했던 미국 서부 아메리카 인디언 추장들의 관습처럼 미술관은 물건들, 즉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화물들을 구해 쌓아 놓는다. 그러기 위해서 돈과 정성을 들여 나라 안팍을 뒤진다.

선진국의 유명한 미술관들처럼 결국 그 소장품들은 국가 전체가 나서서 약탈하고 수집하고 심지어 훔쳐온다. 그리고 원주인이 나서도 돌려주지 않는다. 물론 이는 미술관에 관한 일반적인 이야기이고 아르코 미술관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성격은 다르지 않다.

즉 소장품전이란 어떤 의미에서 물건을 잔뜩 쌓아 놓은 추장이 그 물건들을 나눠주고, 낭비하고, 불태우고, 버리는 행위와 같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그 물건들의 축적이 사라지고 낭비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곧 물건들―미술품들을 물신화하여 모시고 또 모시려는 것이다. 그리고 전시회란 그 모시는 행위의 극점이다.

미술관은 포트래취 뿐만 아니라 화물숭배(cargo cult)의 한 전형이기도 하다. 미술관이란 뉴기니아의 마당족들이 만든 가짜 비행장과도 같다. 축복받고 점지받은 자기 부족들에게 화물기가 나타나 화물을 내려 주리라고 비는 그 가짜 비행장, 그래서 미술관의 전시장은 평소에는 텅 비어있고 수장고의 화물들은 평소에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 화물들 사이에 언젠가 엄청난 걸작이 들어올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바로 유령화물(phantom cargo)이다. 그 유령화물들이 미술관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환상이 모든 미술관에는 있는 것이다.

3

이번 전시는 아르코에 소장된 작품만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았다. 외부에서 빌려온 작품도 있고 새로 제작한 작품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있는 그대로 혹은 새로운 해석을 통한 이미지 연대기의 성격이 변한 것은 아니다. 오래된 소장품들이 별 생각 없이 열 병식하는 군인들처럼 때 빼고 광내고 나와 줄맞춰 서있는 것을 피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미 소장된 이미지들이 달리 보이고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기를 바랬다.

달리 말해 소장품의 줄 세우기식 나열에서 벗어나 몇 개의 키워드로 정리해서 다시 묶어 봄으로써 정리와 회고의 차원을 넘어 전개와 발전에 이르는 변화를 찾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아르코 미술관의 일부 소장품은 국가가 지원하는 전시회의 결과물을 모아 놓은 훌륭한 컬렉션이기도 하다. 관전인 국전의 후신이었던 미술대전의 수상작들이 그것이다. 그 작품들은 사실 새로운 미학적 탐구와 실험을 보여준다기 보다는 당대의 모범 답안 이미지들에 관한 사회적 태도를 반영한다. 거기에는 이미지를 둘러싼 관행들, 몇 년 주기의 짧은 유행이 잘 드러나 보인다.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이미지들의 분류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그럴 수도 있다. 이 분류는 장르에 따른 분류도, 소재나 주제에 따른 분류도 아닌 방법을 골라 거의 임의적인 키워드로 배열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데는 교육적, 전시상의 목적들이 복합적으로 개입했다.

각 분야를 맡은 개별 큐레이터들은 작가, 기자, 만화가, 큐레이터 등등으로 다양하게 조직되었다. 전문적인 관점이 아닌 다소 아마츄어적일 수도 있으면서 뭔가 다른 시선을 통한 해석을 시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4

미술품이 신화의 영역에 가까이 가있는 것은 아마도 그것이 유령화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미술품을 둘러싼 시끄러운 에피소드들은 사실 그 소장 과정, 이유, 목적, 본질적 가치와 아무 상관없는 현상들이다. 설사 예술 따위의 종말이 진짜로 온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대체할 무엇인가를 만들 것이다. 인간의 DNA는 그러도록 프로그램화되어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인간의 숙명이다.

숙명에 따라 한 시대가 지나갔음을, 지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소장품들은 이미지의 미래를 말한다. 물론 우리는 그 미래를 뜻하는 언어들이 무엇인지 즉각 알아채지 못하며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듣건 말건 이미지들은 끝없이 말을 한다. 그들이 건네는 말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주시하는 것 자체가 이미지 연대기의 목적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 끝에 미술관의 소장품들이 어떤 방향으로 수집, 관리, 진열되어야하는지에 대한 답이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료담당자 : 아르코미술관 권 진 02)760-4724

게시기간 : 08.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