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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없음
    부암아트홀 초청 '명인명창전'-박현숙 명인의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
    분야
    문의
    02-391-9631~2
    기간
    2014.04.23~2014.04.23
    시간
    오후7시30분
    관람료
    전석3만원(학생50%할인)
    조회수
    5246
    장소
    부암아트홀
    등록일
    2014.04.02
    URL
    www.buamart.co.kr
부암아트홀 초청 '명인명창전'-박현숙 명인의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 이미지
<2014 부암아트 초청 ‘명인명창전’>



■ 박현숙 명인의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

일 시: 2014년 4월23일(수) 오후7시30분

장 소: 부암아트홀

주 최: (주)부암아트

후 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문의: 02-391-9631 www.buamart.co.kr (회원권: 전석3만원, 학생50%할인)

예 매 처: 옥션티켓 1588-0184, http:ticket.auction.co.kr



# 연주자 프로필



가야금 박현숙 朴賢淑 / Park hyun sook

․ 서울대 음대 국악과 및 동 대학원 졸업

․ 한양대 음악학 박사과정 수료

․ 국립국악원 연주원 역임

․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단원 역임

․ 국내 30회 이상 독주회와 프랑스, 오스트리아, 독일 등 독주회 개최

․ KBS국악관현악단 및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서울 심포니오케스트라,

청주시립국악관현악단 등 협연 다수

․ 2005 KBS 국악대상 수상 (현악부문)

․ 2009 제1회 뉴욕 산조 Festival 참가

․ 2010 국악방송 유럽투어 한국음악시리즈 3

“Musique classique coréenne”, 세계문화의 집(프랑스 파리)

부제 :´거장과 함께 떠나는 한국 전통 음악‘[산조-박현숙, 정악- 정재국]

․ 2013 프랑스 샤를 크로 아카데미 월드뮤직상 수상

박현숙의 김죽파류가야금산조 음반 [가야금_박현숙, 장구_이태백]

* 프랑스 파리 세계문화의 집 산하 INEDIT 레이블 출시(2011.12)



․ 현재 서원대학교 사범대학 음악교육과 교수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이수자

아시아금교류회 ․ 가야금연주가협회 이사, 한국음악사학회 정회원

서원가야금연주단 단장







고수 정화영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5호 판소리고법 예능보유자

-경주 신라문화제 전국기악경연대회 대상 (대통령상)

-한국방송공사 KBS국악대상 수상

-국립국악원 민속연주단 지도위원 역임

국립창극단 악장, 국립국악관현악단 악장 역임

부여군 충남국악단 예술감독 역임

중앙대 국악대학 겸임교수 역임





# 연주곡목 및 곡 해설

죽파(竹坡) 김난초(金蘭草,1911~1989)

한국 근현대음악사에서 가야금 음악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전라남도 영암 출생인 그는 조부인 김창조(金昌祖,1865~1919)에게 처음 가야금을 배우게 된다. 7세의 나이로 가야금을 알게 된 그는, 8세때 풍류 한바탕을 배우기 시작했는데데, 일찍이 그의 음악적 재질은 빛나기 시작했다. 그가 이렇게 산조가야금으로 타는 풍류가락은 지금은 민간풍류란 이름으로 전승되고 있다.

하지만, 죽파의 어린시절은 불우했다. 그의 모친은 그를 낳고 일년이 못 되어 작고했고, 아버지는 재혼을 했다. 무엇보다도 그의 부친은 그가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서 예도의 길에 들어서는 것을 반대했었는데, 이것이 어린 죽파에게 있어서 가장 힘겨운 일이 아니었나 싶다. 죽파는 11세때 풍류를 알고 자식이 없었던 양기환(梁基歡)의 양딸로 들어가게 되었고, 그의 배려로 김창조의 수제자인 한성기(韓成基,1899~1950)의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학습하기 시작했다. 김죽파의 음악은 이로부터 본격적으로 꽃을 피울 수 있게 된다. 죽파는 삼년동안 한성기의 문하에서 가야금음악의 진수를 배울 수 있었고, 더 이상 가르쳐줄 것이 없다는 말을 남기고 한성기는 떠나게 되었다. 이 당시의 한성기산조는 약 30분정도의 가락이었다. 김죽파는 한편 김창환의 협률사에 참가해 가야금 산조, 병창들을 공연하기도 했고, 또한 창극무대에서 배역을 맡기도 했다. 예술적 호기심과 재능이 많았던 그는 임방울, 김정문에게 판소리를 배우거나, 한성준에게 승무 등의 춤을 배웠고, 이런 재질을 공연을 통해 유감없이 발휘 하였다. 이 시절 그는 김운선이란 예명으로 공연을 했다. 죽파는 오태석, 심상건, 박동준등에게 익힌 가야금병창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고, 특히 오태석은 재능 있는 죽파를 무척이나 아꼈다. 1920년대 후반부터 30년대 초반까지는 김죽파의 초기 전성기라 할 정도로 크게 두각을 나타냈다. 경성방송국에 출연을 하거나 SP음반을 녹음하면서 그의 이름을 전국에 알리게 되었다.

1932년 결혼과 함께 음악계를 떠났지만 가야금은 물론 거문고와 아쟁, 가곡을 익히면서 자신의 음악세계를 조금씩 넓혀갔다. 특히 풍류방에서 거문고를 잡고 합주를 하였는데 거문고 연주 또한 일품이었다고 한다.

죽파는 무대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6.25 중에 상류층 부인들에게 가야금을 가르쳐주었고, 입소문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문하에서 가야금을 배우려 했다. 1955년경 죽파는 서서히 김창조와 한성기의 가락에 자신의 가락을 넣어갔고, 세산조시를 만들게 된다. 죽파는 1968년부터 대학에서 가야금을 전공하는 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1977년 남편 이완규가 사망하게 되었고, 다음해인 197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예능보유자로 지정 된 이후 1989년 작고하기 전까지 대한민국국악제를 비롯해 많은 연주회와 음반등을 남겼으며 제자들을 열심히 길러내어 존경받는 민속악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김죽파류 산조



김죽파류 가야금산조는 죽파 김난초(金蘭草:1911-1989)가 그의 조부 김창조와 조부의 수제자인 한성기에게서 배운 가락에 자신의 가락을 첨가시켜 완성한 곡이다. 죽파산조의 특징은 남성에게서 나온 가락이지만 오랜 세월동안 여성인 죽파 김난초에 의해 다듬어지고 구성되어 부드럽고 안정감 있는 음색과 섬세하고 심오한 농현에 있다. 그러나 대점, 소점이 분명하고 서슬이 있고 박력 있게 연주해야 한다. 계면조에 강산제 농현을 가미하며 죽파에 와서는 일부 계면조 가락에 슬픈 느낌보다 화사한 느낌이 들도록 한 것도 이 산조의 특징이다.



다스름으로 시작해서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휘모리-세산조시로 끝나며 약 55분이 소요된다.



김창조-김죽파-박현숙으로 이어지는 현재 김죽파류 가야금산조는 더욱 기대된다. 스승의 성음을 따라 살아온 온 음악인생.. 어느덧 환갑을 지나보냈다.

가야금연주자로써 뿐만 아니라 한 가정의 아내이자 어머니 그리고 며느리로 이제는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되었다. 수 없이 많은 제자들에게는 정진해가는 모습으로써 귀감이 되었고 최고 스승으로써의 역할을 해내었다. 가야금을 타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하는 가야금의 명인 박현숙교수...

긴 세월 한결같은 마음으로 가야금연주에 정진해온 그의 산조, 그 성음의 깊이는 오늘 더 큰 감동으로 전해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