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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없음
    프로젝트 레인보우 신인작가 발굴전
    분야
    문의
    Tel. 02-2263-0405
    기간
    2010.-0.3-~2010.-0.4-
    시간
    오전 10시 00분 ~ 오후 8시 00분
    관람료
    무료
    조회수
    9646
    장소
    갤러리 이룸 illum
    등록일
    2010.03.21
    URL
    http://www.projectrainbow.co.kr
프로젝트 레인보우 신인작가 발굴전

(http://www.projectrainbow.co.kr)

www.mu-um.com ' 임성권 ' 작가 검색하기



소곡(小曲)


임성권展 / Lim Sung Kwon / 林 星 權 / Photography


2010_0326 ▶ 2010_0401










작가 블로그로 갑니다.



전시기간: 2010년 3월 26 ~ 4월 1일
초대행사: 2010년 3월 27일 토요일 오후5시 갤러리 '이룸'

관람시간: 오전 10시 00분 ~ 오후 8시 00분

휴관일: 일요일

갤러리 이룸 illum (100-012) 서울 중구 충무로2가 51-13

Tel. 02-2263-0405 www.galleryillum.co.kr





보다 작은 것을 크게 보기 위해서

프로젝트 레인보우의 첫 작가 발굴 육성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 프로젝트 레인보우에서 처음으로 지원을 하게 된 작가는 ‘임성권’이다. 그의 이번 작업은 간척지나 매립지와 같은 외딴곳에서 펼쳐졌으며 일반적인 시각에 비해 좀더 깊게 다가서는 의미로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이 좀더 다른 시각을 중시하는 프로젝트 레인보우의 기본적인 생각과 함께 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임성권은 보다 작은 것에 주목을 했다. 삶의 터전이 되는 우리의 땅과 그 위에 살아 숨쉬고 있는 작은 것들과 그 땅을 구성하는 더욱 작은 조각들을 말이다. 그의 눈을 통해 우리는 우리 삶의 터전이 되고 있는 이 땅의 작지만 커다란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임성권, piece-1-나무조각, inkjet, 106.5x91.5x4, 2009,


그의 작업 ‘Piece & Tree’는 같은 목적을 가진 서로 다른 두 작업의 교차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Tree’이며, 다른 하나는 보다 커다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작은 것으로 다가선 ‘Piece’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어쩌면 서로 다를 수 있는 이 두 개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 자신의 이야기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작은 것을 크게 보는 것’ 혹은 ‘작은 이야기를 통해 커다란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것’, 그의 작업에 있어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눈여겨볼 것은 바로 그 점에 있을 것이다. 그가 진정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는 단순히 길가에 자리 잡은 작은 생명이 아니라, 어느 구석엔가 풍파를 견디고 있는 작은 조각들이 아니라, 그 뒤의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 하나하나를 대표하는 상징성일 것이다.

이제 더욱 거친 바다로 나서는 작가 ‘임성권’에게 힘을 다해 박수를 보낸다.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걱정과 근심이 컸을 것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을 그이기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낸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고생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그 스스로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이상만(프로젝트 레인보우 대표)






임성권, piece-2-냉장고, inkjet, 106.5x91.5x4, 2009,


작가 서문 - 대상을 바라보는 행위

작업은 매순간 외부적 요인들로 인해 시작됩니다. 그것은 사진이라는 미디어가 갖는 한계점이자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궁극적으로 실재하는 대상이 있어야 하며, 없다면 작가들은 종종 그것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실재하는 ‘현시적 대상’은 즉각적으로 반응을 일으킵니다. 대부분 그것들은 감각적인 반응 - 아름답다, 더럽다, 춥다 등 - 에 의해 대상에 대한 이미지를 기억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눈은 그것들을 무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시야도 넓습니다.

때문에 ‘작업’이라는 것은 무선택적이고 감각적인 반응을 지우고 실재하는 대상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행위에서 진정으로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진작가가 된다는 것은 실재하는 대상을 내부적 이미지로서만 들여다보는 것이며, 동시에 작가 자신의 반응을 다시금 관찰하는 기록이 아닌가 합니다. 때문에 작품은 그 ‘내부적 이미지’로서의 실체, 리얼한 무엇이 되곤 합니다. 전시회에서도 이런 지점이 여실히 느껴지는데, 저 자신도 알 수 없는 작품들과 직면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시각언어라는 것은 지극히 직관적이고 오늘날에도 설명되어질 수 없는 부분이 많다고 여겨집니다. 우리가 영화나 작품을 보고 느꼈던 무엇들이 ‘텍스트’로 명료하게 설명될 수 없는 지점처럼 말이죠. 인간의 눈은 빛을 3개(Red, Green, Blue)의 색채로 인식하는데 비해 바다 속의 물고기는 10색 또 12개의 색채로 빛을 인식한다고 합니다. 이들은 소리를 낼 수 없는 환경 탓에 몸 전체에 화려한 색을 띄우고 이들만의 ‘사회적 시각언어’라는 것으로 소통한다고 합니다. 아직 학계에서 이론적 성립이 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 자연의 섭리는 꽤나 흥미로운 지점이었습니다. 이것은 ‘현시적 대상’을 ‘이미지’로서만 들여다보는 행위가 아닌가 합니다.

작업을 진행하다 보면 종일 말 한 마디 없이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실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아무도 없는 곳들이 대부분이었고 자연스레 고립감에 익숙해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고립감을 넘어서 자신의 존재가 투명해지면서 사라지는 느낌과 흡사하지 않나 합니다. 그것은 대상이 존재가 되고, 공간 속의 일부로서 존재를 인식하는 경험이었습니다.

... ( 중략 ) ...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를 통해서 이 ‘대상’들은 저를 떠나서 여러분들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그저 ‘작품’이라는 이름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소통하는 ‘다리’가 되길 저 자신은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제가 의도한 것이나 저의 이야기를 보다 더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하는 공간으로서 여러분에게 다가갈 것입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여러분이 만들어 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임성권






임성권, tree-1-무제, inkjet, 90x75x4, 2009,



작가노트 - 소곡( Piece & Tree )

나는 어느순간부터 점점더 조용하고 아무도 없을듯한 곳으로 나를 데려가기 시작했다.
아마도 나는 ' 사막 ' 같은 곳을 찾아 헤매고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상상한 것은 바람부는 적막이었다.
그것은 나 자신이 선명하게 부각되는 존재의 확인이었으며 그리고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뒤 내가 만난 것은 섬 아닌 섬이거나 땅 아닌 땅 이었다 .
방조제길이나 육로가 나있는 섬은 동검도 , 황산도 , 영종도 , 형도 , 우음도 등이 있었고

이지역 일대의 땅들은 대부분 재개발선정부지이거나 간척지나 매립지 사업이 광활하게 진행중이었다.

이곳은 버려진 땅이었다.
자연의 근간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위기에 있었고 아무소리도 내고 있지 않았다.
무차별적으로 파헤쳐 지거나 일직선으로 평지화 된 검은 땅들 위로는 내장을 쏟아낸듯한 토사물이 곳곳에 있었고 버려진 물건따위나 공사폐기물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상상했던 바람부는 적막 대신 이곳은 소스라치게 놀란듯한 바람소리가 귀청을 때리는 곳이었다.
비를 피할곳도 바람을 피할곳도 추위를 피할곳도 먹을것도 사람도 그 무엇도 없는 , 그저 견뎌야 하는 곳이었다.

[piece] 작업을 진행하면서 나는 명상은 고사하고 나 자신의 존재따위를 확인하는 순간마저 사라지는 걸 경험했다.대상들은 묵묵히 소멸의 소리로 울고 있었고 동시에 침묵하는 ' 땅 ' 의 이야기를 대신하고 있었고 나는 , 그러니까 나는 그저 정면으로 시선을 맞추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수있는 것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또하나 내가 찾기 시작한 것은 ' 생명의 소리 ' 였다.
그것은 ' 존재의 확인 ' 같은 것이었다.
이 땅 아닌 땅위에 살아가는 나무들은 아주 낮게 아주 작게만 살아갈수 있었다.
메마르고 위약한 형체들의 흔적은 손이 닿기만 해도 쉽게 부서지고 있었다.
이 땅에서 자연은 이 나무들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조상은 오래전 자연을 , 그리고 나무를 신격화 하거나 가까이 두어 친근하게 여겨왔다. 마을을 상징하는 당산나무를 비롯해 집집마다 나무를 대대로 키워 어르신의 이름대신 감나무집네 , 포도나무집네 하며 지칭하곤 했다. 그 형상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당산나무가 마을의 수장처럼 서있고 집들의 나무는 일종의 지붕처럼 보호막 임을 발견할수 있다.


그것이 도시의 논리로 혹은 현대로 접어 들면서 이런 것들은 이제 완전히 잊혀진듯 보인다.
[tree]의 형상은 어쩌면 위약한 나 자신의 초상화(portrait) 였는지 모른다.





임성권, tree-2-무제, inkjet, 90x75x4,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