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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관련 연극계 원로 좌담(경향신문)

  • 조회수 3,395
  • 작성자 오*곤
  • 등록일 2010.04.22
2010년 4월 22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연극계 원로 3분의 국립극단 법인화 및 외국인 예술감독 영입에 대한 좌담회 전문입니다. 예술계가 널리 알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올립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 경향닷컴에서도 확인 가능합니다.


“현 정부 예술 철학·정책 부재… 연극인들 서명운동 나서야”

국립극단 법인화·외국인 감독 영입 반대 연극계 원로 3인 좌담

국립극단 법인화가 초읽기 수순을 밟고 있다. 소속 단원 24명 전원은 이달 30일 공식 해고될 예정이다. 국립극단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예술감독 영입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러시아 연출가 그레고리 지차트코프스키(51) 내정설이 일부 언론을 통해 이미 보도됐다. 올해 60주년을 맞은 국립극단 법인화가 급박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드디어 연극계 원로들이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며 입을 열었다. 지난 26일 대학로에서 만난 배우 오현경, 극작·연출가 김의경, 연극평론가 이태주씨 등 70대 중반의 연극계 원로들은 국립극단 법인화와 외국인 예술감독 영입에 대해 반대 의사를 단호하게 밝히면서 “연극인들이 서명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좌담의 사회는 연출가 오세곤 교수(순천향대 연극영화과)가 맡았다.


오세곤(이하 사회)=국립극단 법인화가 실행 단계로 접어든 듯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공론화라고 봅니다. 아무리 중요한 문제라도 공론화를 거치지 않으면 실패합니다. 지난 2월 초 국립극단이 해체되고 새로 법인화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과격한 언어가 막 나오고 있습니다. 설령 국립극단에 부실이 있었다 해도 그간의 성과와 역사를 완전히 무시하고 새로 짓는 게 과연 가능하냐는 문제 제기를 하고 싶습니다. 예술감독을 외국인으로 데려온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믿기지 않습니다. 제가 여러 선생님들께 확인해보니, 다들 설마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공론화되기도 전에 거의 기정사실화한 기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며칠 전, 연극계 일부 인사들과 유 장관의 대화 자리가 있었는데 저도 거기에 갔었습니다. 한데 그 자리에서도 그것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김의경(이하 김)=그 자리에 누가 참석했어요?

사회=(당일 참석자들을 거론하면서) 제가 법인화와 외국인 감독 영입을 반대하다가 면박을 당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다만, 배우 박웅 선생은 외국인 예술감독을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셨어요.

김=어떻게 그 사람들이 연극계 의견을 대표해요? 어불성설이지.

오현경(이하 오)=내 생각도 그래요. 이런 저런 감투들을 쓰긴 했지만, 그 사람들이 연극계를 대변할 순 없어요.

사회=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 선생님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은 겁니다.

이태주(이하 이)=법인화는 민영화로 가는 중간 단계입니다. 국가가 운영을 포기하는 거죠.

오=그거 참 섭섭하네요. 국립극단은 한 나라의 연극을 대표하는 곳인데.

이=지금 이 나라의 문화정책이 기본적 방향을 잃었습니다. 국립극장의 위상은 과연 무엇인지, 그것을 없앤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관점에서 가능한 건지, 그것이 한 나라의 문화예술 창달을 위해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 이런 안목을 가지고 제기해야 됩니다. 저는 국립극장 법인화와 외국인 감독 영입이라는 것이, 결국 예술에 대한 철학과 정책 부재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김=이 땅에 국립극장이 생긴 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어요. 1950년, 그 어려웠던 시절에 문을 열었어요. 한데 아쉽게도 그동안 목표 설정에 대해 연구도 안했고. 본질적 접근도 없었고, 행정력으로만 버텨왔어요. 정부는 죽지 않을 만큼의 예산을 주고 명맥을 유지시켰죠. 물론 연극인들에게 잘못이 전혀 없다곤 할 수 없어요. 연극인들이 예술감독을 하기도 했는데, 공공성 마인드 없이 자기 작품만 했어요. 게다가 예술감독을 맡은 기간에 자기 개인 극단 공연까지 같이 했어요. 이렇게 굴러오다가 공론화 과정도 안 거치고, 구체적 청사진도 없이 비밀리에 법인화를 추진하는 겁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흘러왔다는 건, 그동안 연극인들을 비롯해 행정부도 모두 저능아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하지만 저능아들이라고 해서 영혼까지 팔아야 하겠어요? 참으로 절망스럽습니다. 한 나라의 국립극단은 그 나라 문화의 정체성을 지키는 곳입니다. 이건 뭐, 축구대표팀에 히딩크 감독 불러오는 것처럼 기술을 도입하겠다는 건지…. 결국 문화부 책임자가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겁니다.

오=그렇죠. 국립극장은 그 나라 문화의 상징인데, 외국인 예술감독이 온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연극이라는 양식이 서양에서 온 거긴 하지만, 그래도 그 속에 담긴 정서는 우리 것이죠. 서양 것을 그대로 흉내내는 게 절대 아니거든요. 얼마 전에 일본 친구들 연극을 봤는데, 그들만 해도 우리하고 아주 달라요. 더군다나 멀리 러시아까지 가야 합니까? 우리 연극이 그렇게 빈곤합니까? 이것 참 처참하네요.

이=국립극장을 개혁하기 위해 법인화한다든가, 외국인 예술감독 초빙해 해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어요. 문화부가 근본적 문제가 어디 있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어요. 단순히 배우 물갈이하고, 외국에서 몇 사람 불러서 하겠다는 것? 이것 가지고 어떻게 우리 국립극단이 발전하냐는 겁니다. 외국인 감독이 우리 언어를 압니까, 우리 풍습을 압니까?

오=객원 연출을 시키는 정도로 그쳐야죠. 연극이라는 게 몸짓과 말로 하는 예술인데. 축구는 세계공통어니까 히딩크를 데려와서 볼을 찰 수 있죠. 그런데 어떻게 연극을 외국인이 감독해요?

이=테크닉은 연극의 출발점이지 결코 목적이 아니거든요. 그걸 망각하고 있어요. 국립극단이 해야 할 첫번째 일은 창작극 발전입니다. 외래문화를 수용하되 우리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거죠. 두번째는 국가를 대표하는 작품을 만들어서 공연하는 것. 이 나라의 최고의 작품을 최고의 전당에서 발표하는 것이죠. 세번째는 예술교육, 네번째는 자료 수집과 보관입니다. 말하자면 정보화에 기여하는 것이죠. 다섯번째가 예술가 양성. 이렇게 중차대한 임무가 있는 것입니다. 외국인에게 맡길 수 없습니다.

사회=예, 문화부가 대단히 비전문적 진단을 하고 있습니다.

이=국립극장은 국민의 것입니다. ‘공공성’이란 말은 국민이 주인이란 뜻 아니겠어요? 문화부는 충분히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랬나요? 작금의 상황도 마찬가집니다. 국립극단이 없어지는 상황에서 국립극장장이 성명 하나 발표 못하고 있어요. 이게 문화부 장관의 극장입니까? 국립극장 행사가 있을 때 장관이 오는 것은 좋아요. 하지만 왜 문화부 장관이 국립극단 법인화 등을 주도합니까? 두번째는 예산 문제인데, 극단의 1년 공연 제작예산이 5억밖에 안되고 배우도 24명 밖에 안됩니다. 24명이 5억의 예산으로 어떻게 국립다운 연극을 만들겠습니까? 장기적 안목으로 정책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중문화와 순수예술 간의 갈등과 조화의 문제가 중요하잖아요. 지금 온나라가 돈 버는 쪽에만 탐닉하면서 순수예술은 점점 쇠퇴하고 있어요. 국공립 극장이야말로 순수예술을 지키고 키우는 마지막 전당으로 남아야 합니다.

김=지금 정부가 국립극단 해체를 추진할 게 아니라, 그보다 더 시급한 건 세계에 내놓을 만한 국립극단이 될 수 있게끔 지원책을 수립하는 겁니다. 나는 일부 연극인들이 외국인 감독 영입 등에 찬성했다는 게 충격적이고,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쪽입니다. 혹시 그 사람들이 자기 작품을 국립에서 공연해주지 않으니까,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그런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심없이 한국 연극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도저히 그럴 수 없습니다.

사회=외국인 감독과 단원들의 소통 문제도 심각합니다. 연기는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미세 예술이지 않습니까? 한 가지만 누락돼도 판단할 수 없는 게 있어요. 그래서 감독과 단원의 소통이 중요하죠. 그런 면에서 세계적인 연출가를 데려와 처음부터 새로 하겠다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 아닌가 싶습니다. 법인화 이후에 단원들을 2배수로 뽑아 경쟁을 시킨다고 합니다. 외국인 감독이.

오=어떻게 뽑아요? 외국인 감독이 한국 배우들의 능력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겠어요?
김=지차트코프스키가 몇년 전 한국에서 공연했던 <갈매기>는 꽤 괜찮았어요. 한데 외국 연출자가 한국 와서 공연하면 대개 성공합니다. 제작비 등을 전적으로 밀어주거든요. 한국인 연출가에게도 그만큼 지원해준다면 상당히 감동적인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안톤 체홉 연극을 잘 한다고 예술 감독으로 모셔온다는 게 얼마나 단견입니까.
오=원래 예술감독이 연출을 직접 하는 건 아니죠. 예술감독은 큰 클을 갖고 극단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자리죠. 그 나라 문화의 중요한 축을 지키는 자리죠. 그걸 외국인이 어떻게 해요.

사회=걱정스러운 것은 법인화와 예술감독 문제 등 위험천만한 일들이 폭주 기관차처럼 진행된다는 겁니다. 단원들에게 이미 해고 통보를 했습니다. 국립극단 단원들은 창단 60주년을 맞아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현재 나와 있는 계획은 46억 예산과 외국인예술감독, 이거 말고는 없습니다.

이=무슨 권리로 일개 장관이 국립극단의 역사를 무너뜨립니까? 이제 연극계가 나서야 합니다.

오=연극은 대중적 장르가 아닙니다. 민영화되면 국가에서 놔버리는 것이죠.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법인화를 반대하는 겁니다. 예술감독도 국내 연극인들 가운데 신망있는 분이 하면 됩니다. 공정한 심사위원회 만들어서, 연극계에서 합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적임자를 모시면 됩니다.

사회: 또 그간 문제되었던 예술감독의 독단 우려 등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운영위원회나 작품 심의 위원회 등을 두는 것도 방법 아닐까요? 물론 어떤 경우에도 인선은 어렵고 상당한 시간의 인내도 필요하겠지만요.

김=법인화는 극단 발전을 위한 근본적 방법이 아닙니다. 국립극장이 극단을 포기하는 건 대관사업 위주로 가겠다는 말밖에 안되죠. 저는 국립극장의 진의를 정말 모르겠어요. 60년을 해왔는데… 더 잘할 생각을 해야지, 예술감독 문제도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사실은 사람을 안 믿는 것이죠. 우리는 지금 지지 아니면 반대로, 극단적으로 몰려가니까요. 우리 문화계 수준이 정치 수준과 똑같아요. 우리 연극계의 인적 풀에서 누군가를 찾아내고, 그 사람이 잘 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해요.

이=예술감독 문제는 지원이나 지지와 더불어 감시하고 검토하는 장치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뭔가 잘못 하면 이의제기를 해야 하거든요. 예술감독을 리콜하는 거죠. 리콜은 결국 국민이 하는 것인데, 현실적으로는 연극협회 등의 유관단체에서 압력을 행사해야죠. 그런 시스템을 마련해야 합니다. 지금 이 사태에 대해서도 우리 연극인들이 서명운동을 일으켜서 여론을 만들어야 해요. 아, 이거 연극인들 대다수가 반대하는구나 하고, 사실을 사실대로 보여줄 필요가 있어요.

오=내가 말주변은 없지만 소신은 있어요. 이제 연극계 사람들이 입을 열어야 합니다. 장관이 연극인 출신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이겁니다.

김=문화부 유장관이 제가 가르친 제자입니다. 지난 달 말에 장관이 연극인들을 만난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나도 어떤 양반한테 부탁까지 했어요. 장관이 오면 내게도 연락해다오 했죠. 만나서 할 얘기도 있었고. 한데 아무 연락이 안 오더라고요.

사회=그러면 어떻게 논의를 정리하면 좋을까요?

김=먼저 마스터플랜을 공개하고 그 내용을 공론화하라는 거죠. 그후 법인화가 과연 적절한 처방인지를 판단해야죠. 외국인 예술감독 문제는 당연히 반대입니다. 이런 취지로 연극계 서명과 동참을 호소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연극인들뿐 아니라 관객도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시민의 문화운동으로 확대하는 게 바람직해요

사회=예, 잘 알겠습니다. 예술은 공공재입니다. 국립극장은 그 공공성을 지키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지금 너무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국립극단이 왜 필요하고 왜 보호해야 하는지, 오늘 세 분 선생님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더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법인화와 예술감독 영입 문제가 재고될 수 있도록 연극계가 힘을 모아야 할 것 같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문학수·손제민 기자 sachi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