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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예술을 망치는 우리나라 신문 문화면 기사들

  • 조회수 2,295
  • 작성자 송*건
  • 등록일 2010.03.17
Name 무용평론가 송종건
Subject 2010 우리 문화예술을 망치는 우리나라 신문 문화면 기사들
Homepage http://dancecritic.com.ne.kr

< 2010 우리 문화예술을 망치는 우리나라 신문 문화면 기사들 >

“문화면에는 왜 비리를 파헤치고 고발하는 기사가 없나? 문화계에도 공공연한 비밀로 치부되고 있는 문제점들이 많다. 검찰과 경찰이 나서 발표하는 문화관련 사건기사에만 의존하지 말고 문화부 기자가 직접 파헤치는 그런 기사들도 나와야 한다. 문화면을 주례사처럼 좋은 내용으로만 채우는 것은 문화면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짧은 내용이지만, 지난 2009년 9월 19일자 조선일보에 게재된, 보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고, 다 읽고 나니 가슴이 뻥 뚫리는 듯 해지는 기사였다. 우리나라 주요 신문 문화면 기사도 이제 문화예술계의 주요 현안이나 사건 기사를 직접 취재하고 다루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과 현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제 한 해 천억 원 이상이 넘어가는 국민의 피 같은 혈세로 조성되는 문화예술지원금 부정 분배 문제, 문화부 공무원들의 무책임 무능력 부패 독직 문제, 국공립예술단체장 불공정 선정 문제, 남자예술인 병역비리문제, 문화예술 관련 교수채용 비리문제, 문화부 산하 기관장 인사문제, 국공립예술단체 공연내용 부실 문제, 문화예술 관련 학문 저하 문제, 공연장 비리 문제, 등등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의 크고 작은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문화면은 일 년에 거의 단 한 번도 문화예술계 문제점이나 현안에 대한 종합적이며 미래지향적이며 비판적인 기사를 스스로 발굴해서 쓰지 않는다. 아예 원래 주례사를 쓰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동아일보 2009년 9월 11일 사설을 보면, ‘이른바 진보세력, 북의 고의적 물 폭탄엔 왜 침묵하나’라는 제목의 사설이 있다.

그리고 그 내용에는, “이른바 진보세력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일말의 양심이나 균형 감각이 있다면, 무고한 야영객을 사망케 한 북의 물 폭탄을 규탄해야 마땅하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일단 대한민국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절대 공감한다. 왜 대한민국의 국가보안법 철폐 등은 주장하면서, 북의 악행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마찬 가지의 각도에서 보면, 왜 유독 우리나라 신문의 문화면 기사는 홍보성 기사나 주례사 같은 것만 적어서 우리 문화예술계를 진품과 모조품이 구별이 되지 않는 도떼기시장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기껏 해보았자, 사건이 모두 터지고 나서 관련자들이 감옥에 갈 정도가 되어서야 법조 출입 기자들이 사건 기사로 다루는 정도 밖에 없다.

평자가 보기로는 현재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에 수십 년 동안 누적되어 있는 수많은 썩어 문드러져 만연되어 있는 문제점들은 주요 신문의 문화면 기사만 올바르게 쓰이기 시작하면 많지 않은 시간에 거의 모두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면서 우리 문화예술의 건전한 발전의 결정적인 돌파구를 마련해 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그런데 왜 사이비들의 로비나 받으면서 진실을 호도하고 우리 문화예술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기사들만 쓰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하나 꼭 밝혀 두고 싶은 것은, 지금 무용에 관한 글쓰기를 하는 무용평론가인 평자가 이 글을 이런 각도에서 쓰고 있다고, 우리나라 문화예술 평론가들의 글쓰기가 올바르다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은 평자의 여러 면에서의 부족함은 너무나도 절실히 잘 알고 있고, 주위의 일부 사이비평론가들의 행위나 형태에 혐오와 저주를 보내고 있는 입장이다. 그런데 어제(2010년 2월 12일) 동아일보에서 ‘평론의 죽음과 법원 사태’라는 제목의 홍찬식 논설위원의 글을 읽게 되었다. 어떤 사려 깊은 예술가 한 분이 꼭 읽어보라고 연락을 해와 글을 찾아서 읽어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 글을 쓰기 위해 거의 한 달 이상을 자료를 모으고 준비하는 도중에, 홍위원의 글을 마침 보게 된 것이다. 그 내용은 이제 우리나라 예술평론은 권위와 신뢰를 상실해 ‘평론의 위기’를 지나 ‘평론의 죽음’까지 말하고 있다는 내용 등이다. 그리고 “권위를 잃은 평론은 조롱거리로 전락하거나 아예 무관심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도 있다.

그러면서 “일부 판사의 이념화, 권력화는 예술평론이 걸어온 ‘추락의 길’과 많이 닮아 있다”는 내용도 있다. 다른 것은 잘 모르겠고, 예술평론이 황폐화되어 있다는 것은 맞다. 그런데 주요 일간지 문화부장 출신인 홍위원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현재 우리나라 문화면의 기사가 문화예술계에서 어떤 신뢰를 받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을까?

그러면서 홍위원은 ‘예술평론’이 “힘에 취해 예술가 위에 군림하는가 하면 집단을 이뤄 남에겐 가혹하고 같은 편끼리는 우호적으로 일관했다”라고 쓰기도 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나라 주요 신문사들의 ‘문화면 기사’와 ‘예술평론’ 중에 어디가 더 비판을 받아야 할까? 우선 글의 파괴력을 보자. 소위 조중동 이라는 메이저 신문에 실리는 ‘기사’와 기껏해야 잡지나 인터넷에 실리고 있는 ‘예술평론’의 파급효과가 비교라도 될까?

그다음 이미 앞에서 보아왔지만 현재 우리나라 문화면 기사는 거의 모두가 공연 전에 올리는 ‘프리뷰’나 홍보기사로 도배되고 있다. 물론 공연 후 ‘비판’ 기사는 거의 전무하고, 문화예술계의 만연된 현안과 문제들에 대한 뿌리를 뽑겠다는 심층취재 기사 같은 것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기껏 하는 것이 돈이 되어 ‘기자회견’을 할 정도 규모의 예술단체나 문화관련 기관들을 찾아다니면서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는 일만 반복하고 있다. 물론 만나는 예술인들도 한정되어 있다. 다시 여기서 잠시 조선일보 2009년 8월 7일자에 게재된 소설가 강경호의 ‘한국 문학을 위한 고언’이라는 제목의 시론 내용을 보자.

“인기작가라고 해서 매번 좋은 작품을 쓸 수는 없다. 그럼에도 신문의 문화면은 소위 인기작가들 위주의 인터뷰나 서평으로 채워진다. 작품이 좋아서라기 보단 작가의 인지도를 우선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문사측은 편의성과 상업성을 이유로 내세우겠지만 지면을 얻기 힘든 대다수 소설가의 입장에서 보면 차별적이고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

“문화면의 지면도 고답적인 소아에서 벗어나 다양한 작가와 우수한 작품을 알리는 쪽으로 새로워져야 한다. 그게 한국소설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길이고 신문이 할 역할이다. 지금처럼 소수 인기 작가들이 한국소설을 대변하는 양 그들 작품만 언론매체가 다룬다면 한국소설은 질적이나 양적으로 빈약해져 결국 쇠멸하고 말 것이다.”라는 등의 내용이다.

평자가 보기로는 어떻게 보면 현재 우리나라 문화부 기자들은 정말 만나지 말아야 하는 소위 말하는 사이비 ‘홍보의 귀재’들만 만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협잡에 녹아나고 있다. 그리고 전문성도 없고, 더 더욱이나 관련 분야의 진짜 전문가는 만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아마 자기들의 ‘권위 유지’나, ‘이권 챙기기’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로 간주하고 있는 것 같다.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김민환 교수는 중앙일보 2009년 9월 9일자에, “몇몇 국내 언론학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 언론은 미국 언론에 비해 관점이나 이해관계가 다양한 취재원을 활용하지도 않으며, 취재원을 투명하게 밝히지도 않는다. 우리 언론은 ‘확보 가능한 최선의 버전’을 제시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용 가능한 최선의 버전’으로 각색하기를 서슴지 않는다.”라고 하고 있다.

물론 뭔가 아직도 나사가 덜 조여져 있는 듯한 우리 한국 사회 전반에서 “‘전문가의 충고’를 신뢰하지도, 존경하지도, 높이 치지도 않는다”(2010년 2월 12일자 조선일보 앤드루 새먼 더타임스 서울특파원 시론 중)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신문사 문화면을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엉터리 전문가’들은 정말 더 살갑게 더 잘 만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근래 우리나라 주요 일간지에 나타난, 정말 무용 현장을 지키는 무용평론가로서는 결코 용인할 수 없는, 문화면 주례사를 살펴본다. 글이 길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제목만 확인한다. “착한 발레는 싫어, 지젤 창녀가 되다”, “춤은 한편의 시, 바로 당신의 이야기”, “이 남자 뜨면 빈자리가 없다”, “음악에 짝짝 붙는 춤”, “토슈즈 벗고, 몸까지 팔고” 등등이 된다.

물론 이 공연들을 평자는 모두 보고 있었지만, 결코 이런 주례사 제목 내용과 그 공연의 결과적 내용이 맞지 않다. 어떻게 보면 그 품위와 ‘격(格)’은 맞아 들어가는 것 같다. 지금 까지 본대로 현재 우리나라 주요 신문의 문화면 기사는 우리 문화예술계의 문제점을 심층 취재하여 파헤치는 작업은 손을 놓고 있다.

그러면서 주로 극히 한정된 일부 사이비 예술가들이나 가짜 전문가들만을 만나면서 주례사 홍보만 반복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주요 일간지의 기사 파급 효과는 무서울 정도로 강력하다. 물론 예술단체나 예술가들의 생살여탈권도 확실하게 쥐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잘못 휘둘러지면, 가장 ‘흉기’가 될 수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 주요 신문들은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서 우리 대한민국을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비판하며 선도해 나가고 있다. 그런데 왜 문화면 기사만을 이렇게 방치하고 있는가? 원로예술평론가가 이미 사용했던 표현이지만, ‘왜 1류 신문에 일부 3류 기자들을 문화부에 방치해 두어’, 우리 문화예술을 올바르게 선도하고 이끌어 가지 않는가?(송종건/무용평론가/dancecritic.com.n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