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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인들은 언제까지 자신의 일에 무심할 것인가?

  • 조회수 2,369
  • 작성자 오*곤
  • 등록일 2010.02.04
연극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세상이 요동을 칩니다. 국립극단 법인화 이야기가 나오더니 몇 달 되지도 않은 예술감독이 사표를 냈다 하고,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국립극단 해체라는 말마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노경식 선생님께서 서울연극협회 게시판에 올리신 글을 읽으셨을 겁니다. 또 아르코예술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이 대학로공연예술센터라는 하나의 재단법인으로 묶여 재출범하면서 역시 얼마 안 된 대학로예술극장 극장장은 사직을 했다 하고, 국립극단 예술감독이었던 최치림 교수가 새 재단의 이사장을, 서재형, 안애순, 임도완씨 등이 예술감독을 맡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도대체 왜 이런 식의 변화가 있는 건지, 그런 이야기가 어떻게 나와 어떤 논의를 거쳐 결정되고 실행까지 되는 건지, 이사장이나 예술감독은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 선임된 건지, 또 그래서 이제부터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극장이 문화예술위원회 소속으로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극장을 연극 전용과 무용 전용으로 구분하는 것이 과연 더 좋은 건지, 국립극단이나 아르코예술극장이 예정했던 공연 계획을 취소 내지 보류할 만큼, 직전의 과거마저 승계가 불가능할 정도의 변화를 필요로 하는 건지, 알 수도 없고 알아볼 기회도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결정됐으니 따르는 수밖에 없는 건지, 하여튼 연극계는 신기할 정도로 조용합니다.
사실 놀라운 침묵은 그 전에도 있었습니다. 문예진흥기금 중 가장 비중이 큰 창작 관련 지원 사업을 16개 지역으로 넘긴다 할 때도 조용했고, 700명의 연극 강사가 활동하는 예술강사 파견 사업의 학교 선정권을 16개 지역 교육청으로 넘긴다 할 때도 조용했고, 그 결과 연극강사들이 1년 동안 담당해야 하는 수업 배정마저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조용합니다. 또 막대한 국고를 들여서 세운 예술의 전당이 상업적 공연에 대부분의 공간을 할애해도 침묵했고, 전 국민의 공간인 국립극장이 재정자립도를 높인다며 악착같이 주차료를 징수하고 수입 뮤지컬을 올려도 침묵했습니다.
사실 국립극단 법인화는 꽤 오랜 전부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 자신 행안부와 문광부 두 부서가 각기 법인화와 관련하여 진행한 연구에 자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연히 그 실행을 위해서는 아주 복잡한 과정을 자진해서 거쳐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고요. 복잡한 과정이란 세밀한 마스터플랜을 포함하여 가능한 한 모든 정보를 제공한 뒤 관련 분야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것의 다른 표현입니다. 즉 요식행위로 하는 공청회 말고, 실행에 불리한 정보까지도 숨김없이 밝힌 뒤 관련 분야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찬반 토론을 결코 피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 아무리 어렵더라도 현재의 지형을 살펴 구성원 누구나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습니다. 이에 대해 어떤 이들은 그것이 너무 이상적이라 실현이 불가능하다 합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단 한 사람이라도 피해의식을 갖게 되는 순간 십중팔구 그 변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가능한 한 현재의 구성원들에게 더 좋은 환경이 제공되는 방향의 변화가 되어야 하며, 설령 일정 부분 불이익이 있더라도 정신적 보상을 느낄 만큼 자신의 희생이 크게 인정을 받는다든가, 또는 그런 불이익을 전제로 이루어진 변화지만 이후 예술 활동에 크게 유리하다든가 하여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성심껏 의견을 듣고 계획을 짜고 설득을 하여야 합니다. 그런 까다로운 과정을 피하고 귀찮아한다면 이미 그것으로 실패할 게 뻔합니다.
여기에 하나 더해 법인화냐 아니냐 하는 문제보다는, 수십 년 동안 30명 정원으로 일관하고 있는 국립극단이 명실상부한 국립극단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서울공연 한 팀, 지역순회공연 한 팀, 해외순회공연 한 팀 등, 세 팀은 상시로 공연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하는 시간을 생각해서 최소 여섯 팀이 존재해야 하며, 그러려면 배우 단원만 200명은 되어야 한다는 현실적 당위성이 중요합니다.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국립극단을 포함해 4개 단체를 운영하는 국립극장 전체 예산이 1년 200억원 남짓입니다. 요즘 뮤지컬 한 편 만드는 데도 수십억 원에서 100억 원까지 드는 걸 생각하면 참 한심합니다. 더 심각한 것은 4개 단체 작품 제작비는 20-40억 원에 불과합니다. 물론 전속단원 중심의 제작이므로 인건비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참 놀라운 액수입니다. 이 정도면 법인화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앞의 말을 이해하실 겁니다.
연극인 여러분
연극인들은 바쁩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연극을 하며 또 한 편으로는 어려운 생활 꾸리느라 조금의 여유도 없습니다. 그러니 당장 발등에 떨어진 일이 아니면 국립극단이고 예술극장이고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불가피한 무관심이 우리의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무심히 살다보니 연극계의 자존심이 되어야 할 국립극단이 수십 년 동안 30명 단원으로 요지부동이었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극장이 이리저리 요동을 치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일이니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관심을 갖고 어떻게 되는지 계속 살피고 주장하지 않으면 우리 연극인들은 그 존재를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약하고 능력 없는 연극인들로 무시당하며 동정하듯 던져주는 시혜에 감지덕지해야 하는 한심한 존재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모르면 모르겠다, 그러니 알려 달라 말해야 합니다. 궁금하면 궁금하다 말해야 합니다. 이상하면 이상하다 말해야 합니다. 반대하건 찬성하건 늘 우리 일에 대해 의견을 내놓아야 합니다. 가장 불리한 건 침묵입니다. 부디 이제부터는 우리 모두 침묵을 떨치고 우리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연극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10년 2월 3일
연극을 걱정하는 연극인 오세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