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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文求씨의 別世와 第三世代 韓國文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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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06.02.08





































李文求씨의 別世와 第三世代 韓國文學
한국문학 최고의 부흥기 누리고 퇴락의 시초 제공




朴京範 기자, muma@hitel.net  










 
얼마 전 작가 이문구씨가 별세하였다. 그의 작품이 정리되어 있는 第三世代韓國文學(三省출판사)의 한 권을 새삼스럽게 다시 들어보며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를 회고한다.
필자는 1980년대 초 직장의 방문판매를 통해 제3세대한국문학 전집 전24권을 구입했다. 그리고는 당시에 쉽게 알 수 있었던 몇 작가들의 권만을 읽고 오랫동안 묵혀 둔 채로 있었다.
수년 전부터 이들 작가들을 재인식하면서 먼지를 털고 다시 탐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 좋은 자료들을 왜 여태 完讀(완독)하지 않고 놔두었는가 후회되기도 했다.

新文學 초창기 세대와, 일제 및 6.25체험세대에 이은, 한글세대의 문학을 표방한 이 전집에는 이청준의 <이어도>, 이문구의 <관촌수필>, 김승옥의 <무진기행> 등 명작 중단편은 물론이고 현재도 단행본으로 판매되고 있는 박범신의 <풀잎처럼 눕다>,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 등이 전집 안에 수록되어 있다.

제3세대 문학인은 행복한 세대

第三世代韓國文學 전집은 이미 80년대 초에 출간된 서적인데 당시 이미 40세 안팎의 중진들이었던 작가들이 최근까지 모두들 무사히 생존하고 있다는 것도 특기할 만한 일이었다. 작가라는 직업에 일반적인 불안정성을 감안하면, 참 복 받은 건강한 세대라고도 생각되었다.
그들은 모두 그들보다 앞선 세대로부터 대대로의 문화계승을 받고, 젊은 시절에 이미 앞선 知的능력을 培養(배양)받은 세대였다.
해당되는 작가들은 현재에도 모두가 잘 나가는 작가나 그렇지 않으면 최소한 대학 문예창작과의 교수자리는 갖고 있는 비교적 보장된 생활을 하고 있다.
이문구씨는 최근까지, 생각이 다르다며 서로 등을 돌리던 여러 사람들을 화해시키는 활동을 해왔다. 하늘은 가장 無垢(무구)한 분부터 데려가고 말았던 것이다.

초창기 가로쓰기 조판으로 높은 판매고 거둔 第三世代韓國文學 전집

아직 사회에서 통용되는 서적은 세로쓰기가 보편적인 시절에 접한 가로쓰기 글은 생소하기도 했지만,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방식대로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일면 편안히 느껴지기도 했다.
출판기획이 좋았든지 독자들이 세로쓰기의 글의 시선집중의 부담에서 '해방되어' 편안한 眼球(안구) 운동이 가능하도록 해서 그런지 이 전집은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문학전집 몰락의 분수령 된 第三世代韓國文學

그러나 또한 이 전집의 발간시기는 우리 나라 문학전집의 몰락을 예고하는 분수령이 되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제3세대 작가'의 막내격인 이문열씨의 문학적 비중이 독보적으로 높은 것은 그의 이후로 비슷한 비중을 차지하는 후배 문학인이 없으니 後代가 차지할 몫이 쌓인 연고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책 크기 대형화되면서 퇴조된 문학서적의 인기

이후 계속적인 가로쓰기 도미노로 우리의 출판양식의 주류가 가로쓰기로 되면서 책 크기는 대형화되어갔다. 독서를 하는 視線(시선)이 편안하게 풀어짐에 따라 글씨에는 집중이 안되기 때문에 글씨는 커져갔다. 교과서처럼 꼭 읽어야 할 책도 아닌 문학서적을 무겁고 거대한 책을 들고 다니며 읽을 필요는 적어서 문학서의 인기는 퇴조되어 갔다.

이미 현재의 상황 예언한 趙海一의 <1998년>

제3세대 문학전집에서 가장 눈길을 가장 끄는 작품은, 당시 미래공상과학소설을 표방하지도 않았지만 미래의 예언을 하고야만 조해일씨의 예언소설 <1998년>이다.

서기 1990년대에 이르러 대기권은 사람의 어깨정도까지 만으로 한정된다.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만 한다. 어린이와 난장이, 곱사등이만이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으며 살아간다. (그럼 2층집은 어떻게 된 거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문학작품에서 지나치게 논리를 따지지는 않는 것이 좋다.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상황설정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카프카의 <變身>에서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벌레로 변할 수 있냐고 따질 수 없는 것과 같다)

섣불리 고개를 들다간 질식해서 쓰러지고 만다. 기어다니는 것이 더 안전하다. 1998년 이것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일어났지만 아직 요원하다.

이것은 바로 오늘날의 우리 정신문화를 그대로 예언한 것이 아닌가. 어린이와 어른이나 비슷한 크기의 글씨로 독서하고 있으며 '엎드린'(가로쓰기 혹은 지적 수준을 일부러 낮춘 글쓰기) 글쓰기만을 요구하는 사회가 되고 만 것이다.

이 작품 마지막에 나오는 곱사등이의 통쾌한 웃음은 바로 우리의 천민자본주의문화 체제속에서 이득을 얻은 부류의 그것이 아닐까.

先代로부터 받을 것은 다 받고 後代를 위해 남기지는 않은 제3세대 문학인들

이렇게 일찌기 60~70년대의 풍요한 문화환경에서 문학적 바탕을 기른 제3세대 문학인들은, 지금의 문학환경을 책의 내용은 가벼우면서도 몸체는 무겁고 거대하게만 나올 수 있는 시대로 바꾸어놓아 우리의 독서문화를 머리 속은 편안을 추구하면서도 손에는 무겁고 부담스러운 것으로 만들었다.

당연히 아직 사회적 지명도와 기반을 갖추지 못한 후배문인들의 성장의 여지는 없어지게 되었다. 어느 누가 '사회적으로 公認(공인)된 賢者(현자)'도 아닌 자의 넋두리를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니며 읽겠는가.

이미 과거에 브랜드가 알려져서 안정된 기반을 갖춘 작가들의 박스포장된 세트제품은 아직도 높은 판매고를 이루고 있는데 그들이 자아도취에 빠져 수시로 내뱉는, '아무리 출판 사정이 어려워도 팔릴 책은 팔린다.'는 주장은 의미가 없다.

선배가 후배에게서 공경을 받는 근거는, 앞장서서 길을 개척하여 후에 오는 자로 하여금 비교적 평탄한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한 공헌을 기리는 것에서이다. 이렇듯 앞에서 과실을 다 따먹고 새로 심지도 않고, 뒤에 오는 자로 하여금 허기에 지치게 하는 '선배'들을 우리는 과연 존경할 수 있을까.

先代(선대)의 功績(공적)에 의해 문학의 황금기를 누렸던 제3세대 문학인들... 비록 그들이 다음세대의 번성을 억누르면서 지금까지 장기적인 득세를 누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퇴장할 것이다.

그들은 과연 그들의 세대 안에 우리의 독서환경을 환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독서문화를 퇴보시킨 세대로서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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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Name 박경범 [ IP : 211.55.154.126 ]

Subject 가로쓰기일변도는 또 다른 전체주의다

Homepage http://muma.com.ne.kr

- 가로쓰기일변도는 또 다른 전체주의다 -

[月刊朝鮮98년3월호]

- 왼손잡이를 위한 책들?
여기에 책 한 권이 놓여있다. 洋裝本이 아닌 보통 종이 표지의 책이다.
양장본이라하면 책의 표지를 두껍고 단단하게 만든 책이다. 그러한 책을 洋裝이라 하는 것은 한국과 동양에서는 단단한 표지의 책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책을 한 사람의 앞에 놓고 펼쳐보라고 하자.
우선 책이 세로본일 경우 독자는 오른손을 내밀어 엄지로 첫장을 펼친다. 다른 손 락들은 손의 움직임에 따라 책이 밀려나지 않도록 받쳐주고 있다.
다음 요즘 우리 출판의 주류인 가로본을 앞에 놓고 펼치라 한다. 그러면 독자는 왼손으로 펼치거나, 왼손으로 받친 상태에서 오른손으로 펼친다.
여기서 세로본의 책양식은 오른손을 주로 쓰는, 사람의 습성에 자연스럽게 맞추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글자의 속성상 가로쓰기가 불가피한 서양의 경우 양장본이 왜 발달했는가가 밝혀진다. 양장본의 표지는 오른손의 손가락끝만으로도 쉽게 들려진다. 오른손만으로도 쉽게 펼칠 수 있는 책이 그들에게도 편리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그들의 책은 조금 큰 경우는 대개가 양장본(하드바운드)이다. 그리고 그냥 종이표지책(페이퍼바운드)은 대개 아예 손아귀에 들어와 한 손으로도 펼칠수 있도록 작다. 크면서 종이표지책으로 되어있는 것은 대부분 책상 앞에서 마음잡고 한 장 한 장 밑줄 그으면서 공부해야할 교과서들이다.
몇해전에 한 진보언론에서 우리 컴퓨터의 키보드가 왼손을 지나치게 많이쓰게 하는 등 오른손을 주로 쓰는 한국사람의 습관과 맞지않아 문제가 있다고 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우리의 책들은 왼손의 사용을 필연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양손을 고루 쓰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하면 할말이 없다. 하기야 발가락으로 책장을 넘기는 운동을 하면 건강에는 더욱 좋을 것이다.)

- 거침없었던 가로쓰기 운동
우리는 80년대에 출판물의 가로쓰기 운동이 있었고 근래에는 신문의 가로쓰기 운동이 있다. 한결같이 가로쓰기가 편리하니 어서 모두 가로쓰기로 통일하자는 것이다. 출판물은 사실상 '통일'이 되었고 신문도 그러한 물결이 밀어닥치고 있다. 한겨레신문(현재 한겨레) 이 최초라고 하지만, 북한의 로동신문이 더 앞섰다.
국내의 대표적인 문서편집기인 아래아한글은 스스로 민족주체성을 살리는 소프트웨어라고 자랑한다. 그런데 그들은 개발초기부터 특정 국어학계의 뜻을 따라 세로쓰기 편집기능을 일부러 만들지 않았다. 순수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라면 개발자들 소신에 맞든 안맞든, 쓰이는 기능이라면 당연히 있도록하는 것이 고객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저네들의 소신대로 통일시키기 위해 일종의 '권력욕'을 발휘했던 것이다. 이것은 그대로 출판양식의 다양화를 억제시키게 되었다. 물론 이 이유뿐만이 아니겠지만 항간에 나오는, 아래아한글이 출판계를 후퇴시켰다는 말이 근거가 있음을 알수 있다.
이렇게 한국에서, 동양 고유의 글쓰기 방식인 세로쓰기의 말살운동은 근세 수십년간 그칠줄 모르고 진행되어왔다. 물론 일부 서적에서 가로쓰기가 편리하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소리높이 외치면서, 기존의 관습을 무너뜨리고 비용을 들여가면서까지 보급할 정도의 절대적 우위의 방식인가. 그렇다면 가로쓰기가 보편화된 지금 우리의 독서문화는 예전보다 많이 향상되고 출판계는 번창했을 터인데 그런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또한 세로쓰기를 權威主義의 所産이라고 하며, 세로쓰기의 분위기가 주는, 글의 엄숙하고 '권위적인' 분위기의 소멸을 그렇게도 반겨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느님의 말씀(聖經)이 너무 엄숙하고 권위주의적이다... 쉽고 편한 한글가로쓰기로 바꾸자... 그리하여 하느님과 서로 동등한 자격으로 지내자... 등 가로쓰기 운동은 문화, 예술, 종교, ... 안 미치는 곳이 없었다. 수천년을 이어내려왔던 겨레의 文化樣式은 불과 일이십년 만에 바뀌어졌다.
文字문화는 住食과 달리 수요자의 선택폭이 넓지 못하고 따라서 교육계, 문화계 주도층의 영향력이 크다. 71년도에 나온 어떤 고전 번역책을 보았는데 서문에 '한자는 꼭 필요할 때만 괄호안에 첨부한다.'고 써 있었고 세로쓰기가 전성이던 그 시절에 가로쓰기를 채택하고 있었다. 그 당시는 박정희의 한글전용정책에 의해 교과서에 漢字가 완전히 없어졌던 시절이었다. 80년대초까지도 세로쓰기로 된 출판물은 많았다. 그러나 그 뒤 가로쓰기책을 주도한 곳은 대체로 '운동권' 출판사들이었다.
문화계의 상당수는 가로쓰기든 세로쓰기든 큰 상관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 쪽에서는 가로쓰기를 유달리 강조하기 때문에 결국 밀리는 것이었다.
가령 보수주의자들 중에 약80%가 세로쓰기를 선호하고 20%는 가로쓰기가 좋다고 생각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 경우 약간의 논의는 있을 수 있지만 세로쓰기는 그대로 존속된다. 그런데 보수주의자 50%와 진보주의자 50%가 합치면 가로쓰기를 주장하는 측이 60%가 되므로 가로쓰기로의 인위적인 '문화혁명'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우리 교육계와 문화계는 다른 분야보다 진보세력이 우세하므로 그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가로쓰기를 한 후로 우리나라의 독서인구가 과연 얼마나 늘었는가를 따져보아도, 가로쓰기운동이 얼마나 우리 국가사회의 實利와는 동떨어진 것이었나를 알 수 있다. 요컨대 기존의 전통이나 권위의 체취가 나는 것은 되도록 없애려는, 어떤 意圖에서 나온 것일 뿐이었다.

- 가로쓰기와 세로쓰기의 용도
가로쓰기의 방식은, 읽기에는 괴롭지만 어차피 꼭 읽어야 할 책, 빨리 읽어야 할 보고서나 매뉴얼, 특수기호나 도표가 필요한 글, 중요한 부분에는 밑줄을 그으며 외워야할 책 等에는, 불필요한 긴장을 덜어준다는 의미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글 그自體를 목적으로 삼는 경우에는 글의 자연스러운 精讀을 유도하는 면에서 세로쓰기가 더 유용하다. 한글이나 한자를 모조리 가로쓰기로만 하자고 하는 측은 본래 북한과 중국공산당정부 뿐이었다.
어느 쪽이 편리하다는 것은 습관에 의한 것일뿐 아무 근거가 없다. 아직도 세로쓰기가 성행하고 있는 일본과 대만이 그 때문에 나라가 발전못한다는 얘기는 없고 일찍부터 가로쓰기를 채택한 북한이 그 때문에 나라가 부강해졌다는 증거는 없다. 다만 근대 서양학문의 주요기호가 가로쓰기이기 때문에 일부 분야에 가로쓰기의 적용이 불가피할 뿐이다.
필자는 가로쓰기의 교욱만을 받았고 역시 가로쓰기가 편하다는 생각을 가진 적도 있었다. 그런데 가로쓰기는 한 눈에 글 한줄을 보아 빨리 읽어내려가기 편할 때가 있지만 그러다보면 읽은게 무슨 내용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세로 쓰기로 된 책은 글의 내용이 더 진하게 와닿는 느낌이 있다.
가로쓰기 信徒 중에는 가로쓰기 신문의 표제어에 세로쓰기가 섞여있다고 탓하기도 한다. 획일을 주장하는 것이 그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길에 나가면 곧 볼 수 있는 버스 옆면의 노선안내는 왜 가로쓰기로 하자고 하질 않는지. 우리가 즐겨보는 외국영화의 자막은 왜 가로쓰기로 하자고 하지 않나. 어떤 신문이 전면 가로쓰기를 발표할떄, 특정매체가 가로쓰기를 하든말든 별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무슨 대단한 쾌거인양 하는 것은 어이가 없다.
서양의 편리한 옷과 신발 등이 들어왔지만 우리것이 절대적으로 불리하지 않은 경우에는 그대로 지켜지는 것도 많다. 집과 음식도 옛날에는 서양식이 좋다고 하고 그에따라 바꾸자는 말이 많았는데도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우리의 온돌방이나 쌀밥 등은 지금껏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모택동은 중국의 여자들에게 바지를 입게 했다. 김일성은 바지는 아니지만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로 대충 통일시켰다. 박정희 또한 여자들에게 미니스커트를 입지 말고 바지를 입으라고 권했다. 모두가 實用性만을 최우선으로 내세우고 '꼭 필요하지않은' 정서적인 부분을 무시하는 전체주의적 성향에 의한 것이다. 가로쓰기도, '실용성' 한마디에 전통이나 특유의 분위기를 다 물리치자는 발상에서는 마찬가지였다.
世上事는 편리함이 전부가 아니다. 글은 분위기와 느낌도 중요하다. 실용성 이외의 다른 것도 추구하는 글에 대해 便宜만을 강조하는 것은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에 다름아니다.
남자가 세상의 일을 운영한다면 여자는 남자를 낳고 남자를 인간답게 한다. 그런면에서 남자를 實用文이라 비유한다면 여자는 文藝文이라 할수있다. 남자는 활동을 위해 두루마기를 옷장에 걸어두고 바지를 입고 다닐수 있지만 여자까지 굳이 모두 바지를 입으라고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우리 문학계에서 이러한 전통의 파괴를 너무도 순순히 받아들인 것도 意外로 느껴진다. 수천년을 내려온 겨레의 文化樣式이 애매한 西歐式 편의주의 논리에 힘없이 무너져내릴 때 소리높여 저항한 문인은 별로 기억나지 읺는다. 허탈하고 아쉬우면서도 어쩔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는 체념하에 따랐던 것인가.
출판사가 월간, 계간의 문예지를 내는 것은 말 그대로 문예를 장려하기 위한 사업이라 하지, 그로부터 상업적인 이익을 낸다는 말은 여간해서 없다. 그런데 그 많은 문예지 중에서 전통의 미학을 살린 세로쓰기의 문예지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의외이다. 상업적인 이유 때문에 가로쓰기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어차피 경제성을 포기하는 상황에서도 예외없이 하나같이 '진보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것은 쉽게 납득이 안가는 것이다. 모두들, 근래 우리사회를 휩쓸고 지나간 이념적 狂氣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지 않았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 세로쓰기의 현대적 활용
한글은 한자의 형태를 빌어만든 글자로서 로마자보다는 한자에 훨씬 유사한 글자다. 한글을 오백년동안 쓰면서 가로쓰기를 생각하지 못한 우리 조상들은 한글가로쓰기운동을 하는이들 만큼에 생각이 못미치지는 않았다. 가로쓰기는, 좁은 글자꼴을 갖고 上下가 들쑥날쑥한 로마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반면에 한글은 正方形의 글자꼴이므로 어느 방식으로 써도 가능하다. 한글을 억지로 가로쓰기와 연관짓는 것은 오백년동안 한글을 세로쓰기로 했던 우리 선조들을 모독하는 것이다.
오히려 경우에 따라 세로쓰기를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것이 한글의 장점을 살리는 길이다. 정 가로쓰기로만 하자면 로마자를 쓰자고 하는 것이 더 솔직하고 명쾌한 태도일 것이다.
사고의 유연성을 가지면 우리글의 서양글에 대한 유리함을 컴퓨터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컴퓨터 모니터 중에는 세로길이가 긴 것이 있다. 한 눈에 많은 글자를 보려면, 가로쓰기를 하는 英文에서, 세로가 긴 모니터는 유용하다. 하지만 그래픽을 보려면 가로폭이 길어야 하므로 불편하다. 한글세로쓰기는 한 눈에 많은 글자를 볼수도 있으면서 가로폭이 긴 일반 모니터를 쓸수 있다.
우리가 컴퓨터통신상에서 주로 쓰는화면은 가로 80바이트, 즉 한글로 40字이고 세로는 24行정도이다. 그런데 통신에 글을 쓸 때 가로 40자를 꽉채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줄이 너무 길면 불편하기 때문이다. 오른쪽 1/3은 비워두고마는 것이다. 이는 헛된 전력낭비와 모니터의 소모, 그리고 리턴기를 자주 눌러야 하는 데서 생기는 시간의 낭비 등이 있다.
세로로 글을 쓴다면 한글의 경우 모니터의 상하폭은 글 한줄에 딱 적당한 크기이다. 그리고 한 화면에 줄을 勿驚 40줄 가까이 채울 수가 있으니 우리는 알찬 한 화면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의 생리상 잘 쓰이지 않는 :-) 등의 다양한 표정기호들도 아주 자연스럽게 쓸 수 있다.

- 가로쓰기의 출판에 미친 영향
우리의 출판양식의 주류가 가로쓰기로 되면서 생긴 변화 중 하나가 책 크기의 대형화이다. 세로쓰기가 보편적이던 시절에는 소설책은 미국이나 일본의 그것과 비슷한 크기인 46판이 주류였다. 그러나 이 작은 판형의 가로폭은 영문자를 쓰기에는 충분하지만 한글로 된 문장을 담기에는 부족하여, 충분한 가로 폭을 확보하기 위해서 모두들 판형을 늘렸다. 그리하여 우리보다 잘사는 미국, 일본보다 더 사치스러운 종이낭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작은책이 유행되지 못하게 한 것은 가로쓰기가 기여한바 적지않다. 세로쓰기가 일상적일 때는 우리의 책들도 거의가 그만한 크기였다. 영문자와 같은, 좁은 폭의 가로쓰기 글꼴을 개발해야 우리도 가로쓰기로 그만한 책을 보편화시킬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책을 보면 국판은 대체로 '꼭 필요해서 공부해야 할' 전문서적에 쓰이고 소설은 거의가, 우리로서는 몇권분량의 글이라도 손바닥에 들어오는 크기의 간편한 책 한권으로 나온다. 일본도 일반 책은 거의가 작은 세로쓰기 책이고 숫자나 도표가 많이 나오는 책만이 조금 큰 가로쓰기 책이다. 그런데 우리는 '심심풀이 소설 나부랑이'가 하나같이 국판으로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또 多段편집의 경우 가로쓰기는 한 눈에 한 줄이 들여다보여 (이것이 그리도 강조하는 가로쓰기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눈길이 금방 오른쪽 단으로 미끄러져간다. 英文 다단편집의 경우에는 글씨의 모양이 조밀하여 단의 구분이 확연히 드러나지만 한글의 경우는 그렇지 않아 오랫동안 읽기에는 부적합하다. 가로쓰기 이후에는 다단편집을 한 전집류가 성공하지 못하고 퇴조했다. 책들이 대부분 單段으로 하니 글씨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가로쓰기를 한 이후로 그 많은 출판물들이 판형이 커짐으로 해서 생긴 종이낭비로 인한 외화낭비는 얼마인가... 상상만해도 엄청나다. 그리고 6~70년대 세로쓰기로 제작된 많은 우수한 출판물들이 死藏되거나 비싼 돈을 들여 가로쓰기로 다시 제작되곤 했고... 그런 일들 없이 어찌 오늘의 아이엠에프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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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문예비평 #1776/1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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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문학퇴보시킨세대의친구간잔치로끝난동인문학상
보낸이:박경범(은하천사) 2000-10-13 09:26 조회:11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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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문학상의 발표가 끝났다. 결국은 젊은시절 先세대의 功積에 의하여 풍부한
문학풍토에서 자라나 작가로서도 무난한 시절을 보냈고 독자로서도 충분한 소양을
쌓을수 있었던 세대의 친구들간 주고받기 잔치로 끝났다.
물론 수상선정 자체에 있어서는 어느누구도 토를 달만할 문제가 없었다.
수상심사위원들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에 이문구 선생만한 글솜씨를 가진 분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사탕이 맛있다하니까 사탕만 먹고 자라난 知的 영양실조 세대의
후배 작가들은, 연륜을 차치하고 실력면에서 내세울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을 말아먹은 아버지가, 못자라 허약한 아들 앞에서
힘자랑하는 격이다.


한글전용가로쓰기세대를 대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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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명령(F,B,P,T,M,N,A,E,PR,DN,DD,GO,PF,ME,MM,SAY,Z,X)
선택(H:도움말) >>










 











hitel─────────────────────────────────────
COMMENT 문예비평 #1697/1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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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宗廟社稷을 단절시킨 세대
보낸이:박경범(은하천사) 2000-01-25 09:55 조회:17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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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의 思想界 등의 잡지를 보면 놀라운 것이 있는데 그것은 지금현재 문
화계의 元老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분들이 그 당시에도 결코
적지 않은 비중으로서 기고문들을 게재하고 있었음을 본다.
그들은 모두 그들보다 앞선 세대로부터 대대로의 문화계승을 받고, 젊은 시절
에 이미 앞선 知的능력을 培養받은 세대였다.
역사를 보아도 亡國의 임금은 수백년을 내려온 종묘사직의 偉業이 자기 代에
이르러 끊어졌다고 조상 앞에 참회하며 자결하곤 했다.
바로 그와 같이 수천년을 이어온 민족문화의 맥을 끊은 세대는, 차세대들을
"느그들은 한글전용가로쓰기세대이다."하며 그들을 知的 무능력자로 만들고는
이제까지 사십년 이상을 장기집권하고 있는 것이다.
설령 이러한 停滯 상태를 타파시키려고 '젊은' 세대들이 奮然히 일어나 저들
의 목소리를 내려고 하여도, 정작 그들의 知的實力(결코 物量的인 年輪의 차
이에서 오는 것이 아닌)의 부족함으로 인해 앞 세대의 벽을 넘을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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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맛과 글의 맛

나이든 세대의 분들은 가로쓰기의 글은 글을 읽는 맛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분들 중에 출판문화의 힘을 가진 분들은 젊은세대의 취향에 따라야 한다고 모두들 가로쓰기로 나아갑니다.) 젊은 세대는 세로쓰기의 글이 읽기 힘들다고 합니다.
이것은 어른들이 젖이나 싱거운 음식을 먹으면 맛이 없고 어린 사람들은 어른들이 즐기는 생선회와 고추장을 먹기가 어려운 것과도 같습니다. 맵고 짠 음식먹기를 훈련받지 못하고 어른이 된 자들은 음식맛이 없어서, 꼭 필요할 때만 조금씩 식사를 하게 되어 영양실조에 걸리게 됩니다.





2003-06-18 오전 12: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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