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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의 아이콘은 미싱이 아닐까?

  • 조회수 3,617
  • 작성자 공*미*프*즘
  • 등록일 2006.02.23
초대형 올갱이 조형물이 웬말인가!
청계천의 아이콘은 미싱이 아닐까?


상징조형물이라는 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해당 조형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상징해야 한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올덴버그의 ‘스프링’이라는 작품을 이야기해야 한다. 스프링(Spring)은 우리가 흔히 ‘올갱이’라고도 부르는 다슬기의 영어식 표현이다. 올갱이 또는 다슬기가 도대체 무엇을 상징한다는 말인가? 혹시라도, 올덴버그가 한국 사람들이 술을 마신 그 다음날 아침에 즐겨 먹는 여러 해장국 중 하나가 ‘올갱이 해장국’이라는 것을 알고, 한국 애주가들의 건강을 상징하고 기념하기 위해 작품을 구상했다는 말인가?


다슬기가 들어가는 해장국을 ‘올갱이 해장국’이라고 명명하는 지역 또는 그 올갱이가 많이 잡히는 지역이 전혀 아닌, 청계천에 초대형 올갱이 조형물을 왜 세운다는 말인가? 그것이 어떻게 청계천의 기념비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명박 시장의 정치적 치적 또는 작가 올덴버그의 작품성을 기념하겠다는 의도인가? 그도 아니면 스프링 혹은 올갱이로 해장국을 끓여먹기도 하는 한국 사람들의 식습관을 기념한다는 말인가? 이도 저도 아니라면, 청계천에 초대형 올갱이 조형물을 세울 이유는 손톱 만큼도 없는 것이다.


청계천은 그 흔하고 값싼 해장국조차 마음놓고 먹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근대화의 희생양이 되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중노동을 했던 공간, 그 가운데를 흐르던 천이다. 최소한의 인간적 대접도 못 받던 어린 여공들의 권리를 위해 전태일 열사가 제 몸에 불을 붙였던 곳이기도 하다. 개발의 뒤안길로 사라진, 그래서 이제는 기억의 저 너머에서만 가끔씩 이야기되는, 고단한 삶이 아직까지도 이곳 저곳에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본군 장교 출신의 대통령이 부당하게 폭력을 동원하여 얻은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또는 단순히 지저분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확, 덮어버렸던 것이 청계천이다. 그렇게 무자비하게 덮여있던 청계천이 거의 반 세기만에, 역시 확, 열렸는데, 이번에는 서울시장이 임기 내 정치적 업적 달성을 위해 불도저식으로 애초의 흔적을 확 다 밀어 붙여, 돌을 이용한 거대한 물고랑을 만들어 버렸다.


청계천 상징조형물을 둘러싸고 논쟁이 치열하다. 단순히 올덴버그를 반대하는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어떻게’나 ‘무엇을’이 아니라 ‘왜’에 대해서, 설득력 있는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는 사실이 무척 반갑고 고무적이다. 그러한 논쟁들은 공공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작가가 일방적으로 작품을 만들어 놓고 사람들에게 감상을 강요하는 것이 공공미술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바로 초대형 올갱이 조형물을 기획한 사람들인데, 그들의 무지와 독단을 이제는 바로 잡아 주어야 한다.


만약, 서울시나 서울시장이, 하늘이 무너져도 청계천 광장에 초대형 상징조형물 또는 기념조형물을 세워야 한다고 고집한다면, 이 땅에서 공공미술을 하는 사람으로써, ‘초대형 올갱이 조형물은 아니다’라는 의견을 단호하게 전달하고 싶다. 청계천에 단 한 번도 와보지 않았고, 청계천이 갖는 다양한 의미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외국 작가에게 작품을 맡기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 너무 너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드시 초대형 올갱이 조형물 계획은 철회되어야 한다.


그렇게들 초대형 상징조형물을 세우고 싶다면, 서울시에 다음과 같이 건의하고 싶다. 누구라도 낼 수 있는 심상한 의견이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초대형 올갱이 조형물 계획에 대한 대안적 의미에서, 초대형 미싱 조형물을 건의하고 싶다.


미싱(재봉틀)은 그저 재봉질을 하는 기계에 불과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청계천과 관련된 근현대사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에게는 각별한 의미를 갖을 수밖에 없다.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종일토록 미싱을 돌리며, 한국 근대화 과정 속에 저 자신을 온전하게 희생했던, 그러나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청계천을 덮어버렸던 것처럼, 역사 속에서 의도적으로 은폐되거나 삭제되었던, 이름조차 모르는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작은 꽃 한 송이 바치는 마음으로, 초대형 미싱 조형물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제작비는 지금처럼 대기업이 마지못해서 내는 후원금 형식이 되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청계천에서 고통스럽고 슬픈 젊음을 보낸 사람들과 그들의 희생과 아픔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소중한 쌈지돈으로 한 푼 두 푼 모아야 의미를 더 많이 갖게 될 것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청계천 사람들과 함께 디자인하고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그 과정이 원론적 의미에서의 공공미술이 될 것이다.


청계천을 덮었던 상판만 걷어냈다고 능사는 아니다. 가리워져 있던 진실도 함께 빛을 보게 해 주어야 한다. 초대형 미싱 조형물은 현재가 과거에게 내미는 반성과 화해의 손길을 기념할 수 있고, 아울러 현재가 미래와 거는 약속의 새끼손가락을 상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이 진정한 기념조형물이고, 진실한 상징조형물이 아닐까. 끝으로, 거의 제작이 다 완료되었다는, 올덴버그의 초대형 올갱이 조형물은, 다슬기를 올갱이라고 부르는 지역(아마도 충북 지역)에 설치하면 될 것이다.


2006년 2월 18일 김상필 / 공공미술프리즘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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