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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문학상>은 작파되어야 합니다.

  • 조회수 3,485
  • 작성자 하*
  • 등록일 2006.02.23
봄이 오려고 합니다. 봄이 오고 있습니다.
어김없는 자연의 순리를 우리는 맵찬 바람속에서도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소시민입니다. 그리고 시를 쓰는 사람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대단히 용감한 불굴의 투사도 아닙니다. 소박함도 있고 실수도 많으며 어리석음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소시민은, 아니 21세기를 사는 시인이라면 모두 무정부주의적이고 소신 없는 개인주의자이여만 하는 것은 아니라 봅니다.

작금의 우리 문단 한켠에서 시행되고 있는 문학상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 함량미달의 상도 있고, 조잡한 작당처럼 상업적 계산이 깔린 상도 있습니다. 그 많은 문학상 중에 유독 제 소시민의 가슴을 어지럽히는 상이 있으니, 세기초에 시행된 미당문학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 상은, 작고한 미당 서정주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그 후대 시인들의 창작열을 부추긴다는 대부분의 문학상 제정취지에서 출발했으리라 봅니다. 하지만 이 상은, 한 마디로 부도덕합니다. 부도덕할 뿐더러 우리 문학인들의 자존과 자유혼에도 불합치 하는 매우 어리석고 반민족적이며 우리 사람됨의 정체성에 반하는 문학상입니다.
그의 문학적 미학의 공과는 저보다 문학사가들이 잘 아시리라 봅니다. 그가 한국적 서정의 원형을 잘 발굴하고 우리말의 질박한 맛과 취향을 잘 살려 곡진한 한국정서의 발현에 이바지했다는 것쯤은 문학지망생이 아니더라도 더 잘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문학적 성취와 평가에도 불구하고 여느 문학상과 다른 변별력과 재고의 빌미는 그 자체로 커다란 파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학 그 자체의 예술성만을 참고하자는 일부 옹호자들과 후학들, 후배문인들이 우리 문단의 실세와 암묵적인 배경으로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도 압니다. 그들의 무시할 수 없는 문학권력과 배타적 이해관계는 이제 더 큰 범위 속에서 자정돼야 합니다. 큰 시인으로 평가될려면 큰 후학들의 깊은 원려(遠慮)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무조건적으로 추모하고 숭모하는 맘으로 문학상을 사수하려는 움직임은 지양되어야 합니다. 문학은 결코 손재주 머리재주로 국한된 예술의 한 장르가 아니라, 인간 본연의 숙명적 대결을 보여주는 존재의 현현,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의 표리부동한 문학과 문학외적 행각들은 문학상의 성립 취지에 맞지 않다고 봅니다.
언젠가 어느 술자리에서 살아 생전 미당 시인의 강의를 들었던 후배문인의 얘기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친일행각과 신군부 하에서의 전두환 씨 예찬 같은 치욕적인 행보는 그 분의 너무 순수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백치 같은 순수함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는 옹호 취지의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말의 배경이 갖는 불명료한 두둔에 깊은 우려를 금치 못했었습니다.
사람됨과 글됨의 한 자리가 꼭, 확실하게, 전적으로 일치할 수만은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소시민이 보기에, 그리고 어리석은 후배 시인이 보기에, 저는 미당 시인이 행한 일련의 불미스러운 공식적 행위들은 문학적 가치와 별개의 것이 아니라 문학적 가치의 이율배반과 참된 존재의 문학의 허구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량하지만 역사의식에 허무주의를 가진 후배문인일지라도 존재의 진정성과 참된 가치의 기준을 제시하는 삶의 지표로서 보기에도 친일과 신군부에 대한 협조와 아부를 일삼은 미당의 이름으로 된 문학상을 주어 21세기 문학의 창작열을 상찬하기에는 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소박하고, 소심하며, 묵묵히 삶의 주변과 세상살이의 순리를 찾아가는 시인의 가슴에 훼절과 문학적 신심을 곡해한 선배 문인의 이름으로 문학인을 상찬하고 있는 작금의 '미당문학상'은 당장 작파(作破)되어야 함이 옳은 줄로 압니다.
조목조목 그의 친일행적을 거들 수도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문학사가나 연구가들의 몫이라 여겨집니다.
일년에 한 번 주는 상은 한 사람의 시인이 받지만 그 상의 미명하에 대다수의 문인들이 겪는 정신적 비굴함과 묘한 이율배반의 정서는 일년 내내 아니 암묵적으로 저류하고 있음을 봅니다. 부디 새로운 정신과 뜻으로 기려진 가난하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고 억압을 받았지만 정신적 기개를 간직한 뜻을 지녀 가슴으로 품을 만한 진정한 시인의 이름으로 후배문인들에게 회초리와 다독임을 주십시요.
친일이니 뭐니 하니까, 편협한 국수주의나 졸렬한 민족주의를 아직도 들고 나오냐고 하는 수구보수세력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의 작고 소박한 소시민적 삶의 진정성을 훼손당할 수 없듯이 문학하는 아니 가난하게 시를 쓰는 그 허구한 날의 올바름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이 땅에서 가난하게 그러나 삶이 깃드는 문학을 하려는 참살이의 미래 세대들에게 삶의 지표가 흔들리고 정신적 기조가 훼손된 시인의 아름다운 시는 가려 보는 시일 수밖에 없고 가려 듣는 음악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도 잘난 것 없고 하나도 올바를 것이 없는 시정잡배 소시민인 제가 어찌 미당을 폄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내 올바르지 못함이 있다하여 큰 비겁을 아니 뭐라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미당의 작품을 없애자는 것도 아니요, 미당의 삶을 부정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에게 죽어서까지 문학상의 이름으로 새로운 문학 기득권층의 곡절과 패거리주의, 야합의 분위기만은 일정 부분 일소해야 한다고 봅니다.
일찍이 명천 이문구 선생께서는, 자신이 죽거들랑, 자신의 이름으로 문학비도 문학상도 일체 만들지 말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왜 미당은 그런 말씀조차 없었을까요. 우리가, 아니 소시민인 제가 더 원하는 말은 명천 선생한테서가 아니라 미당 선생한테서인데, 어찌하여 그분은 그런 말씀도 없이 그렇게 떠나셨을까요. 너무 미안하셔서 후학들이 당연히 그리할 줄 알았는지, 아니면 그렇게 하더라도 그 성의에 감읍하여 그렇게까지 하지 말라고 차마 말할 수 없으셨던지 모르겠습니다.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지만, 하라고도 안했으니, 미당문학상을 깨고, 그 자리에 참된 반성과 발전의 계기가 되는 <친일사죄문학기금>이라도 신설하는 게 어떨까요. 아니, 그렇게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 땅에 태어난 어려움을 그 한 개인의 처신으로 다 책임지우기에는 살았던 시대와 역사의 무게가 힘겨웠지만, 그러나 그런 상황속에서도 문학의 본질인 인간의 존엄성과 참된 삶의 본질에 육박하려는 인간된 몸부림이 문학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 이 땅의 많은 선배 작고 시인들에게, 어리석은 후학, 시쟁이의 부탁은 외면당하지 않고 그래도 가만히 듣고 계실 분이 있으리라 여깁니다.
삼가 무명소졸 소시민인 제가 이 어리석고 가난한 뜻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갈 수 있게 동료 선후배 시인들의 동의를 구합니다.


2006년 2월 23일 변방에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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