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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사입니다

  • 조회수 3,323
  • 작성자 신*은
  • 등록일 2006.03.06
"장애인일수록 '가방끈' 길어야 해요"
[인터뷰] 뇌병변 앓으며 '스바냐 중증장애우협회' 꾸리는 진희정 회장
최육상(run63) 기자


세상에 나와 걸음마도 떼기 전 장애를 입어 걸어본 적이 없다. 그렇게 세상과 담을 쌓고 살다가 27살이 되어서야 세상 속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그 이후 10년간 오직 장애인들을 위해 살고 있다.



▲ 뇌병변을 앓으면서 '스바냐 중증장애우협회'를 꾸려가는 진희정 회장.

ⓒ 최육상
뇌병변(뇌성마비 1급)을 앓고 있는 진희정(37)씨의 인생역정이다. 그녀는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힘겨운 삶에도 '스바냐 중증장애우협회'를 직접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지난 23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진 회장의 집을 찾아 그녀의 삶을 들여다 봤다.

"우리나라 장애인들에게는 인권이 없다"

진 회장은 1살 무렵 장애를 입고 난 후, 떠듬떠듬 말하는 것 말고 남의 도움 없이는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 그런 그녀가 10년 전 비로소 세상과 소통을 시작했다.

"집에만 있는 게 너무 싫어 사회활동을 시작했어요. 여성권익연구소에서 3년 정도 활동을 하다 보니 교육도 그렇고 복지도 그렇고 우리나라 장애인들에게는 인권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직접 장애인을 위해 활동해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녀는 8년 전 어느 복지관에 나가면서 장애인 권익 향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진 회장은 장애인을 모집하고 모임을 결성했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하지만 한계가 금방 드러났다. 장애인을 돌볼 자원봉사자를 안정적으로 모집하지 못하면서 모임을 지속하기가 어려웠던 것.

하지만 진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몸은 물론 손발조차 움직일 수 없었지만 입과 혀를 이용해 여러 곳에 전화를 걸어가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자신의 열정과 싸운 끝에 드디어 결실을 보았다. 경찰관, 택시운전기사, 교사, 대학생, 고등학생 등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며 조금씩 상황이 나아졌다.

공부방 운영해 30명 정도 검정고시 통과시켜



▲ 독학으로 패스한 진 회장의 검정고시 합격증서.

ⓒ 최육상
진 회장은 자신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공부라고 판단, 공부방을 직접 꾸렸다. 이를 위해 대학동아리 5군데에 일일이 연락해 자원봉사자를 확보하고, 자원봉사자들로 하여금 장애인들 집을 방문해 공부를 지도하게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장애인이 10명이면 자원봉사자는 40명 정도가 필요해요. 그런데 적은 인원으로 일일이 찾아다니며 장애인들을 공부시키다 보니 자원봉사자들이 중간 중간 빼먹는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그 바람에 장애인 부모들이 거칠게 항의를 하기도 했죠."

진 회장은 고심 끝에 방법을 바꿨다. 힘들더라도 장애인들을 한 데 모아서 공부를 시켜보자고 결심한 것. 진 회장은 그녀의 집에서 직접 장애인 공부방을 꾸리기로 하고 부천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원봉사자를 모집했다.

"주로 토요일과 일요일에 장애인들을 공부시켰는데 특히 아남반도체 윤대령씨, 원종고 이철호 선생님과 학생들, 소신여객 조성신 사장님 등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셨어요. 여러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30명 정도가 초중고 검정고시를 통과했어요."

진 회장은 장애인 공부방을 여는 가운데 자신도 2002년부터 공부를 시작해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마쳤다. 한편, 그녀는 지난 2003년 12월에 '스바냐 중증장애우협회'를 설립, 경기도청의 공식 인가를 받았다. 장애인의 권익 향상을 위한 진 회장의 끈질긴 집념의 결과였다.

어머니 "협회일 선택했을 때 그만두길 바랐다"



▲ 딸이 협회일을 선택했을 때 그만두길 바랐다는 어머니 전복수씨.

ⓒ 최육상
진 회장과 함께 자리했던 어머니 전복수(62)씨는 "(장애를 입은 딸을) 보는 것만도 안쓰러운데, 스스로 고생길을 선택했을 때는 지쳐서 그만두길 바랐다"고 말했다.

전씨의 말에 따르면 진 회장은 공부방을 꾸리기 위해 안 해 본 일이 없다. 대학생들 데려다가 빙수장사도 하고, 남대문에서 꽃을 사다가 졸업식장에서 팔기도 하고, 1년에 몇 번씩 일일 찻집을 하고, 바자회에 나온 넝마를 두 트럭 얻어다가 판매하는 등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했다고 한다.

전씨는 딸이 어렸을 때 보살피는 것이 참으로 힘들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몇몇 재활원을 빼고는 딸을 받아줄 복지시설이 없었다고 한다. 딸에게 공부를 시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고 더욱이 맏딸이던 진 회장 뒤로 아들 두 명을 낳고부터는 돌볼 여력이 없었다는 것.

딸이 세상 밖으로 나온 뒤 덩달아 전씨의 고생도 더해갔다. 공부방을 열 때면 부족한 살림이나마 점심을 해결해 줘야 했고, 자원봉사자 엄마들한테 일일이 도움을 요청하는 등 진 회장을 뒤에서 보살펴야 했다. 전씨는 처음에 딸이 지쳐서 쓰러질 거라는 생각에 장애인을 위한 활동을 반대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고 한다.



▲ 지난 10년간 장애인들을 위해 활동했던 사진들. 그녀 자신 장애인임에도 누구보다 장애인권익 향상에 앞장섰다.

ⓒ 최육상

진 회장은 27살 성인이 되어 처음 바라본 세상이 "너무도 큰 장벽 같았다"고 말했다. 특히 그녀는 "(자신처럼)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이동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들은 교육받을 권리를 행사조차 못 한다"며 독학이 아니면 공부를 할 수 없는 장애인교육현실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힘들지만 나름의 포부를 밝혔다.

"협회를 꾸리면서 4가지 목표를 세웠어요. 장애인을 위한 문화센터를 설립하고, 장애인 전문교육관이나 학교를 설립하고, 장애인을 위한 가정상담소를 만들 거예요. 나머지 한 가지는 극비리에 추진 중이고요(웃음)."

진 회장은 협회에 중증장애인들이 많이 와 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몸이 자유로운 장애인은 그나마 학교에 갈 수 있지만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은 교육 혜택을 받기가 너무나 힘들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그녀는 조심스럽게 개인적 바람을 털어놨다.

"장애인일수록 가방끈 길어야 돼요"



▲ 진 회장은 오로지 입과 혀로만 전화를 걸기에 침이 들어가서 고장나기 일쑤라고. 몇 달 동안 새로 장만한 휴대폰이 수두룩하다.

ⓒ 최육상
"진짜 장애인을 사랑하고 진심으로 봉사할 수 있는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대학생도 회사원도 좋아요. 순순한 의도라고 해도 학교에서 점수를 채우러 오는 봉사활동은 사절이에요. 또 하나, 장애인들에게 세상을 많이 보여줬으면 해요. 차가 있는 분들이 봉사활동을 하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협회에 물질적인 도움을 주시는 분도 많아졌으면 하고요."

진 회장은 협회의 이름이기도 한 '스바냐'는 '내가 숨겨놓은 보석 같은 존재'라는 뜻의 성경 속 선지자를 말한다며 "장애인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보석 같은 단체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이때까지 꾹 참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혼자서 생활하기도 힘들어 보이는데 협회를 억척스럽게 끌고 가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진 회장은 웃으며, 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장애인일수록 가방끈이 길어야 돼요. 다른 장애인협회 관계자들은 기분 나쁠지 모르지만, 장애인을 앞세워 복지대책을 마련하라고 시위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에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장애인들을 배움의 길로 인도하는 거예요. 배워야 시야가 열리고, 그래야 사회 여러 분야에 진출해 교수도 되고 사장도 되고 정치인도 될 수 있잖아요. 장애인 문제는 장애인이 직접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보기만해도 안쓰럽다"는 어머니와 "장애인은 배워야 한다"며 힘든 일을 마다 않는 딸.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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