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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시민사회 발족식에 참가하여. -조규현

  • 조회수 2,365
  • 작성자 예*과*민*회
  • 등록일 2006.05.19
문화예술 NGO – Art for You

예술과 시민사회 발족식에 참가하여. -조규현

소감 (1)

2006년 5월 17일


미술인들이 주축이 되고 예술 애호가 일반 시민들의 다수가 참가한 “예술과 시민사회 NGO”가 5월 12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 3F 세미나 실에서 정식 발족했다.

필자는 수년간 미술 감상을 삶의 수행의 한 방편으로 삼고 취미삼아 학습해 온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에 출범한 ‘문화예술 NGO’ 발족의 뜻에 공감하고 여기에 참가하였다.

발족 취지문이 간명하게 해명해 놓고 있듯이 지금 우리 사회와 국가전체의 혼미상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분열과 파괴적인 양상으로 달리고 있어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나라가 주저 앉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국민들의 입에서 누구나 모두 가진 자나 가난하게 살아가는 선량한 사람들 할 것 없이 모두가 나라의 앞길을 걱정하고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사회 국가적 합의consensus가 아직도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고 근대화 과정에서 필히 극복해야 할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지극히 비생산적인 논쟁에만 열을 올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국민의 위임을 받고 국가를 올바르게 다스려가야 할 일부 정치인들과 막강한 행정력을 장악하고 있는 일부 안주와 부패에 오염된 관료들의 오도와 사리사욕 화를 초래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우리의 근대사에서 우리가 직접 체험한 망국의 역사의 전 과정을 우리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터이다. 미국의 저명한 문명비평가이며 정치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한 사회의 도덕적 해이와 부패성을 사회 컨센서스의 붕괴로 한 사회나 국가의 미래를 분석 재단하고 있는데, 한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해 가기 위해서 사회적 도덕적 결속-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회 컨센서스가 얼마나 결정적인 요인인가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들은 위기를 피부로 느끼며 이젠 이를 남의 일로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술을 전업으로 하는 작가, 비평가, 미술애호가들,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가장 양심적으로 살아오면서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 그리고 오랜 예술 활동을 통해 국위와 문화를 선양해왔던 미술 원로들을 모시고 이번에 출범한 <문화예술 NGO – 예술과 시민사회>는 이러한 혼탁한 사회적 흐름을 틈타서 투명성과 사회적 합당성을 아랑곳 하지 않고 예술문화정책의 대의명분의 그늘에서 부정을 일삼는 집단이기주의자들 이를 뒤에서 묵인 개인적인 이득을 챙기고 있는 망국적인 문화행정가들을 감시하고 이를 국민의 이름으로 바로 세워가도록 그 올바른 대안을 제시하는 시민의 자발적이며 순수한 결속으로 출범한 것이다.

발기인의 한 사람으로 참가한 필자는 앞으로 이 조직을 제대로 운영해 가며 혼탁한 사회의 소금이 되기 위해서 유념해야 할 몇 가지 전략적 관점을 참고로 말하고자 한다.

1.
NGO는 예술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순수한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십시일반 (十匙一飯 열 술이면 한사람분의 먹을 양식이 된다)의 마음과 정신으로 이루어져 가야 할 사회적 시민운동이다. 이 운동의 힘은 발기인들 뿐 만 아니고 이에 공감하고 동조하며 지원하며 참가하기를 원하는 모든 시민들에게 열려져 있으며 시세말로 표현한다면 보텀 업bottom-up의 모양을 띄운다. 그 원천적인 힘은 한 방울의 물에서부터 출발한다. 물이 갖고 있는 성질에는 양이면서 질이 되고 질이면서 군림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입자이면서도 대해를 이루고 대해는 물줄기를 받아들이면서 그 차이성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물은 거대한 바위를 부수는 힘을 안에 내장하고 있으며 이 우주의 뭇 생명들의 생명력을 지탱해 주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바다만 보고 한 방울의 물의 힘을 외면한데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구문명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아직도 지구권 인류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고 있는 그 힘은 이들이 한 방울의 물의 힘과 잠재력을 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인식한 한 방울의 물의 힘은 곧 한 개인의 가치의 절대성을 정립하였다는 말로 대신할 수 있다. 그들의 개인의 가치인식은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명은 물리적인 힘의 집적이 아니다. 모든 국민들이나 집단 구성원이 어떤 합의에 의해 보호받고 합의에 의해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가면서 창조적 에너지를 발휘해 가도록 해야 문명이란 것이 성립하고 지속해 가는 것이다.

‘0’의 발견은 동양권에서 이뤄졌지만 이를 실수와 융합시켜 무한을 나타내는 현실적 유효의 수로 이용한 문명은 서구문명이다.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문명의 기본으로 삼고 현대문명을 선도하는 미국의 그 폭발적인 에너지의 원천은 한 방울의 물의 발견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서만 문명을 구축할 수 있는 창조력이 잠복해 있다는 것을 발견해 낸 것이다. 구라파의 경직된 신학에 의해 지탱되어 오던 신에 의해 절대적으로 종속되어 오던 인류의 역사의 궤도를 바로 세웠던 중세 르네상스의 인간의 발견은 개인의 실존적 가치의 발견이며 여기서 개인의 ‘자유’가 필연으로 도출되어 나온 것이다.

그들은 대단히 지혜롭게도 한 집단이나 문명이 이 한 방울의 물, 한 실존적 개인의 자유가 놀라운 창조력을 발휘하며 자신들의 국가 사회 더 나아가서는 미국문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킨다는 것을 알고 이를 그들의 헌법 속에 명문으로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통사적 과정을 살펴 보건데 그들의 ‘개인의 자유’가 하늘에서 그냥 떨어져 온 것이 아니라 엄혹한 투쟁을 통해서 이를 쟁취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필자가 ‘예술과 시민사회 발족식’에 참가 하고 이를 지원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필자의 몇 년간의 미국 채류 경험에서 얻은 이러한 현실적인 체험에서 얻은 교훈을 나름대로 소화를 시켜 왔기 때문이다. 미국의 자연공원이나 해변 가에서 목격했던 자원봉사자들의 그 총명한 활동. 선거 때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행사에 모여 도움을 주고 있는 무수한 봉사자들의 열광. 생판 모른 동네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베풀어 주는 시민의식.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상냥한 친절의 인사를 먼저 해 오는 사람들. 자동차가 전혀 다니지 않는 한밤의 십자로에서 신호를 지키는 질서의식이 몸에 밴 사람들. 길에 나타 나서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고 서 있는 무스들을 클락션 소리도 내어 쫓지 않고 끈기 있게 기다리는 차의 행렬. 많은 자연경관들을 순례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훼손시키지 않고 엄격하게 지키고 있는 그들의 슬기로운 자연보호의 엄격함을 목격한다는 것은 부러울 정도이다. 나는 차남이 미국에서 환경경제학을 전공하며 대학 대학원 박사학위 교수직취득에 이른 과정에 참견하면서 그와 시간만 나면 자연경관을 찾아다닌 일을 떠 올리고 있다. 나는 미국의 이라크 개입을 통한 전쟁을 찬성하지 않으며, 그들의 대외정책의 상당한 부분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미국을 여행하면서 체험한 그들의 시민의식은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최근 국제면허증을 얻으려 버스 정류소에서 목적지를 알려고 한 아가씨에게 도움을 청했다가 혼이 난 일이 있었다. 이 아가씨는 내가 말을 걸기 시작하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에게 묻지 마세요.’ 하면서 외면하였다. 내가 화가 난 것은 내가 말을 다 마치지 않았는데 상대가 이런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30대에 이르지 않았던 연령으로 보인 여자였다. 이런 일은 드물지만 현실적으로 일어났던 일이다.

나는 정류소 노변에서 좌판을 차리고 물건을 팔고 있는 40대로 보이는 남자에게 가서 다시 물었었는데 이건 또 웬일인가. 그는 내가 기대했던 이상으로 아주 자상하게 설명을 하면서 목적지로 가는 노선을 가르쳐 주었었다. 내 동료 한 사람으로 미국의 아이비리그의 명문대학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서울공대 물리학 교수로 재직하였던 김재완이란 사람이 나에게 ‘한국의 삶은 지옥과 천국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곳입니다.’ 라고 한 말이 번개 같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의 말을 느지감치 노상에서 확인했던 셈이다. 이러한 인간 반응의 양극화 현상은 부모자식간에도 일어나고 있으며 이웃간에도 일어나고 있다. 나는 이런 일에 크게 상심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어찌 서민들의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겠는가? 나는 구진일이나 기쁜 일이나 가리지 않고 이런 현상을 보더라도 역으로 자신을 추스르는 데 이용하고 크게 상심하지 않는다. 자신의 관념적인 세계 속에 어떤 현실적인 신선한 공기를 주입시키는 일로 받아 드린다. 그러나 앙칼지고 쌀쌀했던 그 아가씨에게 감사할 생각은 없다.

모든 가치의 발견은 현실적인 가혹한 투쟁을 통하지 않고서는 실현할 수 없다는 역사의 살아 있는 교훈을 적당히 얼버무리고 외면하며 빠뜨릴 수 없다.

미술인들이 ‘예술과 시민사회’란 캐치프레이즈를 내 걸고 새로운 NGO운동을 발족시킨 것은 정치적인 행태가 아니고 이를 넘어선 순수한 예술운동의 한 연장선상의 개념으로 인식한다. 총체적이고 귀납적인 관점에서 이 사회의 반문화 예술적 행태들을 감시하고 이를 교정시켜 나간다는 것은 하나의 거대한 캔버스를 앞에 두고 한 방울의 물들이 모여 어떤 꿈을 향해서 공동으로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과 같다. 이러한 관점은 필자로 하여금 대단히 가슴 벅찬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나 자신은 보잘 것 없는 한 사람의 시민이기 때문에 그렇고 나의 조금만한 힘도 이런 순수한 운동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에는 엄청난 힘을 낼 수 있다는 사실도 믿고 있다. 나는 마음속에서부터 좋아야 신이 나고 즐겁게 일을 하는 사람이다. 마냥 소비나 하고 남에 군림하면서 허세나 부리고 안주하는 삶은 죽어가는 삶이란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건데 진정한 창조적 삶은 시세말로 으뜸가는 삶의 방식의 하나일 것이다. 나는 이 사회가 이제 참된 문화의식에서 다시 태어나야 하며 문화를 통해 나라를 부흥시켜 가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필자 역시 한때 굴뚝 사업의 첨병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 경제 부흥의 대열에서 일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미술공부를 통해서 시대와 국가와 역사를 보는 눈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 그 과정에는 창조의 기쁨이 있다.

NGO는 그럼으로 당연히도 그 나타냄의 방식은 초정치적이며 매우 소프트한 것으로 발전해 갈 것이며 그러나 이 사회에 강력한 임팩트를 줄 수 있다고 예상한다.

이번 NGO 발족은 대단히 시의적절한 때에 이루어졌다. 우리들에게는 수평으로 흩어져 있는 힘을 결속시킬 수 있는 대의명분 뿐 만 아니고 현실적인 여러 가지 조건이 성숙되어 있다고 본다.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의식의 수준은 각자가 스스로 이해하고 판단하며 자발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수준이란 걸 의심할 수 없다. 먼저 우리의 순수한 동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선량한 시민들과 예술을 사랑하는 문화인들의 호응을 불려 일으킬 것이고 이를 유효하게 엮어 낼 수 있는 강력한 매체로서 상방향형 교신이 가능한 인터넷의 활용과 이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정치가 언론의 지원사격을 예상할 수 있다. 특히 인터넷이 가지고 있는 정보의 발신과 수신의 자유 자재함은 흩어져 있는 많은 참가자들을 쉽게 리쿠르팅하고 또 편안하게 기여 할 수 있게 할 것이다. 한 사회의 부패의 수준이 기성 기구로써 제대로 작동을 하지 못할 때 NGO의 위력이 그 존재이유를 가지게 되며 우리 사회도 그 정도로는 성숙되어 있다.

필자는 이번 ‘예술과 시민사회 발족식’에서 나타난 열의와 발기인들의 면면에서 느끼는 진지함을 보고 매우 고무되어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필요할 경우 이를 지원하기로 결심하고 있다.


2.
희랍시대에 살았던 디오게네스는 대낮에 등잔불을 켜 들고 시내를 거닐다 이를 이상히 여기던 사람들의 질문에 ‘나는 지혜로운 사람을 찾아다닌다.’ 라고 말한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다. 이 역설적인 발상의 은유는 알렉산더 대왕이 그를 방문하여 내가 무엇을 해 주었으면 좋겠는가 하고 물었을 때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통속에 앉아서 햇볕을 쪼이고 있던 그는 ‘해를 가루지 말라’고 대답하게 한다. 이 대목에서 알렉산더 대왕은 크게 무엇을 깨친다.

필자는 이번에 어려운 발족식을 올린 ‘예술과 시민사회를 위한 NGO’ 의 전략적 사고에 그의 이러한 역 발상을 도입하고 싶다. NGO의 기본정신은 자기를 비우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막강한 권력을 쥐고 목적과 수단을 도착시키며 자신의 눈에 보이는 힘에만 의존하고 있는 대상을 향해 투쟁을 전개해 나가야 하는 NGO운동은 그들이 눈을 뜨고 보되 보지 못하고 있는 힘의 원천을 보고 있어야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주 짧은 스팬으로 밖에 역사를 보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NGO는 아주 긴 호흡으로 자신을 비우며 그들이 눈을 뜨고서도 보지 못하는 힘의 원천을 깊이 통찰하며 이를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힘으로 그것도 견고하게 점진적으로 구축해 가야 할 것이다. 대낮에 등잔불을 켜고 지혜로운 사람을 찾았던 그 기막힌 역설은 알렉산더 대왕으로 하여금 엄청난 쇼크를 안겨 주었고 이 깊은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대왕은 이후 소수정예부대를 이끌고 중동의 전 지역을 석권하게 된다.

중국 공산주의 혁명을 영도하던 모택동은 장개석의 압도적인 군사력에 쫓기면서 대장정으로 나섰는데 결과가 좋아서 ‘대장정’이지 이는 보잘것없는 소수 집단과 빈약한 무장으로 도망을 다닌 행로였었다. 이들이 1만 2천키로의 험악한 산악과 불모지를 거처 도망을 하면서 출발할 때의 10만 명의 군대를 모두 잃어버리고 불과 8천명이 중국 북쪽 서안지방에 당도했을 때 장개석은 기고만장하고 있었다. 중국공산당을 밀착 취재하던 미국 신문기자 에드가 스노는 후에 그의 저서 ‘Red Star in China’의 에필로그에서 중국공산당의 승리와 장개석의 패망을 요약하여 하나의 아포리즘을 남기고 있는데 “장개석은 힘을 과신하여 눈에 보이는 자신의 강력한 힘만 보고 있었는데, 비해 모택동은 눈에 보이지 안했던 새로운 힘의 원천을 보기 시작하여 이 역발상적 전략으로 기적을 일으켰다고” 라고 쓰고 있다.

모택동은 대단한 독서가였으며, 이미 그는 역사의 흐름에서 혁명적 투쟁의 법칙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소련 공산주의가 세계역사상에 처음으로 볼세비키 혁명을 성취했을 때는 노동자 지식인을 주축으로 하여 지금의 페테스부르그에서 전단을 벌리고 전 소련을 장악하였었다.

이때 적군을 총지휘하였던 사람은 도로키였으며 스탈린은 지방장관이란 보잘 것 없는 감투를 쓰고 있었는데 레닌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도로키는 스탈린 일파에게 쫒겨 망명을 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이를 전후하여 그 유명한 테제 ‘일국사회주의 응호론’이 공산주의 역사에서 부상해 간다. 역사가들은 스탈린에 의해 쫓겨 망명한 도로키의 합당성과 천재성(세계공산주의 응호론)을 평가하면서도 그가 패배했던 대목까지 변명하지 않는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이 있다면 역사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이 어디에 있으며 약세의 군대를 가지고 전쟁에 임할 때는 무엇을 보고 있어야 하는가가 대단히 중요한 요소임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모택동은 볼세비키 혁명의 전략의 역을 취했던 지혜로웠던 사람이었다. 그는 중국대륙에 흩어져 장개석 군벌에 의해 심한 멸시와 착취를 당하고 있었던 농민에게 주목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 속에서 중국민중 속에 잠복해 있는 인간의 자존을 전략적 포인트로 삼는다. 공산주의 이론에서는 농민은 지극히 보수적이며 대의명분에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있다. 그러나 모택동은 그 너머 고통을 당하고 있는 농민들의 깊은 심성의 향방을 보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따금 중국을 여행하게 되면 도시의 광장의 중심에 모택동의 거대한 동상이 세워져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대장정의 서사시의 주인공으로 그들의 국민적 자존심의 화신으로 신격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증거다. 그래도 역사를 새로 쓴 위대한 지도자를 숭상한다는 것은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NGO운동은 군대를 가지고 싸우는 전투는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기본 전략은 있게 마련이다. 그 전략의 포인트는 힘의 원천의 향방을 정확히 보고 이를 리쿠르트해 가야 한다는 점에서는 전투의 기본 법칙이 적용된다는 말이다. 사회가 집단이기주의에 의해 사분오열되고 개인주의 사조가 팽팽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우리가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며 높은 감성과 날카로운 지성으로 무장한 예술인들을 상대로 또 이를 주축으로 예술과 시민사회를 위한 NGO운동을 전개하려 할 때 우리 자신(발기인들과 여기에 많은 공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있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대면하는 것이며, 이는 운동을 하면서 단계적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필자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가 귀하게 함께 출범시킨 ‘예술과 시민사회’ NGO의 운동방향을 천착할 것이며 부딪치는 문제들을 풀어 가는데 동참할 것이며 자유스럽게 글을 올릴 것이다. 한 방울의 물이라도 모여야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일념을 가지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