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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의 '一步跨'를 아십니까

  • 조회수 1,648
  • 작성자 노*식
  • 등록일 2006.08.03
(紀行文)

압록강의 ‘一步跨’를 아십니까

노 경 식 (극작가, 서울평양연극제 추진위원장)

우리나라가 중국 러시아와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두만강 압록강 중에서, 지금 현재 북쪽 땅과 가장 가까운 지점은 어디일까? 두만강의 회령과 도문 사이, 반쪽으로 쪼개진 백두산 천지, 그리고 혜산진의 어떤 지점 등등 따지고 짚어보면 여러 군데가 많을 터이다. 그런데 압록강 하류께의 어디쯤엔 중국쪽 땅에서 ‘한 걸음만 훌쩍 건너뛰면‘ 곧바로 북한의 義州郡 지역이 되는 한 지점이 있다. 이름 하여 중국 사람들이 작명한 것으로 아주 그럴 듯하게 붙여준 ’이뿌콰‘(一步跨)라는 데가 바로 그곳이다.
우리 일행 4인이 선양에서 이른 아침을 호텔 뷔페로 마치고 압록강의 국경도시 단둥(丹東)을 향해서 전세 승용차 편으로 출발한 것은 오전 7시 30분경. 우리는 220여 길로미터의 선단(瀋丹) 고속도로를 남으로 달렸다. 흐린 날씨에 하늘의 구름은 금새 비라도 내릴 듯이 낱게 깔리고, 시원하게 달려가는 2차선 고속도로의 속도감과 경쾌함 하며, 차창 양편으로는 옥수수와 푸른 콩밭이 저 지평선 너머까지 끝도 없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것이 여행자의 심사를 편안하고 풍성하게 한다. 선단 고속도로는 달리는 차량들도 없이 한적하기만 해서 우리가 단둥에 닿을 때까지 겨우 자동차 서너 대를 구경한 것이 전부라면 전부이다. 걸핏하면 길이 막히고 정체되기 일쑤인 우리네 경부선과 영동선 등등 고속도로에 비하면, “이런 것이 바로 고속도로 아닌가!” 하고 우리들은 서로 얘기하며 웃었다.

동북3성의 광활한 ‘만주 벌판‘.-- 아무리 사방을 둘러봐야 산은 한 개도 없고 옥수수 콩 조와 수수 밀 등 넓고넓은 푸른 벌판에서 해가 뜨고 해가 진다는, 내 나이 어린 시절에 들었던 옛이야기가 이곳이 초행 길인 나로선 새삼스레 실감나게 다가온다. ’다시 千古의 뒤에/ 白馬 타고 오는 超人이 있어/ 이 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뜬금없이 이육사 시인의 절창 한 구절이 뇌리를 스쳐간다. 일제 관헌에게 체포되어 차가운 베이징 감옥에서 한 많은 40년 생을 마감하게 되는 민족시인 이육사 선생도, 아마 압록강을 건너고 이 길을 따라 선양을 거쳐서 그곳이 당신 死地인 줄도 모른 채 베이징 땅으로 들어갔으리라. 지난 20세기에 포악한 일제의 침탈과 압제 밑에서 여기 만주벌이야말로 우리 한국인의 한숨과 눈물과 고생이 점점이 물들여진 고난의 땅이 아니던가! 항일무장 독립군의 피어린 투쟁도 이 땅에서 일어났었다. 그뿐인가. 그 시절 간악한 일제는 이른바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괴뢰정부 만주국을 세운다.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의 고향 선양(瀋陽)은 ’奉天‘, 지린(吉林)성 성도 長春은 ‘新京’으로 뻔뻔스럽게 이름을 바꿔놓고, “滿洲樂土 건설이다”, “새 세상, 새 천지”가 눈앞에 열렸노라고 침이 마르도록 떠들어댔다. 거짓 선전과 강제동원, 감언이설로써 최신 유행가까지 만들어서 식민지 백성을 허허벌판으로 내몰았던 곳이 바로 여기이다. <福地萬里>(작사 김영수/ 작곡 이재호/ 노래 백년설)- ’달 실은 마차다 해 실은 마차다/ 청대콩 벌판 위에 휘파람을 불며간다/ 저 언덕을 넘어서면 새세상의 문이 있다/ 황색기층 대륙 길에 빨리가자 방울소리 울리며--‘ 가난하고 순박하고 농토를 빼앗긴 우리네 농민들은 수도 없이 이곳으로 넘어왔다. 남부여대 괴나리 봇짐 이고지고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서 산 설고 물 설은 이국의 하늘 아래까지 ----
그런저런 상념 속에 차중에서 우리끼리 담소를 나누다가 通元堡라는 곳에 잠시 들러서 캔커피 한모금으로 휴식하고 나니 어느 새 단둥이 가까워지는가? 저 멀리 봉황산이 신비롭게 눈앞에 들어온다. 흐린 날씨 때문에 봉황산의 산 허리가 흰구름이 싸여 있는 것이 다소곳이 하얀 속치마를 허리에 두른 듯이 신선하고 아름답다. 새색시의 고운 속살이라도 감추려는 듯 뭣이 그리도 부끄럼을 타는고? 그런가 싶더니 어느 새 또 명주 속옷 같은 흰구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뾰쭉뾰쭉 우람하고 장대한 산 모습이 제 얼굴을 내밀고 우리를 반기는 것도 같다. 비로소 우리들은 선양을 출발한 지 2시간 40여 분만에 단둥 시내에 닿은 것이다. 그리하여 시내의 어느 한 곳 역사기념관에 잠시 들렀다가 점심식사는 그 유명하고 한 많은 ‘압록강 철다리’(鐵橋)와 신의주 땅이 빤히 보이는 큰 음식점 安東閣에서 중국식으로 채우고, 압록강 유람선에 올라서는 강안 저쪽의 신의주와 고층건물이 즐비한 단둥쪽을 이리저리 조망하면서 반가운 마음과 착잡한 심사로 반 시간쯤을 보냈다. 유람선과 ‘압록강 공원’에서는 카메라 사진도 몇 컷을 찍고 ---- 그러고 나서 우리 일행은 다시 압록강 따라서 동북 방향으로 3, 40분을 달려서 호산산성에 다다른 것이다. 20대 안팎이 될까말까 한 젊은 중국인 운전기사 말로는 단둥서 호산까지는 30킬로쯤 된다는 것. 그러니까 우리가 호산장성에 도착한 것은 대략 오후 세 시경.

우리가 찾아간 ‘이뿌콰’(一步跨)는 虎山長城’(景區- 관광지) 안에 있었다. 호산장성은 ‘압록강 국가중점 풍경구’ 가운데 하나인데, 중국 만리장성의 동쪽 끝 출발점(起點)이 이곳이란다. 지금껏 알려진 바로는 하북성의 山海關부터가 아니고, 더 동쪽으로 늘어나서 여기 호산장성이야말로 진짜 그 출발지라는 주장이다. 아직은 이런 주장들이 정설로 굳어진 것은 아니나, 그래서 그런지 이 호산장성 입간판에는 만리장성의 ’東端- 起點’이란 글귀가 또렷하고, 멀리 산성 꼭대기에 있는 성곽의 웅장한 ‘墩臺’ 역시 우리가 종종 만리장성 사진 속에서 보는 바로 그 돈대처럼 눈에 익숙하고 멋들어지고 선명하다.
이 虎山長城의 뒤쪽 바로 산 밑 압록강 물가에 있는, 전체가 겨우 3백여 평이 될까말까 한 빈 공터가 ‘이뿌콰’이다. 압록강을 사이에 둔 中朝邊境(國境) 가운데서 가장 가까운 데가 여기 '이뿌콰'란다. 한문 글씨 ‘一步跨’의 跨는 ‘넘을 과, 사타구니 과’자이니까 ‘사타구니를 벌려 훌쩍 넘어간다’는 뜻이다. “일보과-- 한 걸음, 한 발짝만 건너뛰어라!” 과연 그렇구나. 此岸과 彼岸의 거리는 불과 15, 6여 미터나 될까말까? 손에 닿을 듯 건너편이 곧 ‘북조선’ 땅이다. 지금 당장 여기서 한 발짝을 훌쩍 건너뛰면 내 나라 내 땅인 북한의 '義州郡 방산리'라니 그야말로 지척이 천리로구나! 빈 공터의 이 강 언덕에 서서 북한 땅을 바라다보는 우리네 한국인치고 어찌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통이 콱- 막히고 눈앞이 흐릿흐릿,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있으랴! 드넓고 푸른 압록강이 아니라 한 뼘 남짓 마치 실개천 같은 좁디좁은 도랑물! 그것도 밤새 상류쪽에서 비가 와서 그런지 새까만 흙탕물이 졸졸 졸~ 아니, 진짜로 가깝고 가깝네. 쩌그 너머가 바로 북한이오? 평시에는 돌로 된 징검다리가 놓여 있었는데 오늘따라 불어난 물에 잠겨서 돌이 보이지 않는다고, 동행한 고종원 교수의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작년까지만 해도 이런 선전용 입간판이나 표지돌 같은 것이 전혀 없었는데 많이많이 변했다는 것.
그리고 이 ‘一步跨’ 바위돌 옆에는 또 한 개의 바위돌이 버젓이 서 있다. 붉은 색 글씨로 큼지막하게 새겨진 ’咫尺‘(쯔처)이란 두 글자. 그리고 그 뒷면에는 명나라 태조 朱元璋의 압록강 詩가 한 수.-- ’지척‘이란 여덟 치와 한 자 사이를 이름이니 매우 가까운 거리란 뜻 아닌가. 그래애, 지척이 千里이고 指呼之間이라더니-- 맞네, 맞아. 참말로 지척이구만, 잉! 우리 한국 사람들의 정감을 충분히 자극하고도 남는다. 또 한 차례 가슴이 뭉클하고 애잔한 심정이다. 그건 그렇다치고 이와 같이 ’咫尺입네‘, ’한 발짝을 훌쩍--‘ 어쩌고 하면서 이름 붙여 놓고는 한국인 관광객 유치와 돈벌이에 나선 중국인들의 속내란 것이, 또 한편으로는 너무 영악하고 철두철미 장삿속이나 아닌지 얄밉기도 하고 서글프고 야속타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 ‘一步跨’를 자상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우리네 시골 동네의 어느 냇가에 서 보면 그 얕으막한 제방에는 가늘고 길게 늘어진 수양버들이 몇 그루 서 있고, 또한 옥수수와 콩 고추 따위의 채소밭에다가 여기저기 무성한 잡초들, 그러고 호박 넝쿨이 헝클어져 있는 밭뙈기 옆의 작은 공터라면 틀림없겠다. 관광지 치고는 허술하고 조악하기 이를 데 없다. 그곳에는 여느 나루터의 원두막 같은 정자 하나가 지어져 있고, 담배와 사탕을 파는 손바닥만한 노점상 하나, 한문 글자가 깊게 새겨진 1미터가 넘는 ‘一步跨’와 ‘咫尺’의 큰 바위돌 두 개, 맞은쪽 북한 땅을 조망할 수 있는 허름한 망원경 한 대, 그리고 빈 공터에서 경칫돌로 층층이 쌓아 놓은 20여 계단을 밟고 내려가면 좁디좁은 압록강 물이며, “虎山景區-- 유람선 노선도”의 입간판이 덩그렇게 높이 서 있는 것이 전부이다. 그 입간판 아래쪽에는 우리나라 한글도 친절하게(?) 적혀 있다. “경구여행 목선박을 타고 중조양안 풍광구를 관광한다.” 중국과 조선의 압록강 연안을 목선 타고 유람하라는 의미. 목선이라고 해봐야 마치 요트처럼 길쭉하고 열 사람도 채 올라탈 수 없는 통통 통~ 발동선 엔진이 달린 쪽배 두 척이 고작이다. 가는 곳마다 돈타령이다. 호산장성 입구의 입장료가 50위앤, 망원경 한번 들여다보는 데 2위앤, 샛노란 구명조끼를 윗몸에 걸치고 쪽배 타고 수초 우거진 좁은 수로를 따라서 한 바퀴 도는 데도 1인당 20위앤 등등- 허나 기념 삼아서라도 통통선 한번 아니탈 수도 없겠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오늘이 7월달 14일 금요일이다.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 함뿍 적셔도 좋으련’ -- 하고 이육사 시인이 노래했듯이, 나도 이 도랑물같이 좁은 압록강 물을 신발 신은 채로 텀벙텀벙 바짓가랭이 함뿍 적시며 훌쩍 한번 넘어가 봐도 좋으련만! 그날 그때는 또 언제쯤일까? ----

우리들 일행이 호산장성을 뒤로 하고 떠난 것은 오후 5시경. 우리는 선단 고속도로를 타고 다시 귀로에 올랐다. 그동안은 참고 기다줬다는 듯이, 폭우처럼 소낙비 한 줄기가 세차게 도로를 적시고 차창을 때린다. 그야말로 상쾌하고 시원한 빗줄기! 조금 전에 우리가 가졌던 시름과 상념을 모조리 다 씻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갈 때처럼 통원보에서 한 번 쉬었다가, 우리 일행이 선양시의 화려한 번화가 西塔거리에 있는 <현풍 할매곰탕> 집에 당도한 것은 대략 밤 9시가 가까워서였다. 우리네식으로 “할매곰탕”과 “소주 한잔”을 곁들여서 저녁식사를 위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