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식

Arts Council Korea
아르코의 활동을 공유해드립니다.

자유게시판

  • 이 곳에 게재된 각종 의견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별도의 답변을 하지 않습니다.
  • 고객님의 개인정보 노출을 막기 위하여 개인정보는 기록하지 않도록 주의하여 주십시오.
  • 우리 위원회의 운영이나 문예진흥기금 사업추진과 관련된 정책 사항이나 건의, 질의 사항에 대해 답변을 원하시면 정책제안 질의, 민원사무처리를 원하시면 사이버민원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 상업적광고, 저속한 표현, 사람, 단체를 비방할 목적으로 공연히 사실/허위사실을 적시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등 홈페이지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게시물은 관리자에 의해 통지없이 삭제 (근거:예술위 정보화 업무규정 34조 2항)와 함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법률 제 61조’에 의거 처벌을 의뢰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타인의 정보 및 주민등록번호를 부정하게 사용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 집니다.

꼬리를 무는 거짓말 속 진실게임 러닝머신

  • 조회수 1,283
  • 작성자 예*아*
  • 등록일 2006.10.03
꼬리를 무는 거짓말 속 진실게임, 연극 <러닝머신>

‘거짓말’속에서 살아가는 네 사람의 ‘진실한’이야기.

■ 기획의도

뻔한 이야기, 그러나 뻔하지 않은 연극!

<러닝머신>은 ‘왜 연극은 항상 극 행동과 치열한 갈등이 전경화 된 극적 사건을 다루어야 할까? 그냥 뻔한 이야기를 하면 안 되나?’ 하는 생각에서 출발된다.

사실 우리네 일상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우리는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지 않은가? 삶의 외연보다는 그 일상성, 지루한 반복성 속에 감춰진 것들을 들춰보는 것, 오정희의 소설이나 홍상수의 영화처럼, 연극 <러닝머신>도 무표정한 일상의 얼굴 뒤에 감춰진 우리의 일그러진 맨 얼굴을 드러내 보여준다.

결국 흔해빠진 사랑이야기, 그러나 우리 삶의 솔직한 풍경!

'관계’, ‘사랑’, ‘상처’. 흔한 멜로드라마의 모티프들.

그러나 유치하거나 흔해빠진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바로 우리 삶의 솔직한 풍경이 아니던가. “사는 게 뭐 별거냐, 그냥 사는 거지” 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 여전히 줄줄 흐르고 있는 눈물. 어느 누구도 “울지 마”라고 결코 말할 수 없다. 똑같은 이유로 우리도 울고 있지 않은가. 그래, 그럼 우리 그냥 바라봐 주자… 그게 차라리 위안이 된다.

무거움은 가라! 슬픔을 비틀어 웃음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 <러닝머신>은 결코 무겁지 않다. 진지함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우리의 삶이 그다지 무겁거나 진지하지 않은 것처럼. 그래서인지 절망과 슬픔이 목까지 차오르는 바로 그 순간… ‘아! 도대체 왜 이럴까’ …저 아래 어딘가에서 자꾸만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당신이 만약 <러닝머신>을 보고 저도 모르게 웃고 있다면, 바로 그 순간을 주목하라. 당신 자신의 절망이나 슬픔과 조우하는 순간일 터이니……

■ 시놉시스

정희는 엄마의 이름을 빌어 B급 시나리오와 삼류 대중소설을 쓰는 작가이다. 그 엄마 구숙자는 다이어트와 홈쇼핑에 중독되어 있고, 최근에는 러닝머신에 푹 빠져있다. 정희가 무표정한 얼굴로 에로 비디오를 볼 때, 숙자는 숨을 헐떡거리며 러닝머신을 탄다. 모녀의 평화롭고도 안전한 일상 풍경이다.

쇼핑호스트 유리와 그의 백수 남편 무영은 결혼 전 무영이 거주하던 아파트로 5년 만에 이사해 들어온다. 유리가 꿈에 그리던 새 집, 그들만의 ‘스위트 홈’이 완성될 때까지만 머물기로 하고.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아파트 단지에 5년 전에 말없이 떠나버린 무영의 옛사랑 정희가 살고 있다. 그녀는 아직도 무영의 아파트 열쇠를 가지고 있다. 지금이라도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다.

정희와 무영이 아파트 앞에서 우연처럼 마주치고, 이들 네 인물의 일상에 균열이 일어난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환청처럼 들리는 러닝머신 소리와, 광기를 드러내며 진행되는 화투와 카드 게임은 인물들의 내면에 감추어진 사랑과 욕망, 상처와 회한의 정서를 노출시키고, 결국엔 모든 인물들을 선택의 순간으로 몰아넣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묘하게 얽혀있는 인물들의 관계와 베일에 싸여있던 비밀이 하나씩 무대 위에 드러나게 되는데……진실과 거짓이 모자이크 된 일상 속에서 그들, 잘 달릴 수 있을까?

■ 인물 소개

구숙자 (정희엄마, 홈쇼핑 중독) 여기…아무도 없어요? 다 간거야?

-60대에도 벚꽃이 눈발처럼 날리는 들판을 맨발로 달리고 싶은 여자, 쉼 없이 다이어트를 계속하며 그녀가 모른 척 시침 뚝 떼고 있는 것은?

정희 (무영의 옛 여자, B급 시나리오 작가) 살려고 죽는거야. 다이!

-집을 떠나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정작 그녀가 떠나야 하는 집은... 엄마.

허유리 (무영의 아내, 쇼핑 호스트) 그래 우리 죽을 때까지 한 번 가 보자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50%는 거짓, 하지만 50%는 명백한 진실이라는 것!
이제 그녀는 두 남녀의 가슴 속에 남겨진 흔적을 부숴야 한다.

무영 (유리의 남편, 무직)그게 어때서? 그래도 반은 진실인데. 그렇게 사는 거 싫지 않다.

-취미처럼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는 무영.
정희를 마음에 담고 유리와 살아가기.
아무 말 없이 떠나 버린 사랑보다 거짓말 해주며 곁에 있는 네가 고맙다.
그런데 왜 자꾸 뒤돌아보게 되지?

■ 작품 소개

거짓말은 일상적이다.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때로는 습관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또 묵인한다. 때때로 거짓말은 진실이기도 한다. 상처받기 싫은 소심한 마음, 관계를 끊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출발한 배려가 때로는 거짓말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거짓말로 이루어진 관계 속에서 위태롭게 살아간다. 그래서 거짓말은 궁금하다. 도대체 왜 진실을 말하지 않는지...자꾸만 들통 날 거짓말을 왜 자꾸 하는지... 그 속내가 자못 궁금하다. 연극 <러닝머신>은 ‘거짓말’ 속에서 살아가는, 네 사람의 ‘진실한’ 이야기이다.

허위적인 시공간의 기계, “러닝머신”

'러닝머신'은 그 속도의 균질성, 행위의 반복성, 수치의 정확성을 특징으로 한다. 이것은 작품 속에서 반복적인 시간 속에서 지루하게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 흘러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흘러왔다고 믿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정신적인 풍경을 그려내는 상징적인 오브제로 기능한다.

이 연극에서 러닝머신의 수평적 공간의 이동성은 암벽등반의 수직적 공간의 이동성과 의미론적으로 대조를 이루면서 각 인물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암시해준다.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지워지지 않는 기억. 그것은 인물들을 끊임없이 반복되는 무시간적 공간 속에 박제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허위적 시공간의 기계-러닝머신의 전원을 켜게 한다. 관성처럼 같은 자리를 맴도는 러닝머신 위의 인물들은 안전하지만 지루하고, 함께 살지만 외로운 삶을 살아간다.

러닝머신은 저절로 팬-벨트를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누구도 전원을 끄지 못한다. 러닝머신의 시간과 공간에 이미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영과 정희는 암벽등반을 하지 못하고 언제나 다른 공간에서 서성이게 되며, 숙자는 곧 반품될 상품을 반복적으로 주문하는 것이고, 유리는 자꾸만 임신을 가장하며 그때마다 무영은 낙태를 권유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질기게 반복되는 것은 네 인물의 관계의 끈이다. 이들은 고통스럽게 연결된 관계의 끈을 끊어버리고 자신들이 타고 있던 ‘러닝머신’에서 내려오려고 하지만, 결말에서처럼 오히려 그 러닝머신을 끌어안고 살아가게 된다.

운명과의 게임, “화투와 카드”

한번 시작하면 ‘개 끌려가듯이 끌려가야 하는’ 화투. 패를 보고 중도에 ‘다이!’ 할 수 있는 카드. 그러나 결국 주어진 ‘패’를 바꿀 수 없다는 점에서 이 두 게임은 유사하다. 이 극에서 인물에게 주어진 ‘패’는 운명, 관계, 지울 수 없는 상처, 사랑 등을 함축한다.

화투와 카드와 같은 게임에 몰입할 때, 우리는 현실의 시공간과는 다른 시공간을 체험한다. 패가 새롭게 돌려지는 순간 새로운 삶, 혹은 ‘판’이 깔리는데, 이때 게임의 승부에 따라 인물들은 승리감이나 패배감, 환희와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긴 인생의 굴곡마다 느껴왔던 다양한 종류의 감정들을 바로 이 게임의 시간동안 압축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화투와 카드게임은 이성과 논리가 아닌, 감정과 본능에 의해 지배되는 시공간을 열어준다. 이와 관련하여, 연극 속의 화투와 카드게임 장면은 각 인물들의 현상적 관계뿐 아니라 심리적 관계를 보여주는 기능을 하게 된다. 즉 화투가 인물들의 숨겨진 관계와 기억을 불러오는 기능을 한다면, 카드는 그로 인한 현재의 내면적 상처와 욕망을 노출시키는 기능을 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 두 게임은 울고 있는 모든 인물의 내면풍경을 들여다보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