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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 조회수 1,238
  • 작성자 무*평*가*송*건*
  • 등록일 2006.10.14
Name 무용평론가 송종건
Subject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Homepage http://dancecritic.com.ne.kr

<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

지난 2월 올림픽 공원 역도 경기장에서 비보이들의 경연을 본 다음, 평자는 비보이 움직임은 무용의 중요한 재료중 하나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리고 비보이들이 스스로 ‘막춤’ 혹은 ‘길거리 춤’이라고 일컫는 이 움직임들을 순수 무용예술 부문에서도 관심 깊게 보고 있어야 한다고 썼다.

하지만 이런 ‘길거리 춤’들이 무대 공연으로 올라갔을 때에는 작품에 뭔가 메시지가 담겨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안무가의 사상이든지, 철학이든지, 스토리든지, 뉘앙스든지, 느낌이든지, 객석과 함께 교류할 수 있는 어떤 메시지를 가져야 된다는 것이다.

단순한 기교의 나열은 서커스나 장기자랑 밖에 되지 않는다. 지난 8월 1일 평자는 서교동 비보이 극장에서 <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 공연을 보았다. 올림픽 역도경기장에서의 비보이 경연을 보고 난 후 꼭 한번 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바쁜 일정 때문에 약 6개월 후에야 공연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비보이 움직임을 무용예술의 중요한 하나의 요소로 보고 공연장을 찾은 평자를 당혹스럽게 한 것은, 팸플릿에서 이 공연에 출연하는 출연자들을 ‘무용수’라 하지 않고 ‘배우’라 해두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공연을 ‘무용공연’이라고 하지 않고 ‘넌버블퍼포먼스’라고 해두고 있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대로 많은 관객들이 입장한 가운데 막이 열리고 미국 흑인들이 다양한 형태의 길거리 무용을 이루는 영상이 나타난다. 발레리나들이 연습실에서 연습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너무 묘기 위주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클래식발레라는 순수예술을 상업적으로 파는 것이 된다.

다시 서울야경의 영상이 나오는데, 작품의 스토리를 무용수들이 만드는 움직임이나 이미지, 뉘앙스 등으로 이끌어나가지 못하고, 설명적인 영상의 힘에 의존하게 되면 작품의 예술적 에너지는 붕괴될 수 있다. 비보이들의 유연하고, 힘차며, 에너지 넘치는 움직임이 이어진다.

양복 입은 사람이 전화를 받고 약속시간을 정하는 내용이 삽입되는데 유치한 느낌이 있다. 발레리나가 알레그로 동작을 빠르게 만들고 있고, 비보이 한명이 관심을 보인다. 발레리나를 질투하는 비걸(B-girl)의 움직임도 나타나고, 발레리나에게 어필하려는 비보이의 움직임이 이어진다.

비보이가 하트모양의 풍선을 발레리나에게 주자(작품의 내용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우선 이 작품은 공연 제목부터 잘못된 것 같다. 즉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가 아니고 ‘발레리나를 사랑한 비보이’의 스토리다), 비걸들이 다시 흥분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비걸 3명이 육감적인 움직임을 이루는데, 왜 갑자기 이 장면이 삽입되어야 하는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무용 움직임도 이왕 이런 감성적인 움직임을 삽입 했다면, 더욱 프로의 끈적끈적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발레리나가 혼란에 빠진다는 장면에서도, 출연자들의 상징되고 은유화 된 움직임의 연기나 자태보다는 과다한 음향이나 직접적인 동작으로만 처리되고 있었는데, 이는 무대예술로서의 공연의 완성도를 지극히 떨어뜨리게 된다. 위험에 빠진 발레리나를 비보이가 구하기도 하는데 스토리의 설득력이 약하다.

계속해서 비보이들의 힘찬 베틀이 이루어진 다음, 발레리나를 중앙에 두고 모두 함께 이루는 피날레는 무대와 객석 전체에 감동적인 전율을 던지기도 했다. “남녀노소들이 공통적으로 즐길 수 있는 춤을 재료로 스토리가 있는 무언극을 만든다”고 한 이번 공연은 ‘공연예술’로서는 적지 않은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다시 한번 이야기 하지만 스토리가 있는 무대예술로서의 ‘공연’에는 객석과 교감할 수 있는 느낌이나 감동이 담겨져 있어야한다. 무대위의 표현예술로서의 공연은 묘기대행진이나 에어로빅 같은 것과는 다르다. ‘발레리나를 사랑한 비보이’든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든 공연에 스토리를 담으려면, 작품에 예술적 문맥(context)이 살아있어야 한다.

사실 평자는 지난 2월 올림픽 역도경기장에서 순수하고 싱그러운 비보이 움직임을 처음 대면하고, 그 움직임과 묘기에 매료되었다. 따라서 대단히 큰 기대를 가지고 이번 공연을 보았다. 하지만 이번 공연이 주는 느낌은 비보이들이 베틀에 집중하는 모습 그 자체가 주는 감동보다 떨어졌다.

한마디로 작품에 정교하고 섬세한, 그리고 작품을 긴 호흡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안무’가 실종되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은 그 자체가 그만큼 앞으로 비보이무용의 공연예술로서의 발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말하는 것도 될 수 있다.

단지 ‘공연예술’의 미학적 예술적 개념을 확실히 하고, 그 개념을 무대 위에서 비보이 움직임과 이미지들로 구체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끝없이 경주해 나가야할 것이다(송종건/무용평론가/dancecritic.com.n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