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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립중앙발레단 홍등“(국립극장29일 )의 기대

  • 조회수 2,333
  • 작성자 이*만
  • 등록일 2008.10.31
lee 발레-단장, 이 상 만


중국 국립중앙발레단 홍등“(국립극장29일 )

80년 중반 뉴욕 brooklyn academy of music에서 처음 본 the central ballet of china가 오늘에 the national ballet company of china 이였다는 것을 영문 앞글 귀에 중국 중앙발레단“이라 같은 발레단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그때 내가보았던 작품은 백조의 호수 그리고 홍등”에 가까운 발레극 설“(새해)라는 창작발레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유명한 장이모우 감독이기에 안무자는 이번 홍등에서 그렇게 대중에게 보여 지지 않았던 점도 있었다. 외국에서야 그럴 리 없지만 발레를 만든 안무자가 먼저야 할 실존 인물인데 비해서-
하지만 내 경우는 내가 안무를 하는 자 로서 춤을 추는 자 로서 왕신평 안무자의 이름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혹시나 나처럼 오랫동안 춤을 추고 있는 단원이야 있을 리 없지만 혹시나 프로그램 중에 아직까지도 일을 하고 있는 staff는 있을까하여 프로그램을 사려했는데 staff엔 장이모우 감독 소개 일뿐 안무자소개라든가 무용수 소개가 전혀 없어서 좀 실망스러웠다. 프로그램을 보지 않고, 사지 않는 성격이지만 공연을 보고 나갈 무렵 망설이다 오랜만에 내겐 프로그람을 처음으로 구매했던 사연이 있다.

국립극장 창단을계기로 이 무대에서 극장개관 기념으로 국립오페라단의 아이다“에 발레단은 합세하여 춤을 추었고 77년 지금의 국립극장을 뒤로한 채 미국 예술전문학교 유학의길 로 떠났지만 그 후3년이란 national ballet of illinois 직업발레단에서 혹독한 공연으로 인해 부상을 당해 뉴욕으로 옮겨 치료하던 중 중국 발레단을 처음 보았다. 나는 중국 발레단을 지금까지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이유 중 중국발레단이 가지고온 작품은 설”(새해) 이란 작품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한국 국립발레단 시절 한국창작발레 지귀 의 꿈“(74년)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고 클래식에만 매달려있던 시기였었다. 우리가 해 왔던 것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도 있지만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것에서 우리의 것을 느꼈기 때문 이다. 과연 내가 앞으로 해야 할 것은 바로 내 문화를 다시 알게 해준 발레단 이였다. 그 후 나의 안무는 85년부터 70%동양적 창작발레에 매달린 셈이 된 것 같다,

“중앙국립발레단 을 볼 때 테크닉으로 따지면 그때의 무용수들은 남자들이 열 바퀴씩 돌고 여성무용수들의 능수버들처럼 늘어진 키와 팔들의 폴드브라는 내가 동경했던 서양무용수들에 대한 마음이 싹 사라질 정도 이었다. 그땐 지금의 발전한 한국의 국립발레단정도의 수준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또 다른 중국 중앙발레단을 볼 수가 있었던 점은 테크닉이야 사람이 뛰어봤자 날개가 없는 이상 나를 수는 없는 것, 처음 본 그 시절의 느낌 이라서 인지 테크닉 면으로는 그때보다 너무 떨어져있다는 생각은 아마도 세월이 지남에 발레테크닉도 사람의 신체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그 시대야 바리쉬니코프가 날아다니는 시절에 기가 막혀 가난한 무용수들은 식당 웨이터, 웨이트리스를 밤에 하면서 낮에는 몇 클래스씩을 하며 바리쉬니” 마카로바“의 꿈을 이여 받으려 빵 한 조각을 식당에서 싸가지고 그 이튼 날 점심으로 때우던 시절 이였으니까- 하지만 이번공연에서 결코 그때에 보았던 또 다른 느낌은 그들은 고전을 떠나 여러 방면의 테크닉을 쌓았었던 결실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안무자가 만들 수 있는 테크닉을 떠나 무용수가 그것을 소화 할 수 있는 능력(신체적 테크닉을 떠난 내적인 움직임의 감수성)의 탁월함을 보여주었다. 클래식에 주인공의 탁월한 바리에이션이나 개인 테크닉으로 인하여 관객에게 보여 지는 흥분보다도 두드러짐이 없이도 작품을 매끄럽게 이어 갈수 있는 안무와 작품을 그만큼 무용수가 예술적으로 끌고 나갈 수 있는 기량과 능력을 관객에게 보여주었다.

- 이야기는 봉건 영주의 두아내외에 세 번째 아내를 맞이하면서 그의 애인으로 인해 다른 부인 인 둘째의 질투로 인해 결국 파멸하게 되는 내용이다.

#홍등이 열려있는 무대에서 또 다른 막이 열리는 가 했는데 그대로 한사람이 홍등을 하나씩 밝혀감으로 자연스레 막 아닌 막이 열림과 동시 홍등의 행렬과 영주의 가족과의 행렬은 중국의 가냘픈 음악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고 볼 수 있다.
셋째부인 의 첫 등장에서 예리한 움직임의 가늘고 얇지만 강한 발목과 팔은 갖고 싶을 정도의 섹시함과 영리한 움직임으로 처음부터 느낌이 와 닿았다. 강요에 의해 셋째부인 인 영주의 새색시로 등장하는 춤과 의상은 3막에서와는 달리 무릎 위를 가린 의상 이였기에 3막을 미리 보지 않은 이상 그녀의 움직임에 황홀하기만 했다, 또한 의상이 녹색의 첫째부인과 노란색의 둘째부인인 듯싶은 의상만으로도 확인되어진 색상은 이해력이 빨랐다, 아마도 한국에서의 한국안무자가 그런 색상을 썼다면 촌스럽다느니 하는 말들이 나올 수가 있겠구나싶은 생각은 발레를 보는 관객들이나 평을 하는 분들의 사고방식은 발레하면 우선 클래식을 많이 보아 왔음으로 파스텔을 많이 눈에 익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작품에서의 장점은 바로 이러한 색상의 이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모두가 그랬듯이 극적부분이나 움직임의 안무는 좋았지만 군무진에서의 안무는 너무도 클래식한 기법에 순응해버린 것 같다. 꼭 클래식발레처럼 앞, 옆, 줄을 만들어 마스게임처럼 번번이 만든 것은 5-60년대 클래식에서나 볼 수 있는 이 작품에 옥에 티“ 라 할 수 있다.
첫째부인과 둘째부인의 극적인 부분은 어색한 안무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셋째부인으로 인한 질투의 짧은 움직임으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마무리됨은 극적인 안무자의 또 하나의 개성일 것이다. 무용극이고 동양적 이미지를 살릴 수 있는 경극은 오히려 지루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도 춤 자체보다도 스토리에 몰입 할 수 있는 연출안무였다.
스토리 라인으로 인해 시원한 춤이 없었긴 했지만 흔히 학생부대나 끌고 다니는 우리나라 무용경연 같은 공연과는 점프만 하드라도 괴성을 지르는 고등학생들의 공연장은 우리에겐 많은 귀감이 되는 무대라 할 수 있다.

마작이 끝날 무렵 셋째부인은 경극배우인 애인을 만나면서부터 비극의 발단은 시작된다. 이를 고해 받친 둘째부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받지 못하는 둘째부인은 점점 미쳐가고 있었다. 여기에서 두 사랑의 이야기가 시원하게 숨통을 터트려 주었으면 했는데 앞의 안무방식대로 무난히 특이한 2인무였으나 앞에서의 주체성과 흡사하기에 숨어서하는 짜릿함 이라든가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의 감정으로 인한 2인무가 부족함을 느낀다.

둘째부인 으로 인한,3인무는 매우 단조로우면서도 시간적으로는 매우 지루 할 수 있었음에도 오히려 섬세한 감정으로 인한 음악의 강렬한 스타카토“나 무음을 이용한 템포는 애절함을 더욱 북돋아주었다.
3명의 감옥에서의 철장 속 그림자는 너무 작아서 무서운 감옥분위기는 특별히 살아나지 않았다. 무용수들이 모두 누워 있는 자체 역시 차라리 누군가가 한사람이라도 움직인다면 미쳐있는 둘째라든지 아님 두 사람의 못 다한 사랑의 표현 이라든가 -지쳐있는 상태이고 감옥이라지만 혼자였다면 몰라도 굵직한 창살조명과 한사람의 몸이 꽉 차일 듯이 작은 창문의 공간의 조명은 그로인해 강아지 집 같은 자연스럽지 않은 답답함 을 준다.

남성들의 짧은 군무는 그래도 간략하면서도 시대적 안무 차이에서인진 몰라도 러시아의 작품 스파르타쿠스“의 단순한 움직임 보다는 파워풀 하며 날렵한 테크닉이 비록 마스게임 같은 나열 빼고는 이 부분 에서는 군무가 좀 돋보였다 할 수 있다. 마지막의 3인무 중 셋째부인의 의상- 핑크는 아름답고 주제에 맞기도 했지만 무릎을 보이기 위한 밝은 색상에 1부만큼의 아름다운 다리의 윗부분의 선 이 보여 지질 않았다. 그로인해 둘째부인이 오히려 안무로서는 강조되지 않았지만 흰 옷으로 인해 우아함까지 보여줌으로 삼각관계의 분위기는 조금 떨어진 편이라 볼 수 있다.

아쉬움이라면 3막에서의 클라이막스가 좀 약했다고 볼 수 있다. 웅장한 군무 내지는 발레나 오페라에서 나오는 마농“ 에서의 마지막2인의 죽음으로 넘어서는 숨 막히는 연출이라든가 3인무라도 강했다면 하는 아쉬움이다.
발레를 통한 현대와 민속이 어우러진 또 다른 장르이기에 쉽게 보는 사람으로 하여 편안히 시각적으로 볼거리가 많겠지만 실상 여러 장르를 알아서 할 수 있는 안무자가 드물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안무자가 알아서 도움을 청하는 것과 잘못하면 몰라서 시키는 경우의 차이는 작품의 성공률이 달라 질수 있다고 볼 수 도 있다. 3명의 인물을 앞에 놓고 한사람씩 지나가며 몽둥이로 흰 스크린의 벽을 쳐서 핏자국을 내는 소리는 흔히 현대무용 에서나 볼 수 있는 안무라 볼 수 있지만 여기에서의 이런 안무법은 무척 시도적인 과감한 창의 행위 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인 관객이기에 그의 창의력을 살수가 있는 것이다.
봉건 영주의 일가는 철저히 무너지고 세 사람의 죽음위에 흰 눈이 내리며 그 위를 싸여가는 비애의 길목에 여전히 홍등의 행렬은 비열하듯 시체 뒤를 어둠속으로 지나간다.

오랜 전통을 중요시하며 묵묵히 쌓아가는 중국발레단의 결실은 세계 발레사에 또 하나의 장르를 탄생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그들만이 형성하여 하루아침에 만들어낸 신데렐라의 꿈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분명 우리는 누군가가 그들이 일구어낸 꿈을 하루아침에 일구려하는 모방 예술가들이 분명 탄생할 것 이다. 그것은 우리가 백조의 호수를 외국인에게 전수하여 서양발레를 발전시켰듯이 이것은 아무리 모방하여도 중국발레이며 더 이상의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임은 사실이다. 우리는 중국보다 더 낳은 우리의 색깔을 한국의 무용가들은 탄생 시켜야 할 것이다. 60여명이 넘는 발레오케스트라를 자랑도 할 만하지만 서양의 발레를 통하여 중국의 전통악기를 다루어 극적인 주제를 이끌어가며 이로 인하여 동양적 중심을 잃지 않고 있다. 가장 핵심은 음악과 의상과 신선한 중국적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책장 속 깊숙이 숨겨있는 25년이 지난 brooklyn academy of music에서 처음 본 the central ballet of china의 프로그램을 간만에 찾으면서 소중했던 그날을 기억하며 우리도 우리의 것이 언젠가는 있을 거라고 굳게 믿는다. 보이지 않지만 그 누군가가 그러한 일들을 오랫동안 창작하며 살아가고 있는 예술가들이 있는 이상 모방이 아닌 우리의 문화가치가 있는 작품이 안무가들에 의해 탄생하길 바랄뿐이다. 미국의 발레 george balanchine 은 디아길레프의 영역을 떠나 1933년 미국의 링컨 컨스타인“ 의 초청으로 미국에 거주하여 그의 도움으로 s,a,b.에 속해있는 new york city ballet의 창시자 가 됨과 네오 클래식발레 의 또 다른 발레의장을 탄생시켰다. 서양의 문화를 또 다른 중국의 새 문화로 자리매김 해가고 있는 것은 더 나아가 발레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남긴 셈이다.

중국의 중앙 국립발레단은 1954년에 창설된 발레단이지만 한국의 발레역사 역시 한국무용단과 발레단을 통합하여 국립무용단“ 이라고 불리웠고 준비과정은 중앙국립발레단과 비슷했지만 한국의 국립발레단은 70년대 초 부터 확실한 발레단으로 독립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을 주관하여 중앙국립발레단을 초청한 국립극장에게 뜻 깊은 공연을 보게 되어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