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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주전자 매만지던 섬섬옥수 느껴지는듯…‘야나기展’

  • 조회수 1,149
  • 작성자 일*미*관
  • 등록일 2006.11.24
《소설가 한수산(60) 씨가 22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문화적 기억-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발견한 조선 그리고 일본’전을 다녀갔다. 우리 민중의 삶과 함께한 공예 전시품에 깊이 매료된 한 씨가 전시회 관람기를 보내 왔다. 전시는 2007년 1월 28일까지 계속된다(월요일 휴관).
02-2020-2055》

가슴 저리게 아름다운 연적(硯滴)을 만난다. 청화에 패랭이 꽃무늬를 검붉은 철사로 그려 넣었다. 이런 앙증맞은 연적을 옆에 놓고 바라볼 수만 있다면 이제라도 붓글씨를 배우고 싶어진다. 서울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문화적 기억-야나기 무네요시가 발견한 조선 그리고 일본’전에서였다.

사라져 갈 위기에 처한 광화문을 한 생명체로서 예찬한 야나기의 글을 읽던 때 나는 버짐이 듬성듬성한 소년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의 생애가 집약되어 있는 도쿄(東京)의 전시장 ‘민예관’을 찾았을 때였다. 지금도 기억에 선명한 것은 장식을 겸해 건물 주변에 자갈을 깔고 거기 죽 돌아가며 진열해 놓은 우리의 옹기 항아리들이었다. 그 항아리들을 보며, 조선의 것들은 여기 와 이렇게 놓여서도 참으로 당당하구나 감탄했었다. 그 감동을 이번 전시회에서 다시 만난다.

조선 민중의 숨소리가 따스할 정도로 느껴지는 공예품들이 절묘하다. 다완, 연적, 짚바구니, 20cm 안팎의 ‘깨뒤주’까지 있다. 마치 이 물건들을 매만지던 저 옛 분들의 옷자락이 옆에서 스적이고, 숨결이 내 볼에 와 닿는 것 같다. ‘쓰임새와 아름다움’이 물결처럼 펼쳐진다.

단순함의 극치라고나 할까, 생략의 미란 이런 것이로구나 감탄하게 하는 난초무늬의 항아리 ‘청화초화문항아리’도 있다. 어찌 이렇게 단아한가. 귀한 청화를 아끼기 위하여 그 사용을 제한했던 조선시대의 한때, 재료를 아끼자는 마음이 이런 간결함을 뽑아 올렸다니!

그 가운데는 1914년 야나기가 아비코(我孫子)에 살 때, 조선 민예품에 눈을 뜨게 만들었다는 각진 병도 있다. 몇 개의 선으로 그려진 은은한 풀꽃 무늬, 그것을 감싼 백자의 색깔이 세월을 녹여 놓은 것 같다. 나의 개인적인 추억이 또 거기에 얽혀 들어 작품을 떠나는 발길을 잡는다. 이 작품을 만난 것이 야나기가 아비코에 살 때라면, 그곳은 내가 한때 일본에 살았던 바로 옆 마을이 아닌가.

또 다른 놀라움은 우리 전통공예에 이토록 정교하고 품격 있는 석조품(石彫品)이 있었다는 발견이다. 돌로 만든 것이 어찌 이렇게 가볍고도 날렵한가 싶은 ‘석조유주(石彫油注)’. 놋쇠로 된 가느다란 손잡이와 날렵한 몸통. 저 기름주전자를 들었을 조선 여인네의 섬섬옥수는 얼마나 아름다웠을 것인가. 디자인을 공부하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이 용기들을 보았으면 하는 간절함은, 전시품 하나하나가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쥐어짜듯 집약해서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어쩌다가 생활 속에서 이런 아름다움과 품격을 다 잃었는가. 외제 식기, 외국제 헌 가구까지 들여와 팔고 있는 이 세태는 무어란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전시장을 나오니 거리의 간판이 어지럽다. ‘김밥천국’과 ‘스타벅스’ 두 간판이 나란히 서 있다. 저게 우리의 얼굴인가. 전시회가 안겨준 조금 전의 자부심이 한순간 깨어져 나간다.

그날 저녁, 나는 경주 가까운 산 속에 가마를 열고 있는 도예가 윤광조 형에게 편지를 썼다.

“우리 선조들은 참 고아하게 살았구나 감동하면서 오늘 우리의 옛 물건들을 보았습니다. 누군가는 야나기 무네요시를 ‘미학적 아나키스트’라고 했지만, 아름다움에서까지 정부와 국적을 이야기하지는 맙시다. 곧 한번 만나, 야나기가 그 아름다움에 탄식했던 우리의 것을 다시 보면서 우리 함께 탄식하지 않으시렵니까.”

한수산 작가·세종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