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식

Arts Council Korea
아르코의 활동을 공유해드립니다.

자유게시판

  • 이 곳에 게재된 각종 의견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별도의 답변을 하지 않습니다.
  • 고객님의 개인정보 노출을 막기 위하여 개인정보는 기록하지 않도록 주의하여 주십시오.
  • 우리 위원회의 운영이나 문예진흥기금 사업추진과 관련된 정책 사항이나 건의, 질의 사항에 대해 답변을 원하시면 정책제안 질의, 민원사무처리를 원하시면 사이버민원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 상업적광고, 저속한 표현, 사람, 단체를 비방할 목적으로 공연히 사실/허위사실을 적시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등 홈페이지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게시물은 관리자에 의해 통지없이 삭제 (근거:예술위 정보화 업무규정 34조 2항)와 함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법률 제 61조’에 의거 처벌을 의뢰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타인의 정보 및 주민등록번호를 부정하게 사용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 집니다.

갤러리정미소 기획초대전 "김들내 - I Love You"

  • 조회수 1,148
  • 작성자 갤*리*미*
  • 등록일 2006.12.06



■ 전시 개요

□ 제목 : I Love You
□ 작가 : 김들내 Kim Deulnai
□ 일시 : 2006.12.8(금)-12.31(토)
□ 개관시간 : 오전 11시 - 오후 8시, 월요일 휴관
□ 장소 : 갤러리정미소
□ 오프닝 : 2006년 12월 8일 금요일 오후 6시
□ Love Party : 2006년 12월 15일 금요일 저녁 7시
□ 문의 : 갤러리정미소
tel) 02-743-5378 fax) 02-743-5370 www.galleryjungmiso.com
□ e-mail : usdart@empal.com
□ 위치 : 혜화역 2번 출구, 방송통신대학교 뒤편, 월간객석건물 2층
□ 협찬 및 후원 : 월간 객석, 운생동 건축사무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전시 소개

갤러리 정미소에서 12월 8일부터 12월 31일까지 기획초대전인 김들내의 "I Love You"가 열린다. 갤러리 정미소는 개관인 2003년부터 지금껏 다양한 프로젝트와 전시 속에서 작가를 기획하였다. 2006년에는 'New face artists'프로그램 신설, '해외교류전' 추진 등을 비롯하여 연례 프로그램인 '외부기획 프로그램'과 '기획초대전'을 통해 국적과 장르에 상관없이 참신하면서도 실험적인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그리고 2006년 12월 겨울, 기획초대전 작가로 김들내를 선정하였다.




김들내, Love, 캔버스에 혼합재료, 91×117cm, 2006


홍익대학교 판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김들내는 대학 재학시절인 1990년부터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1998년 공간국제 소형판화 비엔날레 '우수상'을 비롯한 다양한 수상 경력과 함께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왔으며 TV광고작업은 물론 발레, 뮤지컬공연 미술감독으로 개성적인 활동을 하였다. 이번 전시는 2003년 개인전 이후 맞는 다섯 번째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에서 김들내는 종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아크릴 페인팅을 선보인다. 그녀가 기존 전시에서 발표한 작품들은 주로 세밀한 동판화 작업으로 꽃, 눈물, 인형, 동화 캐릭터를 모티프로 차용하여 삶에서 수반되는 고독, 우울함, 슬픔과 치유, 기다림과 같은 정서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반면에 이번 전시에서 김들내는 사랑의 전령사로 상징되는 일반적인 요소들을 사용하는데, 밝고 경쾌한 색감에서 부드러운 색감에 이르기까지 모다 보편적인 주제에 다가간다. 그 주제들은 사랑의 다양한 양상과 사랑의 성장, 혹은 진행 과정 등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상황들을 포함한다.
"I Love You"라는 타이틀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작품들은 동그라미, 사탕, 아이스크림, 리본 등의 모티프를 이용한 것으로, 화면 가득 사랑의 상징인 하트 형상을 내포하고 있다. 게다가 관객은 스스로 다양한 보는 즐거움, 즉 작품을 주시하는 원근과 착시를 통해 다양하게 읽어낼 수 있으며, 작품의 의미에 한층 다가갈 수 있다.





김들내, Love, 캔버스에 혼합재료, 91×117cm, 2006


작품 중에서, 의 아이스크림과 사탕은 달콤한 선물이 과유불급으로 인해 사람들의 의도와 감정을 왜곡시킬 수 있음을 설명함과 동시에 그 역시 사랑임을 역설한다. 이러한 강조와 역설은 색맹을 표현한 작품에서도 돌출된다. '색맹' 연작물은 동그라미를 가득 겹쳐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사랑 초기에 일어나는 사건들이 미화되고 부풀려져 흡수되는 신체적(시각적 착시를 포함한) 착각을 상징하고 있는데, 보색과 유사색의 사용은 관람자로 하여금 순간착시를 일으키게 한다. 즉, 사랑할 때 분비되는 호르몬은 신체적 착각을 부르고, 여기에 작품과 연관성 없는 관객을 끌어들여 착시를 일으킴으로써 작가와 관객을 일치시키고 있다. 이러한 일치성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에 빠져서 일어나는, 변별력이 없어지는 상황을 지적하는 효과를 지닌다고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색맹의 연장선으로, 아름다움만을 투과시키는 보석으로 덮인 사랑의 눈동자를 그린 작품, 사랑하는 남녀의 에로틱한 순간을 상징하는 '꽃' 연작물, 순백의 날개를 가진 '사랑의 천사', '눈물 꽃' 드로잉 등 20점이 넘는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다.




김들내, Love, 캔버스에 아크릴, 80×80cm, 2006




김들내, Love, 장지에 아크릴, 71.5×100cm, 2006



김들내의 이번 작품은 보는 사람의 사랑의 경험에 따라 이야기가 풍성해지는 다양한 효과를 누린다. 전시 전체가 하나의 연속물이 될 수도 있고, 그림 하나하나 각각의 에세이가 될 수 있다. 인류 공통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이자, 행위이며,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도 한 '사랑'으로 관람자와 호흡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번 전시에는 특별히, 12월 15일 'Love Party'라는 주제로 저녁 7시부터 관람자와 함께하는 자리도 마련되어 있다.

갤러리 정미소






사랑은 당신을 사랑한다.


사랑의 순간은 짧다고 한다. 사랑에 눈이 머는 순간이 짧다는 이야기다. 그런 눈이 먼 사랑은, 대상을 떠나는 순간 매우 차갑게 식어버리고 만다. 어떤 사랑은 사랑하는 존재들을 파멸로 이끌기도 한다. 사랑하는 대상 뿐 만 아니라, 사랑하는 주체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어떤 늪에 빠져든다. 사랑의 주체들은 그 속에서 한없이 괴로운 사랑의 갈망에 빠져들며 동시에 더욱 더 사랑에 빠져들고 말기도 한다. 가끔 사랑에는 수많은 외로움과 고독이 피어나기도 한다. 사랑의 주체들은 서로 함께해야할 사랑인데, 도무지 만나지지 않고, 서로 괴롭히기도 하는 사랑... 가끔 어떤 사랑은, 바로 곁에 있는데도, 그 사랑을 눈치 채지 못하고, 스쳐 지나고 말기도 한다. 어떤 사랑은 너무도 일상적이어서 친근한 친구처럼, 평생을 곁에 머물기도 한다. 사랑은 사랑의 주체를 항상 어떤 크고 작은 시달림 속에 내맡긴다.
도대체 왜, 사랑은 사랑의 주체들을 괴롭히고, 흔들어놓고, 불안하게 하며, 외롭게 하고, 항상 애달게 하는가. 그런 사랑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식었다가도 다시 뜨겁고, 향기 나는 사랑으로 피어나는 그런 사랑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사랑의 대상이 가까이 있다는 느낌 때문에 불안해한다. 노심초사 그 사랑이 달아날까 두려워한다. 또한 그렇게 사랑은 우리의 삶으로 귀화한다. 그런 사랑은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일까.

〈I Love You〉에서 김들내는 사랑을 그린다. 그림들 곳곳에는 사랑의 이미지가 새겨져 있다. 그 그림들은 마치 사랑이 사랑의 주체들간에 교환되는 환상의 이미지, 혹은 소통의 이미지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사랑의 대상이 누구이건, 사랑의 주체가 누구이건 간에, 우리를 사랑스럽게 괴롭히는 것은, 바로 그 사랑이라는 존재 그 자체이며, 그것은 바로 우리들이 항상 욕망하고, 욕망해온 이미지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김들내는 그런데, ‘사랑들’만을 그렸다. 산뜻하기도 하고, 화사하기도 하며, 때로 강렬하기도 하고, 파괴적으로 보이기도 한 그런 사랑의 이미지들이다. 그들은 사랑스러운 대상인가. 사랑의 화신들인가. 사랑이라는 명함인가.
지금껏 김들내가 그린 그림들은, 대부분 ‘사랑에 관한’ 그림들이다. 어두운 색깔로 그려진 판화 작품들 속에는 기다림, 외로움, 적막함, 슬픔, 불안, 증오 등 사랑의 이면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어떤 작품들은 사랑의 눈물로 피어난 화사한 꽃들이기도 하였고, 어떤 작품들은 두려움과 불안으로 사랑의 대상을 기다리는 작은 소녀의 모습이기도 하였다. 일종의 사랑의 증상들을 그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김들내가 그린 ‘사랑’은 외로움, 질투심이나 증오와 같은 사랑의 이면이라기보다는 사랑 그 자체일 뿐이다. 사랑들은 다양한 양태로 우리 앞에 전시된다. 풋내기 사랑처럼, 꿈속을 헤메는 것 같은 사랑도 있고, 지독한 성장통에 시달리게도 하는 파괴적인 사랑도 있다.
어떤 사랑은 보석처럼 눈동자에 박혀있다. 그 사랑은 이미 눈동자 속에 영글어 있기 때문에 그 눈동자를 통하여 누구를 보아도, 누가 보아도, 그것은 사랑으로만 보인다. 우리는 온통 만개한 사랑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랑의 눈동자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사랑 외엔.
어떤 사랑은 너무 달아서 쓴 아이스크림 같기도 하다. 그 속에서 사랑은 녹아 흘러내리고, 그런 사랑의 주체들도 모두 녹아버리고, 파괴되어버릴 것만 같다. 어떤 사랑은 마치 선물과도 같다. 한보따리 사탕 바구니, 선물 꾸러미처럼 교환이 되기도 한다. 갖가지 색으로 찍힌 점들과 선들 속에서 둥실 떠오르기도 하고, 에로틱한 이미지의 꽃 봉오리 속에서 피어나기도 한다.

사랑의 이미지들이 이제, 우리가 마치 사랑 백화점에 들어선 것처럼, 서로를 뽐내고 있다. 이제 사랑은 어떤 공표를 하는 것 같다. 사랑의 대상에 상관없이, 어떤 시련, 심지어 어떤 공포로 사랑의 주체를 사로잡던지 간에, 그 사랑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고통과 망각, 그리고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예견하는 장본임임을 발언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망각과 단절을 경험토록 하는 사랑은, 이제 당당하게 주체의 불안의 씨앗이라고, 커밍아웃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의 이미지들은 다양한 사랑의 아이콘처럼, 혹은 교환물처럼, 때로 사랑의 궁극적 대상처럼, 그리고 사랑의 주체에게 기억과 추억, 그리고 망각을 선물해주는 매개물로 기능하기도 한다. 가지각색으로 독립된 개별의 이미지들로, 사랑은, 우리의 눈동자에 다양한 사랑의 각인을 새겨준다.
사랑의 이미지들은, 여러 사랑의 속성이나 느낌들을 환기시킨다기보다는, 사랑하고 싶은, 갖고 싶은, 심지어 페티쉬를 자극하는, 다양한 대상으로 거듭난다. 그것은 멜로드라마의 신파성과는 전혀 거리가 멀며, 그렇다고 신세대적인 쿨한 사랑이거나 계약 사랑과 같은 교환의 사랑도 아니다. 슬프지도 않고, 그렇다고 우울하지도 않은 사랑의 이미지는 오히려 냉정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결코 일상화된 친근함과도 거리가 멀다. 이전의 김들내가 그린 그림들에서는 사랑의 느낌들, 사랑의 흔적과 사랑의 증상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사랑 자체를 그린다. 그 사이에는 분명 어떤 단절 혹은 망각이 있다. 그리고 그 단절, 망각은 새로운 길을 열어줌이 틀림없을 것이다.
다양한 판본의 사랑들이 늘어선 〈I Love You〉의 사랑들은 사랑의 주체로부터 이탈해있는 또 하나의 주체로 보인다. 이미지 혹은 판타지로서의 사랑은 사랑의 주체에게, 애절한 기다림을, 욕심스러운 소유욕을, 옭아매는 질투를, 종속과 구속을, 고독과 외로움을, 그리고 성장과 인내를 가르쳐준다. 그렇지만, 주체로부터 떠나, ‘이탈’한 사랑은 오히려 사랑의 주체를 대상화시킨다. 즉 이 사랑들은 주체를 응시하는, 온전한 ‘사랑이라는 이름의 주체들’인 것이다. 사랑은 증상으로서 자신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본연의 모습들을 하나씩 드러내고 있는 중인 것이다. 아마도 김들내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사랑의 증상들이 아닌 사랑 자체와의 만남은, 일종의 단절, 혹은 전환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수많은 사랑의 판본, 즉 새로운 사랑의 주체들과의 만남 속에서, 사랑 자체를 향유하는 데로 나아가는 길목일지도 모른다.
진정한 사랑의 주체에게는 더 이상 여타 다른 사랑의 대상은 필요치 않다. 궁극적인 사랑의 대상은, 사랑 자체이다. 사랑은 사랑의 주체에게 계속해서 추파를 던지며, 주문을 걸어온다. ‘더욱 나를 욕망하라... 더욱 나를 사랑하라...’. 그 주문에 걸린 우리들에게 사랑에 대한 욕망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사랑은 더욱 더 완전한 사랑이 되고, 그 이미지는 더욱 완벽해지며, 사랑과, 사랑의 주체는 끊임없는 욕망의 굴레 속에서 단절과 망각, 그리고 지속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병희(미술비평, 갤러리정미소 아트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