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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말에게 주는 당근 한 바구니

  • 조회수 1,228
  • 작성자 박*
  • 등록일 2007.04.19
늙은 말에게 주는 당근 한 바구니

- <항일유적답사기> 2007년 제1분기 우수문학도서 선정 소감 -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4강까지 오른 요인

한 달째 빈둥거리고 있다. 하기는 이즈음은 놀고먹어도 될 나이지만 그동안 살아오던 습성 탓인지 어딘가 편치 않다. 그 까닭은 아직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기 때문이다. 정년퇴직이 없는 작가에게는 살아있는 한 일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게다. 더욱이 나와 같은 늦깎이 작가에게는.

이런 증후를 외래어로는 '슬럼프'라고 하는 모양이다. 이 슬럼프의 원인을 곰곰 따져보면 최근에 펴낸 책들이 판매가 부진하고, 지난 1년을 고생하면서 쓴 장편소설 원고가 해를 넘긴 채 책상 서랍에서 잠자고 있기 때문인가 보다.

어떤 이는 "작가는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하여 글을 쓴다"라고도 하고, "작가는 당대의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다"라고 하지만, 나 같은 예사 사람이 어디 그런 경지에 이르기가 쉬운 일인가.

연극배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날 관객에 따라 연기가 좌우된다고 한다. 객석이 비거나 관객의 반응이 적으면 연기가 잘되지 않는단다. 그래서 연극의 3요소에는 희곡, 배우, 관객으로, 영화와는 달리 굳이 '관객'이 들어가는 모양이다.

가수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청중이 적으면 신명이 나지 않아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단다. 우레와 같은 박수와 갈채는 가수를 무아지경으로 이끌어 자신도 모른 채 혼신의 힘을 다해 열창케 한다고 한다. 그들은 대중의 인기라는 마력에 산다.

그래서 대중의 인기를 잃을 때는 심한 우울증에 빠지거나 마약까지도 유혹당하는 모양이다. 운동 경기도 마찬가지로 관중이 없는 경기는 어딘가 맥 빠진 느낌이다. 관람석이 텅 빈 운동장에서 선수들은 '파이팅'이 나지 않을 게다.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4강까지 오른 요인 중 가장 으뜸은 뭐니 해도 붉은 악마를 비롯한 열광적인 축구팬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경기장 안팎은 물론 온 나라, 심지어 한국인이 사는 해외까지 파도 치는 붉은 물결과 우레와 같은 함성에 선수들은 저절로 신명이 났다.

선수들은 경기 중, 이마가 깨어지고 눈두덩이 찢어져도 아픈 줄도 모르고 붕대를 감고 다시 경기장으로 들어가서 사력을 다해 경기를 치렀다. 그 결과 애초의 목표인 월드컵 1승을 넘어 꿈의 16강 고지도 단숨에 뛰어넘고, 감히 오를 수 없을 기적 같은 8강, 4강 고지도 올랐던 것이다.

지금은 대중의 시대로,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다. 작가도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답사나 집필보다 더 어려웠던 출판

며칠 전, 출판사 대표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반가운 소식 전합니다. 지난해 가을에 낸 <항일유적답사기>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2007년 제1분기 우수문학도서선정에 뽑혔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부모에게 어느 자식이 소중치 않으랴만, 이 책은 나에게 다른 어느 책보다 힘들게 펴낸 책으로 무척 애착이 가는 책이다. 우선 자료를 취재하고자 중국을 세 차례나 누볐다. 제1차는 한 독지가의 후원으로,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이상룡 선생의 증손 이항증씨와 임시정부 국무위원 김동삼 선생의 손자 김중생씨와 동행하면서 꼬박 2주일 동안 상해 북경, 동북삼성 곳곳의 항일유적지를 더듬었다.

한 세기 전의 일이라서 역사 현장이 그대로 보존될 리 없었다.

'솔밭에서 바늘 찾기'로, 참고문헌을 들치고 호로(胡老, 중국노인)에게 길을 묻고 물어서 수풀을 헤치며 보물을 찾듯 역사의 표지물을 찾았다. 고산자에 있었던 신흥무관학교 옛 터는 그새 옥수수밭이 되었고, 합니하의 신흥무관학교 옛 터는 포도밭 벼논이 되어 있었다.

장춘에 있었던 일본 관동군사령부 건물은 현재 지린성 공산당 장춘시 인민정부 청사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사진 촬영이 허용되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달리는 차 안에서 셔터를 눌렀다.

가는 곳마다 어디 한 곳 쉬운 데가 없었다. 제2차 답사는 나 혼자 한 달 월급을 들여 흑룡강성 경안현 후미진 산골까지 찾아다녔고, 제3차 답사는 안동문화방송국 특별취재팀과 동행, 일제 치하 우리 독립군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건너던 압록강 일대를 취재하다가 동북공정에 혈안이 된 중국공안에게 된통 걸렸다.

그들은 우리 일행의 항일유적답사를 예사로 보지 않고 여권을 빼앗으며 추방하려는 것을 선양 영사관의 도움으로 용케 풀려났지만 답사 기간 내내 그들에게 미행당하는 등, 세 차례 답사 모두 쉽지 않았다.

답사 길도 어려웠지만, 집필도 매우 힘들었다. 독립운동사의 까막눈이 오직 열정 하나로 공부를 하면서 원고지를 메웠다. 그런데 정작 더 어렵고 울분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은 탈고 뒤 출판을 해 줄 곳을 찾지 못하였을 때였다.

출판사 측에서는 저명한 역사학자(교수)의 답사기도 판매가 되지 않는데 한 무명의 고교 교사가 쓴 항일유적답사기가 팔릴 리가 없다는 거였다. 심지어 어떤 출판사에서는 내 의도(중고등학생들도 쉽게 읽도록)를 무시한 채, 글을 너무 쉽게 썼다고 흠을 잡기까지 했다.

이제 와, 그때의 이런저런 사연을 들춰 나에게 푸대접했던 출판사들을 원망하고 싶지 않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아직도 페인트공이나 도배사로 거리를 누비는 현실에 이윤추구에 골몰한 출판사들이 항일유적 답사기가 팔릴 거라고 선뜻 나서겠는가?

아무튼 나는 이 원고로 무척 자존심도 상했고, 우리 사회에서 '항일운동'에 대한 역사의식이나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에 대한 예우 현주소도 새삼 알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나의 한국전쟁 사진집 <지울 수 없는 이미지>를 낸 바 있는 사진 전문 눈빛출판사 대표가 당신 전문분야는 아니지만, 출판해 주겠다고 자청하기에 눈물겹도록 반갑고 고마웠다. 그런 나머지 나는 감격하여 관례대로 10퍼센트의 인세를 주겠다는 것도 사양하고는, 초판에 한해서는 5퍼센트로, 재판부터는 관례대로 달라고 깎아주었다. 당신이 사명감을 가지고 애써 공들여 만든 책이 기대만큼 나가지 않는다면 얼마나 미안한 일인가?

기성세대가 신세대에게 마땅히 해야 할 소명감으로

다음 글은 <항일유적답사기>의 머리글과 후기로, 내가 이 책을 펴낸 계기와 취지를 밝히고 있다.

몇 해 전 내가 현직에 있던 때다. 대학 수시입학 전형을 보고 난 한 학생의 표정이 밝지 못해 그 까닭을 묻자, 구두시험 면접관이 '윤봉길 의사'에 대해 물었는데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해 아무래도 시험에 떨어질 것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순간 '너, 그것도 몰랐니?'라는 생각이 들다가 이내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50년을 학교 울타리에서 한결같이 배우고 가르쳐온 나는 독립운동사를, 독립지사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서울에 40년을 살았으면서도 '왕산로'의 유래도 몰랐거니와, 왕산(旺山) 허위(許蔿) 선생이 내 고향 태생이라는 것도 쉰이 넘은 나이에 중국 하얼빈에 가서야 비로소 알고서 얼마나 부끄러워했던가. 대체로 우리들은 독립운동사나 독립지사에 무지했다.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고, 애써 가르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 탓으로만 돌릴 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그 책임이 있다. 이것이 뒤늦게나마 항일유적지를 더듬으면서 선열들의 얼을 새겨 이를 가능한 쉽게 다음 세대에 전하고자 하는 까닭이다. 이 일은 기성세대가 신세대에게 마땅히 해야 소명이다.

- 들어가는 글 '역사는 영원히 되풀이 된다'에서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까막눈이었던 내가 많은 분의 도움으로 이 항일유적답사기를 참선하는 마음으로 엮었다. 이는 선배 학자 여러분의 값진 저서와 증언, 자료 제공으로 이루어졌을 뿐 나는 오직 다리품만 팔았을 뿐이다.

역사 현장을 답사하거나 문헌을 들추면서 내 마음을 울린 분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면서 이런 분들이 현대사의 주역이 되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끝내 사라진 현실이 매우 가슴 아팠다. 이제라도 역사학자나 작가들이 발 벗고 나서서 묻혀진 진실을 발굴하여 그분들의 이름이나마 드높여 주는 게 이 시대의 소명이리라. 미력하나마 앞으로도 이 방면에 더욱 관심을 갖고 무딘 필을 들고자 한다.

- 후기에서

2006년 11월, 눈빛출판사에서 펴낸 <항일유적답사기>는 내 기대 이상으로 책을 아주 야무지게 잘 만들었다. 컬러 화보로 제작비에 견주어 책값도 저렴하게 매겼다. 아마도 당신 자녀들을 생각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출판사 측에서 도서와 보도 자료를 각 언론기관에 보냈으나 두 곳에서만 보도했을 뿐이었다.

출판한 지 한 달이 지났을 즈음, 나는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판매부진에 따른 사죄의 말을 했다.

"선생님, 꾸준히 나가고 있어요. 애써 쓰셨는데 언젠가는 누군가 알아줄 거예요. 너무 괘념치 마세요." 담당 직원이 내 마음을 편케 해줬다.

지금 이곳과 그리고 미래의 현대인들에게도 자극과 성장을 위한 책들은 어느 정도라도 우리 삶의 역사성이 담겨 있고 품이 크다. 소품으로서의 단아함 아름다움보다 한국인으로서의 긍지와 삶의 이치를 큰 시야로 바라본 <항일 유적 답사기>와 <삼라만상을 열치다>을 먼저 뽑았다. 굵직한 굵직한 품격과 유장한 필체로 이끌어가는 이 책들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깊은 안목과 발견의 의지, 지적 성취의 노작이었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7년 제1분기 우수문학도서 '선정평'에서

워낙 둔재라 이제까지 글로써 상복은커녕 탈락에 이력이 난 나에게 이번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07년 제1분기 우수문학도서 선정은 늙은 말에게 원기 회복으로 주는 당근인가 보다. 나는 이 당근을 감사히 먹고 깊은 슬럼프에서 벗어나 다시 새로운 작품을 일구는 글 밭을 힘차게 갈아야겠다.

무엇보다 이해를 초월하여 내 작품을 공들여 엮어준 눈빛출판사와 <항일 유적 답사기>를 우수문학도서에 뽑아준 생면부지의 심사위원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07-04-1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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