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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평론가의 자질과 덕목

  • 조회수 1,230
  • 작성자 무*평*가*송*건*
  • 등록일 2007.05.17
Name 무용평론가 송종건
Subject 무용평론가의 자질과 덕목
Homepage http://dancecritic.com.ne.kr

< 무용평론가의 자질과 덕목 >

평론을 하면서 고소도 당해보고 온갖 쓰레기 잡것들의 질 낮은 음해와 행패도 겪어보았다. 사실 올바른 평론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썩어 문드러져가는 기득권 쓰레기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 보다는 이들과 함께 썩어 문드러져 가는 것이 돈도 생기고 편안 할 수도 있다는 것도 잘 안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부패 사건이나 마약 거래 범죄를 추적하는 언론인들이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의 사이비 평론가들은 기득권 부패 세력과 온갖 입 냄새 나는 협잡을 하거나 이들에게 아첨을 부리면서 함께 섞어 문드러져 가는 길을 택하고 있다.

이는 마치 ‘우리나라 선출직 지자체장들이 노회한 부하들에게 속거나 뒤통수를 맞을까봐 겁을 내면서 직업 공무원들에게 얹혀 지내기 일쑤이며 갈등이 생겨도 정면에서 맞붙기보다 타협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는 지성의 광장이라는 상아탑에서도 생기는 일인데 작년 말 고려대학교 일부 교수들이 총장 선출제도를 통해 개방성과 보편성을 지향하여 대학 개혁에 나선 총장을 탄핵 해 버린 사건이다. 개혁과 변화를 싫어하는 교수들이 ‘능력 있는 총장을 배제하는’, ‘싫어하는 사람을 골라내는 네거티브 선출방식’ 이라는 투표를 통해 합리적 개혁을 추구해나간 총장을 몰아낸 것이다.

무용평론도 마찬가지가 된다. 무용계에서도 일부 썩어문드러진 사이비들이 올바른 무용평론가를 좋아할 리가 없다. 이들은 무용을 하나의 ‘예술’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권이나 사업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무용계의 잘못된 부분을 찾아서 밝혀내고 사회와 국가에 알리고 그 개선책을 찾아나가는 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2006년 9월 26일 96세로 사망한 사이먼 비젠탈은 50 여 년간 나치의 범죄증거를 찾아내 1100여명을 법정에 세웠다고 한다. 그는 그의 저서 ‘해바라기’에서, “내가 해온 일의 유일한 가치는 미래의 살인자들에게 경고를 보내는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올바른 무용평론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무용현상에 대한 지적은 과거의 잘못을 보는 것도 되지만, 올바른 미래의 길을 찾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무용에 관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은 오직 진실에 근거를 두고 미래를 바라 보면서 용기 있게 글을 써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무용평론가의 자질 혹은 덕목은 적지 않다. 우선 첫째로는 무엇보다도 무용에 대한 미학적, 역사적, 정치사회적, 등등 학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가 무용의 본질이 무엇인지 아무런 미학적 개념이 전혀 없는 인간들이 무용공연을 판단(judgement)하고, 평가(evaluation)하겠다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그리고 무용예술의 역사나 사회정치적 예술적 의미 등을 전혀 배운 경험이 없는 인간들이 무용에 대한 판단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현재 우리나라 무용공연에 대한 판단이 무질서한 도떼기시장처럼 되어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런 돌팔이들이 ‘평론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날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글을 명쾌하고 쉽게 써야 한다. 과학에 관한 글도 기본적으로 사실에 바탕을 두면서 일반인들이 이해를 돕도록 최대한 쉽고 명쾌하게 써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무용평론 이라는 것을 보면 이 말도 아니고 저 말도 아닌 것처럼 두루 뭉실 하게 써놓는 경우가 많다. 독자들에게 자기가 쓴 글의 뜻을 이해하도록 노력해 달라고 요구하는 사이비 평론은 용서될 수 없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글을 정확하게 써야 한다는 것이다. 무용에 관한 글쓰기가 무용은 원래 글로 표현하기에는 뭔가 모호하고 애매하다는 주관적 개념을 가진 글쓰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확한 논리와 근거를 대면서 무용의 현상에 대한 토론과 평가를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네 번째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각오할 수 있어야 한다. 불교계의 큰 어른 이셨던 성철스님은 ‘수행자가 신도들에게 돈을 받는 것은 날아오는 화살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사이비 평론가나 사이비 잡지들이 우리 무용계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이유는 이들이 기득권 사이비 부패예술가들과 한 통속이 되어 함께 썩어문드러져 있기 때문에 올바른 비판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올바른 무용평론 작업은 경제적으로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평자가 객관적인 평론의 글을 거의 1년 내내 쓰고 있지만 누구도 경제적인 보답을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난 2006년 11월 20일자 조선일보 A3을 보면 이용훈 대법원장이 변호사시절 “외환은행 사건을 수임하여, 소장을 작성하는 비용으로 550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평자가 약 1년 이상의 준비작업 후 꼬박 1개월 이상 걸려 쓰고 있는 A4용지 50여장 분량의 이 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아무런 경제적 보답을 하지 않는다.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이 한국의 재계임원 20여명에게 “성공한 사원에 대한 보상은 ‘머리와 가슴, 지갑’ 이 병행돼야 한다.” 고 조언 했다고 한다.(동아일보 2006 8월 4일자 A27면)

사원들에게 배울 기회를 제공하고(머리), 회사와 일에 대한 열정을 갖도록 독려하고(가슴), 금전적으로도 채워줘야(지갑) 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회, 문화 시스템과 수준에서는 올바른 무용평론을 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경제적인 지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물론 당연히 평가의 대상이 되는 대상자와의 유착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사명감을 갖고 객관적인 글을 쓰는 것에 모든 것을 거는 평론가는 죽어라는 말이 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경우에는 공익을 위해 글을 쓰고 있는 무용평론가에게는 국가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올바른 평론이라는 것이 사실은 국가예산 낭비의 절감과 사회적 낭비를 막는 큰 공공적인 경제적 기능과 역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지원금이 한해 수천 억 원씩 집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지원도 올바른 평론을 쓰는 평론가에게는 오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지원금을 난도질하고 있는 부패 사이비 관료 그 자체들이 올바른 평론의 비판 대상이기 때문이다.

미국 무용평론의 전설이 되어 있는 미국 무용평론가 에드윈 덴비는 약 50 여 년 전에 쓰여 진 그의 평론집에서 자신의 수입이 오케스트라 핏의 연주자 한명의 수입보다 훨씬 적다고 한탄하고 있었다. 썩어 문드러져가는 사이비 무용가나 부패관료들과 같이 협잡 하면서 함께 썩어가지 않겠다는 무용평론가는 경제적인 고통을 각오해야 한다.

그리고 다섯 번째는 올바른 평론가는 고독해야 한다. 조선일보 2007년 1월 27일 자 A6면을 보면, ‘청빈법관’으로 알려진 조무제 전 대법관이, “법관은 고독해야 정당한 판단이 가능하다”고 했다. 2004년 대법관 퇴임 후 변호사 대신 교단을 선택하고 휴대전화와 승용차도 없이 사택과 연구실만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는 그는 “법관은 고독함이 따르지만 그 고독함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사이비 평론이 아닌 올바른 평론을 하겠다는 무용평론가도 마찬가지다. 고독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고, 나처럼 휴대전화와 승용차가 없다는 것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고 생각해야 한다. 올바른 무용평론가가 되기 위한 여섯 번째의 덕목은 정의감에 바탕을 둔 용기가 된다.

다시 법조인의 예를 들게 되는데, 이는 아마 무용평론도 작품이나 무용현상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해야 되기 때문일 것이다. 대표적인 인권변호사로 작고한 유현석 변호사는 법조인에게 꼭 필요한 세 가지 덕목으로 양심, 지식, 용기를 꼽았다.(중앙일보 2005년 4월 26일자 35면)

그러면서 그는 이중에서도 용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법조 후배들에게 강조했다고 한다. 용기 없이 강자 - 사실은 썩어 문드러져 있는 것들이지만 - 에 맞설 수는 없을 것이다. 무용 쪽도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 무용 쪽도 진실 된 예술가들은 사이비 부패 세력들에 의해 밀려 이들의 비웃음이나 받고 있는 말이 안 되는 상황이 되어 있다.

그리고 물론 사이비 예술가, 사이비 평론가, 사이비 잡지 발행인, 사이비 기획자. 사이비 부패관료들은 파리나 모기 혹은 하이에나 떼들처럼 더러운 곳에 몰려다니며, ‘무용권력’이 되어 있다. 이들과 싸워서 이들을 박멸시켜 우리 문화예술계를 맑게 정화시키겠다는 '용기'가 없으며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송종건/무용평론가/dancecritic.com.n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