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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화가 작품 베껴 KIAF 출품?

  • 조회수 1,091
  • 작성자 완*
  • 등록일 2007.07.11
숨진 화가 작품 베껴 KIAF 출품?
5월 코엑스에 전시된 한지 작품, 故 손성완 화백 작품과 흡사 ‘표절·모작 의혹’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출처 : 주간동아 제593호 2007.07.10

http://www.donga.com/docs/magazine/weekly/2007/07/04/200707040500055/200707040500055_1.html


5월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코엑스에서 열린 ‘2007 KIAF’. 생전의 손성완 씨(작은 사진).

한국화가 이모(33) 씨는 5월9~1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 코엑스에서 열린 ‘2007 한국국제아트페어(KIAF)’를 관람하던 중 소스라치게 놀랐다. 국내 116개 화랑을 비롯, 전 세계 208개 화랑이 무려 50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 이 매머드 전시장 한 귀퉁이에서 한때 자신과 같은 작업실을 썼던 동료 화가의 작품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이 솟구친 것도 잠시, 이내 그 작품이 다른 사람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씨가 지인(知人)의 작품으로 혼동한 까닭은 해당 작품의 재료, 기법, 색감, 크기 등이 지인의 그것과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이다. 이씨가 당초 작품의 주인으로 여겼던 작가는 지난해 5월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한 계명대 동양화과 출신의 대구지역 한국화가 고 손성완(당시 38세) 씨.


재료·기법·색감·크기까지 닮은꼴

반면 이씨가 KIAF에서 본 작품의 작가는 경기도 안양에서 활동 중인 L(25)씨. L씨 작품이 전시돼 있던 곳은 1980년 기획전문 화랑으로 개관한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유명 화랑인 J갤러리 부스였다. 이 갤러리 대표 박모 씨는 후안 미로, 안토니 타피에스, 앤디 워홀 등 해외 유명작가 작품 전시와 소장에 특히 공을 들여왔고, 한국-스페인 간 문화교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5년 11월 스페인 국왕에게 문화훈장을 받은 적도 있는, 미술계에서 널리 알려진 여성 인사다.

“KIAF 전시장에서 너무 놀라 ‘작품이 이렇게 닮을 수 있느냐, 설명해보라’며 J갤러리 박 대표에게 따졌다. 그랬더니 그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당신이 누군데 그런 것을 따지고 드느냐, 아무리 애를 써도 이 작품을 그린 작가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등 거친 표현을 해댔다. 작고한 손씨는 한지를 찢고 꽂는 종이작업을 수년 동안 해왔다. 작업실에서 그의 완성 작품들을 수없이 접한 나로서는 한눈에 봐도 그의 것이라고 착각할 수밖에 없을 만큼 L씨 작품은 닮아 있었다. 게다가 손씨는 죽기 전 한때 1년 6개월가량 J갤러리 전속작가로 있었다. 그래도 내 눈이 틀린 것인가.”(이씨)


손씨의 작품 ‘천상’(오른쪽)과 L씨의 작품 ‘The Space-color study’.

이 같은 이씨의 주장은 얼마나 사실에 근접한 것일까. 기자는 먼저 손씨의 작품과 KIAF에 전시됐던 L씨 작품을 면밀히 비교해보기로 했다. 문제는 2005년 독일 쾰른아트페어 출품 당시 이미 컬렉터의 손에 팔려나간 손씨의 작품 사진은 그의 유족을 통해 입수할 수 있었지만, L씨 작품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는 점. KIAF 사무국 측에 KIAF 전시 도록(圖錄)에 L씨의 작품 사진이 수록돼 있는지 문의했으나, 사무국 관계자는 “전시에 출품했더라도 도록엔 사진이 실려 있지 않을 수도 있다. 확인해보겠다”고 한 뒤, “L씨 작품은 도록에 실려 있지 않다”고 확인해주었다.

L씨의 작품 사진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기자는 사흘 동안 꼬박 인터넷을 뒤진 끝에 마침내 그의 작품 사진 20여 컷을 찾아냈다. 그 가운데 두 점은 KIAF에서 이씨가 육안으로 목격한 작품이다. 먼저 그중 한 점과 손씨 작품을 눈여겨보자(51쪽 작품사진 참조). 손씨 작품은 앞서 언급했듯, 2005년 쾰른아트페어에 출품한 것으로 ‘천상(遷想)’이란 제목이 붙어 있다. 한지에 다양한 색의 물을 들인 뒤 그것을 수많은 조각으로 찢어 화면(畵面) 위에 꽂거나 붙여 만든 것이다. 작품 크기는 45×45cm.

‘천상’은 중국 육조시대 고개지(顧愷之)의 회화이론인 ‘천상묘득(遷想妙得·생각을 옮겨 묘한 이치를 얻는다는 뜻)’에서 차용한 말로, 손씨는 1996년 연 첫 개인전 이래 이를 작업 화두로 삼아왔다. 그는 숨지기 전 대구지역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2006년엔 각종 국제아트페어 참가 기회를 늘려 자신의 작업세계를 한층 더 펼쳐보이겠다는 바람을 피력한 바 있다. 그는 2005년 쾰른아트페어에서 출품작 중 5점을 판매하는 성과를 거둔 것에 고무돼 창작 의욕에 넘쳐 있었다는 것이 유족과 지인들의 귀띔이다. 하지만 손씨는 같은 해 4월 열린 스위스 제네바아트페어에 참가했다 귀국한 뒤 이틀 만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등지는 비운을 맞았다.

한편 L씨가 올해 KIAF에 내놓은 작품의 제목은 ‘The Space-color study’. 주재료는 손씨 작품과 마찬가지로 한지다. 작품 크기도 45×45cm로 같다. 하지만 제작시기는 2007년으로 손씨 작품보다 훨씬 늦다. 기자가 추적한 바에 따르면, 안양 태생으로 한국미술협회 안양지부 회원(디자인분과)이기도 한 L씨는 순천대 만화예술학과를 졸업한 뒤 2002년 첫 개인전을 열었고, 현재 세종대 영상대학원 애니메이션학과에 재학 중이다. 화가보다는 추상만화애니메이션 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L씨는 ‘The Space’라는 자기 작업의 테마가 어린 시절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던 꿈과 별에 대한 기억들을 한지의 재질과 색을 통해 표현한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손 화백과 표절의혹 작가 모두 J화랑과 인연

그렇다면 ‘천상’과 ‘The Space’라는, 연관성이 지극히 희박한 작업 테마를 가진 두 작가의 작품이 왜 이렇듯 ‘과도한’ 형태적 유사성을 지니게 된 것일까?


손씨의 작품(오른쪽)과 L씨의 작품. 재료, 기법, 형상, 색감 등이 매우 흡사하다.
기자는 우여곡절 끝에 L씨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내 6월25일 그와 통화할 수 있었다. “당신의 작품과 손씨 작품이 왜 그렇게 닮았느냐”는 물음에 L씨는 “평소 종이(한지)작업에 관심이 많다 보니 습작을 거듭 만드는 과정에서 비슷한 작품이 나온 것 같다. 손씨 작품과 나의 작업 경향이 비슷하다는 내용의 글이 얼마 전 내 인터넷 카페에 올라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손씨 작품을 예전에 접한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손씨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인터넷을 통해 그의 작품을 본 일은 있다. 하지만 표절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L씨는 “나로서는 더 해줄 말이 없다. 궁금한 내용이 있다면 J갤러리 측에 직접 물어보라”고 덧붙였다.

2006~07년 집중적으로 제작된 L씨의 다른 작품들 또한 손씨의 다른 작품들과 비슷한 면이 많다(52쪽 작품사진들 참조). 우선 주된 재료가 한지로 같고, 한지를 찢은 조각들을 사용한 점, 한지 조각들이 모여 이룬 형상과 흑백 또는 강렬한 원색 사용 등 색감에서의 유사성, 대다수 작품의 크기가 45×45cm, 90×90cm로 동일한 점 등을 들어 손씨 유족과 지인들은 모작(模作)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한다.

어찌 됐건 일면식조차 없는 손씨와 L씨의 유일한 ‘접점’은 두말할 것 없이 J갤러리다. 손씨는 한때 J갤러리 전속(갤러리 측은 정식 계약서를 쓰지 않고 구두로 계약했으며, 그에 따라 ‘부분 전속’이었다고 주장한다) 작가였던 데다, L씨는 5월의 KIAF 출품에 앞서 이미 J갤러리의 도움으로 올해 4월18~22일 독일에서 열린 쾰른아트페어에도 출품한 사실이 취재 결과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6월27일, L씨와 함께 기자와 만난 J갤러리 박 대표는 “L씨 작품을 우리 화랑을 통해 KIAF와 쾰른아트페어에 내보낸 건 나 자신이 한지를 재료로 한 종이작업을 좋아하고, 외국 관람객과 컬렉터들도 큰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라며 “손씨의 한지작업에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국제아트페어 출품을 할 수 있게 모니터링해준 것도 다 내가 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손씨와 우리 갤러리의 인연이 끊긴 후 어느 날 L씨가 지금의 종이작업을 담은 포트폴리오를 들고 찾아왔기에 살펴보니 작품이 괜찮은 듯해 KIAF와 퀼른아트페어에 출품케 한 것”이라며 “외국 관람객들은 서로 다른 한국 작가들의 산수화나 정물화 등을 보고도 ‘똑같다’고 평하곤 한다. 그리고 손씨와 L씨의 ‘손맛’이 조금씩 다른데 표절이나 모작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항변했다.

박 대표는 또한 “손씨와 L씨 모두 현재 우리 화랑 전속작가가 아니므로 작품과 관련한 의혹은 당사자끼리 알아서 해결할 일”이라고 말했다(표절 및 모작에 관한 국내 법원 판결 내용은 상자기사 참조).


화랑 대표는 “당사자끼리 해결할 일”

과연 그럴까. 박 대표 말대로 그가 손씨 작업에 모티프를 제공했든 아니든 작품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창조물이다. 그뿐 아니다. 이미 사망한 손씨, 손씨 사후에 그의 작품과 흡사한 작품을 불쑥 들고 나온 L씨, 그리고 두 작가의 작품세계를 모두 알고 있는 J갤러리 박 대표. 삼자간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열쇠를 지닌 사람은 누가 뭐래도 두 작가의 작품이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고도 L씨 작품을 KIAF에 내놓은 박 대표일 수밖에 없다.

표절(剽竊)의 사전적 정의는 ‘남의 작품을 전부 혹은 부분적으로 도용하는 행위’다. ‘남의 작품을 그대로 본떠서 만드는 행위나 그 작품’은 모작이라 일컫는다. L씨의 해명대로 그가 손씨 작품을 표절한 것이 아니라면, 모작인가? 아니면 우연의 일치?

전 세계적인 미술품 투자 열기에 힘입어 닷새의 전시기간에 6만4000명의 관람객을 불러모으고 175억원의 매출을 올려 ‘아시아 최대 미술견본시장’으로 자리매김한 ‘2007 KIAF’. 그 이면에 감춰진 이번 표절·모작 의혹은 한국 미술계의 비상(飛上)을 위해서라도 낱낱이 파헤쳐져야 할 것이다. 놀라우리만큼 유사한 두 작가의 작품을 둘러싼 진실 찾기의 당위성은 충분하다. 작가에게 작품은 생명이나 다름없는 자기 분신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