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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27-우발적 커뮤니티 전시안내

  • 조회수 1,209
  • 작성자 박*영
  • 등록일 2007.10.12
갤러리27에서 열리는 우발적커뮤니티(Movement, Contingency and Community)전에 초대합니다.



우발적 커뮤니티 Movement, Contingency and Community

기간(일시) : 2007. 10. 18 - 2007. 11. 12
장소: 계원예술대학 내 GALLERY27
오프닝: 2007년 10월 18일 오후 6시
참여작가: 잔 알타이Can Altay, 니나 카넬Nina Canell, 루노 라고마르시노Runo Lagomarsino, 지미 로버트Jimmy Robert, 이주요Jewyo Rhii, 이우연Woo Yeon Lee, 피진 콜렉티Pidgin Collective
기획: 김현진
프레스 오프닝: 2007년 10월 18일 4시 / 참석 가능하신 분은 미리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보도 관련 문의: 박재영 010 3394 2652 / gallery27@gmail.com

본 전시는 합목적성을 지니지 않은 공동체, 우발적인 촉발, 그리고 그것의 잠재태로서의 운동성 등을 이야기하게 된다. 전시가 말하는 “공동체(Community)”의 개념은 정치사회적인 태도들에 대한 직접적 선언이나 액티비즘의 외부에 놓여져있는 잠행적인 개별자들의 연대로써, 사회에 우회적인 발언과 존재적 실천을 통해 개입해 나가는 Singular(특유)한 존재들의 존재론적 접촉으로 접근될 수 있는 ‘이미 도래해 있는(그러나 발굴되어야 할) 혹은 장차 도래할 공동속의 존재들’을 말한다. 이러한 모든 내용은 작금의 현대미술 속에서 개별적으로 존립하면서 독자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작가들의 작품 세계와 그들의 미술 언어들을 탐색함으로써 접근해 볼 수 있고, 본 전시는 그러한 특이성, 우발성, 운동성을 지닌 비가시적인, '부재하는 공동체', 즉 '공동체가 없는 공동체'를 이야기해 보는 자리로 마련된다.

참여작가로는 잔 알타이Can Altay, 니나 카넬Nina Canell, 루노 라고마르시노Runo Lagomarsino, 지미 로버트Jimmy Robert, 이주요, 이우연, 임민욱 등 국내외의 7명의 젊은 작가들이 참여하며, 16mm 필름, 비디오, 설치, 드로잉 등의 다양한 작업들이 섬세한 작업 언어와 존재론적 시선들을 나누면서 관객과 조우하게 될 것이다.








전 시 서 문

"부서지기 쉬움과 불확실성 가운데에서의 벌거벗음. 가장 밝힐 수 없는(inavouable) 유대관계에 낯선 것이 있고, 동시에 가장 평범한 만남에 낯선 것이 있다. 그러한 낯선 것, 즉 당황스럽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낯선 것에 노출된, 뚜렷이 내비치는 벌거벗음." -장 뤽 낭시, 마주한 공동체La Communautée affrontée

"당신은 어떻게 사랑의 감정이 솟아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녀는 당신에게 대답한다. 아마도 우주의 논리 속에서 갑작스럽게 균열이 생김으로써...예를 들어 실수로...결코 의지로는 아닌." -마르그리트 뒤라스, "죽음을 가져오는 병"에서

"공동의 것이 될 수 없는 낯선 것이 영원히 일시 적일 수밖에 없으며 언제나 이미 떠나 있을 수밖에 없는 공동체를 세운다" 모리스 블랑쇼, '밝힐 수 없는 공동체La Communauté Inavouable" 중에서

우발적 커뮤니티Movement, Contingency, and Community라고 이름붙여진 이 전시는 7명의 작가들과 더불어 보다 초월적인 커뮤니티의 가능성에 대하여 접근해본다.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공동체의 개념은 무엇에 귀속되거나 그것을 위해 작동하는 축소된 형태의 사회적 연합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 전시가 바라보는 공동체는 어떠한 목적이나 과제를 수행하거나 어떤 생산적 가치를 지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커뮤니티는 낯선자 혹은 모르는 자에 대한 우정이나, 연인들의 사랑처럼 이질적인 결합이나 반사회적인 측면들 속에서 내밀함을 갖는 무엇으로, 어떤 밝힐 수 없는 공동체(모리스 블랑쇼), 혹은 공동-내의-존재(장 뤽 낭시)들의 보이지 않는 관계로부터 마련된다. 이것은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으로부터 오며, 잠행적인 개별자들의 우발적 조우의 순간, 그리고 그러한 상황 속에 확인되는 존재적 수행, 진정한 나와 타자와의 마주함안에서 확인될 수 있다.

이러한 공동체의 모습은 균열과 기이함을 지니며 이질적이며, 비균질적이고 비대칭적이며, 비약적인 관계들을 또한 내포하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계기 가운데서의 우발성, 이것이 마련하는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속에는 어떤 운동성 또한 포착된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지오 아감벤(Giorgio Agamben)은 운동(movement)의 개념을 고찰하면서 "운동이 거기에 있는 것처럼 보일 때 운동은 거기에 없으며, 운동이 거기에 없는 것처럼 보일 때 운동은 거기에 있다"라고 언급하며, 진정한 운동은 잠재태로서의 잠재태의 구축이라고 말한다. 그에 반해 일반적으로 일컫는 운동이 있는 곳에는 사람들을 자르고 분할하는 단절이 있으며 이 경우 적을 명확하게 하게 되고 여기에서 다시 운동은 비정치적인 것(대중이나 사람들)에 대해 정치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문제점들이 발생하며, 때문에 역설적으로 운동이 시작되는 곳에서 민주주의는 끝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운동의 개념이 존재론적으로 재정립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따라서, 여기서 이야기하는 운동이란 구체적인 목적을 띄지 않고도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태동가능한 무엇이다. 또한 이것은 냉철한 인식과 존재적 실천을 통해 개입해 나가는 단독자들(singular being)의 결합으로 이들은 자기 가운데서 타자를 호명한다.

이것은 동시대 현대미술의 한가운데서 새로운 인식과 존재적 접촉을 시도하는 주변부로부터 우리의 삶속에 들어오는 작가들의 작업 속에서 발견해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근본적인 미술의 존립 가치는 무엇으로의 잠재적 변화, 혹은 무엇에 대한 인식적 전환을 위한 가능성을 내포하는 데 있으며, 작가들의 다양한 성찰과 그 성찰을 수행하는 진정성 있는 작업들은 바로 이러한 미술적 가치의 핵심에 놓여져 있다. 이 전시에 등장하는 작가들-잔 알타이Can Altay, 니나 카넬Nina Canell, 루노 라고마르시노Runo Lagomarsino, 지미 로버트Jimmy Robert, 이주요Jewyo Rhii, 이우연Woo Yeon Lee, 피진 콜렉티브Pidgin Collective-은 바로 개별적인 인격체들이 삶 속에서 마주하는 접촉과 그에 대한 정치적 사유, 그 우발적 사건 속에 잠재한 가능성, 나와 타자간의 실존적 나눔의 양태들을 매우 섬세하게 인식하고 풍부한 층위의 미술언어를 통해 드러낸다. 이들은 실질적 무엇에 기초한 동질적인 공동체를 강조하거나 그에 부합하는 관점을 작품에 직접적으로 투사하지 않는다. 때문에 미술계 내부에 이들의 자리는 아직 채 정의되지 않았으며, 어쩌면 영원히 무엇에 기초하지 않을 수 있다. 이들에게는 단일한 소속이나 지정학적, 국가적, 민족적인 결속과 같은 구체적 근거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보다, 이미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다양한 존재들의 모습과 그들과의 새로운 접촉의 가능성, 그에 대한 보다 진화된 인식, 그리고 부재하는 공동체의 비가시적인 연대를 위한 통로를 작품 속에서 발견하게 하며, 특히 나와 타자, 혹은 외부와의 관계에서 진동한다. 이러한 면모가 단순히 이들 작품의 의미를 해석하고 그 내용을 파악함으로서만 확인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들이 미술 언어를 다루는 섬세함과 냉철함, 미술에 대한 확신과 책임감, 진정성을 통해서도 또한 발의되는 것으로, 이것은 다시 이들의 세계에 대한 책임감, 작가적 윤리의 내용과도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지점들이 전시라는 전형적인 형식을 빌어 등장하는 것이 어쩌면 본 기획의 한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본 전시는 무엇을 떠난 만남, 즉 작은 무위의 공동체(Inoperative Community)를 일시적으로나마 가시화해보기 위한 핑계에 불과할 수 있다고 고백하고 싶다. 그저 또 다른 존재들이 이들의 작업 언어를 통해 바깥에서 또 다른 바깥을 향해 말을 건네는 단독자들간의 대화를 목격함으로서, 보다 깊이 있는 만남의 가능성, 그 의미와 조우하기를 기대해본다.

글: 김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