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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세줄]이수연 개인전 / 송 필 개인전

  • 조회수 1,511
  • 작성자 오*경
  • 등록일 2007.11.19
■ 전 시 명 :『송필 개인전』,『이수연 개인전』
■ 전시장소 : 갤러리 세줄
■ 전시기간 : 2007년 11월 23일(금) - 12월 14일(금)
■ 오 프 닝 : 2007년 11월 23일(금) 오후 5시
■ 관람시간 : 월 – 금 / 9:00 ~ 19:00, 토 / 9:00 ~ 18:00, 일 / 10:30 ~ 18:00

■ 전시내용 :
●제 1 전시실●이수연의 작업에는 르네상스부터 낭만주의까지 미술사를 관통하는 여러가지 도상들이 나타난다. 아담과 이브, 비너스와 큐피트, 세이렌, 도시의 풍경과 자연. 이것들의 독특한 배치는 3D 렌티큘러라는 매체를 통해 현실과 꿈, 지상과 낙원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과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현실과 꿈, 지상과 낙원이라는 대치(對峙)하고 있는 두 공간은 이수연의 3D 렌티큘러 작업을 통해 하나의 공간 속에서 만나게 된다. 우리는 작품속 겹겹이 쌓인 공간 속에서 야릇한 환각을 경험한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욕망은 꿈속에서 이루어지고, 지상에서 느낄 수 없는 달콤한 안식과 평안은 낙원에서 주어진다. 하지만 실제로 꿈은 욕망을 지연시킬 뿐이고, 달콤한 안식과 평안이 주어지는 낙원이란 레테의 강물에 몸을 적신 후에야 입성할 수 있는 법이다. 우리는 흔히 꿈과 낙원을, 현실과 지상이라는 덧없는 장소로부터 벗어나 있는 환상(幻想)적인 공간으로 개념화하고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 곳-현실과 지상-에 투영시키려 한다. 그러나 투사된 것은 환상(幻像)에 그칠 뿐이고 우리는 그 환상으로 자족하기 위해 오히려 현실을 지워가는 역설적 행위를 반복한다. 이수연이 제시하는 상품광고, 브랜드, 모델, 이 밖에 대중적 이미지라 칭해지는 것들은 대중이 선호하는 환상에 불과하다. 우리를 욕망하게 하는, 가장 그럴 듯하게 꾸며진 환상. 현대사회는 이러한 것들에 꿈 / 낙원 과 같은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현실 / 지상으로부터 끌어올려질 것을 요구한다.
3D 렌티큘러 작업과 함께선보이는 브랜드 로고 작업은 현대의 소비자들이 욕망하는 소위 명품 브랜드를 인조 송치와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로 재현함으로써 우리가 욕망하는 것의 허상을 드러낸다. 상품의 기능이나 품질보다 브랜드의 로고를 선택하는 현대인의 허망한 욕망은 이수연에 의해 현란하게 반짝이는 크리스탈로 새겨진다.
이렇게 이수연의 작업은 인간이 갖고 있는 욕망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며 현대사회가 끊임없이 재생산해 내는 이미지들의 허구성을 표현한다. | 갤러리 세줄


●제 2 전시실●권력과 사회구조로부터 소외된 것들에 대한 시선을 꾸준히 유지하며 작업을 해 온 송필은 지난 2007년 베이징에서 열린 <찬란한 빛>을 통해 신작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 역시 베이징에서의 작업들이 보여진다.
●이전부터 작가는 자본주의 와 권력, 구조 아래에서 필연적으로 소외된 다른 면들에 대한 애정으로 작업을 해왔다. 그래서 차가워 보이는 벗겨진 가죽 아래에는 버티고 살아내려는 인간의 강한 의지와 애정이 듬뿍 묻어나 있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될 그의 작품은 그 후 거처를 베이징으로 옮긴 일 여 년간의 작품으로 외부에는 거의 공개되지 않은 신작들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의 관심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신 그의 작품에서는 인간에 대한 시선이 좀 더 구체적으로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구조물, 건축물, 상징물들로 대체되어 있다.
이는 작가가 겪는 시대적인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요즈음처럼 급변적이고, 동적인 시대 속에서 가속화되는 자본주의와, 강대국의 패권주의, 그리고 그 속에서 고민하는 작가의 모습을 설명하기에 작가는 아마도 더욱정직하고 직설적인 형식이 필요했으리라. 베이징의 지도 위에 높은 탑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고민하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같은 형상은 결국 이런 작가의 모습이자 급변하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민하는 모습이다. 이쯤 되면, 왜 전시의 제목이 <찬란한 빛>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찬란한 빛은 그의 전시작들을 대조해서 볼 때 지극히 역설적이다. 그는 찬란한 빛의 현재 진행형이 아니라 결국 찬란했다 라는 말을 하고 싶어 한다. 한 순간 빛나고 찬란했지만 지금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만큼 더 많은 그늘을 만든 것에 대해서, 그 모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의 작업에 있어서 찬란했던 자본주의의 상징은 검은 그림자와 같은 어두운 망토로, 찌그러져서 원래의 목적인 길을 알려주는 것에서 벗어나 갈 길을 몰라 방황하도록 하는 등대로, 자국에선 역사와 자랑이지만 수많은 자본주의의 논리가 투입된 건축물들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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