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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립극단 정기공연 <불멸의 처>

  • 조회수 1,315
  • 작성자 임*영
  • 등록일 2008.03.20
인천시립극단이 새봄을 여는 정기공연으로 <불멸의 처>를 무대에 올립니다.
오는 4월11일부터 20일까지 종합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공연하는 <불멸의 처>는 고려말 공민왕과 왕비인 노국공주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극작가 이원경선생의 원작을 시립극단 이종훈 예술감독이 연출한다.

일시 : 2008.4.11 ~ 4.20
시간 : 평일 오후 7시30분, 토요일 4시/7시30분, 일요일 4시, 월요일 공연없음.
장소 :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
관람료 : 일반 15000원, 청소년 10000원
공연문의 : 032)420-2790 / 438-7775
자세한 사항 : www.artincheon.or.kr

#.작품소개
<불멸의 처>는 시공을 초월하여 가장 보편적인 주제인'사랑'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이다. 고려말이라는 시대배경을 바탕으로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애절한 사랑을 밀도있게 보여준다. 왕이 주도하는 궁중의 정치, 그리고 권력층의 치열한 다툼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극의 흐름에 따라 범패의식과 바라, 승무 등의 전통의식을 화려하게 재현한다. 특히 선택적 리얼리즘의 무대형식과 무용수의 춤을 통해 노국공주의 심정을 표현한 무용은 대사형식을 벗어나 무대와 관객의 소통하는 공연의 새로운 형식을 선사한다.
<불멸의 처>는 고려말의 복잡한 정치상황에는 그다지 무게를 두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사랑때문에 국사를 소홀히 한 공민왕의 실정을 탓하지도 않는다. 다만 왕위를 노리는 세력들의 위협을 무릅쓰면서, 또 실제로 심복의 칼날을 맞는 상황에서도 그가 간직하고자 했던 애절한 사랑의 원형을 그려낸다.

#.줄거리
고려의 31대 왕위에 오른 공민왕은 왕비인 노국공주가 난산 끝에 숨을 거두자 큰 충격과 비통함에 빠진다. 멀리 원나라에서 자신에게 시집온 공주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으로 공민왕은 정사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다. 공민왕은 노국공주를 위한 영전을 새로이 짓고 직접 그린 왕비의 초상을 건다. 아울러 승려 신돈을 불러 왕비를 위한 불공과 치성에만 전념한다.
태후와 재상들, 그리고 후궁인 익비가 왕조의 대를 이을 후사를 걱정하지만 공민왕은 젊은 동자를 익비의 침실로 보내 죽은 왕비에 대한 절개를 지킨다. 노국공주에 대한 공민왕의 성정을 헤아린 신돈은 왕비를 추모한다는 구실로 갖가지 권세를 부리고, 심지어 왕비가 환생했다며 왕의 눈과 귀를 현혹한다.
익비의 임신소식이 날아든 가운데 공민왕은 자신의 핏줄이 아니라며 자괴감에 빠져 어머니인 태후와 재상들의 충언을 따르지 않는다. 결국 공민왕은 환관인 최만생의 칼을 맞고 쓰러진다. 노국공주를 향한 연정을 가득 품은 공민왕은 죽어가면서도 왕비의 영전으로 가까이 가고자 몸부림치다 그녀의 초상앞에서 숨을 거둔다.

#.작가소개
이 원 경 / 극작가
- 이원경은 어려서부터 미술을 공부했으며, 미술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대학에 다니고 있던 1938년쯤 축지소극장에서 연극을 본 이후 연극과 인연을 맺어 극예술연구회 제5주년 기념공연 <춘향전>에 무대장치 작업에 참여하였다. 이것이 그가 본격적으로 연극을 하게 된 동기였다. 미술적 안목으로 연극에 참여함으로써 미술과 연극의 조화를 이뤄냈다. 그는 1941년에 만들어진 현대극장의 동인이 되어 창립 공연작으로 유치진 작 <흑룡강>의 무대장치를 맡았다.
1942년에는 <해적 프리헤이즈>라는 작품으로 문단에 등장한다. 이후 활발한 극작활동을 벌이며 드라마센터와 중앙대에서 후학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예술원상, 동랑연극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