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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예술 생태계를 위한
관객 지원 정책의 의의와 필요성

‘2023 국민문화예술활동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66.9%가 문화예술행사를 관람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지만,
상당수가 시간과 비용 문제로 관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에 청년문화예술패스, 통합문화이용권 등 관객 지원 정책이
등장하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관객 지원 정책의
필요성과 함께, 향후 나아갈 방향을 살펴본다.
글_박영정(한국예술경영학회 부회장)
문화예술정책 속
관객 지원 정책의 위치
예술에 대한 공공 지원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문예진흥법」이 제정된 1970년대 이후로 잡아도 벌써 50년이 넘었다. 그 사이 지원 예산의 규모도 크게 늘어났고 지원 대상과 방법도 다양화되었다. 문예진흥기금을 통한 창작 지원에서 시작된 문화예술정책이 이제는 유통 지원, 향유 지원, 예술인 복지 지원으로 확대되었다. 지원사업의 규모와 다양성으로 보면 어느 나라에도 못지않은 지원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자평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공적 지원을 매개로 예술에 개입하는 반문화적 블랙리스트 사태도 있었고, ‘공정한 지원’이 유지되고 있다 해도 예술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은 여전히 요원한 과제로 남아 있다. 어떻게 보면 지원사업이 확대될수록 공공 지원에 대한 의존성이 더욱 커지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제는 예술계에서 제기되는 새로운 의제조차 공공 지원의 형식으로 먼저 시도되는 등 공공 부문이 주도하고 독점하는 야릇한 상황에 이르렀다. 지금은 새로운 정책을 발굴하기에 앞서 문화예술정책의 전반에 대한 진단과 성찰을 기반으로 재정비를 해야 하는 시점이다.
문화예술정책의 기본 구조는 창작 지원, 유통 지원, 향유 지원 등의 세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지난 50년의 흐름은 대체로 창작 지원에서 시작하여 유통 지원과 향유 지원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관객 지원 정책은 향유 지원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향유 지원 정책의 기본 원리는 ‘접근성’이다. 더 많은 사람이 예술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접근성 정책이다. 이를 위해 공연장, 전시장, 박물관, 도서관 등의 문화시설을 확충하여 더 많은 사람이 생활권과 가까운 곳에서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하였고, 그다음으로 관람료 할인 제도나 관람료 보조 등 예술 향유에 대한 경제적 접근성을 높이는 정책이 나왔으며,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예술 향유 역량을 기르도록 하는 정책도 시행되고 있다. 본고에서는 공연이나 전시, 문학 독서 등 예술 향유 활동에 대한 경제적 장벽을 낮추어 접근성을 높이는 정책에 한정하여 ‘관객 지원 정책’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누리집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누리집 ⓒ한국예술인복지재단

2024 박물관·미술관 주간 ⓒ문화체육관광부, 국립박물관문화재단

2024 박물관·미술관 주간 ⓒ문화체육관광부, 국립박물관문화재단

관객 지원 정책의 기능과 종류
왜 관객을 지원해야 하는가. 예술의 공급원인 창작 활동을 지원하면 됐지 개인의 소비 활동이라 할 수 있는 관객의 향유 활동까지 지원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기본적인 논리는 예술 향유는 능력에 따라 누리는 선택적 권리가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이므로 모든 국민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공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논리는 예술의 공급이 이루어진다 해도 그를 소비할 수요 기반이 없으면 예술 자체의 존립에 한계가 있으므로 관객 개발의 관점에서 관객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자는 문화적 권리로서 예술 향유의 환경과 조건을 조성하는 접근성 정책으로 추진되어 왔으며 대표적인 사례로 ‘통합문화이용권 사업’이 있다. 후자는 예술 향유의 욕구에 기반하여 자발적으로 예술을 향유하는 ‘관객’을 지원하여 예술에 대한 수요 기반을 확대하며 강화해 나가는 정책으로 문화비 소득공제나 ‘사랑티켓 사업’이 대표적인 예이다. 문화예술교육도 관객의 예술 향유 역량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후자의 정책과 연관되어 있다.
관객의 예술 향유를 활성화하기 위한 모든 정책이 관객 지원 정책에 해당하는데, 이는 다시 재정의 투입 여부에 따라 직접 지원과 간접 지원으로 나눌 수 있다. 직접 지원이란 국고나 지방비, 문예진흥기금 등이 관객 또는 공연 관계자에 보조금의 형태로 전달되는 지원사업으로 사랑티켓이나 통합문화이용권, 청년문화예술패스 등이 해당한다. 사랑티켓은 티켓을 구매한 관객 1인당 정해진 보조금을 관객이 아닌 공연단체(제작자)에 제공하는 방식이고, 통합문화이용권이나 청년문화예술패스는 일종의 문화바우처로서 관객에게 일정한 보조금(포인트)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간접 지원이란 재정의 지출 없이 주어진 목적을 실현하는 지원사업으로서 문화비 소득공제나 ‘문화가 있는 날’, 그 밖의 다양한 법정 할인제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문화비 소득공제는 관객 스스로 예술 향유를 위해 지출한 문화비를 근거로 일정한 한도 내에서 과세 소득을 차감해 줌으로써 재정 지출 없이 감세를 통해 간접적으로 관객을 지원하는 제도이다.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으로 기업이 지출한 문화 접대비(공연, 스포츠 관람에 사용한 비용)를 세법상 비용으로 산입하여 기업에 감세 효과를 제공하는 제도가 있다.
(좌)문화누리카드 (우)청년문화예술패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좌)문화누리카드 (우)청년문화예술패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랑티켓으로 본 관객 지원 정책의 방향성
우리나라 문화예술정책에서 관객 지원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는 ‘사랑티켓 사업’이다. 경로 할인이나 장애인 할인, 군경 할인(최근에는 병역 명문가 할인) 등 법정 할인 정책은 해당 계층의 문화 향유를 촉진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되어 문화적 권리 신장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나 할인액만큼의 수입 감소에 대한 부담을 공연 제작자가 지는 구조이다. 그와 달리 사랑티켓은 관객에게는 할인된 금액으로 티켓을 구입할 수 있게 하고 공연 제작자에게는 할인된 금액만큼을 국가에서 보전해 주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야말로 관객에게는 관람료의 문턱을 낮추어 주고 공연 제작자에게는 안정된 수입을 보장해 주는 이중 효과가 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대상을 한정하지 않고 실제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에게만 혜택이 주어지는 방식이라 보조금의 누수가 없고, 이미 공연을 관람하려는 욕구가 있는 적극적 관객층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자발적・능동적 예술 향유를 더욱 강화하는 기능을 하였다. 요즘 같은 ‘회전문 관객’은 아닐지라도 핵심 관객층을 확대하면서 그 저변을 넓혀나가는 데 기여하였다. 공연 제작자의 입장에서도 입장료 수입의 손실 없이 제작이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해당 공연의 인지도와 마케팅 효과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사랑티켓은 관객과 공연 제작자를 동시에 지원하는 제도로서 공연계의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정책이었다.
이 점에서 사랑티켓은 통합문화이용권보다 문화비 소득공제와 유사한 정책 효과를 보여 준다. 문화비 소득공제는 예술 시장에 소비 주체로서 이미 들어와 있는 불특정 관객을 대상으로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므로 공연 제작자에게는 어떤 재정 부담도 지우지 않으면서 관객에게는 지원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랑티켓 사업은 국고 사업에서 복권 기금 사업으로 전환되면서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그 성격이 바뀌게 된다. 문화 소외 지역에서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었지만 서울에서는 24세 이하 청년과 65세 이상 노인으로 이용 대상을 한정하였고, 결과적으로 통합문화이용권과의 차별성이 약화되자 끝내는 폐지되는 운명을 맞았다.
모든 정책 사업은 자신의 존재 의의를 분명히 해야만 한다. 사업마다 그 사업이 담당하는 차별화된 역할이 없으면 다른 유사 사업에 통합되거나 폐지되고 만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랑티켓 사업은 여타 관객 지원사업과 명확히 다른 역할이 있었음에도 사업 운영기관은 물론이고 정책 관리자나 예술 현장에서도 그를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가 없었다.
반면 ‘통합문화이용권 사업’은 그 예산 규모가 수천억 원으로 확대되고 이용자의 수도 수백만 명에 이른다. 저소득층에 대한 문화 향유 지원이 근본 취지인데 그 이용자와 예술 향유 사이의 연결 고리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편이다. 통합문화이용권의 사용 대상이 예술 향유에 한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예산이 예술 향유에 사용되는 것도 아니다. 예술에 대한 공공 지원의 효과를 높이고 실제 예술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자면 사랑티켓과 같이 예술 생태계의 구체적 경로에 있는 관객에 대한 지원이 제대로 자리 잡을 필요가 있다. 당장 사랑티켓을 부활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사랑티켓처럼 예술 생태계와의 결합성이 높은 관객 지원 제도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좌)사랑티켓 포스터 (우)사랑티켓 사업 종료 안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좌)사랑티켓 포스터 (우)사랑티켓 사업 종료 안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객 지원 정책 발전을 위한 제언
정책이란 일정 정도의 국가 개입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예술의 자율성을 고려할 때 예술에 대한 지원 정책은 모두 없어져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예술 생태계는 취약하여 외부 지원인 공공 지원을 필요로 한다. 문제는 그 개입 방식이다. 어떻게 해야 예술의 자율성을 보호하면서 예술 생태계가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 ‘최선의 길’은 예술정책이 예술 생태계와의 결합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관객 지원 정책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과 관련하여 소소한 몇 가지를 제언한다면 다음과 같다. 우선 고려해야 할 사항은 이미 있는 정책을 잘 관리하여 지속해 나가자는 것이다. 예술정책은 안정적으로 지속될 때 운영의 효율성도 높아지고 정책 효과도 극대화된다. 좋은 정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정책에는 수많은 이해 관계자가 있기 때문에 존재론적으로 협업의 속성을 지닌다. 식물을 키우고 숲을 가꾸듯이 예술 정책, 관객 지원 정책을 좋은 정책으로 키워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자면 현재 진행되는 개별 정책 사업의 목적과 성격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통합문화이용권처럼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성격의 정책과 문화비 소득공제나 청년문화예술패스처럼 예술 향유의 수요를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책은 그 지향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사랑티켓을 부활시킬 필요는 없겠지만 관객과 공연 제작자에게 동시에 도움이 되고 지속 가능한 공연예술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힘이 되는 정책이 더욱 확대되면 좋을 것이다.
그러한 구분 위에서 이미 있는 정책 사업 간의 연계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연계성이라 하여 사업 대 사업을 직접 연결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전체 예술 생태계 내에서 해당 정책의 위치와 역할을 명확히 하는 관계 정립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정책과 예술 현장의 연계성도 높아질 것이다. 정책이 담당할 부분과 영역이 있고, 예술 현장이 담당할 부분과 영역이 있다. 예술 현장을 이해하고, 나아가 그 상황과 흐름에 보조를 맞춰 나갈 수 있는 정책이 중요한 것이다.
박영정
박영정(한국예술경영학회 부회장)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연수문화재단 대표이사,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이사 등을 거치며 정책연구와 행정 경험을 두루 쌓았다. 특히 예술인 복지 증진과 권리 보호, 문예회관 건립 및 운영, 문화비 소득공제, 남북문화교류 등 다양한 정책연구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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