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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관객의 삶과 가장 가까운 미술
지금, 여기의 일민미술관

멤버십 제도나 서포터즈 활동 등을 통해
관객과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친밀감을 높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신선한 전시 기획과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많은 관객이 즐겨 찾는
일민미술관의 윤율리 학예 팀장에게 지금 시대의
미술관 운영과 관객 저변 확대를 위한 방안을 물었다.
인터뷰이_ 윤율리(일민미술관 학예 팀장)
오늘날 관객의 삶을 보여주는
동시대 미술 전시
Q. 일민미술관의 특징과 하고 계신 업무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일민미술관의 학예 팀장으로서 미술관의 전시와 운영 방향을 설정하며 앞으로 미술관에서 다룰 주제를 탐색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미술관은 대개 소장품을 중심으로 전시를 기획한다거나 학구적인 주제를 깊이 있게 풀어내는 등 저마다 고유의 개성과 장점을 지니고 있는데 일민미술관만의 특장점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동시대 미술을 통해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2024년 6월까지 진행된 전시 <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를 예로 들어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대중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동시대적인 이슈나 일상생활에서 체감하는 삶의 변화에 대해 면밀하게 공부합니다. 최근에는 과거를 그리워하고 오래된 콘텐츠와 애수와 애상의 감정을 느끼는 경향이 대중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가수들이 신곡을 발표하기보다는 오래된 곡을 리메이크한다거나 예전에 개봉한 영화를 재개봉하는 일이 잦아진 것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이런 흐름을 보며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어제란 혹은 내일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경험한 적이 없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거기에서 파생되는 일종의 우울감을 ‘포에버리즘(Foeverism)’이라는 주제로 확장하여 동시대의 관련 미술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전시를 관람하는 분들도 오늘날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주제와 작품들이라고 공감해 주신 덕분에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일민미술관 외관 Ⓒ일민미술관

일민미술관 외관 Ⓒ일민미술관

<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포스터 및 전시 전경 Ⓒ일민미술관

<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포스터 및 전시 전경 Ⓒ일민미술관

더 많은 관객을 만나기 위해
관객의 삶에 더 깊이 들어가다
Q. 일민미술관에서는 전시 외에도 인문 강연, 작가와의 대화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런 프로그램이 미술관 운영이나 관객 확보 측면에서 어떻게 도움이 되나요?
미술관이 수행해야 하는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일민미술관은 사립 기관이다 보니 국공립 미술관처럼 모든 연령대를 아우르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기는 어려웠습니다. 일민미술관 학예팀에 교육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담당할 수 있는 미술관 에듀케이터(Museum Educator)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그래서 저희 학예팀 내에서 만들 수 있고 또 저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다 보니 ‘역자후기’ 등의 인문 강연과 ‘아티스트 토크’ 프로그램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일민미술관 1층 로비에는 ‘기둥서점’이 있습니다. 철학, 미학, 미술이론, 건축, 디자인 등 다양한 예술 서적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저도 학생 시절에 즐겨 찾곤 했는데요. 책이라는 매체나 서점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미술관의 교육적인 기능을 좀 더 강화할 수 있고 전시로는 할 수 없는 이야기도 다뤄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거나 미술을 더 깊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도 소개하고 싶었고요. 그래서 양질의 번역서를 소개하고 그 책을 번역한 번역가를 모셔서 이야기를 나누는 ‘역자후기’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사실 프로그램 초반에는 찾아 주시는 분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전문 서적의 번역 출간이 점점 어려워지다 보니 오히려 번역가를 통해 현장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어 하거나 좋은 책을 추천받고 싶어 하는 분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일종의 사명감을 지니고 진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역자후기 프로그램 현장 사진 Ⓒ일민미술관

역자후기 프로그램 현장 사진 Ⓒ일민미술관

역자후기 프로그램 현장 사진 Ⓒ일민미술관

역자후기 프로그램 현장 사진 Ⓒ일민미술관

미술관의 관객층을 확장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건 ‘아티스트 토크’입니다. 작가를 초대해 관객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으로, 토크 프로그램이라는 포맷 자체는 일반적이지만 그 내용을 관객이 정말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 궁금해할 만한 내용으로 잘 구성한다면 큰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미술대학·대학원 재학생을 위한 교육 투어 프로그램, 일민미술관의 유료 멤버십인 ‘IMA 멤버십’ 회원을 위한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티스트 토크 현장 사진 Ⓒ일민미술관

아티스트 토크 현장 사진 Ⓒ일민미술관

아티스트 토크 현장 사진 Ⓒ일민미술관

아티스트 토크 현장 사진 Ⓒ일민미술관

Q. 최근 관객층을 더 확장하거나 관객과의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해 멤버십 제도를 강화하는 미술관이 늘어나고 있어요. 일민미술관의 ‘IMA 멤버십’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요?
일민미술관은 ‘IMA 멤버십’ 회원에게 기획전 무료 관람, 전시 오프닝 초대, 멤버십 회원 전용 프로그램 참여 등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사실 멤버십 제도가 미술관의 운영 수익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미술관을 중심으로 다양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관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등의 여러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멤버십 혜택을 통해 관객의 재방문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미술관에 언제든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보니 이전 관람 때 눈여겨봤던 작품을 다시 보기 위해 미술관을 찾기도 합니다. 그리고 일민미술관이 위치한 광화문 근처에서 다른 일정이 있을 때 미술관에 가볍게 들르는 등 미술관을 부담 없이 방문하는 관객이 늘어났습니다. 또 긴 길이의 영상 작업이 전시에 포함되어 있을 때는 아무래도 시간상 영상 작업 전체를 한 번에 감상하기는 어려울 수가 있는데 멤버십 혜택을 활용해 미술관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영상 작업을 조금씩 나눠보는 관객분도 계시고요. 전시를 여러 번 여유롭게 관람하는 것이 가능해진 만큼 전시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큐레이터에게도 전시 내용을 전달하는 측면에서 굉장히 도움이 되는 혜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좀 더 다양한 관객이 전시를 관람하게 됩니다. 보통 관객분들은 평소 관심이 있는 작가나 특정 분야의 전시만을 주로 방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멤버십 회원이 되면 모든 기획전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므로 낯선 작가나 잘 알지 못하는 주제의 전시도 적극적으로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관람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멤버십 회원 전용 프로그램이나 전시 오프닝 리셉션 등을 통해 멤버십 회원분을 꾸준히 만나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대부분이 일민미술관의 멤버십 제도에 대해 만족도가 높은 편이고 연장률도 상당히 높습니다. 저희 학예팀의 큐레이터나 작가분과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는 것도 멤버십 제도를 만족해하시는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자주 오시는 관객분들은 저희 학예팀의 큐레이터 전부를 아시고 먼저 챙겨 주실 정도예요.
Q. 이제는 뉴스레터, SNS 등을 통해서도 미술관의 콘텐츠와 전시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온라인 공간에서 관객을 만날 때는 어떤 부분에 유의하시나요?
뉴스레터 관련 업무를 진행하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말을 건다는 게 결코 쉽지 않더라고요.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시는 분의 성향이나 뉴스레터를 열어 보시는 상황 등을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벽을 보고 말을 거는 듯한 답답함도 좀 느꼈습니다. 그래도 저희만의 노하우가 쌓이다 보니 뉴스레터 열람률이 많이 올라갔는데,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한 건 매뉴얼이었습니다.
미술관이든 다른 기관이든 뉴스레터, SNS 등으로 고객과 소통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담당자가 있는데, 그 담당자가 누구인지에 따라서 답변의 질이 달라지고 양식이 바뀐다면 미술관의 정체성과 신뢰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매뉴얼을 정비해서 미술관이 어떻게 응대해야 하는지, 어떤 절차를 거쳐 소통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촘촘하게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습니다. 최근에는 영어를 사용하는 관객의 비중도 높아져서 영어 매뉴얼도 제작했습니다.
소셜미디어도 계속 모니터링하면서 최근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요즘 인스타그램에서는 게시물을 업로드하는 대신 24시간 후면 사라지는 스토리를 자주 업로드하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게시물이 자주 올라오면 피로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도 들리고요. 이런 경향을 꾸준히 모니터링하면서 어떤 게시물을 올렸을 때, 어떤 방식의 콘텐츠를 발행했을 때 관객분이 좋아해 주실지에 대해 회의와 연구도 많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좌)일민미술관 뉴스레터, (우)일민미술관 인스타그램 Ⓒ일민미술관

(좌)일민미술관 뉴스레터, (우)일민미술관 인스타그램 Ⓒ일민미술관

Q. 앞으로의 일민미술관 운영 계획과 방향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일민미술관의 정체성에 맞되 오늘날 관객이 마주하는 현실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전시를 진정성 있는 방식으로 계속 꾸려나가고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일민미술관의 장점은 동시대 미술을 잘 다룬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대 미술을 중점적으로 다룰 때 자칫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는데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결과물이 나왔을 때 “이건 동시대 미술이기 때문에 지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당연한 거야. 시간이 흐르면 다들 이해해 줄 거야.”라고 변명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반응하다 보면 지금 이 시대의 관객이 체감하는 현실과 이슈를 제대로 다루기도 어려워질 겁니다.
그래서 일민미술관은 큐레이터 개인의 흥미나 관심사에서 시작된 전시보다는 일민미술관이 잘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전시 주제를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있습니다. 미술관의 정체성에 맞는 콘텐츠, 그 콘텐츠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방식 등을 찾기 위해 계속 연구하고 있고요. 그렇게 관객의 삶에 대한 관심과 미술관의 개성이 잘 어우러지는 전시를 만들었을 때, 관객의 만족도도 높고 전시도 더 좋게 평가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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