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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관객 해방의 시대
관객의 의미를 다시 질문하다

연극의 3요소는 희곡, 배우, 관객입니다.
극작가와 배우 등 창·제작진이 작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반면
관객은 작품을 향유하는 소극적인 방식으로만 참여할 수 있었는데
최근 들어 관객이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창작자와 직접 소통하고
공연예술 창·제작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해방은 보기와 행위 사이의 대립이 의문에 부쳐질 때 시작된다.”라고 한
프랑스 철학자 랑시에르의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수동적인 관람과 적극적인 행위의 사이, 지금 관객은 그 어느 지점에 있을까요?
글_김대현(에이스퀘어 편집위원장)
관객의 의미를
다시 정의해야 할 때
관객은 창작자 및 비평가와 함께 문화예술 생태계에 참여하고 있으나 그동안 아무도 그들의 존재를 묻지 않음으로써 오랜 시간 부재하는 것으로 취급되어 왔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직접 기입하며 적극적인 형식으로 문화예술 생태계에 참여하는 창작자나 비평가와 달리 관객은 익명성에 기댄 존재로 창작과 비평에 의해 생산되거나 재생산된 예술작품을 단순히 향유하는 소극적인 방식으로 참여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는 문화예술 정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 고유의 개성을 지닌 창작자나 비평가와 달리 익명의 군중으로 표상되는 관객은 정책 설계자에 의해 표준화된 욕망과 취향을 가진 단일한 집단으로 설정되어 섬세한 정책적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흐름이 달라졌습니다. 관객은 더 이상 단순히 익명에 기반한 소극적인 참여자가 아닙니다. TV 드라마나 웹소설·웹툰처럼 플랫폼을 통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작품에 대한 의견 개진은 창작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작품의 서사나 형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공연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진 마니아 팬덤은 제작자나 연출가가 아님에도 배우의 출연과 하차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여 이를 실현해 내기도 합니다. 요컨대 지금의 관객은 단순히 수동적인 향유자가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를 겸하는 이른바 ‘프로슈머(Prosumer)’로서 문화예술 생태계에 실천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에이스퀘어> 11호에서는 이처럼 다양하게 변화한 관객의 양상에 주목하고 시대의 흐름에 따른 관객의 의미 변천과 현대적 특징을 비롯하여 관객이 문화예술을 소비하는 이유를 사회심리학적으로 접근해 보았습니다. 이와 함께 문화예술지원기관의 관객 개발 정책을 점검하고 예술 장르별 관객의 소비 양상과 특징에 대한 제언을 들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흐름에 대한 관객의 소리를 직접 청취한 대담을 게재하고 관객의 다양한 수요를 포집하여 관객의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는 문화예술단체의 의견을 수록하여 오늘날 문화예술의 장에서 관객은 어떤 양상으로 기능하는가에 대해 논의하고자 합니다.
관객과 긴밀하게 소통하는
문화예술 현장을 꿈꾸며
SQUARE에서는 ‘우리 시대의 관객과 앞으로의 관객 개발 방안’을 주제로 도합 일곱 편의 글을 게재하였습니다. 심보선의 ‘모두를 위한 예술을 넘어 관객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에서는 “모두를 위한 예술”이라는 슬로건처럼 정책적 지원을 통한 접근성의 확대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관객의 예술적 향유의 기회가 늘어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것은 제도적 예술 공간에 국한되어 있으며 그마저도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제한되어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문화민주주의를 위해서는 관객을 근대적인 인구 모형에 따라 숫자나 범주로 접근하는 것을 지양하고 개개의 관객 고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 진정한 관객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박준성의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관객의 문화예술 소비 심리’에서는 예술작품이 심미적 목적과 함께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공공재로 분류하며 관객이 이를 소비하는 까닭을 예술작품을 통한 자기 인식과 향상의 과정으로 충만한 삶에 이를 수 있다는 동경에 있다고 적시합니다. 또한 문화예술의 소비 양태는 물질적 소유에 중심을 두는 것이 아닌 사회적 가치가 부여된 삶에 대한 경험 그 자체에 방점을 두고 있으므로 문화예술은 관객에게 감각적이거나 심미적 만족을 부여하는 것을 넘어 관객 스스로의 실존을 확인하고 자신을 향상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습니다.
박영정의 ‘건강한 예술 생태계를 위한 관객 지원 정책의 의의와 필요성’에서는 향유 지원정책의 목적을 누구나 예술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보편적 권리의 실현을 위한 접근성 강화 정책과 자발적으로 예술을 향유하는 관객을 지원하여 예술의 수요 기반을 확대하는 정책으로 구분하며 양자의 대표적 사례로 통합문화이용권 사업과 사랑티켓 사업을 제시합니다. 이어 정책 수행 과정에서 양자의 차이와 역할에 대한 인식의 미흡으로 예술 생태계와의 결합성이 높은 사랑티켓 정책이 폐지된 것을 적시하며 관객 지원정책의 목적과 성격을 적확히 인식하고 정책 간의 연계를 통해 각 정책의 역할과 위치를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도준태의 ‘예술의전당 데이터로 살펴본 공연 소비 양상과 공연시장 전망’에서는 예술의전당 관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클래식, 뮤지컬, 연극, 무용 등 각 공연 시장에 대한 관객의 소비 양상과 공연 관람 행태를 분석하였습니다. 또한 어느 공연 장르에서나 여성 관객이 다수를 점유하고 있음을 확인하며 기존 관객의 높은 충성도로 인해 안정적인 모객이 가능한 것을 강점으로 파악했습니다. 이와 함께 지속적인 가격 상승으로 인한 관객의 감소 추세를 시장의 불안 요소로 지적하고 스타 캐스팅에 의존하지 않는 성숙한 관람 문화의 확산과 새로운 관객층 개발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조소현의 ‘국내 미술시장 성장의 동력, 미술 전시 관람객 현황 분석’에서는 최근 급격히 활황세로 들어선 미술시장의 관객 구조와 특징을 『미술시장 소비자 조사』를 토대로 분석하였습니다. 인구학적으로 파악할 때 여성이 전시 관람객의 다수를 이루고 있고 연령대로는 이른바 엠제트(MZ)세대로 지칭되는 세대가 미술시장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이들의 특징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작가의 인지도나 전시의 화제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밝힙니다. 나아가 이러한 흐름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관객의 시각예술에 대한 이해도와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과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첨언하고 있습니다.
김동혁의 ‘오늘날 문학 독자는 누구인가, 독자 특성 및 독자 개발 사례 분석’에서는 앞서 언급한 공연・미술시장과 마찬가지로 출판시장에서도 여성이 독자층의 중핵을 이루고 있다고 밝히며 코로나19 팬데믹, 경제 위기 등으로 인한 불안감을 치유하는 이른바 힐링 소설의 강세에 대해 분석했습니다. 이와 함께 “독자가 책을 어떻게 찾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급감하고 있는 독서율의 회복 및 독자층의 확대를 위한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도서에 대한 정보를 독자에게 인지시키는 이른바 ‘도서 발견’의 기회를 제공하며 출판사가 도서 출간 전에 예상 독자를 발견하고 콘텐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비독자를 독자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배혜리의 ‘공연계에 유입된 팬덤 문화, 관객층 확장의 계기가 되려면’에서는 다회차 관람 등의 반복 소비와 이에 따른 충실한 피드백을 통해 공연의 흥행을 견인하고 때로는 이러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제작사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졌던 제작-기획-홍보의 단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간혹 제작사를 견제함으로써 공연시장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은 팬덤 문화에 대해 분석하였습니다. 나아가 팬덤 문화가 장기적으로 공연 관객층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팬덤과 소통을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팬덤이 정서적 일체감을 가질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며, 공연장 바깥에서도 공연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정보를 공유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AROUND에서는 ‘예술이 삶의 일부분이 되다-공연 마니아 관객 대담’이라는 주제하에 박병성 편집위원의 사회로 이현식 클래식 마니아, 전수진 무용(발레)마니아, 연극․뮤지컬 마니아 ‘총총’과 ‘백로’를 모시고 대담을 진행하였습니다. 각 공연 장르의 매력과 그에 따라 마니아가 된 경로, 일반 관객과 마니아의 차이, 마니아가 공연을 선택하는 기준 및 소비하는 방식과 그에 따른 영향력 그리고 마니아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공연시장의 현황과 문화향유정책에 대한 생각 등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흥미로운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관련 내용이 궁금한 분께는 일독을 권합니다.
SCENE에서는 ‘관객의 삶과 가장 가까운 미술-지금, 여기의 일민미술관’이라는 제목으로 윤율리 일민미술관 학예 팀장과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일민미술관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동시대 미술을 통해서 보여준다’는 것을 모토로 관객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동시대 이슈와 그에 조응하는 동시대 미술을 발굴하고 이를 전시한다고 합니다. 이와 함께 아티스트 토크, 인문 강연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멤버십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미술관에 대한 회원의 만족도를 높이면서도 미술관의 개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는 과정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FLOW에서는 ‘새로운 시도로 예술 향유의 문턱을 낮추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심리적 장벽으로 인해 접근이 어려운 예술 분야에서 개성 넘치는 홍보를 통해 새로운 관객층을 개척하는 사람들의 활동에 주목하였습니다. 기존 미술시장의 바깥에 있던 관객에 착안하여 그들의 삶에 대한 치열한 연구를 통해 일상에서 좋은 예술을 경험하고 구매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한 ‘핀즐’의 허재희 디렉터, 서점이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에 지나는 것이 아니라 책이 있는 공간이 제공할 수 있는 정서 유대 기능에 주목하여 창작자를 지원하고 독자가 함께 문학을 읽는 ‘경험’을 제공하는 ‘소전서림’의 황보유미 관장, 연미복을 입은 중장년층과 엄격한 공연 매너와 높은 티켓 가격으로 상징되는 클래식 공연의 이미지를 무대 뒤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청년층이 친숙한 게임 업계와의 협업 등으로 파격적이고 도전적인 홍보를 통해 젊은 층의 참여를 이끌어낸 이미라 KBS교향악단 과장의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설문과 통계를 통해 문화예술시장의 현황을 분석하는 PRISM이 특집 원고의 증가로 인해 이번 호에 게재되지 못한 점을 양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너그러운 이해를 바랍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랑시에르(Jacques Ranciere)는 관객의 해방은 “보기와 행위 사이의 대립이 의문에 부쳐질 때 시작된다.”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는 무대를 경계로 배우와 관객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던 과거와 달리 배우의 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이 무엇인지 전할 수 있는 오늘날의 관객을 떠올리게 합니다. 관객은 이제 더는 창작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창작과 함께 문화예술 생태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능동적인 행위자입니다. 또한 관객은 평균적인 욕망을 가진 단일한 집단이 아니라 각자 고유의 특성을 보유한 개인들의 통칭입니다. 이것이 관객의 의미에 대한 섬세한 접근을 통해 새로운 관객을 발견하고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김대현
김대현(에이스퀘어 편집위원장)

2011년 ‘플랫폼’ 문화비평상, 2012 ‘실천문학’ 문학평론 신인상을 수상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청색종이’ 편집주간, ‘뉴래디컬리뷰’ 편집위원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 『당신의 징표-이름의 존재론과 성의 정치학』, 『불온한 제국』, 『이소선의 기억과 기록(편저)』, 『전태일의 친구들(편저)』, 『법정에서 만난 역사(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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