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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예술이 삶의 일부분이 되다
공연 마니아 관객 대담

관객의 역할이 바뀌고 있다.
더 이상 수동적인 관람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향유자로 변모한
마니아 관객은 공연예술 시장에서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애호가의 수준을 넘어 삶의 일부분으로서 공연예술을 즐기는
마니아 관객 4명에게 마니아 관객의 특성과
오늘날의 공연시장 현황에 대해 물었다.
참여자_ 박병성·전수진·백로·익명·총총
  • 좌장_박병성

    박병성

    좌장·공연 칼럼니스트

  • 참여자_총총

    총총

    연극·뮤지컬 마니아

  • 참여자_익명

    익명

    클래식 마니아

  • 참여자_전수진

    전수진

    무용(발레) 마니아

  • 참여자_백로

    백로

    연극·뮤지컬 마니아

ROUND 1

관객, 마니아가 되다
Q. 공연예술 마니아가 된 계기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공연예술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총총 저는 영화나 뮤지컬의 원작을 궁금해하는 편이라 동명의 작품이 있으면 종종 보러가곤 했어요. 그러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를 보게 되었고, 그때 홍광호 배우에게 입덕1 했고요.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빠지게 된 계기는 창작뮤지컬 <글루미데이>였어요. 현재 <사의찬미>라는 이름으로 공연 중인 뮤지컬의 초연이었는데 덕분에 공연 하나를 만들기 위해 배우를 비롯한 창·제작진이 얼마나 공을 들이고 노력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같은 공연이라도 초연과 재연이 다르고, 같은 배우가 연기하더라도 회차마다 공연이 다르다는 것도 매력적이었어요. 라이브로 진행되다 보니 배우의 연기적인 표현이나 대사, 노래 등 미세한 부분이 공연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거든요. 그 매력에 빠져 지금은 1주일에 7~8회 연극·뮤지컬을 보고 있습니다.
백로 저는 책을 좋아하는데 독서와 공연 관람은 비슷하지만 다른 매력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독서는 작가와 독자가 일대일로 대담하는 활동이라면 공연 관람은 공연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과 함께 토론하는 것과 비슷해요. 대본이나 원작을 창·제작진이 어떤 방향으로 해석해 공연을 만들었는지, 여러 배우가 같은 배역을 맡았을 때 배우마다 캐릭터에 대한 이해나 표현 방식은 또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는 게 즐거워요. 현실에서 겪어보지 못한 일이나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완전히 몰입하는 경험 자체가 주는 재미도 있고요. 이러한 경험이 일상생활에 에너지를 주기도 합니다. 저는 보통 주 3회 정도, 많게는 매일 공연을 보고 있고요. 연극·뮤지컬 외에도 다양한 장르를 두루 관람하고 있습니다.
전수진 원래 발레를 좋아하고 동경했지만 본격적인 마니아가 된 건 취미 발레를 시작하고 나서예요. 직업상 책상에 오래 앉아 있다 보니 어깨와 허리에 통증이 있어 운동을 해야 했는데, 헬스 말고 새로운 운동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발레를 직접 해보니 발레를 보는 눈도 바뀌더라고요. 사실 우리가 사는 현실과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잖아요. 현실은 아름답지만은 않고 때때로 가슴 아픈 일도 많이 벌어지곤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인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걸 발레를 통해서 느끼고 거기에서 위로를 받아요. 또 그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그저 운 좋게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무용수가 오랫동안 부단히 치열하게 연습한 끝에 완성해 낸 예술이라는 점도 감동적이고요. 발레 마니아가 된 지는 10년 정도 됐고, 최근에는 해외 발레단의 공연도 보러 가고 있습니다.
익명 저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세종문화회관의 음악회에 몇 번 갔습니다. 그런데 집안 형편상 공연장에 자주 못 가게 되었을 때, 저명한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이 베를린필하모닉과 함께 내한했어요. 카라얀의 공연을 꼭 보고 싶어서 어렵게 돈을 모았지만 결국 표를 구할 수 없었는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카라얀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 그 공연을 보지 못한 게 무척 한이 되어서 그 후로 클래식 공연을 더 적극적으로 보러 다니게 되었어요. 그게 1984년의 일이니 벌써 40년이 넘었네요. 제게 공연이란 교회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공연예술의 아름다움이 일종의 숭고함을 느끼게 하고, 종교적인 기능을 한다고 할까요. 사람들과 부대끼던 일상을 잠시 잊고 아름다운 공연을 감상하다 보면 제 영혼까지 깨끗해지는 기분이에요.
뮤지컬 <글루미데이> (좌)포스터 (우)공연사진 ©네오프로덕션

뮤지컬 <글루미데이> (좌)포스터 (우)공연사진 ©네오프로덕션

1982년 카라얀 내한 공연 기사 ©동아일보(1984.10.18.)

1982년 카라얀 내한 공연 기사 ©동아일보(1984.10.18.)

Q. 일반 관객과 마니아 관객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장르별 마니아의 특징도 궁금합니다.
백로 마니아란 ‘좋아하는 것을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뮤지컬 마니아의 특징으로 흔히 언급되는 점은 같은 공연을 반복해서 여러 번 관람하는 ‘다회차 관람’을 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다회차 관람도 자신이 좋아하는 공연을 자기 취향에 맞춰서, 자기 방식대로 더 깊게 즐기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겠죠.
총총 동의합니다. 하지만 관람 횟수가 작품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의 척도와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작품을 아무리 좋아해도 마음껏 관람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부족할 수 있고 여러 사정이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저는 마니아란 ‘본인의 취향이 확고하고, 그 취향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사람’이라고 덧붙이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창작 뮤지컬이 초연할 때는 공연에 대한 사전 정보가 거의 없습니다. 이 공연이 과연 어떤 내용일지, 자신의 취향에 맞을지 전혀 알 수 없지만 마니아는 대개 관람을 망설이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찾아내려고 하죠.
익명 공연을 보려면 시간과 돈을 많이 들여야 하는 만큼, ‘좋아하는 것을 위해 자기 생활의 일정 부분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마니아가 되는 것 같아요. 자기 일정에 맞는 공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공연 일정에 자기 생활을 맞추는 거죠.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국내외로 여행을 가거나 여행 중 여유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공연장을 찾는 경우도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국내에서는 클래식 공연 마니아와 클래식 음악 마니아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클래식 음반을 즐겨 듣더라도 공연장에는 방문한 적이 없는 사람이나 해외 유명 연주자가 내한할 때만 공연장을 찾는 사람도 제법 있는 것으로 압니다. 최근에는 클래식 공연장을 찾는 마니아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전수진 발레 마니아도 공연 일정에 맞춰서 일정을 짜는 경향이 있어요. 특히 발레는 언어가 필요 없고, 좋아하는 무용수를 따라 작품을 관람하는 마니아가 많다 보니 해외 공연도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편입니다. 얼마 전 5월에 열린 <발레슈프림(Ballet Supreme) 2024> 공연에서도 외국인 관객 10명을 만났어요. 그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요, 공연 당일 오전에 이분들을 제가 다니는 발레 학원에서 이미 만난 거예요. 발레 마니아 중에는 발레를 배우는 사람이 많다 보니, 무용수의 발레를 보는 시간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발레를 하는 시간까지 고려해서 일정을 계획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저녁에 발레 공연을 관람하는 경우, 꼭 점심에 시간을 내어 발레를 하고 있어요.

ROUND 2

공연예술 마니아의
공연 관람·소비 행태 분석
Q. 공연 전후로 마니아 관객이 공연을 소비하고 향유하는 방식을 소개해 주세요.
익명 연말마다 서울시향이나 KBS 교향악단 등 오케스트라에서 내년 한 해 동안의 프로그램 라인업을 발표합니다. 이때 선호하는 단체의 티켓을 미리 구입하며 일 년간 전체적인 공연 관람 스케줄을 짜요. 이후 추가적인 공연 일정이 발표되면 미리 예매해 둔 표나 일정을 고려해서 관람 일정을 유동적으로 조절합니다. 연극·뮤지컬 마니아는 다회차 관람을 많이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클래식 공연은 같은 공연을 여러 번 보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공연 첫날과 이튿날 연주하는 곡이 조금 다르다고 해도 이틀 모두 관람하는 경우는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백로 연극·뮤지컬도 연말 연초에 한 해의 라인업이 발표돼요. 올라오는 공연의 수가 워낙 많고 라인업에 없었던 공연이 갑작스럽게 공개되는 경우도 많아서 관람 일정을 일주일에도 몇 번씩 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극이나 뮤지컬은 원작이 있거나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많다 보니 관람 전후로 원작이나 관련된 내용을 찾아보기도 하고요. 주로 엑스(X, 구 트위터) 등의 소셜미디어에 공연 후기를 올리는 마니아가 많고, 감상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서 엠디(MD)를 제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총총 연극이나 뮤지컬은 공연 시기를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한 편이라고 생각해요. 초연 공연을 기준으로 몇 주년을 기념하는 경우도 많고, 원작이나 실존 인물과 관련된 연도에 맞춰 공연을 올리기도 하거든요. 예를 들어 뮤지컬 <사의찬미>는 1926년 8월 4일에 한국 최초 여성 성악가인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이 대한해협에 몸을 던진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100주년인 2026년에는 반드시 공연이 올라올 텐데, 보통 연극·뮤지컬은 2년을 주기로 올라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 100주년을 2년 앞둔 2024년 올해는 아마 공연을 하지 않을까 하는 식으로 예상하는 거죠. 연말 연초에 발표된 라인업을 포함해 이런 점까지 고려해서 큰 틀에서 공연 관람 계획을 세우고, 캐스팅이 발표되면 실제로 공연을 언제 몇 번 볼 건지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편입니다.
KBS교향악단 2024시즌 라인업 ⒸKBS교향악단

KBS교향악단 2024시즌 라인업 ⒸKBS교향악단

EMK뮤지컬컴퍼니 2024년 뮤지컬 라인업 ⒸEMK뮤지컬컴퍼니

EMK뮤지컬컴퍼니 2024년 뮤지컬 라인업 ⒸEMK뮤지컬컴퍼니

전수진 발레는 연극·뮤지컬에 비해 올라오는 공연의 수가 적다 보니, 공연 일정이 겹쳐서 보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공연 일정은 무용단 공식 누리집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발표되지만, 공식적인 발표 전에 무용수의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힌트를 얻는 경우도 많습니다. 무용수들이 올린 리허설 사진이나 연습 영상을 보면서 ‘이 작품을 왜 연습하고 있는 걸까,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짐작해 보곤 하죠. 공연 관람 전에는 원작이나 안무가에 대해 찾아봅니다. 5월 초에 있었던 국립발레단 <인어공주>는 관람 전에 미리 안데르센의 원작을 읽고,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John Neumeier)에 대해 공부했어요. 공연을 보고 난 뒤에는 샌프란시스코발레단에서 공연한 <인어공주> 영상도 찾아봤고요.
Q. 마니아 관객은 어떤 기준으로 관람할 작품을 선택하고 티켓을 구매하나요?
백로 제작사가 진행하는 이벤트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연극·뮤지컬은 공연을 일정 횟수 이상 관람하면 증정품이나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이벤트가 많아요. 그 중에서도 대본집이나 악보집 등 작품의 내용과 깊게 연관된 증정품을 준다고 하면 가능한 한 받으려고 합니다. 공연 종료 후에 창작진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등 작품에 대해 좀더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이벤트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이에요.
총총 티켓 가격도 중요하죠. 티켓 가격이 합리적이고 할인 혜택도 있다면 계획에 없더라도 한두 번은 관람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공연의 홍보물이나 제작사의 마케팅, 공식 소셜미디어에서 자신들의 작품에 대한 애정과 진심이 느껴지면 저도 관심을 갖고 관람하게 돼요. 뮤지컬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나 최근 화제가 된 뮤지컬 <난쟁이들>처럼요. 그리고 여성이 주인공인 ‘여성 서사’ 작품은 꼭 보러 갑니다. 여성이 주인공인 연극·뮤지컬 작품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그래서 그런 여성 서사 작품이 내후년에도 올라오고, 앞으로도 활발하게 창작되기를 바라며 응원하는 마음으로 보게 됩니다. 마음의 빚을 갚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뮤지컬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 이벤트 영상 Ⓒ공연제작사 랑

전수진 발레계에서도 새로운 여성 서사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저도 응원과 연대의 의미로 신진 안무가의 작품을 꼭 챙겨보고 있고요. 춤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발레의 특성상,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뛰어난 실력을 지닌 안무가를 육성하는 게 중요해요. 국립발레단의 안무가 육성 프로그램 ‘KNB 무브먼트 시리즈’도 뛰어난 안무가를 다수 배출했는데, 특히 강효형 안무가의 창작 발레 <호이 랑>은 국립발레단의 공식 레퍼토리로 자리 잡기도 했습니다. 더 많은 신진 안무가가 활발하게 작품을 창작하고, 발레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도록 저도 응원하는 마음으로 제 개인 소셜미디어를 통해 신진 안무가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고요.
익명 좋은 취지네요. 지지와 연대의 의미로 공연장을 찾는 일은 클래식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클래식 공연은 할인도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티켓을 할인한다고 해서 계획에 없던 공연을 보러 가지도 않고요. 하지만 티켓 가격이 너무 높으면 관람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죠. 2023년 11월에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 여러 곳이 한꺼번에 내한했는데요, 티켓값이 전부 30만~50만 원씩 하다 보니 여러 공연을 관람하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웠습니다.
(좌)KBN무브먼트 시리즈 포스터, (우) <호이 랑> 공연 사진 Ⓒ국립발레단

(좌)KBN무브먼트 시리즈 포스터, (우) <호이 랑> 공연 사진 Ⓒ국립발레단

Q. 마니아 관객이 공연시장에 끼치는 영향력이 있나요?
백로 대학로 연극·뮤지컬은 제작사가 마니아의 트렌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아요. 무용이나 클래식에 비해 연극·뮤지컬은 공연 기간이 길다 보니 공연 기간 중에 마니아 관객의 후기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서 공연에 일부 반영하는 건 아닌지 의심되는 경우도 있고, 캐스팅이나 창작 연극·뮤지컬의 소재에도 일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관객마다 취향과 의견이 다르기 마련인데, 자칫 일부 관객의 편향된 감상이 작품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을지 우려되는 부분도 있어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일부 후기가 마치 모든 관객의 의견인 것처럼 확산된다면 그와 다른 의견을 가진 관객이 자신만의 감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도 어려워질 테고요.
총총 이미 마니아층이 탄탄한 공연보다 창작 초연 연극·뮤지컬은 마니아의 후기가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게다가 최근에 티켓값이 많이 오르다 보니 마니아 관객도 이전보다 더 신중한 태도로 공연을 예매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때 아무래도 다른 관객의 후기를 참고하게 되는데, 편향되고 부정적인 후기가 널리 퍼지면 공연의 흥행에도 영향을 줄 수 있겠죠. 저도 실제로 공연을 보기 전에 부정적인 후기를 접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공연을 관람하고 나니 ‘이 공연이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나쁜가?’ 하는 의구심이 들더라고요. 생산적인 피드백을 통해 일부 요소가 보완된다면 더 좋은 작품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작품인데, 일부 공격적인 후기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까 봐 걱정됩니다.
익명 클래식 공연은 마니아의 후기가 홍보에는 일정 부분 도움이 되지만, 공연의 흥행을 크게 좌우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클래식 공연은 연극·뮤지컬과는 반대로 관객이 후기를 잘 남기지 않는 편입니다. 자신이 듣기에 이 공연이 어땠고 어떤 점이 좋았으며 어느 부분이 아쉬웠는지 감상을 남기는 걸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주로 일부 유명한 클래식 마니아를 중심으로 후기가 생산되는데, 저는 오히려 그런 부분이 우려됩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비판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긍정적인 평가만 확산되는 것 같아요.
전수진 최근 한 신예 무용수가 무분별한 비난 글 때문에 힘들어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안 좋았어요. 익명 뒤에 숨어 비난을 일삼는 행태는 지양해야 합니다. 하지만 마니아의 활동이 작품에 긍정적인 역할을 미치는 경우도 많아요. 관람 전후로 공연에 대한 정보를 열심히 찾아보고 그 내용을 블로그 등에 정리해 두는 마니아가 많거든요. 그 글을 보고 공연에 관심을 갖게 되거나 관람 전에 정보를 얻어가는 관객도 꽤 있을 겁니다. 자신의 감상과 비교하며 새로운 해석을 얻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요. 그리고 마니아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널리 알리고 함께 나누는 데 굉장히 적극적이에요. 이를 위해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이벤트를 개최하기도 해요. 저도 작년에 더 많은 사람이 국립발레단의 <지젤>을 관람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티셔츠 엠디상품을 선물하는 이벤트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총총 저는 아예 공연 티켓을 사서 나눠주기도 해요. 주로 엑스(X, 구 트위터)에서 자주 진행하는데요, 제작사에서 진행하는 초대권 이벤트처럼 이벤트 글을 리트윗(RT)한 사람 중 무작위로 몇 명을 뽑아서 티켓을 선물하는 거예요. 당첨자와 관람 일정을 조율하기도 하고, 제가 보여주고 싶은 페어 의 표를 드리기도 합니다. 그냥 이 공연이 정말 좋기 때문에 좋은 걸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저 말고도 다른 분들도 비슷한 이벤트를 많이 진행하시는데 이런 점에서는 마니아가 공연 홍보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ROUND 3

공연예술 마니아가 바라본
공연시장의 현황과 문화 향유 정책
Q. 공연예술 마니아로서 관객층 확대를 위한 정부의 문화 향유 정책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익명 사실 마니아는 정부의 문화 향유 지원정책이 없어도 이미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자발적으로 공연을 관람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정책의 효과를 크게 체감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공연에 이제 막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에게는 정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특히 클래식은 클래식을 좋아해서 음반은 자주 구매해도 연주회에 가본 적은 없는 사람의 비율이 꽤 높을 거예요. 연주회에 함께 갈 사람이 없어서 선뜻 방문하기가 부담스럽다는 분들도 있고요. 관심은 있지만 아직 소극적인 관객을 적극적인 향유자로 끌어당기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이 적절하게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총총 연극·뮤지컬 공연은 코로나19 대유행 때 정말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때 마니아 관객이 급격하게 증가했어요. 다른 외부 활동이 어려워지며 공연예술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생겼고, 침체된 공연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기획된 ‘소중한 일상, 소중한 문화티켓’, 일명 ‘소소티켓’ 정책을 지원하면서 접근성이 높아진 덕분이기도 해요. 새로운 관객층을 유입하는 데는 정부의 정책이 확실하게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연극·뮤지컬의 지방 공연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데 개인적으로는 무척 반갑습니다. 내용이나 만듦새가 좋은 공연, 제가 좋아하는 공연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연극·뮤지컬뿐만 아니라 클래식, 무용 등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장르를 접할 수 있는 창구 자체가 늘어나야 해요.
전수진 확실한 건 정부의 정책을 통해 마니아를 육성할 수는 없다는 거예요. 하지만 공연예술을 접하기 쉬운 환경을 조성할 수는 있을 겁니다. “말을 물가로 데려갈 수는 있어도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라는 속담이 떠오르네요. 물을 마실지 말지는 말이 선택하겠지만, 어쨌든 물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건 중요해요. 그것만으로도 관객이 많이 늘어나지 않을까요?

소소티켓 캠페인 영상 Ⓒ예술경영지원센터

Q. 공연시장의 더 큰 성장을 위해 어떤 것이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백로 정부의 다양한 문화 향유 정책이나 제작사의 스타 마케팅 등은 새로운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죠. 물론 새로운 관객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그에 못지 않게 ‘이 관객을 어떻게 하면 공연시장에 오래 머물게 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라고 생각해요. 마니아의 수준도 질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공연에 대해 좀 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감상을 건강하게 나눌 수 있을 때 마니아도 공연예술을 오랫동안 행복하게 즐길 수 있으니까요. 성숙한 비평 문화를 위해 관련된 강의나 교육을 더 쉽게 접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그런 기회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익명 클래식 공연은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가 내한할 때 꼭 스폰서가 함께하는데, 스폰서는 후원의 대가로 다량의 티켓을 받아가요. 혹은 자사 기업이나 고객을 위한 공연 회차를 별도로 마련하기도 하고요.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가고 싶어도 티켓을 구하지 못해서 갈 수 없는 공연인데, 막상 가보면 자리가 비어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기업을 통해 초대권을 받았지만 공연에 흥미가 없어 아예 오지 않은 거죠. 미국이나 유럽에서 스폰서는 오케스트라 초청비나 공연 제작비만 지원하지 티켓은 대량으로 가져가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명예를 얻죠. 공연을 정말로 좋아하는 관객에게 기회가 갈 수 있도록 국내 기업도 변화하면 좋겠습니다.
전수진 국내 예술계에서는 아직 상업적인 시도를 꺼리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특히 무용계는 더 그렇고요. 저는 발레 마니아로서 연극·뮤지컬 장르가 정말 부러운데요. 제작사가 다양한 엠디상품을 적극적으로 제작하고 판매한다는 점 때문이에요. 일본 발레단은 엠디상품을 정말 아름답고 호화롭게 만들거든요. 파리오페라단이 일본에서 <마농> 공연을 했을 때, 프로그램북이 무려 5,000엔이나 했어요. 비싸지만 디자인도 아름답고 내용도 충실해서 홀린 듯이 구매했던 적이 있어요. 국내 발레단도 다양한 엠디상품을 통해 부가적인 수익을 확보하고, 그 수익을 다시 무용수에게 투자한다면 선순환이 되지 않을까요? 많은 예술단체가 돈 버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좀 더 다양한 시도를 하길 바라요. 수익 사업을 통해 운영이 안정화되면 신진 안무가의 육성과 창작 레퍼토리의 개발도 더 적극적으로 시도할 수 있을 거고요. 결과적으로는 관객이 접하는 문화예술도 더 풍요로워질 겁니다.
  1. 어떤 분야나 사람을 열정적으로 좋아하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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