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1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윤석열 대통령은 내란죄 피의자로 수사 대상이 되었다. 모든 미디어에서 ‘하야’, ‘탄핵’, ‘임기 단축’ 중에서 무엇이 적절한가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고 있다. 실시간 뉴스에서는 2025년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죄 수사를 위한 ‘상설 특검 예산’이 편성되었다는 속보가 자막으로 지나가고 있다. 2025년 문화예산은 고사하고 2025년 국정 운영 자체가 말 그대로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산으로 보는 2025 문화예술정책의 변화’라는 주제의 글을 쓰는 것이 필요할까? 국가 자체의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독자들이 이 글을 읽을 때면 ‘지난 정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정부의 예산안을 검토하고 변화를 분석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필자의 결론은 ‘있다’이다. 물론 필자가 대단한 예지력이나 혜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이 글의 핵심 내용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정부의 성격과 무관하게 ‘문화예산’과 관련하여 정책 자체를 수립해 본 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문화예산은 언제나 집권 세력에게는 통치를 위한 ‘쌈짓돈’이었고, 문화예술 현장에서는 (자신의 작업과 장르와 같은 이해관계에 종속된) ‘증액’ 혹은 ‘감액’의 관점에서만 유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문화예산 정책의 원칙과 방향을 논의하는 것은 현직 대통령의 몰락이나 새로운 정부의 등장이라는 거대한 권력의 교체 여부와 무관하게 (아니 조건 없이 유관하게) 중요한 정책 과제이다.
문화예산 정책의 비판적 검토를 위한 준거점
지금의 시점에서 문화예산 정책의 본격적인 논의를 위해서는 몇 가지 준거점이 필요하다.
먼저 성장주의에 대한 극복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문화예산에 대한 질적 검토와 평가는 생략한 채, 오직 양적 성장주의만을 강조해 왔다. 그 결과 우리에게 ‘문화예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공식이 바로 ‘정부 예산 대비 문화체육관광부 예산 비율’이다. 거의 모든 집권 세력은 문화 공약으로 ‘문화예산 1% 달성’, ‘문화예산 2% 달성’ 등을 상징적인 문화 정책 목표로 제시해 왔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문화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정부 각 부처에서 문화 관련 사업이 광범위하게 집행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소속 기관의 예산만을 문화정책의 대상으로 접근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는 비합리적인 재정 운용이라고 볼 수 있다. 개별 사업 단위로 보면 문체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대규모 예산이 국토교통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행정안전부, 지방시대위원회 등을 통해 문화의 옷을 입은 개발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또한 지역분권 정책과 지방자치제도의 변화도 ‘정부 예산 대비 문화체육관광부 예산 비율’의 정책적・제도적 한계를 명확하게 하고 있다. 중앙정부 정책의 지방 이양이 가속화되면서 문화예산이 큰 폭으로 증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문화정책은 ‘문화예산 몇 퍼센트(%)’ 식의 숫자 맞추기가 아니라 국정 운영 전반에 걸쳐 문화재정을 어떻게 현실적으로 운영할지 그 프로세스와 전략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대한민국 정부의 문화정책이 국가・행정의 주도로 가속・압축돼 성장했다면 이제 정부 문화정책의 핵심 과제는 국가・행정 주도의 성장・성과주의 과정에서 왜곡된 문화정책을 정상화하고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재조정돼야 한다. 문화예산도 무조건적인 양적 팽창 중심에서 벗어나 정책 목표와 방향, 중장기 문화재정과 적정 예산 편성, 현장 중심의 민주적인 상향식 예산 지원체계 수립, 문화적 가치에 기반한 합리적인 성과 평가 체계 확보 등에 주목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 탈성장, 지속가능성 등의 관점에서 본다면 예산이 많을수록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예산은 적절해야 한다. 그러므로 정책의 가치 실현과 현장 문화・예술 생태계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예산 지원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이런 관점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2025년 예산안을 살펴보자.
2025년 문화예술 예산 증액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
문체부의 2025년 예산안은 계획 수립 전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문체부가 2024년 문화정책의 방향과 기준도 없이 전례 없는 무더기 예산 삭감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이 직접 나서서 2024년 내내 “올해 삭감된 문화예산, 내년 모두 회복”2하겠다는 호소를 반복했어야 할 정도로 문체부의 2024년 예산은 심각했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문화예산을 갑자기 ‘대폭 삭감’했던 정부가 불과 차기 연도 예산안 수립 과정에서 ‘모두 회복’하겠다고 강조할 정도로 정부의 문화예산이 최소한의 일관성과 지속성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즉흥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예산을 삭감했는가?”, “무리하고 일방적인 예산 삭감으로 사업의 연속성이 실종되었는데 그로 인한 사회적 손실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같은 정부에서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다시 몇 개월 만에 모두 회복하는 예산정책의 원칙과 기준은 무엇인가?”라고 되물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문체부의 2025년 예산안은 어떻게 편성되었을까. 문체부는 2024년 8월 28일 보도자료3를 통해 다음과 같이 2025년 예산안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하여 문체부는 “2025년 문체부 예산안이 7조 1,214억 원 편성됐”으며 “이는 2024년 대비 1,669억 원, 2.4% 증가한 규모로, 윤석열 정부의 세계 문화 강국 도약 의지가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문화예술 부문은 “2024년 예산 대비 407억 원 증가한 2조 4,090억 원, 가장 큰 비중”이라고 강조했다.
문체부의 주장은 현실과 다르다. 문화예산은 오히려 줄어서 2023년 수준으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7조 원을 넘어섰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오히려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총계 기준의 규모 자체가 줄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일반회계와 다르게 기금의 총계 규모가 줄었기 때문인데 기금은 속성상 적립한 재원을 가지고 사업을 통해 지출도 하지만 다른 회계나 기금으로 전출함으로써 내부적 재정 조정을 하는 기능도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2025년 문체부 예산의 특징 중 하나는 기존에 기금을 융통성 있게 운영함으로써 그나마 필요를 충족했던 편성 방식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4
심지어 영화발전기금은 2023년에 1,670억 원 수준이었던 규모가 2024년 1,377억 원에서 2025년 936억 원으로 32%나 감액됐으며, 관광진흥개발기금의 일반회계 전출금은 전년 대비 무려 70%가량 줄었을 정도로 문화재정의 위기는 심각하다.
문체부가 이번 예산안 발표에서 강조했던 “문화예술 부문의 경우 2024년 예산 대비 407억 원 증가한 2조 4,090억 원”이라는 주장 역시 본질적으로는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실질적인 문체부 예산안이라고 할 수 있는 문체부 소관 기금 등을 포함한 문화・체육・관광 예산안으로 접근하면, 문화예술 부문은 문체부 주장과 달리 실제로는 199억 원이 오히려 감액5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화예술을 축소하는 중장기 국가재정계획
문체부의 2025년 예산안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정부의 국가재정운용계획이다.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는 2024년 8월 27일 2025년 예산안과 국가재정운용계획(2024~2028)을 발표하였다.6
문화・체육・관광 분야의 2025년도 예산안 규모는 8.8조 원으로 “전년도 예산 8.7조 원 대비 0.1조 원(1.3%) 증가하여 2019~2023년 연평균 증가율(4.5%)7 대비 상승세 자체가 둔화”
되었다. 주목할 점은 문화・체육・관광 분야 지출의 2019~2023년 연평균 증가율은 4.5%로 같은 기간 정부 총지출의 연평균 증가율(7.8%)보다 낮다는 사실이다. 총지출 내 문화・체육・관광 분야의 비중은 1.5%에서 1.3%까지 낮아졌다.
정부의 중장기 재정 계획 측면에서 보면 더욱 우울하다. 『2024~2028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해당 기간 문화・체육・관광 분야 총지출의 연평균 증가율은 1.0%로, 정부 총지출 연평균 증가율 3.6%보다 2.6%p 낮아 2028년에는 총지출 대비 비중이 1.2%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정됐다. 이를 2023~2027년 문화・체육・관광 분야 연평균 증가율은 2.1%, 정부 총지출 증가율은 3.6%로 그 차이가 1.5%였던 것과 비교하면 문화・체육・관광 분야의 연평균 증가율이 더욱 감소하여 총지출 증가율과의 차이가 더욱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직전 중기계획에 대비하여 문화・체육・관광 분야 투자 계획이 지속해서 축소되고 있는 경향만 확인한 셈이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관광 부문 2.3%, 체육 부문 2.2% 수준의 낮은 연평균 증가율도 문제이지만 문화예술 부문이 연평균 0.3%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는 점은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이것이 문체부가 2025년 예산안에서 강조했던 “윤석열 정부의 세계 문화 강국 도약 의지가 반영된 결과물”이라는 말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지구와 국가 차원에서
문화예산 정책의 접근과 제도개혁이 필요한 때
문화예산 정책의 접근과 제도개혁이 필요한 때
문화예술 분야의 사업별 예산 증감을 논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 그 바탕이 되는 문화예산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시기이다. 문화예산의 정상화를 위한 과제를 제안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첫째, 국가 문화정책의 균형감 회복과 문화예산 정책의 정상화가 시급하다. 국정 홍보를 위해 K-컬처, 관광, 이벤트・개발 사업에 과몰입・과투자를 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문화예산을 둘러싸고
구조화된 이익 집단화(화이트리스트)와 지원사업 검열과 배제(블랙리스트)에 대한 조사와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둘째, 문화재정 중장기 계획 수립과 안정화를 추진해야 한다. 독립적이고 전문적이기보다는 불안정하고 의존적인 기금 구조 중심의 문화재정 구조를 혁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장기 관점에서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문화재정 계획 수립과 재원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 예를 들어 「복권기금법」 개정을 통한 문화 재원 확보(문화예술진흥기금 문제 해결), ‘지방문화세’ 신설 혹은 ‘지방교육세’를 ‘지방교육문화세’로 개정 추진하며 문화예술 지원과 관련된 재원을 지역문화진흥기금, 지역상생발전기금, 지방소멸대응기금, 고향사랑기부금 등으로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지방 이양과 관련하여 중앙정부의 사업과 예산 떠넘기기에 대응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실질적인 지방분권과 균형 발전에 역행하는 중앙정부의 지방 이양 과정에 대한 재검토와 대안 프로세스가 수립돼야 한다. 무엇보다 업무와 재정 부담을 떠넘기기 위한 지방 이양이 아니라 정책 사업의 연계성 자체가 확보될 수 있는 지방분권이 추진돼야 한다. 또한 지방 이양 과정이 중앙정부에서 현장까지 하향식으로 추진되는 현재의 행정구조 자체에 대한 개혁을 통해 상향식으로, 지역에서 예측과 준비가 가능한 과정을 통해 추진돼야 한다.
넷째, 문화예산 집행 과정과 지원사업 제도의 전면적인 개혁이 동반돼야 한다. 행정의 성과주의가 아닌 문화예술의 가치가 실질적으로 작동될 수 있는 지원제도로 개혁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사업을 위한 지원사업 만들기가 아닌 창작자・시민(사람)을 위한 지원과 불신에 기초한 관리 감독 체계에서 벗어나 지원과 협력의 과정으로 접근, 행정편의가 아니라 정책 대상(문화예술계)과 시민(이용자)을 위한 지원체계 확립 등이 필요하다. 문화예술 활동의 현장과 시간을 고려한 지원사업 제도를 마련함으로써 ‘겨울과 봄에도 예술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 ‘사업이 아닌 사람, 보조 사업자가 아닌 예술인을 지원하는 사회’를 모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중장기 관점에서 국정 운영의 핵심과제와 문화예산의 연계성을 확보해야 한다.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기후위기, 기술 과잉, 초고령사회, 지역소멸(균형 발전), 사회적 돌봄, 사회적 일자리 등의 국가 정책 의제와 문화정책(문화예산) 사이의 연계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이다. 이를 통해 문화예산을 문체부 사업 예산으로 접근하는 한계에서 벗어나 국정 운영과 국가재정운용계획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접근하고 『2025~2029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문화적 가치와 역할에 대한 정책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본 원고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좋아요0
함께 읽으면 좋을, 추천 콘텐츠
문화 현장의 이슈와
건강한 정책 담론을 나누고 싶다면
웹진 A SQUARE에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