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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집중, 즉각적인 효율성 너머
향유 지원사업을 고민하다

2024년에는 취약계층을 위한 통합문화이용권이 확대되고
19세 청년을 위한 청년문화예술패스가 신설되며,
지역의 문화예술 콘텐츠를 강화하기 위한 정책이 시행되는 등
문화예술 향유 사업 전반에 있어 큰 변화가 있었던 한 해였다.
이번 원고에서는 2024년 문화예술 향유 지원사업을
3가지 키워드로 정리하며, 2025년의 전망을 함께 다루어본다.
글_원향미(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 선임연구원)
들어가며
2024년 부산문화재단에서 실시한 ‘부산시민 문화예술활동 트렌드 조사’에서 만 15세 이상의 부산 시민 2,000명에게 지난 1년 동안 오프라인 문화예술 관람 경험을 물어본 결과, 응답자의 약 85%가 1회 이상 관람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하였다.1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19년 ‘국민문화예술활동조사’에서의 문화예술행사 직접 관람률이 81.8%였던 것을 되짚어 보면, 현재의 관람 동향은 팬데믹 이전으로 회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우리 국민의 문화예술 관람률은 계속 상승 곡선을 그려서 90%에 육박했을 수도 있다.
문화예술 관람률이 지속적으로 오른다고 해서 현재의 문화 향유 정책이 유효했다고 섣불리 판단할 수 있을까? 또한 관람률에 비해 문화 참여 활동의 비율이 여전히 낮은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리고 문화 향유의 공간과 영역은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데 어디까지 포용할 수 있으며 어느 지점에 경계를 두어야 할까? 한편 평균 관람률보다 언제나 뒤떨어지는 시니어 세대 및 취약 계층의 고정적인 관람 격차는 향유 지원정책이 더욱 세밀하게 설계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문화기본법」에 명시된 국민의 문화권 보장은 문화 향유 지원정책의 법적 근거이다. 누구나 문화를 누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시행되는 향유 지원정책은 단순히 모든 국민에게 균등한 문화 관람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문화예술을 통해 개인의 삶이 개선되고 커뮤니티와 지역이 변화되도록 전반적인 향유 경험의 질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 권리 보장이 전제된 향유 지원정책은 ‘보편적인 향유 여건의 질을 높이는 것’과 ‘충분한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주체와 대상을 기준선에 도달하게끔 선택적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이원화하여 동시에 진행할 필요가 있다.
2024년 문화 향유 지원정책 현황
2024년 향유 지원정책의 구체적인 변화 양상을 살펴보기 위해 2023년 12월에 발표된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예술 3대 혁신전략 및 10대 핵심과제’와 2024년 업무계획을 살펴보자. 우선 “최고의 예술, 모두의 문화”를 지향하는 ‘문화예술 3대 혁신전략 및 10대 핵심과제’를 살펴보면 두 번째 추진전략인 ‘국민의 문화향유 환경 혁신’에서 현 정부의 문화 향유 지원정책의 큰 방향성을 읽을 수 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주요 내용이 포함된다. ‘잠재관객 발굴’을 위해 청년 문화예술패스를 지원하고 예술 교육과정을 확대한다. ‘사각지대 없는 향유 지원’을 목표로 문화예술의 전국 유통 지원을 강화하고 국립단체・기관의 지역 순회를 확대한다. 또한 ‘문화로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지역의 대표 예술단체를 육성하고, ‘구석구석 문화배달’ 사업을 추진하며, ‘대한민국 문화도시’를 육성하고 ‘로컬100’ 사업의 확산으로 지방 방문을 촉진한다. 마지막으로 ‘권역별 문화예술 거점 인프라 조성’을 위해 국립 문화예술 공간을 권역별로 조성한다.
202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주요 정책 추진 계획의 비전은 “문화로 행복한 사회, K-컬처가 이끄는 글로벌 문화강국”이다. 여기에서 문화 향유 지원정책과 연관된 핵심 추진 과제로는 ‘문화생활 지원을 위한 국민 문화여가비 부담 완화’와 ‘지역소멸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문화’를 들 수 있다. ‘문화여가비 부담 완화’ 과제와 관련된 정책으로는 청년 문화예술패스 사업, 문화비 소득공제 확대, 저소득층 통합문화이용권 지원금 인상이 있다. 다음으로 ‘지역소멸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문화’ 과제와 관련된 정책으로는 대한민국 문화도시, 문화예술 전국 유통, 유휴시설 문화공간 재창조, 인구 감소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누림, 사회문제 해결형 인문 프로그램 등이 있다.
전반적으로 K-컬처 중심의 정책 기조와 아웃바운드(해외 진출)를 지향하는 육성 중심 방향이 두드러진 가운데 향유 지원정책도 즉각적이고 선택적인 관점에서 구성된 것으로 보인다.
문화예술 3대 혁신전략 및 10대 핵심과제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 3대 혁신전략 및 10대 핵심과제 ⓒ문화체육관광부



2024년 향유 지원정책의 특징
① 선택적 지원의 강화
2024 정부 및 관련 기관의 문화 향유 지원 영역별 주요 사업

2024 정부 및 관련 기관의 문화 향유 지원 영역별 주요 사업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 향유 지원정책과 주요 사업은 크게 문화 향유 기회 제공, 문화 향유 기반 조성, 문화의 사회적 역할 확대로 구분해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2024년도의 향유 지원정책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취약계층・지역 중심의 선택적 지원이 강화된 것이다. 청년 세대를 위한 문화예술패스 사업이 신설되었고, 취약계층을 위한 통합문화이용권 사업은 지원 금액이 증액되었다. 인구 감소로 소멸 위험이 큰 지역, 혁신 도시, 농산어촌과 산업단지처럼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사업도 시행되었다. 문화 향유의 지역적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하여 국립 예술단체의 지역 순회 기회를 확대하였고 지역별 대표 예술단체를 육성하는 사업도 추진되었다.
한편, 고립 은둔 청년, 노인, 장애인, 중장년층, 치매 환자 및 학교 부적응 학생 등을 위한 인문 활동과 문화예술 치유 사업을 통해 개인의 고립과 소외 문제를 완화하려는 접근법이 도입되기도 했다. 도시침술2처럼 특정 지역과 대상에 집중적으로 문화예술을 투입하고 정서적 치유를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이러한 전략은 효과적인 방안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문화예술활동 실태를 고려하면 문화 향유 기반이 우수한 지역에서도 구성원의 상황에 따라 여전히 소외되는 사례가 많다. 특히 인생 주기에서 심각한 시간 빈곤을 겪는 세대가 있는데 그들에게는 보편적 향유 기회를 어떻게 보장해 줄 수 있을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회 구성원이 다양해지고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 속에서 그간 선도적으로 운영해 오던 문화다양성 사업을 축소하여 문화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중요한 축을 놓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② 즉각적 향유 기회의 확대
2024년 향유 지원정책의 또 다른 경향은 즉각적인 문화 향유의 기회를 확산한 것이다. 청년 문화예술패스가 신설되고 통합문화이용권 사업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면서 이용자가 체감할 수 있는 혜택이 많아졌다. 또한 찾아가는 문화활동 성격의 사업은 확대된 반면에 지역 주체들의 장기적 성장을 지원하는 특화사업이나 인력 양성 사업은 축소되어 단기적인 향유 기회 제공에 우선순위가 부여된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의 인프라 구축과 지속 가능한 향유 기회를 보장하는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현 정책의 효과는 단발성 소비에 그칠 우려가 있다. 예를 들어 청년들에게 즉각적인 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하는 청년 문화예술패스는 긍정적이지만 청소년기의 문화예술 경험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학교 문화예술교육 사업이 축소된 점은 잠재관객의 발굴 측면에서 일관성의 부족이라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또한 문화 향유의 기회를 확산하고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연결자, 즉 적극적인 문화 참여자부터 전문 문화 활동가까지 관련 인력의 양성과 활성화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반드시 보완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③ 도시의 동력으로 소비되는 지역 문화
2024년에는 기존의 문화도시 사업의 새 버전인 ‘대한민국 문화도시’ 사업이 시범 운영되는 해였다. 기존의 문화도시 사업은 문화를 통해 시민력을 키우고 그 동력으로 도시 문제의 해결과 지속가능성을 추동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대한민국 문화도시’ 사업도 시민과 함께 도시의 동력을 발굴하는 과정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업은 문화를 통한 도시 활성화에 비중을 두고 있으며 지역의 내부 역량보다는 다른 지역과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콘텐츠 전략의 구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로컬100’ 또한 지역의 독특한 문화 콘텐츠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자원으로 활용하는 사업이다.
다만 지역의 독특한 콘텐츠가 발굴되고 성장해 온 맥락과 과정보다 내수 관광자원으로만 소비되는 경향은 경계해야 한다. 인구 유출과 지역소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지역의 입장에서는 특별한 콘텐츠를 통해 생활 인구 및 관계 인구를 유입하며 지역 활성화를 도모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지역 문화가 구성원 간의 공통 서사로 자리 잡지 못한 채 지역민과 동떨어진 또 하나의 관광상품으로만 소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좌)대한민국 문화도시 추진전략 및 지정 가이드라인 ⓒ문화체육관광부<br>(우)로컬 100 지역 문화공간 ⓒ문화체육관광부

(좌)대한민국 문화도시 추진전략 및 지정 가이드라인 ⓒ문화체육관광부
(우)로컬 100 지역 문화공간 ⓒ문화체육관광부

2025년 문화 향유 지원정책의 전망
2024년도에 시작된 문화 향유 지원정책의 선택과 집중 기조는 2025년도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의제 중심으로 사업 통폐합이 가속화될 것이며 취약계층・지역을 위한 선택적 지원과 문화예술의 사회적 역할 강화가 지속될 것이다. 어린이 복합문화공간 조성, 산업단지 대상 문화배달사업 등 특정 공간과 지역을 타깃으로 한 사업이 본격적으로 운영되고 통합문화이용권의 지원 금액도 증액될 예정이다. ‘대한민국 문화도시’ 사업도 본 도시를 지정하기 시작하며 구체적 실행 단계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같은 향유 지원정책이 소위 K-컬처, 콘텐츠 영역에 밀려서 중요성을 잃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콘텐츠와 기술 분야가 성장하고 있음에도 해외 진출과 시장 활성화를 우선시하는 아웃바운드 중심 정책이 문화 향유 영역과 연계되지 못하거나 문화 접근성을 향상하지 못하는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
「지방자치법」 제11조 2항에 따르면 지역주민의 삶과 밀접한 사무는 가장 작은 단위인 시・군・구에서 우선 처리하며 이를 넘어서는 사무만 광역 지자체와 국가가 맡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보충성의 원칙’은 지역 분권의 핵심이며 문화 향유 지원정책에서도 중요한 원칙으로 작용할 수 있다. 현재 중앙정부의 문화 향유 지원정책의 방향도 이 원칙에 근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중앙정부 중심의 정책 전달 체계에 익숙한 현재 구조에서 이 원칙을 원활히 실행하려면 다수의 선행 과정이 필요하다. 정책 전달의 최종 목표인 국민의 일상까지 문화 향유 기회가 원활히 전달되고 있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상향식 전달 구조가 절실히 필요한 영역이 바로 이 문화 향유의 지원이다.
2024년을 맞이하기 전부터 사업 통폐합과 지방 이양 등의 이슈로 현장은 다소 혼란스러웠다. 이전까지 공모 사업에 의존해 한 해의 살림을 꾸려온 적잖은 지역은 갑작스러운 변화로 쉽지 않은 한 해를 보냈을 것이다. 물론 유사 사업 간의 통폐합을 통해 운영 효율성을 높이는 과정 자체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사업 변화의 필요성과 방향성에 대해 현장 주체들과 충분히 소통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시간이 부족했던 점은 이러한 정책 변화가 다소 반문화적으로 비칠 여지를 남겼다.
향후 지방정부의 중요성은 문화 향유 지원정책에서 계속 강조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지역에서 여전히 찾아가는 문화활동, 평생학습 중심의 문화예술참여활동, 생활문화동아리 지원 등을 주요 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작지만 유의미한 시사점을 도출하는 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다. 다만 그 성과가 외부로 공유되고 확산되는 기회가 부족하여 지역 간에 서로 배우며 함께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기는 어렵다. 효율성을 기준으로 보자면 그간 문화 향유 영역에서 쌓아왔던 작지만 유의미한 성과를 그저 미미한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2025년에는 그러한 성과가 계속 발견되고 호명될 수 있는 판이라도 마련되면 좋겠다. 그래서 각 지역이 문화적 성장을 서로 견인해 주는 기회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 문화 향유 지원정책은 소소한 공간에서 소소하게 모여 소소하게 즐기는 주체적인 문화 경험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주민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 문화 경험이야말로 향유 지원정책이 추구해야 할 본질이다.
원향미
원향미(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 선임연구원)

예술학 박사, 문화정책을 글로 먼저 배웠다. 부산대 예술문화영상학과에서 출범 당시부터 12년 동안 최장기 조교로 근무했다. 부산민예총 정책위원장을 거쳐 부산 최초의 기초문화재단인 금정문화재단에서 글로벌 팀장, 문화소통 팀장으로 근무하면서 현장에서 문화정책을 배웠다. 지역 문화 환경을 관찰하는 각종 조사와 문화 계획 수립 등을 통해 큰 배움을 얻었으며 2019년 9월에 출범한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늘 새롭게 시작하는 조직에서 일하다 보니 새 조직에서 새 기준을 만들어가는 것을 운명이라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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