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를 복원하는 문화예술의 힘
끊임없이 이어지는 다중 위기로 인해 위기가 일상의 대체어가 된 시기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지금 진정한 위기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앞서의 위기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근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은유적 표현에 가깝다면 지금의 위기는 우리의 현재와 존재를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진행형의 위기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정치적 오판에 따른 비상계엄의 여파로 정치·경제를 비롯한 모든 분야의 시계 제로 상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헌정질서가 예비하고 있는 회복의 절차가 진행되어야 하지만 지속되는 절차의 지연으로 인해 공동체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즐겁고 평화로운 연말을 보내야 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거리로 나서고 있습니다. 살이 에이는 추위에 입김을 불어 넣으며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안타깝지만, 좋아하는 음악에 맞추어 응원봉을 흔들고 서로에게 격려를 보내는 모습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우애와 연대의 단단한 기반 위에 자리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폭력에 저항하는 위치에 함께 서 있다는 마음’으로 노벨상 시상식에 참여한 한강 작가의 마음 또한 거리의 시민들과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문학은 폭력에 맞서는 일’이라는 수상소감처럼 문화예술은 폭력의 반대편에서 구성원 사이의 정서적 연대를 통해 공동체를 회복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에이스퀘어> 14호는 훼손된 공동체를 복원하는 문화예술의 힘을 기원하며 2024년 문화예술 현장에서 발생한 주요한 사건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과 함께 2025년에 마주할 문화예술정책의 변화양상을 제시함으로써 앞으로 예술 활동의 지도를 그리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되고자 합니다.
SQUARE에서는 ‘문화예술계 2024 결산과 2025 전망’이라는 주제로 총 여섯 편의 글을 수록하였습니다. 노수경의 ‘10가지 키워드로 미리 만나는 2025-2027년 문화예술계 트렌드’는 최근 국내외 동향을 분석하여 문화예술 트렌드를 예측하고 있습니다. 창작 분야에서는 인공지능(AI)과 연동된 예술창작의 증가, 디지털 기술과 예술 치유의 연계, 생태 중심 예술 활동이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 사회의 초개인화 현상과 이로 인한 맞춤형 소비 및 소비의 고급화, 참여형 소비자들의 개입을 통한 지식재산권(IP)의 확장을 향유의 측면에서 주목하고 있습니다. 또한 점증하는 한국 문화의 세계적 위상과 지정학적 위기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 지역소멸에 대응하는 지역문화 콘텐츠 생산, 구성원 사이의 갈등을 치유하는 문화다양성을 앞으로의 주요한 정책 이슈로 살피고 있습니다.
원향미의 ‘선택과 집중, 즉각적인 ‘효율성’ 너머 향유 지원사업을 고민하다’는 정부의 문화예술 향유 지원정책을 점검하고 있습니다. 취약계층에 대한 선택적 지원의 강화, 즉각적 향유 기회의 확대, 대한민국 문화도시 사업을 현 정부의 주요한 정책적 특징으로 지목하고 있으며 정책이 효과적으로 수행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구성원도 소외되지 않는 보편적 접근권 및 학교문화예술교육사업처럼 일회성 체험을 넘어 지속 가능한 향유 기회의 보장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문화도시 사업이 단순한 관광용 콘텐츠로 소모되지 않고 주민들이 공동의 정서로 연결될 수 있는 공통 서사로 자리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조형준의 ‘지역 공연 유통 지원사업은 무엇을 바라보고 달려야 하나’는 ‘유통’이 일회적으로 공연을 홍보하고 배포하는 기능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공연 생태계를 구성하는 다른 요소들과의 지속적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 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지역 공연 유통 지원사업’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지역을 문화 소외지역으로 설정하고 일방향적 하향식 공연 지원 일변도로 설계된 현행 유통 지원사업의 한계를 지적하는 한편 사업의 중심 목표를 지역의 공공극장을 거점으로 지역의 자원이 반영된 창·제작 과정을 통해 지역 공연 생태계의 창출과 회복에 두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오창은의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콤플렉스 없는 K-Arts를 위해’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의 의미를 한국문학의 세계화라는 정책 목표의 달성과 함께 주류에 치우친 한국의 문화적 표준을 소수자의 시선으로 일정 부분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이른바 ‘K-Arts’의 세계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문화제국주의를 탈피한 평등적·수평적 감수성에 기반한 문화교류 활성화와 한국의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진 현지인들의 양성을 통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세계화를 요청하고 있으며 내부적으로는 집중지원이 아닌 예술 생태계 자체를 튼튼하게 하는 풀뿌리 지원정책이 선재되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습니다.
오세곤의 ‘학교문화예술교육의 위기 속, 교육 정상화 및 확대를 위한 제언’은 학교문화예술교육의 약사 및 법적 근거와 함께 이를 각급 단위의 학교에서 보편적으로 실시해야 하는 국가의 책무를 적시하며 예년에 비해 대폭 삭감된 학교문화예술교육 예산 현실에 대해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어 학교문화예술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강사료의 현실화 및 각종 사회보장제도 편입을 통해 예술강사의 처우를 개선하고 교육 시수의 지속적 확대를 통해 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며 강사 연수 및 네트워킹, 강사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니터링 지원 등 지원사업의 상세화가 필요하다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원재의 ‘예산으로 보는 2025 문화예술정책-국가 차원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2025년 문화예산이 2024년에 비해 증가한 것으로 홍보되었지만 그 실질은 기금의 규모 축소로 인한 감액의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중장기 재정 계획 측면에서는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이와 함께 문화예산을 수치와 증감의 여부로만 파악하는 양적 팽창주의를 극복하고 예술 생태계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문화정책의 균형감 회복, 지속 가능한 문화재정 계획 수립과 문화 재원의 다각화, 성과 중심이 아닌 가치 중심의 지원체계 수립, 국정과제와 문화예산의 연계성 확보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PRISM은 한 해의 시작을 기점으로 지난 사건과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전망에 대한 전문가들의 인식은 어떠한지에 대해 분석하고 있습니다. 권용민은 ‘2025년 문화예술계 전문가들의 시각과 전망’에서 그간 <에이스퀘어> 제작에 참여한 문화예술 전문가에 대한 설문을 통해 2024년의 주요한 이슈와 앞으로 주목할 문화적 키워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비롯하여 더욱 진화된 AI 기술의 등장처럼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던 지난 사건들과 지역소멸, 고령화, 기후위기 등 앞으로 예술이 대응해야 할 문제들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를 확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참여자들의 대담을 통해 예술 현장의 이슈를 다양한 시선으로 진단하는 AROUND에서는 2편의 대담이 게재되었습니다. ‘에이스퀘어 편집위원회와 함께한 문화예술계 2024년 결산 2025년 전망’은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제작을 함께 한 김대현, 박병성, 양혜원, 이지현 편집위원이 모여 2024년 <에이스퀘어>가 주목한 문화예술 현장의 이슈들과 편집위원 각자가 예측하고 있는 미래의 전망에 대해 대담을 진행하였습니다. 과월호에서 다루어진 주요한 이슈들이 선정된 과정 및 해당 이슈에 대한 편집위원회의 논조를 확인하는 것과 함께 앞으로 문화예술현장에 다가올 화두는 무엇인지에 대한 편집위원회의 생각과 고민도 살짝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2024-2025 문예진흥기금에 대해 장르별 현장 예술인에게 묻다’는 문예진흥기금 공모사업 개편에 따라 예술 현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권태현 독립 큐레이터, 고봉준 문학평론가, 박정의 서울연극협회 회장, 손상원 디아랩 대표·예술감독, 유채하 뉴아트플랫폼 대표, 이규린 주다컬쳐 대표를 초대하여 대담을 진행하였습니다. 다년간·집중지원에 중심을 둔 정책 기조의 변화, 유사·중복사업 통폐합, 사업 이관을 통한 지원체계 정비, 세대별 예술인 지원에 대한 예술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행정절차의 간소화 및 예술의 특수성을 고려한 현장 친화적 예술행정 수립, 심의 관련 정보의 공개 확대, 예술 현장의 정책 신뢰를 제고하기 위한 지원사업 기조의 장기적 유지 등에 대한 현장의 생생한 의견을 접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FLOW에서는 한국 문화예술의 위상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추세와 관련하여 ‘세계와 한국을 문화로 연결하는 세계 속의 한국문화원’을 주제로 한국문화원의 역할과 활동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지인 LA에서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며 한국문화의 고유성을 소개하고 그 저변을 확장하고자 하는 노지영 주LA한국문화원 실무관의 글, 세계 3대 미술시장의 하나인 홍콩에서 미술 전시를 특화사업으로 선정하여 한국 시각예술의 저력을 세계 시장에 소개하고 있는 우한솔 주홍콩한국문화원 전시 큐레이터의 글, 세계의 문화수도인 파리에서 한국의 놀이, 한국문학 등 한류에 관련된 서비스를 원스톱·융복합으로 제공하고 있는 이성은 주프랑스한국문화원 언론홍보 담당의 글을 통해 한국문화 세계화의 전초기지로서 한국문화원의 역할을 살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정치의 위기는 필연적으로 구성원 사이의 갈등을 생성합니다. 각자의 몫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구성원 간 위계와 구획이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의 고착화는 상대에 대한 적대와 혐오로 이어지며 이는 자연스럽게 폭력적인 것으로 전화합니다. 우리의 일상을 훼손하고 있는 지금의 위기는 공동체에 만연한 적대와 혐오의 누적된 결과물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문화예술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후기에 수록된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라는 한강 말처럼 예술은 적대와 혐오에 기초한 것이 아닌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신뢰를 기반으로 서로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행위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상처 입은 우리의 공동체를 복원하는 문화예술의 힘을 <에이스퀘어>는 굳게 믿습니다.
좋아요0
함께 읽으면 좋을, 추천 콘텐츠
문화 현장의 이슈와
건강한 정책 담론을 나누고 싶다면
웹진 A SQUARE에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