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 변화:
생활인구에 주목하다
생활인구에 주목하다
최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인구 감소에 따른 지역소멸 위기에 직면하며 인구 유입을 늘리고 유출을 완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정책적 노력은 2023년 1월부터 시행된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해당 법은 생활인구 개념을 도입하고 이를 특정지역에 거주하거나 체류하며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생활인구는 ①주민등록인구, ②체류인구, ③외국인등록인구로 구분하는데, 이는 주민등록인구뿐만 아니라 체류인구와 외국인등록인구도 지역 활성화를 위한 자원으로 간주하는 방향으로 정책기조가 변화됨을 나타낸다. 즉, 지역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단순히 정주인구의 증가만을 고민하던 상황에서 비정주인구의 유입 증가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전략으로 전환한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시행 중인 다수의 관련 사업은 저출생 지원사업을 제외하면 주로 주민등록인구의 유출은 막고 체류인구의 유입은 증대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편이다.
생활인구의 유형 3가지
생활인구와 문화예술정책의 관계
문화예술정책 측면에서 생활인구 개념의 도입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문화예술은 지역의 정체성과 매력을 강화하고 지역주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높이며 외부 인구를 끌어들일 수 있는 강력한 자원이 된다. 실제로, 문화예술은 사람들의 이주 및 정주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에는 직장, 교통, 교육 여건과 같은 요소가 이주의 주요 결정 기준이었으나 이제는 문화예술을 즐기고 누릴 수 있는 환경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이다.
영국예술위원회의 한 연구에 따르면 영국인은 거주할 지역을 선택할 때 문화예술 시설과 행사 등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교육 환경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Parkinson et al., 2019). 미국 역시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시설이나 공간이 얼마나 가까운지,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풍부한지 등이 정주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조사된 바 있다(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2019). 우리나라에서도 비수도권 주민이 수도권으로 이주하려는 주요 요인 중 하나가 ‘문화시설 및 서비스’ 여건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특히 비수도권 주민은 ‘문화·여가 시설 및 서비스’ 불평등을 ‘일자리’ 불평등과 비슷한 수준으로 체감하고 있었고, 수도권으로 이주를 희망하는 이유로 좋은 일자리를 기대하는 것보다 ‘문화·여가 생활 여건 개선’을 기대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경제인문사회연구회, 2021). 이는 이제 단순히 일자리만으로는 지역 간 인구 이동을 설명하기가 어려운 시대가 되었음을 보여주며 문화적 요소가 지역 경쟁력의 중요한 축으로 떠오르고 있음을 시사한다.
물론 인구 유입과 유출에 있어 일자리 창출과 임금 수준의 향상이 중요한 요소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문화예술을 향유할 기회를 보장하고 지역의 문화예술 시설과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는 것도 지역소멸의 위기에 대응하는 중요한 과제로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지역소멸에 대응하는 중앙정부의 지역문화예술정책 현황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발표한 ‘문화로 여는 지방시대 지역문화정책 추진 전략’과 ‘문화예술 3대 혁신전략, 10대 핵심과제’는 이러한 배경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두 계획은 모두 인구 감소에 따른 지역소멸 문제를 문화로 해결해야 할 정책의제로 명확히 규정하며 주요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지역소멸에 대응하기 위한 문체부 및 유관 기관의 주요 사업 예시
현재 문체부의 관련 사업은 크게 지역주민의 문화적 정주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과 방문·체류인구를 늘리기 위한 사업으로 나뉜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로는 ‘방방곡곡 문화공감(국립예술단 지역 순회 공연 지원사업)’, ‘대한민국 문화도시’, ‘15분 문화 슬세권 조성’, 지역문화진흥원의 ‘구석구석 문화배달’ 사업 등이 있으며 후자의 예로는 ‘로컬100’, ‘워케이션 활성화’ 사업 등이 있다. ‘권역별 문화예술 거점 인프라 조성’ 사업은 전자와 후자의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도 2024년부터 ‘소멸위기 대응 문화적 지역활성화’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이 지원사업은 지역주민의 문화적 정주 여건을 개선하며 방문·체류인구의 유입을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지역의 필요와 여건에 기반하여 문화적 지역 활성화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먼저 지역에서 사업제안서를 제출하면 이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심사하고, 선정된 지역에는 협의된 내용에 따라 사업비를 지급한다.
다만 지원 대상을 해당 지역의 지역문화재단이나 민간단체로 한정하고 있다. 그런데 지역소멸 위기 및 관심 지역에는 대부분 기초 문화재단이 설립되어 있지 않고 문화적 계획을 수립하거나 관련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민간단체의 규모나 내부 자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에 사업 추진의 동력과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문체부가 주요 주체로 참여하는 범부처 사업인 ‘문화를 담은 산업단지 조성사업(가칭)’ 또한 문화예술을 통해 지역소멸 위기에 대응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2024년부터 관련 법 개정과 함께 본격 추진된 이 사업은 산단 입주 기업의 근로자와 지역주민에게 문화적 공간을 제공하고 프로그램, 전시, 공연 등의 기획과 개최를 지원하며 산단의 문화적 매력을 높이는 데 그 목적을 둔다. 이는 결국 낙후된 산단에서 청년 인구가 유출되는 것을 완화하고 반대로 유입되도록 하는 데 문화예술을 활용하도록 지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지역의 문화적 환경 개선 사업은 정주인구의 유출 완화와 체류인구의 유입 증가에서 나아가 지역발전을 선도할 첨단기술 기업의 투자와 유치의 마중물이 될 수도 있다. 첨단기술산업 분야의 기업은 문화예술활동이 활발한 지역을 매력적인 장소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유는 지역 내 활발한 문화예술 커뮤니티의 존재가 관련 산업군을 선도하는 인재의 유치와 유지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Florida, 2014). 지역 소도시 수준에서 문화예술을 통해 정주인구의 유입 및 경제발전 성과를 창출한 사례도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Markusen, 2023).
‘문화를 담은 산업단지’ 조감도 ⓒ국토교통부(2024.09.12.)
발전 방향과 과제
그러나 이러한 효과가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실질적으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과제가 남아 있다. 우선, ‘지역대표예술단체 육성지원사업’과 함께 지역 예술인과 단체를 포함하는 ‘지역문화
전문인력’의 역량을 강화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들은
지역문화예술활동의 다양성을 높이며
지역의 문화자원이 매력적인 콘텐츠로 재탄생될 수 있도록 하는 핵심 주체이다. 이들의 역량 강화를 바탕으로
지역문화 기반시설에서는 전통적인 방식의 공연이나 전시를 넘어 변화하는 트렌드를 반영한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하고 공급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이제 어쩌다 한 번 미술관, 박물관, 문예회관을 방문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미술관에 가서 산책이나 요가를 하고 작품에 대한 생각과 삶을 함께 나누며, 도서관에 가서는 책을 빌려 볼 뿐만 아니라 소규모 라이브 콘서트도 즐기는 식으로 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커지고 있다. 반면 지역 인력의 역량을 강화하거나 그와 연계하여 기존 문화시설의 프로그램을 다양화하는 것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고 있는 편이다.
지역에서 일하는 청년은 대체로 산단 입주 기업이나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이거나 소상공인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문화생활을 지원받을 수 있는 복리후생 기회가 아무래도 대기업 및 공공기관 종사자보다 적은 편이다. 국립예술단의 순회공연과 같은 일회성 향유 지원이나 산단 내 시설의 확충에서 나아가 지역 내에서 반복적으로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근로자와 지역 기관 또는 예술단체의 접점이 확대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는 지역공연단체 티켓 구매 시 지역화폐를 통해 추가 캐시백을 제공하거나 지역 내에서 실시하고 있는 청년문화패스 사업 등과 연계하는 방안 등으로 구체화해 볼 수 있다.
‘천 원의 일상 문화 티켓’ 사업 모델(안) ⓒ국토교통부(2024.09.12.)
지역소멸 위기는 복합적인 위기이다. 문화예술, 산업, 일자리, 주거, 도시계획 등 다양한 분야에서 종합적으로 대응해야 할 연쇄적 문제인 것이다. 이에 중앙정부 각 부처에서는 따로 또 같이 사업을 진행하되, 재정적 지원을 넘어 지역주민의 문화권 보장과 도시계획, 일자리 등 다양한 정책 분야가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연계되어 실행될 수 있도록 부서 간 협업을 촉진하는 제도적 인센티브 마련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역문화예술정책이 인구 감소와 지역소멸의 위기에 대응하는 전략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획일화가 아닌 문화적 다양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에 법정 문화도시 지정 사업을 통해 형성된 지역의 문화자원 네트워크가 소실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협력하고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의 매력을 높이면 서울·수도권과 차별화되는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고 다양성과 고유성(originality)도 높아진다. 이는 결국 지역의 문화자원에 대한 관심과 다양한 사람들의 교류와 소통에서 출발한다. 단순히 문화 향유의 기회를 증진하거나 인프라를 개선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과 활동의 다양성을 살림으로써 지역주민의 문화적 삶의 질이 개선되어 체류인구의 증가도 기대할 수 있는 정책이 실행되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 Parkinson, A., Engeli, A., Marshall, T., Burgess, A., Gallagher, P., & Lang, M.(2019), The value of arts and culture in place-shaping. Wavehill, Social and Economic Research.
·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2019). The Arts in Neighborhood Choice.
· 경제인문사회연구회(2021), 『지역 불평등: 현황과 개선방안 총괄 편』.
· Florida, R.(2014), 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 revisted.
· Markusen, A.(2023), Arts and Cultural Innovation as Small city Economic Development. Economic Development Quarterly 37(1).
·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2019). The Arts in Neighborhood Choice.
· 경제인문사회연구회(2021), 『지역 불평등: 현황과 개선방안 총괄 편』.
· Florida, R.(2014), 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 revisted.
· Markusen, A.(2023), Arts and Cultural Innovation as Small city Economic Development. Economic Development Quarterly 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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