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힘으로 더 멀리, 더 새롭게 나아가는
군산북페어
군산북페어
군산북페어의 사명은 웹사이트를 론칭할 때 간단히 천명한 바와 같이 한국 북페어 생태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종래 북페어와는 내용과 기풍이 아주 다른 북페어를 개최하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이는 대략 15년 전 한국에서 북페어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이래 어느 시점부터 나타난 일종의 문화 지체 현상을 나름의 방식으로 극복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오해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오늘날 북페어는 책을 사고파는 데 '너무'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주최 측과 참여자 모두 마찬가지이다. 매출이 북페어의 성과로 치부되는 풍조에서는 사실상 양립하기 어려운 아이러니가 나타난다. 매출에 집착할 때 혹은 그럴 수밖에 없을 때 셀러는 잘 팔릴 것으로 예상되는 책 위주로 라인업을 구성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책과 취향의 다양성이 전제가 되는 북페어의 이상과 동떨어진 결과를 낳게 된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비판적으로 토론되는 주제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군산북페어에서는 셀러 100팀을 초청하고 강연자 18명을 섭외하며 전시 3개를 기획하는 한편, 참여자의 상호 교류를 위한 특별 이벤트인 '책은 친구를 만든다'를 개최하였다. 이것은 우리가 북페어 전면에 동시대 출판의 어젠다를 제기하고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는 배경이 됐다. “도시가 책을 판다(Books For Sales)”와 “책을 탐구한다(Sail For Books)”라는 슬로건도 이런 기조에서 나온 것이다.
8월 31일부터 9월 1일까지 열린 북페어에는 최근 10년간 조용하던 군산 나운동 일대가 북적거릴 정도로 인파가 몰려 흥행이라는 측면에선 인상적인 성과를 거뒀다. 이틀간의 연인원이 아닌 실제 인원 7천 명이 들어 찬 군산회관은 실로 장관이었다.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군산회관(구 군산시민문화회관)은 오랜 세월 방치되어 있었는데, 이번 북페어는 그 군산회관을 리모델링한 후 열린 첫 대중 행사였다는 데도 꽤 각별한 의미가 있다. 셀러 100팀과 북페어를 방문한 인사들의 반응,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피드와 후일담을 종합하면 외람되지만 북페어가 열린 이틀만은 군산이 한국 출판계의 중심이었다고 생각한다.
군산의 동네 책방들이 모여 북페어를 상상한 지는 3년쯤 됐다. 당시에는 ‘군산’과 ‘북페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은 이질 조합으로 보였으나 이제 ‘군산북페어’는 짧은 시간 안에 인지도를 확보한 고유명사가 됐다. 또 하나의 유사 북페어를 만들기보다 대안으로서의 북페어를 고민한 것이 주효한 셈인데, 여기에는 지역소멸과 관련해서 던진 메시지도 있다고 본다. 텅 비어 있기 때문에 완전히 새롭게 할 수 있다. 이는 ‘소멸의 창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형용 모순의 역설을 자양분 삼아 불꽃을 피우는 일이야말로 지방에서 활동하는 문화 기획자의 소명이라고 믿는다.
군산북페어의 다음 목표는 ‘북페어’ 하면 인습적으로 떠올리는 개념을 헤집고 나와 더 멀리 가는 것이다. 주류 북페어에서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아카이빙 실천을 비롯해 인접 장르와 결합한 전시 및 이벤트, 북페어가 열리는 장소의 다변화 등이다.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이곳이 지방이기 때문이다. 변방의 결핍과 반역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이러한 여건은 지역을 첨예한 문화 지대로 만드는 것을 넘어 중앙을 견인하는 에너지가 될 수도 있다.
서울과 가깝고도 먼 도시, 부천으로 초대하는 법
부천아트페어
부천아트페어
올해로 4회째를 맞이한 부천아트페어는 지역 작가의 판로 개척과 시각예술 인프라를 구축하고자 하는 뚜렷한 목적하에 매해 다양한 방식과 콘셉트로 진행되어 왔다. 부천은 서울과 가깝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찾아오게 하기가 더욱 어려운 도시이기도 하다. 여행 삼아 방문하는 관광 도시로 만들기도 어렵고, 가볍게 서울에서 나들이를 하려는 이들을 불러 모으기에는 거리가 좀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부천에는 미술 인프라가 많지 않다. 영화, 만화, 클래식, 생활문화를 위한 기반 시설은 잘 갖춰져 있으나 그에 비해 시각예술을 위한 시설은 미약한 실정이다. 이것이 부천 지역의 예술인들이 시각예술 분야에 대한 지원을 꾸준히 요구해 온 배경이다. 이에 따라 올해는 시각예술 분야에서 활동해 온 필자가 총괄 디렉터로서 합류하며 부천아트페어가 부천의 대표적인 미술행사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으게 되었다.
올해 총괄 디렉터로서 부천아트페어를 준비하면서 가장 고민한 부분은 부천시민뿐 아니라 타 지역의 시민까지 부천을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었다. 일단 현장으로 와야 작품에서 매력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고, 그래야 작품의 소장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지금 당장은 작품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부천에서 예술과 연결되는 경험을 일단 하게 되면 타 지역의 시민은 다음에 또다시 이 도시를 찾을 수 있고, 부천시민은 지역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부천아트페어에서는 프리뷰와 본전시를 나누는 전략을 취했다. 부천에 위치한 현대백화점에서 진행된 프리뷰는 본전시에 출품하는 작품의 맛보기 전시로서 소품 위주의 작품을 선보였다. 백화점의 워크인 고객을 타깃으로 한 프리뷰 전시는 결과적으로 방문객 약 2만 명을 모으며, 그들을 본전시로 연결시키는 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열기를 이어받아 본전시를 부천아트벙커B39에서 진행하였다. 부천아트벙커B39는 과거에 쓰레기 소각장이었던 공간이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여 공간 자체가 가지는 힘이 무척 큰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품을 선보이기에는 제약이 많아서 여러모로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다. 부천문화재단 문화도시부의 관계자와 함께 여러 번 공간을 답사하며 전시 공간을 정하고 기획전, 특별전, 연계 프로그램이 열리는 장소와의 적합한 동선을 찾기 위해 애썼다.
결과적으로 부천아트페어는 무사히 개막되었고 프리뷰와 본전시를 모두 합쳐 2만여 명이 발걸음해 주셨다. 여러 유의미한 결과가 있었는데 참여 작가분들의 피드백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아트페어가 열리기 전에 작가들에게 제공한 교육 프로그램이 많이 도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부천아트페어가 추구하는 바는 단순히 일회성 판매 행사에 그치지 않고, 예술인으로서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고 실질적인 노하우를 터득하여 커리어적인 성장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작가노트 작성법, 저작권 교육과 같은 여러 프로그램을 제공하였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아트페어를 주최하는 일원과 작가분들이 서로 간의 연대를 통해 이후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것을 꿈꾸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부천아트페어가 폐막한 이후인 현재까지도 참여 작가들의 새로운 판로 개척을 위해 작품 이미지를 활용할 기업과 작가를 매칭하는 프로그램을 이어가고 있다. 아쉬움과 고민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유의미한 시도를 통해 이룬 것과 이뤄내야 할 것에 집중하며 부천아트페어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일상을 벗어나 여름밤의 낭만을 공유하는
정동진독립영화제
정동진독립영화제
정동진독립영화제는 강릉에서 영화가 좋아서 모인 이들의 손으로 시작되었다. 회비 한 푼 두 푼을 모아 공간과 프로젝터, 갖가지 비디오테이프를 모으던 강릉씨네마떼끄 회원들은 1999년, 강릉 시민과 관광객에게 독립영화를 선보일 영화 축제를 한국독립영화협회와 함께 열기로 했다. 큰 후원도 없이 직접 비계를 쌓고 사다리에 올라 합판에 하얀 페인트칠을 해가며 스크린을 만들었다는 옛날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무모하지만 참 대단했구나 싶었다. 20세에 처음 룰라(장기 자원 활동가)로 영화제에 참여했던 필자 또한 ‘땡그랑동전상’의 깡통에 붙일 영화 제목 종이를 오려서 붙이고, 후원자에게 보낼 티셔츠를 접어 포장했던 기억이 선하다. 그리고 영화제 당일이 되면 우리의 어설픈 손길이 모여 올해도 영화제를 무사히 열었다며 좋아했다. 물론 정든 에어스크린이 생명을 다하고 22회에 터져 버려서 가설 스크린이 들어서고, 손수 꾸미던 디스플레이는 전문 업체에 맡겨 제작하는 등 영화제의 규모가 커지면서 핸드메이드의 영역은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영화제를 함께 만들었던 옛날의 즐거움과 낭만은 여전히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어린 시절로 되돌려 놓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편하게 돗자리를 깔고 쑥불 향을 맡으며 독립영화를 보던 순간, 비 없이 영화제를 즐길 수 있게 해달라는 염원이 담긴 우리의 토템인 우산살소녀, 영화제의 기억과 전하고픈 마음을 담는 별밤우체국, 비가 오면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은 체육관으로 들어가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영화를 봤던 추억 그리고 이 모든 낭만을 표현한 슬로건인 “별이 지는 하늘, 영화가 뜨는 바다”. 이 모든 것에는 작은 공간에서 머리를 맞대고 영화제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누던 영화제 선배들의 순간이 담겨 있으며, 영화제에서 여름을 보낸 관객의 순간도 담겨 있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독립영화를 매개로 낭만적인 여름을 함께 나누는 것. 이것이 바로 ‘정동진독립영화제’라고 생각한다.
올해 정동진독립영화제의 관객 수는 1만 4,553명으로 역대 최다 기록을 남겼다. 이례적인 기록이 너무나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공간의 수용 인원 한계를 더더욱 실감하였다. 운동장을 꽉 채운 관객들 사이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영화제 시설을 이용하기 위한 대기 줄이 너무 길어서 모두 불편을 겪었다. 관객 규모에 비해 관리 인원이 부족한 것을 체감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인해 뾰족한 수는 없었다.
또 하나의 어려움을 꼽자면 지역에는 영화제를 함께 꾸려갈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매년 사무국 인원의 업무가 가중되고 있다. 지역 영화인 그리고 여러 영화제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타 지역의 스태프가 참여하고 있지만 지역 영화의 지원 예산이 삭감되며 지역 영화 생태계는 물론이고 독립영화의 제작 환경도 어려워진 지금,
전문 인력의 충원 또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제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20회부터는 사무국 외에 집행위원회와 선정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이들 부서는 정동진독립영화제에 대해 잘 알 뿐만 아니라 상영, 창작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영화인들로 구성되었다. 또한 강릉씨네마떼끄 회원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의 참여 기회도 넓히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최근에 영화제 사례를 발표하러 간 자리에서 배리어프리 버전 상영과 수어 통역에 주목한 관객의 얘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모든 상영작을 배리어프리 버전으로 상영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는 말에 ‘정동진독립영화제를 계속해서 찾아가고 지지하는 이유’를 만들어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느꼈다. 영화제와 독립영화가 아직 낯선 지역 환경에서 우리 영화제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설득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관객이기 때문이다.
신영극장에서 관객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간혹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의 좋은 추억을 안고 강릉으로 이주해 온 관객을 만나곤 한다. 바다와 서핑에 이어 강릉이란 도시에서의 삶이 기대되는 계기 중 하나가 정동진독립영화제라는 건 참으로 고마운 이야기이다. 이들은 영화제를 계속 찾아주는 관객이자 가까이에서 영화제를 만들어가는 동료가 되곤 한다. ‘이런 식으로 영화제가 계속될 수도 있겠구나’ 하며 즐거운 그림을 그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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